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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나된 것은 (고전 1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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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나된 것은-고전15:9~10
이름  김광일목사 

얼마 전에 타임지에 빌리 그래함 목사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파킨슨병에 걸린 그의 몸은 나날이 여위어가고, 입 속의 침도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전도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왜 나 같은 것으로 하여금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고 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빌리 그래함 목사만큼 탁월한 전도자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그처럼 엄청난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하나님, 왜 저 같은 사람을 불렀습니까?" 라고 질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능력이 있으며 흠이 없어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신 것이라고도 말해도 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왜 저 같은 자를 불렀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는 것은 사도바울처럼 은혜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현재의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자신에 대하여 불만을 품으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잘 풀린 사람들은 내가 노력했으니까 재산도 모았지! 내가 성실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거야! 내 머리가 좋으니까 공부도 잘 한 거야! 내 외모가 있으니까 좋은 배우자 만났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남들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약삭빠르게 사는 바람에 내가 손해를 봤어! 다른 사람들이 너무 경쟁적으로 사니까 내가 뒤처진 거야! 그러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누구나 자기의 삶은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적인 인생관은 다릅니다. 즉 인생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10절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나됨을 아는 삶이며 은혜를 아는 자의 삶입니다. 이와 같은 고백은 중요한 진리입니다. 오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면 내일의 나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말입니다.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의미는,

첫째로 하나님의 사람이 된 나의 모습이 은혜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존 뉴턴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 팔아 넘기는 일을 하던 노예선의 선장이었는데, 1754년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후에 노예 제도를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설교시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다음에 내가 천국에 가면 세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천국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놀랄 것이고, 둘째는 그곳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마지막으로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한 가지만큼은 결코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거에 너무나 큰 죄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은 자신의 실존을 정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신,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기에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 치 못할 자라 고백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절에서는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며 용서받기 어려운 죄인이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께서 불러주셨고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죄를 용서하시어 의롭다 하시며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현재의 나된 것은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격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현재의 나를 돌아보면 스스로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찾을 자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은혜로 품어주시고, 귀한 사명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 역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된 것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하신 줄로 아는 깨달음이 은혜입니다

가이드포스트지에 실린 간증에 의하면, 현정화 탁구선수는 16년 동안의 선수생활 중 가장 잊지 못할 경기로 1993년 세계선수권 대회를 손꼽습니다. 당시 허리를 심하게 다쳐서 은퇴하려했던 현정화는 세계선수권대회 대표선수로 뽑혀 힘겨운 훈련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밤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게 해주세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세요." 그녀는 마침내 준결승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가서 중국선수에게 완승을 했습니다. 우승하는 그 순간 그녀는 마루바닥에 꿇어앉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녀가 세계여자탁구 사상 최초로 단식 우승을 달성한 원인이 기도에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녀를 높이 들어 세계 정상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음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대개 큰 일을 이루어 놓고 자신을 주장합니다. ‘내가 기도해서', '내가 열심히 해서','내가 했더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안목으로 보면 내가 했기에 된 것이 아닙니다. 사실 내가 한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하게 하셔서 한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실 바울만큼 많이 수고하고, 바울만큼 많이 일하고, 바울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만큼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만큼 많은 서신을 저술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귀한 일들을 감당하면서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고, 매맞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히고, 풍랑을 만나고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까?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많은 수고를 한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10절에 “내가 이 일을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현재의 많은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감당해 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공적이 나타났음을 믿어야 합니다. 자기가 수고하고 업적을 남긴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이 은혜입니다

1871년 몬트릴 제네럴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과 대학생이 의사시험을 앞두고 합격할지 알 수 없어 근심하기에 이르렀고, 또한 앞으로 어디로 갈지 의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바르게 살 것 인지의 고민을 안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토마스 카알라일의 책 속에서 "우리의 주된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데 있다" 란 구절을 읽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죤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윌리암 오슬로경입니다.

인생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을 위하든 돈을 위하든 권세를 위하든 쾌락을 위하든 나름대로 삶의 목적을 정해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어느 의과대학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두 명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둘이 병원의 복도를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매우 고통스런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고 엉거주춤하고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저것은 분명히 류마티스 관절염이야.'그러자 다른 학생이 머리를 저으며 말했습니다.'천만에, 저건 디스크가 틀림없어.'둘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옥신각신 하였습니다. 그때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아주 힘겹게 그들에게 물었습니다.'저, 화장실이 어디죠? '. 사람의 경험이나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의 틀에 하나님을 가두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경험에 하나님을 가두어서도 안됩니다. 나의 지식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만을 위해, 성공을 위해, 출세를 위해, 재물을 위해 고달프고 힘든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진정한 목표가 있음은 행복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삽니다" 라고 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7-8 절을 통하여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하며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주를 위하지 않는 삶은 사나 죽으나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삶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고 죽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은혜중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신 은혜,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시는 은혜 속에 인도하심을 믿고 언제나 담대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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