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왜 주님 손에 못을 박는가? / 요 19:17-18

  • 잡초 잡초
  • 408
  • 0

첨부 1



◎ 본문 : 요한복음19:17-18
◎ 제목 : 왜 주님 손에 못을 박는가? 

☞본문: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지금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한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번역하면 “수난의 예수”입니다.

예수가 체포되어 십자가에서 사형되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하게 화면에 옮긴 영화인데, 신약부분에 쓰인 그리스도의 최후를 고통스러우리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 채찍질, 석회암 바닥에 흥건히 괸 피, 예수의 위태로운 어깨에 걸려 언덕을 오르는 육중한 십자가, 그의 손과 발에 차례차례 박히는 거대한 못과 망치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묘사가 되었습니다. 예고편만 봐도 실감이 납니다.(청년회 방명록에)

인터넷 뉴스인 오 마이 뉴스에서 이 소식을 전하면서, 강인규라는 기자가 기사 끝부분에 아주 의미심장한 글을 썼습디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며 군중에게 조롱당하면서도 예수는 가해자들을 원망하기는커녕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2000년 후 인류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이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돈과 명예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 소리에 묻혀 버렸다.

2000년 전 예수를 누가 죽였느냐는 물음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 시간에도 예수의 가르침을 조롱하고 그의 손에 못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간에도 예수의 가르침을 조롱하고, 그의 손에 못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읽는 순간 아!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아직도, 그분의 손에 못질이 끝나지 않았구나! 나는 아직도 그 분에 손에 못질하는 망치를 멈추지 않고 있구나! 어떡하나? 부끄럽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 분의 손이 어떤 손인가?

제가 언젠가 너무 감동적이라서 메모해 둔 글 중에 “강하고 신기한 손”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의 손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하와의 손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손이었고, 노아의 손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구원의 배를 만든 순종의 손이었고, 모세의 손은 이스라엘 군대가 적군 아말렉과 싸울 때 그 손을 들므로서 이기는 승리의 손이었습니다. 가롯유다의 손은 은30에 스승을 팔아넘긴 배신의 손이었고, 우리들의 손은 주님을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은 악한 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손은 밤늦도록, 혹은 새벽 미명에,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우리를 위하여 기도 하신 손이었습니다.

병자들에게 손을 대어 고쳐 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섬김의 손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힌 십자가의 손은 바로 온 인류를 위하여 드려진 사랑의 손이었습니다. 강하고 신기한 주님의 손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라도 닮는 손이였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손은 주님을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은 악한 손이었습니다.”

우리가 은혜의 날개 아래 들기를 거절하므로 주님 울리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주님의 손에 아직도 못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 하니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을 눈도 안 깜짝이고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바느질하다가 바늘에만 찔려도 몹시 고통스러워하면 인상을 찡그립니다. 피라도 나 보십시오. 곧 죽을 것 같은 시늉을 하며 호들갑을 떨지 않습니까! 그런데 13센티나 되는 못이 손목에 박혔다고 한다면 그 고통은 어찌 말로 표현이 되겠습니까? 

왜 내가 아직도 주님을 못 박고 있느냐?고 반문하시겠지요. 나는 못 박은 적 없다고 하시겠지요. 정말 그런지 따져 봅시다.

첫째로 대못이 박힌 그 손은 어떤 손입니까?

그 손은 밤늦도록, 새벽미명에, 게세마내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손이 못 박힌 것은 주님께서 그 손으로 기도하실 때 우리는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26:40-41“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기도하시라는 주님의 말씀 외면하고, 영적인 잠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새벽에, 밤에, 땀이 나도록 기도할 때 그 손에 망치소리는 멈춥니다. 


둘째로 대못이 박힌 그 손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섬김의 손입니다.

자기 배만 알고, 자기밖에 모르고, 남이야 죽든지 말든지, 돌아보지 않고, 남의 발은 더럽다고 거들떠보지 않았기에, 주님의 그 손은 대못으로 박혔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섬기지 않는 우리의 못된 죄 때문에 예수님이 못 박혔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로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가복음10:45)하신대로 본을 보여 주었건만 우리는 섬기는 일에 손을 멈추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손을 펴서 섬기지 않는 한 주님 손에 못박는 망치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돌아보십시오. 이제 섬김 받으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손을 활짝 펴 섬길 때에 주님의 손에 못 박는 망치소리는 멈추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대못이 박힌 그 손은  온 인류를 위해 드려진 사랑의 손입니다.

왜 주님의 손에 못이 박혔습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 다투고, 분열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주님은“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13:34)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지켜지고 있습니까? 우리 손이 남을 보듬지 않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베풀지 않습니다. 나도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허물어져야 할 담장은 자꾸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손에 못 박는 망치 소리는 멈출 줄을 모르고 더욱 높아만 갑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마리아 사람처럼 강도만난 자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내 돈을 들여 치료해 줄때 주님의 손에 못박는 망치소리는 그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손이 기도하는 손, 섬기는 손, 사랑의 손이 되기 전에는 주님 손에 못 박는 망치소리는 그치지 않습니다. 내 손으로 주님의 손에 못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도 안 된다. 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