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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신을 벗으라 (수 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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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수 5:13-15
제목 : 네 신을 벗으라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가나안 전투를 앞에 둔 그들을 어떻게 준비 시키시는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하시므로 그들이 언약의 자손인 것을 확인하고 그런 만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 것을 깨우치셨으며 유월절을 지키도록 해서 그들이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오늘 말씀 10절과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 주신 일은 너무나도 뜻밖이었습니다. 이렇게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좋은 일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다음에 되어진 일은 만나가 그친 일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고 그 땅 소산을 먹은 그 다음날부터 그동안 어김없이 내리던 만나가 내리질 않은 것입니다. 만나는 그들이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동안에 한 번도 어김없이 꼬박꼬박 매일아침 밖에 나가면 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먹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고, 보살피시는 것을 느끼며 살게 해준 기적의 떡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집에 매일 아침 나가면 우유 주문하신 분들은 우유가 와 있습니다. 그것은 돈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돈을 내지도 않는데 아침밥을 갖다놓고, 과일도 갖다 주고, 그렇게 늘 여러분 앞에 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오고, 거기서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나니 만나가 내리질 않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실망이 되었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늘 도움을 주고 매일매일 필요한 돈을 부쳐 주는 아버지가 계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미리 예고도 없이 뚝 끊고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중요한 일이 앞에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난감할 것입니다. 사업도 해야 되고, 공부도 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그동안 그렇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부족함 없이 지원해 주시던 분이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당황이 되고 낙심이 되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만나를 그치게 했을까요?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가나안땅을 들어온 그  때에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이 달라지신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 있을 때에는 그곳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이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음식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 땅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  이제 가나안 정복을 할 때에 그 땅의 모든 소산이 그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서 양식을 거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을 어른 취급을 해 주는 것입니다. 옛날의 광야시절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영히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챙겨 주시지만 어느 정도 장성하면 그 때 부터는 스스로 수고해서 먹을 것을 구하고 노력해서 이루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고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거두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편128편2절에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가정의 축복에 대해서 한 말씀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무슨 축복이 이런가? 내가 수고한 데로 먹는 거 누가 못하겠는가? 그게 뭐 복되고 형통한 것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철이 들고 보니까 그게  진짜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수고하지 않아도 먹을 것을 주시고 애쓰지 않아도 일이 잘 되도록 하실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만 않습니다. 사실 그렇게 쉽게 얻게 하시고 수고하지 않아도 거두게 하시는 것은 어린아이 취급을 하시는 것입니다.

  영국을 여행하는 어느 한 나그네가 관광지로 유명한 해안지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바닷가에 많은 갈매기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죽은 갈매기들을 치우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 많은 갈매기가 왜 죽게 되었습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여기는 관광지가 되어서 여름 한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관광객들은 늘 갈매기들에게 빵과 과자와 사탕을 줍니다. 갈매기들은 사람들의 손바닥에 올라앉아서 먹이를 열심히 쪼아 먹지요. 사람들은 그게 재미있어서 더 열심히 그런 먹이를 주곤 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갈매기들은 입맛이 달라졌고, 그래서 이제는 자연의 먹이에는 식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철이 바뀌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고 보니 갈매기들은 별 수 없이 굶어죽고 만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그치게 하신 이유도 그와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기적만 의존하여 살지 않게 하시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기적으로만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필요하면 기적을 베풀어 주시지요. 그러나 기적만 의존하는 연약한 신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 손으로 수고하여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이 땅의 영적 전쟁을 해 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그렇게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우리 손으로 수고하고 애를 써야 일이 되게 하십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성도의 자세입니다.

 
  두 번째로,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이 해 주신 일은 직접 군대장관으로 나타나 주신 일입니다. 여기 13절에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왜 가까이 왔겠습니까? 그냥 구경이나 하고 정탐만 하러 왔을까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마음은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인간인 그가 왜 걱정이 안 되고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더군다나 이제는 만나도 그치고,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해 나가야 상황이 되었으니 마음이 어찌 걱정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이렇게 연약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 여호수아의 모습이 그런 모습 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호수아에게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눈을 들어보니까,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그렇지만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물었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했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하였겠습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는 자기의 연약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던 때였습니다. 여리고 성에 가까이 가 볼수록 ‘이것은 내 힘에 너무 부친다.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비록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도저히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임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온 분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때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났으니 어찌 엎드리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너무 힘들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겠다. 너무 고통스럽다.’ 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여러분의 영적인 눈을 들어 여러분 앞에 계신 주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할 때에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전쟁이 나의 전쟁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전쟁은 나만 외롭게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전쟁에는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며 그분이 우리의 군대장관이 되어 주십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닙께서 여호수아에게 그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보게 한 것입니다. 옛날 도단 성에 있던 엘리사에게도 그런 눈이 있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그 성을 둘러싸고 위협하고 있을 때 그의 사환이 밖에 나가 보고 혼비백산하여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완전히 포위되었다고 겁에 질려 이야기 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이 종의 눈을 뜨게 하여 여호와의 군대들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종의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보니까 여호와의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게 그들을 둘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보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영적 군대들을 동원해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진 모릅니다. 여호수아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땅에 엎드려 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무어라고 했습니까? 여기 14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라고 기록합니다. 땅에 엎드려 절하고, “나의 주여”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종이라는 말입니다. 이제까지는 자기가 주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근심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 있어서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 여호와가 주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여”라고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어라고 했습니까?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이까” 라고 합니다. 말씀만 하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는 종이라는 자세입니다. 우리도 정말 주님을 만나면, 정말 하나님을 만나면, 정말 영적인 눈이 뜨이면,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이까?”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주인일 때 하는 말이죠.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이까?” 주님 말씀대로 하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태도, 이런 고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주님을 우리의 종 부리듯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항상 우리가 주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 가운데에도 보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말은 ‘무엇을 해 달라’는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 제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도둑 들지 않게 잘 지켜주세요.” “주님, 지금 운전을 하려고 하는데 사고 나지 않게 해주세요.” “아버지, 내일 시험을 치는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해 주세요.” “사랑하는 주님, 친구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 그를 좀 위로해 주세요.” 물론 이 같은 기도가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 구할 것을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기도가 모두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이것은 마치 주인이 종에게 심부름시키는 듯 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되면, 우리의 기도 자체가 변하게 됩니다. 과거에 주님을 부리려고 하던 자세에서 이제는 오히려 주님이 나를 부리시도록 내어드리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께서도 아시다시피 친구가 지금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를 위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당신의 종이옵니다.” “주님, 제게 의외의 돈이 좀 생겼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쓰기를 원하십니까? ” “예수님, 멀리 이사 간 친구에게 당신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지금 여호수아가 하는 기도가 그런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종으로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여호수아에게도 그랬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하니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무어라고 했는가?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고 합니다. 그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그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가 선 곳이 거룩하다는 말은 그 장소가 특별히 거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그 앞에 계신 분이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곧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를 가지라는 말씁입니다. 그 자세가 무엇입니까? 발에서 신을 벗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전적인 복종과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옛날 노예들은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종의 신분, 노예 됨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한 것은 “네가 진정으로 나의 말대로 행하겠느냐? 그렇다면 그 표시로 발에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여호수아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것을 행위로 나타낸 것이 신을 벗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늘 신을 벗은 마음으로 모든 일들을 해 나갑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여리고성을 공격해 갈 때에도 전혀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만 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여리고성을 함락시키고 가나안 정복을 해 나갑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의 승리의 비결은 자기 힘에 있었던 것 아닙니다. 자기의 지혜나 자기의 경험에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승리의 비결도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신을 벗기 원하십니다. 주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복종시키고 온전히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온전한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데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주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들이 주님 위에 서서 주님을 움직이려 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신을 벗듯 주님 앞에서 온전히 낮아지고 주님 말씀대로 행하게 될 때, 주님의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보고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내 고집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내 어리석은 방법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내 인간적인 좁은 생각을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과시하고 자랑하려고 하는 것들 다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겠다고, 친히 해결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을 정복한 것과 같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계속 해서 승리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바라기는 그 하나님의 군대장관 앞에서 신을 벗었던 여호수아 같이 우리들도 내려놓을 것 다 내려놓고 의지할 분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계속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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