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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로뎀병원 (왕상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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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뎀병원
본문 : 열왕기상 19:1-8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제목 ‘캐스트 어웨이’란 뜻은 내던져졌다는 뜻입니다. 주인공 ‘척 놀랜드’는 택배회사 직원입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그는 가까스로 살아나 남태평양의 작은 무인도에 혼자 남겨집니다. 거기서 혼자 4 년을 지내면서 고독과 싸웁니다. 환경의 악조건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말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떠내려 온 소포에서 배구공을 발견합니다. 주인공은 배구공에 사람의 얼굴을 그려놓고 그를 '윌슨'이라고 부릅니다. 윌슨은 배구공에 쓰인 배구공 회사의 이름입니다. 그는 배구공 윌슨을 친구삼아 살아갑니다. 그는 윌슨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정을 붙입니다. 어느 날 그는 뗏목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합니다. 뗏목 위에서 잠든 사이 파도에 그만 윌슨이 떠내려가고 맙니다. 그는 공을 찾기 위해 바다 속으로 뛰어들지만 공과 뗏목은 서로 반대로 벌어지고 맙니다. 주인공은 윌슨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뗏목으로 되돌아가면서 절규합니다. 마치 가족을 잃은 것같이 슬퍼하면서 외칩니다. “미안해 윌슨, 미안해 윌슨!”

인간이 견디기 가장 큰 고통은 바로 고독입니다.

세계적인 소설가 헤밍웨이는 다음과 같은 유서를 써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는 전기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심히 고독하다.” 헤밍웨이는 소설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높은 명성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헤밍웨이가 정말 고독했을까요? 헤밍웨이가 무인도에서 살았습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었습니까? 고독은 마음에 병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이 있어도, 친구가 있어도 없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들어 앉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왕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 가장 포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그보다 더 악한 왕비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가장 악랄하게 폭정을 휘둘렀습니다.

이런 폭정의 시대이니까 엘리야 같은 위대한 예언자가 등장했습니다. 삼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 명과 능력 대결을 신청했습니다. 누가 비를 내리게 하는지 내기를 걸었습니다. 본래 바알은 비를 내리는 농경신입니다. 바알이 참 하나님인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지 보자고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온갖 주술을 벌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도는 하늘의 불이 내려 제물을 살랐습니다. 그리고 먹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엘리야는 거짓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 모두 죽였습니다.

엘리야는 커다란 승리에 고무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비를 맞으면서 50 리나 되는 길을 달렸습니다. 산에서 아합의 궁까지 달렸는데, 아합의 마차를 앞질렀습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승리의 퍼레이드입니다.

그러나 이 큰 승리 뒤에 엘리야는 커다란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엘리야의 목숨을 노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바알의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격분했습니다. 이세벨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장담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독기를 품고 자기 목숨을 노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엘리야는 생명을 위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자기 사환까지 남겨두고 혼자 광야 깊은 곳까지 도망쳤습니다. 하루 길을 도망쳐 지쳐 쓰러진 곳이 로뎀나무 아래입니다.

엘리야는 이곳에서 죽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열상 19:4>

생명을 위하여 도망친 엘리야가 엉뚱하게 생명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조금 전까지 기세가 등등했던 엘리야입니다. 용기가 충전했던 엘리야입니다. 850 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맞서 싸웠던 엘리야입니다. 50 리 길을 마차보다 빨리 뜀박질 했던 엘리야입니다.

그런 엘리야가 왜 이렇게 갑자기 약해졌을까요?

엘리야는 깊은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할 수렁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어제의 엘리야가 아닙니다. 어제는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에게 쫓겨 죽기를 구하는 수치스럽고 연약한 엘리야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제까지 엘리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자기를 죽인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엘리야는 무조건 도망부터 치기 시작했습니다. 도망치는데 정신이 다 빠졌습니다. 엘리야는 심신이 피곤해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현대인들을 광범위하게 공격하는 무서운 질병이 하나 있습니다. 이 병의 원인은 아직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작은 스트레스로 시작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체중이 급격하게 줄거나 늡니다. 이 병에 걸리면 몹시 피곤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감을 느낍니다. 수면 장애를 경험하고 자주 격한 짜증과 슬픔을 느낍니다. 증세가 심해지면 자살을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병에 걸린 사람의 15%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이 병의 이름은 디프레숀(depression) 우울증입니다. 인류의 15%가 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병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기쁜 소식은 이 병이 치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학 보고에 의하면 이 병에 걸린 환자의 80%가 완치되고 있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도 우울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42:11>

신약의 영웅 바울도 한 때 이런 낙심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8-9 에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깊은 탄식을 한 적도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지금 엘리야는 깊은 우울증에 걸려 있습니다. 그는 조상보다 낫지 못하다며 자신을 비하하고 있습니다. 조상들도 해결하지 못한 일을 자신도 못하고 있다고 자학하고 있습니다. 악의 뿌리는 너무나 견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의 뿌리는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아합과 이세벨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견고해졌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결투가 승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으로 대세가 기울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니 착각이었습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고, 두려웠습니다. 엘리야는 기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엘리야의 마음에 이런 연약함이 깃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순간 엘리야는 하나님을 놓쳤습니다. 당황하는 순간 엘리야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놓쳤습니다. 한 번 마음이 밀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엘리야는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미국 LA에 유니버셜 스트디오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영화를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놀이동산을 꾸며 놓았습니다. 테미너이터 관에 갔더니 입체 영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스크린에서 터미네이터가 오토바이를 타고 화면 밖으로 뛰쳐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때는 실제 배우가 오토바이를 타고 무대 밑에서 나와서 객석까지 옵니다.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스릴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쥐들이 떼로 화면에서 쏟아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입체 영화니까 실제로 쥐들이 달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때 의자 밑에서 채찍 같은 것이 나와서 사람들 종아리를 건드렸습니다. 꼭 쥐들이 의자 밑에서 요동을 치며 돌아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비명을 지르면서 일어나 의자 위로 올라섰습니다. 조금 지나서 가짜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사실 쥐가 뭐가 무섭습니까? 쥐가 무서워서 날뛰는 겁니다. 바퀴벌레가 무섭습니까? 바퀴벌레가 사람에게 달려들면 물어뜯습니까? 바퀴벌레가 무서워서 마구 기어 다니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쥐를 무서워합니다. 바퀴벌레도 무서워합니다. 생각해 보면 가짜입니다. 쥐나 바퀴벌레는 사람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사단은 순간 우리를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닙니다. 왜요?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입니다. 내가 약하다고 내가 작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한 이유를 들어보면 황당합니다. 스스로의 고민에 빠져 있을 뿐입니다. 환자들은 별거 아닌 것에 매달려 있습니다. 털면 그만인 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런 엘리야를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고치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엘리야는 너무 피곤했습니다.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이런 엘리야를 천사가 어루만졌습니다. “일어나라. 먹으라.”

하나님은 엘리야를 야단치지 않으십니다. 험하게 다루지도 않습니다. 아주 부드럽게 아주 다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먹으라.”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이 있었습니다.

우울증을 예방하는 책자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수칙이 있습니다. 과로를 피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할 것. 영양을 섭취하고 자신에게 맞는 수면 습관을 유지할 것. 경쟁적인 생활 태도를 바꾸고 즐겁게 살아갈 것.

엘리야는 그 동안 너무 바빴습니다. 선지자들과의 싸움에 피곤이 누적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탈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선 엘리야를 재우셨습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영양을 보충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영적인 처방을 먼저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치유는 일차적으로 육체적인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먹고 또 누웠습니다. 천사는 다시 와서 또 어루만졌습니다. 또 먹을 것을 차려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충분히 자고, 충분히 먹었습니다.

의사들이 자살을 기도하다가 병원에 실려 오는 응급환자를 처치하는 법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우선 영양을 채워주는 일입니다. 그들의 몸에는 단백질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대개 2-3 일은 제대로 먹지 않고 지내기 때문입니다. 단백질 저하는 우울 증세를 높입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면 먼저 고기를 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옆에서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돌봐주는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확실히 깨닫게 해주는 것은 계속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우울 증세를 확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18:22 에 보면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다”는 푸념입니다. 이 푸념은 계속 이어집니다. 19:10 에도 “오직 나만 남았거늘” 14 절에도 “오직 나만 남았거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엘리야의 생각일 뿐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 명을 남겨 두셨습니다. (19:18) 엘리야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엘리야는 혼자 싸웠습니다.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그 자신은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 고독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곁에 너를 버리지 않은 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계속 어루만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육체적인 치료와 동시에 어루만지심을 통해서 엘리야의 마음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함께 하는 것은 말로만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곁에 있어 주는 것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은 엘리야를 일으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인도하십니다. 호렙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그곳에서 신발을 벗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 그 호렙으로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엘리야의 영을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바람, 지진, 불을 보여주십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주십니다. 새로운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엘리야의 육체와 피곤을, 마음의 고독을, 영의 침체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모진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의 고통을 아십니다. 우리 마음의 고통을 아십니다. 우리 영적 고뇌를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그 분은 우리를 고치십니다. 주님은 내 마음을 만지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외롭습니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습니까? 진정한 친구가 필요합니까? 주님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에서 새 힘을 얻었습니다.

로뎀나무는 대싸리나무입니다. 큰 그늘을 만들지 못합니다. 팔레스틴 사막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사막에서 시들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침체되어 있습니까?

단백질을 섭취하십시오. 우선 잘 먹고 힘을 내야 합니다.

그 다음 내가 혼자라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혼자라 고독하다고 말하는 것이 흉이 아닙니다. 나하고 놀아달라고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음악을 듣고 노래하십시오.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춤을 추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은 우울증에서 탈출하는 명약입니다.

그 다음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손을 내밀어 잡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내편이십니다. 나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십니다.

찬양)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않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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