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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롬 1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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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본문: 롬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이 세상에서 모범으로 삼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모범으로 삼을만한 사람이 그리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였기에 사도시대로부터 이제까지 그들을 흠모하고 모범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사도들도 역시 인간이었기에 완전한 모범자는 될 수 없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모범으로 삼았기에 예수님의 삶을 재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 있어서 성도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위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최종목표는 예수님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본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1.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의 책이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16) 성경은 주님의 사랑을 수없이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마12:20),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2:4- 5),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우리는 말로만 사랑하는데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으셨습니다.
누가복음22: 31- 34절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배반하고 욕하고 심지어 저주까지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베드로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믿음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셨습니다. 해결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능치 못하심이 없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문제라도 주님께로 가지고 나아가면 주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기독교의 비밀은 사랑입니다. 페스탈로찌는 "사랑의 끈이 세상을 묶는다"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끈으로 온 인류를 묶고, 기쁘고 복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을 어둠과 슬픔 속에서 건져낼 이가 누구입니까? 주님의 큰사랑이 내게 임할 때 어두움, 슬픔, 저주가 물러갑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이 토굴 속에서나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비추어주시는 그 큰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 앞에 나아갈 때 우리에게 힘, 기쁨, 용기가 주어지고 언제 어디에서나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의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사랑과 같지 아니하고 영원히 변함 없는 사랑입니다. 물리적인 힘으로 가정, 사회, 국가가 안정되고 잘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맞이할 때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 큰 사랑 앞에 나와서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엡5:1-2)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예수님이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죄인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예수님을 닮습니다. 닮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미워하면 닮습니다. 미워하면 나쁜 것을 닮아서 나쁜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면 닮습니다. 사랑하면 좋은 것을 닮아서 좋은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인내하는 삶의 표본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르므로 예수님의 인격을 닮게 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합시다.

2. 예수님의 인내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시면서 배고프심을 참으시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고, 아비 없는 사생아 취급을 해도 참으셨고, 사람들이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하고 모욕하고 침 뱉고, 욕해도 참으셨으며,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고 동산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검과 몽치를 들고 왔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 볼에 키스하면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유다야 네가 내 볼에 키스하므로 나를 파느냐 빨리 행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잡히심에 분노해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귀를 만져 낫게 하시고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까지 참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은 ‘그들의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어 하게 하라’ 그런 뜻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너희들이 손대면 안 된다. 하도록 내버려두어라.’라는 말입니다.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12:1-3).
예수님을 ‘참으신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고 사셨습니다. 참고 죽으셨습니다. 그는 참으심으로 일생을 일관되게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동은 예수님의 인내입니다.
‘너희들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너희들이 세상 살기 힘들어 낙심될 때 주님 바라보라.’ 다시 말하면 ‘가난할 때 주님을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주님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원수를 만났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참음으로 이길 수 있다. 실패하고, 낙심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주님을 바라보면 능히 참을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참으셨습니다. 왜 참았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참았습니다. 마태복음의 기록은 “내가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보내어 능히 이런 것을 막을 수 없는 줄 아느냐 내가 얼마든지 이런 것을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을 어떻게 이루겠느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참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할 때 무슨 생각을 먼저 했느냐? ‘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그래서 ‘가만 두어라. 죽고 사는 것이 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된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날 때 나를 먼저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이 생각을 먼저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고백이었습니다. ‘내가 저들에게 잡혀야 되느냐 살아야 되느냐’ 그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무엇이냐’이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참을 때 안 참는 것 보다는 참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참는 목적이 분명해야 됩니다. 그 목적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있어야 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19-20) 우리는 어떤 때 애매하게 고난 당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선을 행하고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참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으리이다.’ 슬픔이나 고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는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고 있습니다. 참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어떤 때 우리는 참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참기만 하면 병이 됩니다. 참는 목적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해야 합니다.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죄인들이 예수님을 거역하고, 학대하고, 미워하고, 괴롭혔는데도 참으신 사랑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참으셨습니다. 악한 자를 참으셨습니다. 거역한 자를 참으시고 원수를 참으셨습니다. 불의하고 악한 자들이 예수님을 욕하고, 침뱉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이런 죄인들까지도 참아주셨습니다. 참아주실 때 의인으로서 죄인을 참으셨습니다. 선하신 분으로서 악한 자를 참으셨습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 5:10~11),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 우리는 참는 인내를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참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말씀을 이루어 놓아야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야 되며, 나를 살려내고, 이웃을 살려내고, 사회와 가정을 살려내야 됩니다. 참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지녀야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5:22)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내 안에 이루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참는 것은 힘듭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됩니다. 베드로도 성급한 사람이요, 요한도 성급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후에 오래 참는 위대한 인물로 변화되었습니다. 못 참는다고 낙심할 것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능력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으심은 곧 사랑의 실천이요, 예수님의 참으심을 통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3.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22:42) 그리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복종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아골 골짜기라도 가야하고,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시면 목숨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순종의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삼상15:22)
성경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고"(히5:8-9)하였습니다.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겸허, 모든 이론을 파하고(고후10:5-6), 자기의 의와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방법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4.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하심을 본받읍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예수님은 참으로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시18:35) 마구간에서 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온유와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겸양의 덕을 지니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빌2:1-4) 성경은 말씀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5:33, 잠18:22),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23), "무릇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1:2)

5. 진실과 희생과 봉사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죄를 짓지 아니하셨습니다. 일평생 죄를 짓지 않으시고 선을 행하신 예수님은 성도의 삶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일평생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사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셨기에 죄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입에 궤사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짓이 없는 삶을 사심으로 우리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인간은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임을 받아 타락한 이후 거짓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실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진실만을 말씀하셨고 진실한 삶을 사셨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잘 보이려고 거짓을 말하기도 하며 거짓을 일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의 혀 밑에는 거짓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갈먹이고 할례를 받아 새롭게 지음을 받아야 참말을 하며 참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어찌하든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거짓을 불어넣어 참이신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짓된 삶을 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이 아닌 이 세상을 사랑하게 하고 안주하게 하려는 거짓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2:23) 역사는 보복정치의 연속이었고 오늘날까지 보복정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하므로 보복은 보복을 낳습니다. 예수님은 보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고난 당하시는 것이 삶의 목표였고, 낮아지시는 것이 목표였고, 희생하시고 봉사하시는 것이 목표였으며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이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호소하셨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호소하셨다 함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이 부족하여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시는 삶을 사셨겠습니까?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하나님께 호소하셨겠습니까? 겸손한 삶을 사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호소하며 맡기는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언행심사에서 아무도 거짓이나 잘못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원수들조차도 예수님에게서 죄와 실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거짓 증인을 세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을 본받고 예수님의 행동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봉사와 겸손을 본받아 예수님을 좇아 사는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요, 보람 있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목표를 삼고 따라갈 수 있는 예수님이 계시니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를 잘 보이고 옳게 보이려고 또는 잘난 척 하려고 남을 욕하고, 힘이 있으면 남을 위협하여 자기의 수하에 두고 다스리려고 하며, 기회만 주어지면 보복하려고 하며,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방법과 정반대의 방법대로 살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대로 살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봉사하며 살고자 할 때 기쁨이 넘치고, 겸손할 때 마음이 평안하며, 죽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희생할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며, 나누어 줄 때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5. 예수님을 본 받아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마4: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말씀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눅 4: 43- 44)
예수님의 전도 여행기간은 대략 4, 5개월 정도로 봅니다. 또한 당시 갈릴리 지방에는 15,000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큰 마을이 200개 정도나 있었고 전체 인구수는 3백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으며 잠시 동안 쉴 겨를도 없이 바쁘게 다니셨으며 심지어는 식사 할 겨를도 없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하시며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 주님께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고 말씀합니다.(요4:7-34)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기에 힘쓰라'(딤후4:2)고 말씀합니다. 또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전9: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예수님이 친히 전도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며 성령을 보내시며 전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을 본 받아 함께 전도하는 모두가 됩시다
주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본받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발자취가 천국을 향하여 가는 발자취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요, 이 세상 나그네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정표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아 그 뒤를 따르는 각오와 결심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목표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내일도 예수님을 본받는 성도가 되십시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앞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하며 살게 하시고 매사에 오래 참게 하시고 주님께 순종하며 온유하고 겸손하게 살게 하시고 봉사와 희생정신을 가지고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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