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함이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함이냐(2) / 출 20:8 ..

  • 잡초 잡초
  • 290
  • 0

첨부 1


안식일이 사람을 위함이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함이냐(2)
출애굽기 20 : 8 - 11


모 기업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고 하는 레저 용품을 선전하는 광고가 T.V에 방영된 일을 저와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줄 압니다. 여기에 빗대어 "일하지 않은 당신 꼼짝마라"라는 말도 함께 유행된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쉴 권리가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한 사람은 주일날 쉴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그만큼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나 힌두교는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땀흘려 노동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태국에서는 아침에 승려들이 구걸하러 거리로 나옵니다. 그들은 그것을 거룩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엿새동안 일하고 이레 되는 날은 쉬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성경적 원리는 오늘날 모든 문화, 모든 민족, 모든 사회에 영향력 있게 미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공산권 나라에서도 엿새 일하고 하루는 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한다고 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일의 규례는 참으로 탁월한 것입니다.

Ⅰ. 안식일에 대한 이해입니다.

1) 하나님의 창조와 안식일

창세기 2장 23절에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완성된 창조사역을 기뻐하시는 휴식입니다.

2) 하나님의 언약으로서의 안식일

(1) 아담과 맺은 언약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노동하는 문화인으로서의 사명입니다.
① 만물을 다스리는 왕적 사명입니다. ② 생육하고 번성하는 선지자적 사명입니다. ③ 세상을 정복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장적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이레 되는 날에 쉬실 때 아담도 함께 동참했습니다.

(2) 노아와 맺은 언약입니다.

창세기 9장 9-11절에 『내가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 아담에게 주셨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노아에게도 반복하셨습니다(창 9:1-7).
또한 아담에게 창조언약으로 주셨던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한을 노아에게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창 9:2).
아담과 맺은 창조언약이 우주적이며 문화의 모든 부문을 포함하는 것처럼 노아의 언약도 인간 구원과 함께 전세계와 전세대에 미치고 있습니다.

(3)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아담과 노아와 맺은 언약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노아에게 주셨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이 아브라함에게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생육과 번성의 수단으로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야만 합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여기 저주는 '경멸하다' '얕보다' 라는 의미이고 축복은 명예와 존경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본을 경멸하며 얕보는 자를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는 뜻이고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을 감사하고 그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안식과는 관계가 없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중심은 그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고(창 12:2) 또한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창 12:3).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어 국가를 형성하는 데는 자녀 생산과 거주할 땅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던 그 언약을 아브라함에게는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반복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7)고 하신 말씀입니다. 아브람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는 영원한 안식의 언약계시입니다.

(4) 모세와 맺은 언약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4-15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니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 지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징으로 삼으셨습니다(출31:17). 따라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있는 사랑의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으라고 했습니다(출 31:16).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 규정을 그 어떤 계명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5) 다윗과 맺은 언약입니다.

사도행전 2장 30절에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신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라고 했습니다.
『주』는 다윗에게 약속한 메시야입니다. 다윗은 성령의 영감을 받고 자신의 혈통에서 출생할 후손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가리켜 『주(主)』라고 했습니다(마 22:41-45).
그리스도가 이사야의 예언대로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안식의 실체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 안식하신 것에 대한 예언적 사건의 완성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취하신 안식은 이 세상의 유한성과 함께 영원한 안식처를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안식처를 향하여 거침없이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영원한 안식처를 미리 바라보고 그것을 소망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더없는 안식처였으나 그곳이 영원한 안식처는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95편을 인용하여 장차 성도가 들어갈 영원한 안식처가 아직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4-15절에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으나 이 땅에 있는 가나안은 그들의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2-24절에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고 했습니다.


(6) 새 언약과 안식일

예레미야 31장 31-3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옛 언약을 맺으셨는데 앞으로 때가 되면 새로운 언약을 세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새 언약은 과거에 세운 언약보다 훨씬 탁월하고 초등(超等)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옛 언약이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옛 언약은 율법에 의한 언약입니다. 그 옛 언약을 파기시킨 책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 율법은 여전히 폐기시킬 수 없습니다. 이 율법은 반드시 완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과 힘으로는 이 율법을 성취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율법을 완성시켰습니다. 이미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예언의 대표인 엘리야와 율법의 대표인 모세가 예루살렘에서 장차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의논하신 후에(눅 9:29-36) 두 사람은 떠나고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이것은 예언의 성취와 율법의 완성이 오직 예수님에게 있다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예레미야는 먼 훗날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가 탄생하여 새 언약을 세울 것을 확신했습니다(렘 33:15).

그렇다면 '이 새 언약은 누가 세우는 가'입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언약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
누가복음 22장 20절에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은 이제는 더 이상 짐승의 피로 하나님과의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구원이 약속되는 새 언약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새 언약의 백성으로서 이미 장차 들어갈 영원한 안식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Ⅱ. 主日에 대한 이해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들에게 메시야를 통해서 영원한 안식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주어진 안식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교훈입니다. 구약에서 줄기차게 예언했던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던 날 밤 애굽에서 행했던 어린 양과 관련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언약의 표가 되었던 할례가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심으로 세례로 변경되었습니다.
구약의 언약은 신약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면 유대인들이 지켜오던 토요일 날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절기 중에 십자가에 달렸습니다(마 26:19). 예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날은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입니다. 그 이후에 안식 후 첫날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안식일(지금의 토요일)에 회당에 들어간 것은 구약의 규례를 따라 예배하기 위하여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주일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전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날을 주일로 지켰습니다.

계시록 1장 10절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라고 기록합니다.
여기 『주의 날』(The day of Lord)은 사도 요한의 경우에 주의 날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종말을 가리키는 말로 "여호와의 날"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사야 13장 6절에 『여호와의 날』이라고 했고
에스겔 30장 3절에도 『여호와의 날』이라고 했고
요엘 1장 15절에도 『여호와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4장 5절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했습니다.
주석가 바클레이(Willaim Barclay)는 사도 요한이 사용한 주의 날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주의 날과 같다고 했습니다.

교부 익나티우스(Ignatius)는 신약교회는 이미 안식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 날을 위하여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는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해 볼 때 고린도 교회는 안식 후 첫날을 주일 날로 정하여 모인 것이 분명합니다.
창조의 업적을 기념하는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는 주의 날로 완성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쉴 권리가 있습니다. 현대의 노동은 너무 피곤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사람은 그 결과가 자기에게 돌아오지만 다른 사람의 일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이것을 막스는 ‘소외된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인들의 노동환경은 갈수록 독단적이고 개인적 노동입니다. 여기에 따라오는 병리현상은 인간관계의 함몰입니다. 일은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수단일 뿐입니다.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의 공통점은 잔치하는 축제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동의 괴로움과 피폐한 인간관계의 복고를 위하여 안식일 제도를 만드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식입니다. 구약의 안식일(토요일)이 예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첫 날을 주일로 정하여 지키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였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주일에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주일이 오히려 피곤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 가지 사정과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평소 엿새 동안 행하던 일과 생각들을 그대로 가지고 주일예배에 출석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주일 날 쉬지 못하고 아침부터 교회에 갔다가 온 가족이 밤늦게 돌아오므로 일주일 동안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고 하시는 성도님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노동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은 우리 영혼의 휴식입니다. 이것을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일날은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엿새 동안 하는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교회로 나오라. 열심히 일하지 않은 당신도 교회로 나오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