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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기쁨이 우리의 능력 (느 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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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느헤미야 8장 8-12절
*제목: “여호와의 기쁨이 우리의 능력”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케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12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서론)

  우리나라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기를 기독교 신자들 중에서도 우울증 환자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독교에 대하여 명예스럽지 못한 지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 바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들 중에서도 우울증 환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결국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다운 평강과 기쁨이 없다는 명확한 증거가 됩니다. 우리의 심령에 기쁨이 없으면 영혼에 만족이 없습니다.

그리고 영혼에 만족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주를 위하여 진정한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성도님들은 오늘 이 시간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통하여 각자의 마음속에 참다운 기쁨의 능력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고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기쁨이 충만히 임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을 보시면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성경은 복음을 가리켜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복음은 단순한 기쁨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다운 기쁨을 맛보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참다운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영혼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 8절을 보시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증거하자 그곳에 큰 기쁨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에는 큰 기쁨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계속해서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큰 기쁨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진리를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비록 세상의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든다고 할지라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인하여서 날마다 큰 기쁨을 맛보면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구약성경중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장면을 하나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자신있게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느헤미야서를 택하겠습니다. 느헤미야서에는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고 하나님께 감격적인 봉헌식을 드리는 역사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느헤미야서 8장 12절은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8장 17절에서는 “---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장 43절에서는 “이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쁨의 역사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기술과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서 교회가 부흥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는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집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수고하다가 들어오는 남편을 환한 미소로 맞이하는 아내의 모습은 너무나 보기가 좋습니다. 그런 아내를 도리어 수고했다고 위로하는 남편의 모습은 더더욱 보기가 아름답습니다. 그런 부모를 늘 바라보면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은 너무나 맑고 깨끗합니다. 이러한 모든 역사가 바로 기쁨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바라고 믿고 원하기는 우리교회가 따뜻한 가정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항상 웃음꽃이 피어나고 모두의 심령에 기쁨이 늘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본문의 배경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면 남왕국 유다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에 빠짐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 결과 바벨론이라고 하는 최대의 강국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의 왕인 느부갓네살은 유다의 수많은 백성들을 자신의 나라로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의 속국이 된지도 70년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70년의 바벨론 포로기’입니다. 그런데 영원토록 막강한 권세와 권력을 지닐 것처럼 보였던 바벨론도 BC 539년에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한 페르시아의 왕인 고레스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고레스왕은 다음해인 BC 538년에 ‘고레스 칙령’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칙령의 핵심은 포로로 살고있는 모든 유대인들은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포로로 살고 있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BC 538년에 총독 스룹바벨의 인도를 받고서 1차 귀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향땅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들은 22년 동안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신앙의 갈등에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루살렘 성전을 너무나도 그리워했는데 막상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오니까 예전에 품었던 갈급함과 뜨거운 신앙심을 서서히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때에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는 나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음과 같이 엄하게 책망하기 시작합니다. “너희가 바벨론의 포로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그렇게 갈망하였는데, 이제 고향땅으로 돌아오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짓기 보다는 너희들의 안락을 위하여 집을 먼저 짓느냐!” 두 선지자의 꾸짖음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BC 516년에 드디어 그 옛날에 바벨론의 왕인 느부갓네살이 파괴했던 솔로몬 성전이 있던 자리에 조그마한 성전을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전이 바로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1차 귀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재건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전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BC 458년에 학사 에스라를 통하여 2차 귀환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설령 말씀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의 뜻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율법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즉 학사 에스라를 통하여서 잃어버린 율법을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BC 444년에는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의 술을 맡은 관원인 느헤미야의 인도로 인하여 제 3차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형제인 하나니를 통하여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하여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느헤미야는 형제인 하나니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1장 3절의 말씀입니다.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이 말은 들은 느헤미야는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느헤미야 1장 5절에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눈물을 흘리며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왕인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BC 444년에 느헤미야의 인도로 인하여서 제 3차 귀환이 성공하게 되었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다의 재건은 모두 3차의 귀환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순서는 성전의 재건, 율법의 재건,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유대인들은 BC 444년 7월 1일에 학사 에스라를 초청하여 말씀사경회를 열었습니다. 그때에 유대인들은 ‘수문(Water Gate)’라는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구름처럼 사람들이 운집한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강단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학사 에스라는 이른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책을 낭독하였습니다. 이 율법책은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의미합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할 때에 레위인들은 백성들 사이사이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말씀사경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무려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에게 학사 에스라를 통하여 놀라운 말씀의 능력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신앙의 정체성을 망각하였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통하여 서서히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시고,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통하여 위대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조상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자신들이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라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죄악을 깨달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으로 회개를 하였습니다.


2. 슬픔의 두 종류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슬픔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슬픔이 있고, 다음으로는 마귀로부터 오는 세상적인 슬픔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슬픔과 눈물은 우리의 죄악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보석같은 슬픔이요, 진주같은 눈물입니다. 느헤미야의 시대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흘린 눈물이 바로 이와 같은 보석같은 슬픔이요, 진주같은 눈물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근심은 우리들에게 사망이라고 하는 큰 고통을 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눈물은 우리의 진정한 회개를 이끌어 냅니다. 지난 세월동안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우리의 죄악을 낱낱이 회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런 눈물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큰 기쁨을 심령에 안겨 다 줍니다. 마치 비가 온 뒤에 더욱더 하늘이 맑고 화창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눈물 뒤에는 반드시 찬란한 영광과 기쁨이 온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은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학사 에스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위로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느헤미야서 8장 9-10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
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즉 느헤미야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강력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능력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물질입니까? 세상의 권세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힘과 능력이라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근심과 눈물이 있다고 한다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며, 더욱 더 큰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슬픔과 눈물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흥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큰 기쁨을 주신다는 진리를 믿으십시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한 후에도 슬픔이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어린 회개와 눈물을 보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끝까지 우리를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가 주는 슬픔과 근심을 거부해야만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로부터 오는 슬픔과 근심을 강력하게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가운데에 지금 당하고 있는 슬픔과 근심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오는 유
혹이라고 하는 확신이 든다면 그 즉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고 있는 성도 한 분이 세 명의 아들 중에서 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분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동안 슬퍼하며 교회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영적으로 방황하기만 하였습니다. 참다못한 목사님이 어느 날 그분을 찾아가서 따끔하게 꾸짖기 시작합니다. “성도님, 그만 슬퍼하십시오. 아직 당신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님이 계속해서 슬퍼하며 근심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렇게 잃어버린 아들을 위해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서는 단 한번이라도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단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당신을 위해서 이 땅에 내려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당신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그만 눈물을 멈추시고 앞으로는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의 이 말씀을 듣는 순간에 그 성도님의 마음속에 큰 깨달음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지금까지 아들을 위해서는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으나, 정작 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서는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를 않았구나!” 이 같은 사실을 깨달고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자 그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큰 기쁨이 회복되었다고 하는 확인된 실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하여서 오랫동안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슬퍼도 잠시 잠깐 동안만 눈물을 흘리시고, 속히 눈물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것들을 잃은 슬픔으로 하는 근심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속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은 결국에는 우리의 영혼까지도 파괴해 버리는 무서운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다는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늘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는 가운데에 날마다 샘솟듯 솟아나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과 즐거움으로 잠시 잠깐 당하는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근심을 담대히 물리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기쁨의 놀라운 능력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기쁨에는 매우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힘을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심령속에 큰 기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그들에게 임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는 기꺼이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일곱 가지의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특별히 7월 1월에는 나팔절이라고 하는 큰 절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7월 15일부터 시작되는 한 주간동안에는 집 밖에다가 초막을 짓고서 생활하는 초막절이라고 하는 큰 절기가 있었습니다.

이 절기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옛날 광야 40년의 세월동안 조상들이 겪었던 고난을 생각하면서 거기에 동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곱 가지의 절기를 제대로 지키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자 그들에게 말씀에 순종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느헤미야 8장 17절을 보시면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아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임하게 되자 여호수아 이래 최대의 초막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게 되었습니다.

  둘째, 찬양할 힘이 생겨납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설교가 뜨겁고, 기도가 뜨겁고, 찬양이 뜨겁습니다. 우리 침례교회는 목사님들이 입에 침을 튀겨가면서 뜨겁게 설교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의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말씀처럼 기도도 뜨겁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간절히 기도할 때에 놀라운 역사는 임하게 됩니다. 뜨겁게 기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기도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부흥하는 교회치고 뜨겁게 기도하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우리교회도 앞으로 계속해서 새벽기도, 목요철야기도, 금요철야 기도 등 모든 기도의 시간마다 뜨거운 기도의 불길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품고서 기도하는 사람은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도 꼭 이루기를 원하는 기도의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한번 부르짖어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부흥하는 교회는 찬양이 뜨겁습니다. 느헤미야 12장 42절을 보시면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기쁨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자 모든 사람들이 입을 벌려 크게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찬양대가 날로 부흥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감사하고 흐뭇한 마음이 듭니다. 찬양대가 부흥하는 교회는 자연히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찬양의 소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찬양대에 봉사하지 않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속히 자원하여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날마다 드리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찬양을 통하여 그 영혼과 심령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평강과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의 삶을 날마다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봉헌할 힘을 줍니다. 느헤미야 12장 43절에서는 “이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의 역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큰 예물을 가지고 와서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동참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 그들의 영혼과 심령속에 찾아오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기쁘고 즐겁게 드렸는지 그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도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기쁨의 역사가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님들이 자원하는 심령으로 큰 제사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또한 그 기쁨의 예배가 강남 일대에 퍼져서 허다한 무리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넷째, 원수를 이길 힘을 줍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쁨을 빼앗은 원수는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의 사명은 우리 성도들의 귀중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일입니다. 특히 원수 마귀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기쁨을 훔쳐가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상실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헌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마귀는 우리의 심령속에 있는 기쁨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당시에 마귀의 종이 되었던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2장 19절을 보시면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산발랏, 도비야, 게셈은 느헤미야를 협박하면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였던 마귀의 종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거짓된 예언으로 느헤미야의 생명을 해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미혹하고자 안간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원수의 협박과 방해에 조금도 굴하지 아니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충실하게 수행해 나갔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
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몇 명의 사람들이 산발랏, 드비야와 내통을 하였지만, 결국에는 느헤미야가 그들 모두를 이스라엘 무리에서 내쫓고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마귀의 세력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쁨이 임하게 되면 우리 성도는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영원한 진리를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현실은 참으로 어둡고 씁쓸하기만 합니다. 신문을 보거나, TV를 보아도 나오는 기사마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내용들로만 가득합니다. 물질적으로는 날로 풍족해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정신과 영혼은 병들고 황폐해지고만 있습니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의 벽은 높아만 지고, 심지어 미래에 대하여 푸른 꿈을 갖고서 건강하게 자라나야 할 우리의 사랑스런 자녀들은 치열한 경쟁의 틀 안에 갇혀서 너무나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사회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의 영혼과 마음속에 참다운 기쁨을 주는 곳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기쁨을 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세상의 권세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기쁨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세상의 지식과 학위를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기쁨의 맛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환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기쁨이 될 때에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에 하나님의 기쁨의 능력을 체험하였던 것처럼 우리 교회의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깨달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쁨의 능력을 항상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가운데에 임하게 되면 환경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쁨이 그 사람의 심령 가운데에 임하기만 하면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님들을 하나님의 기쁨을 늘 체험하기 위해서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의 삶을 살아가시고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는 믿음의 살을 살아가십시오. 그러한 신앙의 자세를 갖고서 살아가는 모든 믿음의 용사들에게는 성령의 기쁨이 충만하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을 주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슬픔과 근심을 주고, 그 사람의 영혼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인도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슬픔과 근심을 통해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이 심히 곤고하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참된 회개의 자세와 간절한 기도의 살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능력이 될 때에 그 사람은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는 성령충만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항상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가운데에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여러분의 능력이 되는 진실로 복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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