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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다 가운데 생긴 길 / 딤전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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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다 가운데 생긴 길 
본문 : 디모데전서 4:7~10   

성경에는 끝난 것 같지만 다시 시작하는 사건이 많이 나온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것 같았지만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노아의 홍수로 인하여 온 땅이 물에 덮혀 다시 시작하기 어려워 보였지만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생애 자체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부활로 새로운 생명의 사건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완전히 끝난 것 같지만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사건이 많다. 특히 본문의 말씀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 고향을 떠나야 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해방을 주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성전도 지어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과거 출애굽의 사건을 연상하였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마치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다가운데에 빠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에 길을 내어 주셨다는 말씀이다.

이같이 바다는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고해라는 말을 쓰는데 괴로움이 많은 이 세상을 마치 바다에 비유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바다에 가 보라. 끊임없이 파도가 친다. 파도치는 일에는 주5일제가 없다. 파도 치는 일에는 휴식시간도 없다.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온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큰 파도가 칠 때가 있는가 하면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듯이 크고 작은 고통이 우리 앞에는 계속 찾아온다.

어릴 때의 이야기이다. 시장을 통과해서 학교로 걸어갔다. 추운 겨울 날이면 가방들고 학교 가기가 얼마나 싫은가? 그런데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보면 가게 안에서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서 작은 유리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어린 마음에 그 때에는 그 분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추운 날에 학교에 가지만 저분은 저 안에서 얼마나 따뜻하고 좋을까? 그래서 어릴 때에는 어른 들에게는 걱정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은 오히려 어릴 때에 아무 것도 모르고 도시락 갖고서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에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오듯이 우리 인생에도 끊임없는 고통이 우리 곁에 있기 마련이다. 크고 작은 고통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바다는 악한 영이 거하는 장소로 표현되어 있다. 바다는 혼돈의 괴물이 거하는 장소로 표현된다. 시편 말씀에 보면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리워야단은 뱀과 같이 생긴 큰 괴물인데 혼돈케 하는 악한 영의 상징으로 불려진다. 바다는 곧 악한 영이 거하는 장소라 말할 수 있다.

이같이 바다는 끊임없이 밀어 닥치는 파도처럼, 끊임없는 고통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바다는 악한 영이 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에 그 고통을 잘 이겨야지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악한 영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욥이 고통을 당한다. 욥이 고통을 당할 때에 이기지 못했으면 욥은 결국 악한 영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욥이 고통을 잘 이겼기 때문에 악한 영을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갑절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믿는 사람들은 고통의 시간이 닥쳤을 때를 지혜롭게 이겨야 한다. 고통을 당하는 아픔도 역시 영적인 전쟁이다.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경험할 수도 있다. 졸지에 불치병의 진단을 받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자녀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많은 고통이 찾아올 때에 그 고통을 잘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으로 인하여 악한 영에게 사로잡힐 수 있다.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고통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어떻게 고통을 극복해서 악한 영에 사로잡히지 않겠는가?

첫째로, 우리는 바다까지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시다가 풍랑을 만나 모두 빠져 죽게 되었다. 예수님은 바다를 향하여 바다여 잔잔하라 말씀하셨다. 결국은 바다가 잔잔해 졌다. 나훔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바다의 파도가 아무리 거셀지라도, 바다에 악한 영이 거하는 장소라 할지라도, 바다는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어떤 고통을 통하여 바다 가운데 빠져 허덕인다고 할지라도 결국 이 바다도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다 가운데 빠지는 고통이 있을 때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중하다.

어떤 분은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되어 고통을 당한다. 내가 더욱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야지. 물론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바로 맺어야 한다. 고통의 바다도 역시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늘 블레셋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늘 그들로 인하여 불안한 시간을 보내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 모여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였다. 함께 모인 것을 알아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쳐들어왔다. 완전히 이스라엘 백성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다.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였다.

전쟁의 위협이 주는 고통이 있었다.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오듯이 그들에게는 전쟁의 위협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기에 그들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승리의 기쁨을 주셨다. 어떤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바다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는 것처럼,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오는 고통도 역시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음을 깨닫고 고통 중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둘째로, 고통의 바다 속에 빠져있다 할지라도 그 바다 속에 샘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욥이 고통을 당한다. 고통의 바다 속에 빠진 욥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고 물으신다. 바다는 온통 물인데 무슨 샘물이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1973년 잠수함의 발견으로 바다 밑에 샘이 있음을 찾아 내었다.

고통의 바다 속에 빠져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수가 있다. 바다 속에 빠져서 내가 지치고 힘들어 넘어질 것 같지만 그 속에 “바다의 샘”이 있다. 고통 중에서 깨닫는 하늘의 진리가 있다. 시편기자가 고백한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통의 바다 속에 빠졌지만 그 바다의 샘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 심장병동에 가면 지은이의 이름도 없는 무명의 詩가걸려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 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일이 계획데로 되지 않아서, 아들 딸로 걱정거리가 되기도 하고, 먹고 사는 일로 힘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고통의 바다 속에 빠졌지만 그 바다 속에 “바다의 샘”이 있음을 발견한다. 고통을 통하여 하늘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고통의 바다에 빠져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는 분이다.” 이사야가 고백한다.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내가 지금 깊은 고통의 바다 속에 빠져서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는 분이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을 갔다. 결국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져서 죽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해 두셨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고통을 통해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모르게 될 때에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 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는다.

해양학의 선조인 Mathew Maury가 어느 날 몸이 몹시 불편해서 아들에게 성경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시편 말씀을 읽는 중에 시편 8:8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라.” 이 말씀을 들었다. 이 말씀을 들은 Maury는 정신이 번쩍들었다. “맞다, 바다에 길이 있다. 하나님이 바다에 길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바다에 길이 있다.” 결국 Maury는 바다에 길을 찾으러 나간다. 바다에 길을 찾으러 나간 Maury는 결국 “최초의 해양지도”를 만든 사람이 되었다.

바다 속에 길이 있다. 하나님께서 바다 속에 길을 열어 주신다. 어찌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다. 시편 107편 말씀에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사랑하는 성도여! 어떤 일로 인하여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가? 고통의 바다 속에 빠져서 어찌할 수 없어하는가? 바다 속에 샘이 있다. 고통의 아픔 속에 깨닫는 하늘의 진리가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바다 가운데에 길을 열어 주신다. 지난 아픔의 시간을 생각하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 바다 가운데에 샘이 있다. 바다 가운데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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