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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바른 관계는 어떤 모습입니까? (암 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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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아모스 5장 1 - 27절     
제 목 : 하나님과 바른 관계는 어떤 모습입니까?


지난 주 4장에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하여 선행적으로 벗어버려야 할 것들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위하여, 부유함으로 잉걸된 사치(奢侈)와 향락(享樂)의 군살을 빼십시오. 자기 만족의 종교생활의 틀을 깨 부수십시오. 그리고 완고함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 가운데 있는 것,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5장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르쳐 줍니다. 물론 5장의 많은 부분은 너희의 죄악의 실상이 이렇다, 너희가 심판의 날에 이렇게 될 것이다는 이스라엘의 죄악의 깨우침과 심판의 예고입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이 잘못 되었고 회개치 아니할 때에 심판날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는 앞에서도 말씀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다시 해석해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그 심판의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아모스의 메시지 가운데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떤 것인가, 다시 말하면, 바른 신앙, 올바르게 예수님 믿는 신앙은 어떤 것인가, 신앙의 실체에 대하여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모스 5장에서 선지자 아모스는 이스라엘에게 "죄악의 자리에서 돌이켜 이렇게 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서십시오" 직접적인 멧세지를 세 번 선포합니다.

첫째는, <4-6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무슨 멧세지입니까? 하나님을 찾으라. 벧엘이나 길갈을 찾지 말고.


둘째는, <14-15절>입니다.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무슨 멧세지입니까? 선을 사랑하라, 악은 미워하고.

셋째는, 아모스의 주제구절이라고 일컫는 <24절>입니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 무슨 멧세지입니까? 정직과 공의가 잘 통하게 하라. 절기지키는 것, 성회로 모이는 것 종교의식으로 도피하지 말고.

하나씩 조금 자세히 묵상하여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찾으라.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이 익숙하십니까?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같습니까? 우선 문맥적인 것에서부터 고려하면, <4,5절>을 보십시오. 서로 대조되는 것에서 힌트를 먼저 발견할 수 있습니다. <5절>의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모두 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립 성지입니다. 하나님께 잘 제사하고 잘 예배하기 위하여 왕이 제정한 성전이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곳에 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그렇게 유명한 성지에 자주 가야 소용없다, 너희가 하나님을 찾아야 너희가 산다라고 깨우칩니다.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집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 쉽게 떠 오르는 것은 예배 많이 드리고 기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예배, 기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편이니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이 벧엘, 길갈, 브엘세바를 좇아다녔던 것은 그냥 유적지 관광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러,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아모스가 벧엘로도 가지말고 길갈로도 가지말고 하나님 찾으라고 하였을 때에는 하나님 찾는 것은 단순히 기도 많이 하고, 예배 많이 드리는 것 이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적 열심이 없지 않았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집회로 자주 모이기도 하고 오늘날 같으면 예배도 많이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종교적 열심을 특심하게 낸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의 중심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평안과 행복, 즐거움과 명예.. 욕망과 야망에 중심이 있었습니다. 종교적 열심을 내는 것은 그 욕망을 위한 수단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요는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은 수단이지 그들 마음과 삶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을 뒤집으라고 아모스는 깨우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종교적 열광을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예) 답십리 예배당 찾으러 다닐 때에...

저희 교회가 석관동 예배당을 마련하기 이전에 답십리 헌트에서 몇 년을 모였습니다.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IMF가 되어 답십리 헌트 사옥이 팔리게 되어 저희가 예배처소를 구하러 다녀야 했습니다. 많이 돌아다녔지요?

그러다 답십리에 비교적 저렴하게 임대하는 곳이 나와서 가 보았더니, SGI불교, 남매호랑교간 하는 종교의 집회장소였습니다. 평일 오후 서너시 경이었던 것같았는데 내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평평한 바닥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주문을 외우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주문을 외우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렇게 열광을 한들, 저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닌데.... 그 사람들이 뭐 때문에 그렇게 지성을 들이겠습니까? 복받기 위해서지요?

지성을 더 열심히, 더 극단적으로 드리면 복을 더 많이 받는다고 믿는 신앙..

우리가 믿는 신앙, 기독교는 이런 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나의 욕망의 수단으로 여겨서 부지런히 종교에 열심을 보이지만 내 마음 중심에는 내 욕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무런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으라'는 당신의 중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라라는 것입니다.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 행복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것이 아니라, 나 좀 남 부럽지 않게 큰 소리치면서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 부흥시키고 성장시켜 달라고 열심히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 마음, 종교심을 뒤집어서 하나님을 찾는 것,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마십시오.
돈 많이 벌게 해 달라는 마음에 매여 하나님을 찾지 마십시오.
내 가족 행복하게 해 달라는 마음에 매여 하나님을 찾지 마십시오.
교회 부흥시켜 달라는 마음에 매여 하나님을 찾지 마십시오.

도리어 나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선하신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을 찾는 것 자체에 온 마음을 들이십시오.

그 이후의 결과에 대하여는 선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을 목적으로, 초점으로서 하나님을 찾을 때에 비로소 외적인 껍데기에 연연하지 않고 핵심(核心)에 도전합니다. 비로소 사람들의 무리가 쏠려 다니는 붐에 휩쌓이지 않고 실상(reality)에 충실합니다. 비로소 방법, 수단에 매여있지 않고 본질에 주목하게 됩니다. 비로소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추구자로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찾는다고 했을 때의 찾다라는 히브리 동사의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부지런히 좇아다니다', 이런 의미도 있지만, '묻다, 질문하다'라는 뜻도 있고 또 다른 의미로는 '듣고 행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실 찾는다는 의미가 그것 아닙니까? 집을 찾을 때, 길을 묻고 가리켜주는 바를 잘 듣고 그리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찾는 과정입니다.

히브리 단어의 문자적인 뜻에는 그렇게 "묻고 듣고 따른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내 심령의 중심이 욕망에 가득차서 물을 필요도 없고 들을려고도 하지 않고 가르쳐 주어도 따르려고도 하지 않고 " 그저 내가 원하는 것, 돈이든, 명예든, 영적인 능력이든 그것만 주십시오" 하여 막무가내로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따르고자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 특징을 오늘 말씀은 이렇게 지적해 줍니다. <10절> "무리가 성문에게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안 듣는 것이지요? 열심히, 벧엘이고 길갈이고 좇아다니지만, 정직한 깨우침, 정직한 가르침은 안듣습니다. 안듣는 정도가 아니라 듣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망을 찾는 것입니다.

예) 어느 사람이 등산을 하다가 그만 실족하여 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려는 찰나에 나무뿌리를 붙잡았습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뭐하겠습니까? 기도해야지요.. 마구 회개하고 "하나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내가 살려줄테니 그 손 놔라, 절대 안 죽으니 그 손 놔라." 쉽게 놓지 못합니다. "얘야 내 말 좀 들어라 그 손 놓으면 내가 살려줄테니 놔라.." 그래도 못 놓습니다. "아니, 이거 놓으면 저 아래로 떨어지는데 어떻게 놔요?" 하나님은 놓으라고 하고 이 사람은 못 놓겠다고 하고 줄다리기하다가 마침내 이 사람이 고개를 들고 저 위를 향하여 다시 소리칩니다. "거기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없어요?"

하나님을 찾는 것은 정직히 질문하고 간절히 듣기를 사모하고 들려주신 바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기도, 경지에 다다른 기도는 뭐라고 합니까?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이것, 묻고 듣고 따르는 것임을 이사야55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확인시켜 줍니다.

<사55:1-3>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의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네 의지로, 힘으로 발버둥쳐서 허수고하지 말고 들으라, 나아와 들으라...잘 듣고 따르라 그러면 산다 이렇게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신앙생활을 이스라엘이 벧엘을 찾듯이, 길갈을 찾듯이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욕망에 매여서 내 것만 채워달라고 헛수고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심령을 더욱 목마르고 더욱 짜증나고 더욱 조급하고 마침내 미칠 지경이 되게 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의 한 장면, 고기 달라고 떼쓰는 백성들, 맨날 똑같은 것만 준다고 투덜대며.. 급기야는 만나는 "이 박한 것"이라며 투정하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고기를 달라고 떼썼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시편기자는 이렇게 깨우쳐 줍니다.

<시106:15>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여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욕심을 떼써서 기도하면 혹 들어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파리해지는 값지불을 할만큼, 가치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내 욕망 채워달라는 무조건적인 강청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맡기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도리어 아모스의 정직한 깨우침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8절>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북두칠성과 오리온 자리를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이시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살아계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께 모두 다 맡기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당신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십시오. 당신의 중심의 열망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질문하고 말씀을 듣고 배우고 따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신앙생활, 교회생활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되게 하십시오. 창조주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배우십시오 그리고 따르십시오. 이것이 믿는 것 아닙니까? 신뢰하고 듣고 따르는 마음, 이것이 믿음입니다.

돌아오는 주말의 기도 수련회에서 저희가 다같이 하나님을 찾는 연습을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여겨서 내 원하는대로 되어주기를 떼쓰는 무조건적인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여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따르는 관계, 그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선 모습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는 것 둘째로는,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14,15절>이었지요?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죽지 않으려면, 사는 것처럼 살려면,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는 멧세지입니다. 바른 신앙,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은 당신의 삶이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적 칼라를 가르쳐 주는 <롬12장>에서 똑같은 가르침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9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7절>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21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입니까? <11,12절>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악이 무엇인지 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악인의 특징,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과도한 세금이나 뇌물을 주고 받는 것처럼, 부당한 방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특징은 약한 자를 짓밟는다고 하였듯이,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 양심에 거리낌이 있느냐 없느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익이 되겠느냐 안되겠느냐, 성공하겠느냐 성공하지 못하겠느냐만 생각하는, 힘의 논리로만 사는 사람입니다.

반면, 선을 행하는 사람, 의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선을 행한다는 것은 올바른 방법, 정직한 길을 행하는 것이며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배려하는 것이며 힘의 논리 이전에, 이것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인가 사람이 마땅히 행할 것인가, 양심에 거리낌은 없는가를 고려하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는 중요한 단면이 선악을 올바로 구분해가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의 본성적 죄는, 자기중심성의 코드를 띠고 인간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기에게 이익이면 선이고 자기에게 불리하면 악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죄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자기 중심성의 죄악에 찌든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하고 해방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에, 인간의 심령은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 회개를 경험하며 비로소 새사람이 됩니다. 이제는 자기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의 새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새사람을 향하여 성경은 영적으로 자라가라고, 영적으로 성숙하라고 간절히 권고합니다. 영적인 성숙의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가 자기중심성을 벗고서 하나님 중심으로서 비로소 선악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은 바른 분별력을 갖고서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은 선한 삶을 추구합니다. 영성이 훌륭하느냐 훌륭하지 않느냐는 능력에 의하여 가늠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삶이 어느 방향을 추구하느냐에 의하여 가늠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 셋째로는, <24절>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 당신의 사회에, 당신의 세상에 공법과 정의를 강물처럼 넉넉히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흥미있는 것은 이 구절에 대한 공동번역의 번역입니다. 이렇습니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 <공동번역>

정의가 면면히 강물처럼 흐르고, 서로 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는 모습, 소망만 하여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다시 주목할 것은 이 구절의 배경입니다. <21-23절>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이 유명한 어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는 문맥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 절기, 성회, 소제, 화목제, 노래, 비파 소리... 종교의식이 아니라 당신의 삶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현대적으로 각색하면, 교회에서 큰 소리치고 앞장서는 것이 신앙이 좋은 모습,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당신의 가정에서 어떻게 관계하고 있으며 직장에서,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당신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참된 영성은, 능력의 시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사랑의 삶으로 열매를 낳습니다.  정직과 사랑의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영성은 가짜입니다.

이 말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져서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하면 정치가들을 질타하고 때로 격려하는 것으로 제한하여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가들이나 다른 사람의 경성을 촉구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사회, 내가 관계한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게 주어진 모든 영역의 일에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남을 위하는 마음 개울처럼" 흐르는 모습을 소망해 보십시오.

내게 관계된 모든 사람과의 관계,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정의가 강물처럼 넉넉히 흐르게 하고, 남을 위하는 마음 개울처럼 아름답게 흐르게 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모습,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모습입니다.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 삶의 감동이 얼마나 진하겠습니까?

무엇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모습입니까? 당신의 심령에서 종교 형태로 포장된 당신의 욕망을 좇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당신의 삶의 태도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 당신의 사회, 당신의 세상에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개울처럼 흐르게 하십시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설명하고 나면, 하나님을 찾는 것, 선을 사랑하며 악을 미워하는 것, 정의와 공법을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 여러분들 생각하기에는 다른 것처럼 보입니까? 아니면 같은 것으로 보입니까?

다른 것으로 보이면 제가 설교를 잘못한 것입니다. 성경 해석에 제일 중요한 요소는 문맥과 상식입니다. 문맥의 흐름에 따라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제일 바람직하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5장, 구절구절 파 헤치지 않고 문맥에 따라 읽으면, 이 세 가지 멧세지가 반복임을, 똑같은 멧세지의 반복임을 압니다. 아모스 예언의 전체의 주제가 "여러분은 바른 신앙을 가지십시오 삶을 외면한 종교로 도피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는 바른 신앙으로 회개하십시오. 그냥 붐에 휩쓸려서 종교의식을 즐기기만 하는 거짓을 행하지 말고 하나님께 묻고 듣고 배워서 하나님 앞에 바른 삶, 정의를 강물처럼 남을 위하는 마음 개울물처럼 흐르게 하십시오, 그 바른 신앙을 회복하십시오" 이 멧세지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신앙과 선을 사랑하며 공의를 흐르게 하는 삶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신앙과 삶을 분리하는 거짓을 경계해야 합니다. 삶의 현실은 도피하고 종교의 열심, 이것은 미신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신앙의 마음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정의를 세우고 선을 추구하는 것, 모순과 혼돈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신앙과 삶을 분리하지 마십시오. 신앙인의 모습과 사회인의 모습 따로따로인 프랑켄슈타인이 되지 마십시오. 신앙과 삶의 분리된 이원론적 신앙, 그 기형의 종교, 기형의 삶은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생명의 길을 밝히 보이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살리라, 생명의 약속은 살 맛 나게 하리라, 사는 것처럼 살게 되리라, 생명의 기운이 넘치게 하리라, 세상이 뒤집어지는 혼돈과 심판의 날에도 넉넉히 살리라와 같이 어느 지경, 어느 환경 가운데서도 떨어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 생명의 능력에 대한 보장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1>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하나님을 찾고 정의를 강물처럼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개울물처럼 흐르게 하는, 바른 신앙인에게 하나님께서는 새 힘을 넉넉히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능력을 넉넉히 베풀어 주십니다.

또 아모스가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삶의 약속, 우선적으로는 종말론적인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올 재앙, 하나님의 심판에서 면제됨을 받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시하고 사는 것, 그리스도인들이 잊고 사는 것,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 때에, 별이 떨어지고 땅의 기초가 흔들릴 때에, 선과 정의의 삶이 없는 종교, 쭉정이처럼 다 날라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고 선과 정의의 삶을 세운 하나님의 사람들, 그 때에도, 세상의 모든 것이 심판을 받는 그 때에도 생명을 누리며 생명을 노래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항상 너를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것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사58:9-12>

이 모습이 "살리라," 사는 모습 아닙니까? 마른 곳에서도 물댄 동산처럼,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은 모습... 흉년의 때, 다들 힘들다고 하는 때에도 살 맛나게 소생시켜 주시고 힘주시는 그 능력의 체험.. 하나님께서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중심의 심령이 하나님을 찾고 당신의 삶의 태도가 선을 사랑하며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남을 위하는 마음, 사랑이 개울처럼 흐르게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그것이 살 맛나게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도구, 하나님의 은사, 하나님의 복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간절히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께 "묻고 듣고 따르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능력, 생명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에 목맨 악의 길을 돌이켜서 연약한 자를 배려하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선을 사랑하십시오. 정의가 강물처럼 힘있게, 남을 위하는 마음 개울물처럼 아름답게 흐르게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이유, 소명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생명의 약속을 다시 기억해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5-9>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인으로 서서 하나님의 주시는 생명의 능력을 한껏 누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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