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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교회 ⑥ /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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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좋은 교회 ⑥
성경본문 골로새서 3:15-17

설교내용

  오늘은 이런 전제를 하고 싶습니다. “좋은 성가대가 좋은 교회의 요건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저가 미국교회를 순회해 본 결과 갈보리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LA에 있는 척 스미스 목사님이 세우고 목회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모든 면에서 탁월하고 모범적인 것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교회음악에 큰 획을 그은 교회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척 스미스 목사님은 히피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여서 그 히피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왔는데 이 목사님은 히피음악도 그대로 수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히피들의 신앙고백을 담은 록음악 언어로 성가를 만들게 되고 그것을 교회 안에서 도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르나타 레코드의 출발점이 되었는데 이것이 온 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또 교회음악에 큰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교회 현장에 가 봐도 그 자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전음악과 교회음악

  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윌로크릭 교회라든지, 새들백교회의 특징 중에 당장 피부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교회음악입니다. 그들의 예배와 그들의 교회프로그램에는 그들 교회의 음악이 모든 청중들에게 신비감을 주고 압도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교회의 음악담당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 가운데 반은 새 노래를 부른다, 즉 작곡을 해서 보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가 간 주일에도 새 노래가 소개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 노래를 부르는 그것이 그 교회로 하여금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는 매체 중에 주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교회들이 교회음악에 큰 투자를 하고 있고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음악에 대한 책을 보면, 교회음악과 예배음악이라 하는 용어가 나옵니다. 예배음악은 예전음악이라고도 하는데 ‘liturgical music’ ‘worship music’ 이렇게 말합니다. 전통적인 이 리터지칼 뮤직이라 하면 이것은 그대로 영역이 있고 이제는 비 예전음악을 통 털어서 교회음악이라는 용어로도 규정을 하는데 광의적으로 어디서나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교회음악이라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음악은 수없이 변화를 가져왔고 지금도 계속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변화되어 가는 교회음악의 모습 앞에 우리 교회들이 지금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또 세계의 변화 앞에 한국교회가 한계도 있습니다. 특히 지금 농어촌교회들은 성가대 지휘자가 귀하고 반주할 사람이 없어서 부흥회할 때도 애로를 겪는 이런 현상을 보는 마당에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보면 교회음악이 여러 가지 허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료를 보면, ‘내 진정 사모하는’(88장)이란 곡은 서부 개척시대의 살롱에서 부르는 댄서음악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캉캉 춤을 출 때의 음악이라 소개되고 있습니다. 또 ‘오 거룩하신 주님’(145장)은 우리가 수난절 때 잘 부르는 곡으로 16C 독일의 대중음악이라고 하는데 바하가 화성을 붙여서 마태수난곡에 삽입함으로서 예전음악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아주 많은데 전문가들이 분석해 놓은 복음찬송과 예배찬송의 개념을 조금 정리를 하면, 복음찬송은 부흥회다, 모임이다, 친목회다, 기도회다 어디서든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복음찬송 혹은 교회음악이라 하는데 이 가사가 간증 혹은 전도, 촉구, 간구 등 각성을 일으키는 내용이 많고 나, 너, 우리라는 대명사가 강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관성을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복이 많고 경쾌하고 열정을 일으키는 게 복음송의 특징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찬송 혹은 예전음악은 정규적인 예배만 인용을 하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 존귀, 영광을 돌리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기능적으로 성찬식을 할 때 부르는 예전음악이 따로 있고 송영이나 화답송, 헌금송 이렇게 기능적으로 구분이 된다 라는 것입니다. 특히 또 성탄절이다 부활절이다 수난절이다 사순절이다 등등 이런 교회력에도 맞추어서 예전음악이 전수되어 오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 한국의 여러 곳에 가서 교회음악에 대해서 강의하고, 음악부흥회를 하는 그런 측면에서 자주 강사로 불림을 받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싶습니다. 동서대학의 김성대 교수는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음악이 좋아서 노래공부를 하고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이 분이 교회음악에 대해 세 가지로 강조를 합니다. 첫째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노래를 교회에서 불러야 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둘째는 보다 형식적인 가치를 강조해야 된다, 즉 교회음악이 형식을 배제한, 너무 자유를 추구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창조와 성막과 성전제도는 치밀한 하나님의 형식적 가치가 있는 것과 같이 교회음악도 그런 형식을 중요시해야 된다, 예전음악의 형식도 중요시해야 되고 복음찬송의 형식과 구분도 중요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에토스이론을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이것은 희랍철학에서 나온 것인데 교회음악이 사람들의 감정과 영혼에 굉장한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쁨, 슬픔, 공포, 회개, 평화 등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이 음악의 음정이나 리듬이나 템포에 따라서 전부 그것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런 에토스 이론에 입각한 음악을 조율해야 된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동시대의 교회음악

  또 다른 한 사람은 요즘 상당히 각광을 받고 있는 작곡가이면서 가수이고 요즘은 천안대학에서 음악교수로 임용을 받은 하덕규씨 라는 분입니다. 이 사람이 CCM이라는 학과를 가지고 상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금 학생이 200여명 된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CCM의 대가입니다. 이 용어가 최근에 등장을 했는데 이것이 우리말 번역으로 하면 ‘동시대 크리스찬 뮤직’(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다 해서 앞의 글자를 따서 CCM이라고 부르는데 요즘은 복음찬송, 복음송이라는 말이 벌써 사라져 버리고 CCM이라는 말이 정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적인 내용을 담은 음악이 복음송으로 우리 한국교회에 많이 발전을 해왔는데 80년대부터 기독교방송을 통해서 CCM이란 용어가 등장이 되고 이것이 특히 젊은 계층에 굉장히 그 적용도가 빨라서 요즘은 이 현대적 감각이 오히려 어울린다고 해서 복음송이라 안 하고 CCM이라는 용어로 정착이 되고 있습니다.

  저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음악적인 전문성이 아니고 이제 우리가 인식을 해야 될 것은 교회음악이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찬송가가 나옴으로서 전에 없던 찬송이 일부 들어왔고 요즘 발간을 기다리고 있는 통일 찬송가에는 지금의 찬송가에 없는 새로운 노래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공인된 찬송가를 통해서 새 노래가 보급이 되는 방법도 있는데 그것은 너무 느립니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 안에는 지금 엄청난 교회음악의 변화가 물결치고 있고 그 수준차이도 굉장히 납니다.

  ‘경배와 찬양’이라는 것도 1970년대부터 계속 오다가 이것도 CCM 범주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상으로는 수직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측면과 수평적으로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과 사람들이 접하기 쉽고 감동받기 쉽고 불신자들도 그 음악의 호응도를 가질 수 있는 이런 내용의 두 가지 형식으로 교회음악은 변화되어 가고 있고 변화되어야 한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근간에 와서는 ‘가요성가’라는 것도 등장하고 있고 ‘민요성가’도 많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곡가 중에 장욱조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장욱조씨는 대중들이 잘 아는 유명한 유행가를 많이 작곡을 했습니다. 이 분이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고 나서 자기가 뭔가 교회음악에 헌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차에 예능교회의 이영후 장로님이 가사를 하나 써서 “당신, 작곡가니까 여기에 곡을 하나 붙여보라”고 했는데 그것이 ‘할 수 있다 하신 이는’이란 곡으로 세계적인 부흥성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트롯음악을 가지고 가사를 붙여서 개인집회에서는 그 노래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요성가도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민요성가도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음악이라는 게 이렇게 지금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라는 것인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것이 아마도 목회자의 음악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 또 교단적인 입장들, 무분별한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신학적인 입장, 이것은 목회자들의 몫이고 음악에 직접적인 연관되는 몫은 전문가들의 몫이라고 보는데 이 변화의 물결 앞에 우리가 너무 부정적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교회음악

  아마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들은 서태지 팬은 별로 없는 줄 압니다. 그런데 왜 젊은 아이들이 서태지에게 그렇게 열광을 하는가? 왜 매스컴이 그렇게 열광을 하고 음반업자가 왜 저렇게 서태지에게 매달리고 열광을 하는가? 그런데 서태지 특집에 관한 유인물을 보고 조금 감각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서태지가 지금 7집 음반을 낸 것으로 소개가 되고 있는데 그 유인물에 강조되고 있는 것은 끝없는 변화, 그러니까 음반을 하나 낼 때마다 전의 형식을 탈피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열광을 하고 그 변화에 기대를 합니다. 이 친구는 이번에 국내에서의 활동을 한 후 또 외국으로 간다고 합니다. 가서 또 다음 변화의 기대를 대중들 앞에 던져놓고 그가 돌아올 때는 공항부터 소동이 일어나는 이것이 서태지가 몰고 오는 바람의 개념이 변화입니다. 이 엄청난 변화의 유행을 이 서태지 음악이 주도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고부터 대중음악에 엄청난 변화가 왔습니다. 계속 그것을 주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세상도 이렇게 변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교회음악도 우리는 이제는 예전음악이다, 교회음악이다 이 시비를 떠나서, CCM은 교회서 부른다, 못 부른다 그것을 떠나서 이제 우리가 좀 인식을 해야 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전음악과 대중들에게 달려가는 이 CCM은 교회가 동시적으로 이해를 해야 되고 또 못 부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윌로크릭교회나 새들백교회가 새로 만들어 보급하는 그 노래는 역사성에 있어서 그것은 CCM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맞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예전음악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음악이 아닙니다. 성찬식을 할 때는 전해오는 예전음악을 교회에 적용할 수도 있지만 오늘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오늘의 노래를 불러야 된다는 것이 그들이 표적인데 그것이 아주 적중을 해서 대중들이 열광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음악 때문에 수많은 대중들이 그 교회로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바람들이 결국은 미국교회로부터 불어오기 때문에 미국교회의 변화를 우리가 다 수용할 수는 없지만 이것을 전문적으로 거두절미할 수 있는 입장에서 교회음악이 큰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좋은 성가대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좋은 찬양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찬양 때문에 좋은 성가대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찬양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을 성경에서 잠시 그 의미를 찾아본다면, 오늘 읽은 본문이 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우리가 한번 관찰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씀의 주제는 찬양입니다. 골로새서를 엮어가면서 1,2장에서 복음에 대한 변론을 하고 교회 이야기를 하고 3장에 와서도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 성도들의 삶, 위엣 것을 찾으라 하는 이런 권면과 교훈이 이어오다가 결론부분에 와서 뒷부분의 말씀은 또 다른 주제로 남편들아, 아내들아, 아비들아, 자녀들아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사도 바울이 교회론을 이야기하면서 결론적으로 끝마치는 그 주제가 찬송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구절이 15-17절인데 여기에 보면 중요한 원리가 몇 가지 있습니다.

  찬양자의 세 가지 영성

  첫째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가지고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 찬양하는 것도 일부 측면이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우리 마음에 평강을 소유하고 찬양할 때 우리의 찬양은 다른 사람에게도 평강을 전해주는 찬양이 될 줄로 압니다. 또 하나는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하는 자로서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전제로 강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찬양은 노래하는 자의 마음에 평강과 감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예배를 통해서 교회 예배찬양을 들을 때 멜로디가 어떻느냐, 가사가 어떻느냐, 리듬이 어떻느냐, 볼륨이 어떻느냐 그것을 따지고 듣는 게 아닙니다. 우리 찬양대와 다른 찬양대와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찬양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비교해 가지고 낫다, 안 좋다, 기교가 어떻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찬양으로서 우리 찬양은 만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만점 찬양의 요소가 무엇이냐? 찬양자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강과 감사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묻어나오는 찬양이 될 때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이 되고 우리가 또한 은혜를 받는 찬양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찬양자의 마음에 있어야 될 게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평강과 감사와 말씀 이것이 교회음악에 기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찬송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입니다. 복음송이냐, 예전음악이냐, CCM이냐 라는 시비가 아닙니다. 하덕규 교수의 이야기가 참 공감이 가는 것입니다. CCM을 부르든, 전통적인 예배음악을 부르든 찬양하는 자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자가 이 말씀에 근거한 평강, 감사, 말씀 이런 주제를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것이 언제나 바탕이 되어 있는데서 우리의 노래가 조금 미숙해도, 부족해도, 전문성이 없어도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돈 벌이 하는 노래가 되려면 그런 면에서 완벽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그런 기법의 완벽이 아닙니다. 노래하는 자의 인격과 삶의 만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삶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17절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러니까 찬양이라는 것은 감사라는 개념과 동의어입니다. 감사하라는 말은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그 찬양의 감사와 평강이 그리고 말씀이 그 찬양에 묻어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라고 했습니다.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이것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삶이 있는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가장 강조하는 말입니다.

  맺는 말

  “노래만 하고 삶이 없을 때는 교회 안에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찬송을 부르고 삶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찬송이 소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찬송은 이렇게 근본적인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게 찬양의 본질이 무엇이다 라는 것을 말씀에 벌써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언제나 찬양하는 우리가 찬양신학으로 기초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회개하는 일도 필요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청산할 줄 알아야 되고, 기도하면서 찬양해야 되는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자는 기도도 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과 감사의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 기도도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는 또 하나의 조건 중에 좋은 찬양이 있는 교회라야 할 줄 믿습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찬양이 있는 교회, 더 좋은 찬양을 하는 성가대가 되는 교회, 이런 축복을 함께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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