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힌옷 입은 사람들 (계 3:1-6)

  • 잡초 잡초
  • 809
  • 0

첨부 1


본문 / 요한계시록 3:1-6
제목 / 힌옷 입은 사람들

오늘날의 터키인 소아시아에 있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등 일곱 교회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말씀중에 오늘은 다섯 번째의 교회인 사데 교회를 향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함께 봉독했습니다.
  오늘도 봉독한 말씀속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은 1절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함께 봉독합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문제입니다.
  오른 손에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감찰하여 진단한 결과입니다.

  죽은 자로다 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 네크로스 에이」에서 「에이」는 있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에이미”의 현재형으로 “이미 죽어버린 시체”가 아니라 현재 급속하게 죽어가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급속하게 죽어가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1절 마지막 쯤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아 있는 모습은 있지만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았다는 이름”에서 이름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오노마”입니다. 명성 그리고 평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결국 사데 교회가 살았다는 세간의 명성과 평판은 자자했습니다. 즉 소문은 자자했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침체되고 죽어가는 상태에 처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경계해야할 영적 질병이며 우리 양정교회가 조심해야 할 병입니다.

  제 동기 목사님 한 분이 한양 아파트 상가에 교회 개척 설립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목사님이 인사를 하면서 우리교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양정교회를 모델로 하여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고 얼마 후에 양정교회를 따라 잡는 교회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다른 목사님들이 부러워하는 교회가 되었나?
  너무 작고,  정말 보잘 것없는 일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개척교회를 시작하시는 목사님이 본받고 싶고, 따라잡고 싶고 앞서고 싶은 교회가 되었음에 그저 황송할 뿐이었습니다.
  최근에 선교 많이 하는 교회라느니..  목회를 잘한다느니.... 이런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겁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칭찬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평판만 좋고 실상은 죽어가는 모습일 될까 겁이 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섬긴다고 섬겼는데 주님을 섬긴 것 보다 칭찬 듣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아 자리가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사데 교회 같이 될까 겁나기 때문입니다. 
  사데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두 열심히 있었고 조직이나 재정도 결코 다른 교회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봉사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소문과 평판이 아주 좋은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분명 사데 교회는 옷을 더럽힌 교회입니다.
 
  옷을 더럽힌 사람들...
  본문 계시록 3:4절을 보면 사데에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이 있다”이 말은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옷을 더럽혔다는 말입니다. 사데 교회 사람들은 모두 옷을 더럽힌 사람들이었습니다.

  ① 더럽혔다는 것은 세속에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볼 때 아주 훌륭한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시에 그들은 아주 훌륭한 불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봉사도 하고 선교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밖으로 나가면 밖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대로 우상숭배와 부도덕을 위해 불신앙의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② 인간 중심의 편리주의에 빠진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 생활은 그저 형식적인 것일 뿐 그들은 불신자들처럼 사치하고 방탕하며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인간 편리주의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주님께서 옷을 더렵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하는 행위는 있으나 예배하는 삶은 없고 외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모습 그것이 옷을 더럽힌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딤후 3:5절의 말씀과 같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모습이 옷을 더럽힌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③ 무사안일(無事安逸) 한 병이 들었습니다.
  사데교회는 처음에는 아주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충성과 그들의 헌신은 아름다운 소문을 만들었습니다. 그 지역에 여러 곳에 사데 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소문이 났습니다. 칭찬이 자자한 교회였고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때 부터인가 그 교회가 병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사 안일주의에 빠졌습니다.
  사람은 배부르면 움직이기 싫어합니다. 편안하면 더 게을러 집니다. 무사안일은 게으른 병입니다. 영적으로 무사안일에 빠지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축복하시는 줄 압니다.
  자신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교회는 저절로 되고 선교도 저절로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많아졌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사 안일주의에 빠진 성도들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선교를 위해 뜨거운 기도한번 제대로 안하는 교인도 사람들도 밖에 볼 때 열심히 선교하는 교인처럼 보입니다. 선교비 한 푼 안내고도 선교하는 교회의 교인이라고 칭찬하는 칭찬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안 됩니다. 모두가 다 허리띠를 매야 합니다. 칭찬 들은 만큼 일해야 합니다. 칭찬 들음에 자부심을 갖는 것에 합당한 헌신의 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힌 옷 입은 사람들.....
  그런데 정말 순수하게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수가 아니었습니다. 몇 명인지 모르지만 아주 적은 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오늘 날 주님은 힌 옷 입은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구속의 은혜의 체험과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롬 13:14절의 말씀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은 사람들입니다.
  옷이란 계 19:8절을 보면 성도들의 행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옳은 행실 그것이 바로 성도들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과 믿음이 하나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의 의식보다 예배하는 삶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옳은 행실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신자이며 교회 밖에서도 불신자들에게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수요일은 우리 교회 네 번째 선교사로 방시몬, 이에스더 선교사의 파송식을 한 날, 한없이 기쁘고 좋은 날이었습니다. 이로서 우리 교회는 태국, 중국,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에 선교사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선교는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이고 우리의 받은바 절대적인 명령이며 사명이라는 사실 앞에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 당연한 일에 우리를 사용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감사했습니다.
  처음 한 가정으로 시작된 교회가 이제는 4 가정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교회로 성장하였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모든 교우들에게 선교에 대한 사명을 주셨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이응윤, 김재정, 박병권, 방시몬 선교사와 같은 귀한 종들을 허락하셨음을 인해 감사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 보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겁 없이 일을 벌려 놓는 것은 아닌가?
  우리교회 규모에서 선교사 4가정을 파송하고 그들의 사역을 전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지원할 수 있는가 하는 스스로의 마음속에 수많은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성도들의 생각은 어떨까? 갑자기 약해지는 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파송 예배를 드리면서 무거운 맘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에 방선교사님 키르키즈로 이사를 가는데 항공료와 이삿짐을 보내는 컨테이너비 그리고 아파트를 얻는데 필요한 돈이 천 2백 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만한 재정이 없었습니다.
  당장 천 이백만 원도 문제지만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어께가 너무 무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거기다가 파송 예배드리는 그 날, 그날따라 교인들이 기대하였던 것보다 적게 모였습니다.
  혹시 교인들에게 선교사 파송에 대한 열의가 식었나?
  아니면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나? 하는 생각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했습니다. 모두 쓸데없는 괜한 생각임을 알면서도 ....

  정말 애통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아시고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 다음날 역사하셨습니다. 어느 집사님 한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1000만원을 헌금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남편과 아내에게 동일하게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커다란 음성이었습니다.
  믿음 없는 내가 괜한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데 교회에 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적은 수였지만 그들이 있기에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에 옷을 빠는 사람들입니다.
  계 7:14절에 보면 힌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① 환난을 이기는 승리의 사람들입니다. 
  ② 예수의 피로 목욕한 사람들입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