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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빌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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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빌2:5-11>
2004. 04. 04

일본에 가면 오래 동안 음식점을 해온 집들이 많습니다. 보통 3,4대를 이어서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음식점을 하는 분들 가운데는 대학을 졸업한 것은 보통이고 석사 박사도 있습니다. 박사이면서도 자기집의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고 음식점을 합니다. 그런 집 가운데 1백 38년이나 오뎅을 파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이집기둥에 붙어있는 금언이 하나 있습니다.  "견습은 주인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그것만이 기술을 배우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1백 38년간 오뎅 하나에 승부를 걸어 온 집안다운 금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는 것입니다. 스승을 닮는 가장 빠르고 귀한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하고 따르면 닮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노래하지요.
♬주님 닮기 원하네.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그러면 주님의 기쁨이 되려면 뭐가 필요 한 것입니까? 주님을 닮는 것이지요. 나는 주님을 닮았다. 바울의 표현으로 보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안에 산다. 껍데기만 닮은 것이 아닙니다.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든 것이 닮았다.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오늘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감옥에서 들으니 빌립보교인들이 서로 잘났다고 싸움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생활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더니 이제는 싸움질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곡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으로 살아라. 하고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절대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100프로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이 복종에는 다른 이유가 없어요. 어떤 시비도 있으면 그것은 복종이 아닙니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있으라면 있고 죽으라면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종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복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복종에 대해서 더 할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완벽한 복종입니다. 이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구원 받아야 할 존재 들입니다. 싸워야 할 존재들이 아닙니다.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 있는 그런 인생들이기에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그것을 배워야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고 복종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복종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불가능한 것 같은 자리에서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그렇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시고 그래서 건져주시고 치료하여 주시고 온전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지요. 그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친히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말은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처럼 훌륭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만 하나님이 아니라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그 분은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오셔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물위를 걸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그분이 하신 것을 누가 행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 되신 그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 갈수 있는 마음 그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십자가를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음입니다. 끝장입니다. 더욱이 그 고난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은 없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들이나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겠느냐 할 때 그렇다고 대답한다는 자신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본인과 아무상관도 없고,  영광을 얻는 것도 아니고. 가장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이 단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누가 덕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 내게 얼마나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죽기가지 복종하는 마음, 그것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품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래 답이 나오지요.
하나님이 저를 높이셨습니다. 죽기가지 복종해서 십자가를 졌습니다. 죽었습니다. 끝장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끝가지 복종하다가 죽은 자를 버리시지 않고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시는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시고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가 구주라는 이름입니다. 그 이전에는 예수는 단지 사람이름입니다. 예수님 외에도 이스라엘 이름 가운데 예수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이름은 다릅니다. 사람의 이름 예수가 아닙니다. 온 인류가 구주로 부르는 이름 예수입니다. 할렐루야

죽기까지 복종하며 섬겼더니 모든 사람이 와서 저에게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간 저를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요,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낮추시고 겸손한자를 높이신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높아지려고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낮아졌다 다시 올라오지 못 한다 해도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한동대 김영길 총장과 오성연 부총장이 사람들의 오해와 모함으로 52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습니다. 김영길 총장이 구치소에 들어간 첫날, 32명의 죄수들이 비좁게 들어가 있는 작은 방에 배정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벽에 얼굴을 대고 무릎을 꿇고 '신고식'을 했답니다. 그리고 32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좁아서 제대로 못 눕고 칼잠을 자면서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나? 그동안 한동대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결과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본인도 상상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김영길 총장의 마음을 지배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중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중 빌립보서 2장 5절~7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김영길 총장은 이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여 경주 교도소에서 대구 교도소로 죄인처럼 이송될 때도 이 말씀을 생각했고, 독방에 갇혀서 정좌를 하고 있을 때도 이 말씀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의 고백은 "저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와서 그런 고생을 하셨는데, 제 지나간 과거의 삶을 보니 정말 저는 예수님을 위해 고생한 것이 없었습니다. 부끄럽게 살아왔습니다." 저는 낮아진 것이 없습니다. 지금 한동 대는 더욱 발전하고 그쪽에서는 신학교보다 더욱 뜨겁다고 소문이나 있습니다. 100프로 취직이 됩니다. 한동 대를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갑니다. 하나님이 저를 높이신 줄로 믿습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무겁든 가볍든지 간에 거절하는 적이 없답니다. 오직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낙타의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가 짊어지지도 못할 짐을 지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입니다. 우리가 감당하지도 못할 짐을 지게 하지 않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예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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