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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시에 찔려 보셨습니까? (고후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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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에 찔려 보셨습니까?
                고린도후서 12:7-10

인생은 가시에 찔리며 사는 존재입니다. 찔리지 않으면 인생이 아닙니다. 찔리고 살아야만 인생의 맛이 납니다. 시인 도종환씨는 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다.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다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다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고 노래하였습니다. 인생은 살아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살아있기 때문에 아프고, 살아있기 때문에 늘 가시에 찔리며 삽니다.

바울에게 있었던 가시

사도 바울도 평생 이 가시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가 있다 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가시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여러 의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재기되는 의견은  안질설과 간질설입니다. 이 안질설과 간질설은 갈라디아서 4:14-15절에 근거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15절에 보면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가 할 수만 있다면 너희 눈을 빼어서 나를 주었으리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심한 안질로 고생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는 교인들이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눈이라도 빼어서 바울 선생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바울에게는 교인들도 크게 걱정하는 아주 심한 안질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학자는 바울에게 눈 뜨고 볼 수 없는 간질이 있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4:14절에 보면 바울이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보고 신학자들은 바울이 안질 정도를 가지고 갈라디아 교인들을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겠다고 했겠느냐, 그럴 리가 없다. 바울에게는 그때 당시 가장 부끄러운 병 간질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을 했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어떤 가시가 있었을까요? 안질일까요? 간질일까요? 그 대답은 모릅니다. 어떤 것인지 확실히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울에게는 그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가 버리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그 가시가 힘이 들었으면 사단의 사자라고 하였을까요?

때로 우리들에게도 이런 가시가 있습니다. 내 인생을 마비시키는 가시가 불현듯 찾아옵니다. 가시가 찾아와 내 인생을 짓 밟아 버립니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울은 이 가시에 대해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첫째로 가시가 옮겨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은 가장 먼저 그 가시가 옮겨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8절을 봅시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 하였더니

바울은 이 가시 때문에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세 번이 아니라 더 했을 것이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 가시 때문에 무척이나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아무리 기도해도 이 육체의 가시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사라지지 않는 가시를 놓고 계속 기도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요? 응답받지 못하면서도 계속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기도한다고 십자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동일한 기도의 내용을 가지고 세 번이나 계속 기도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가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계속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멈춤 표지판이 없습니다. 기도에는 돌아 가시요라는 표지판도 없습니다. 기도에는 진입금지라는 표지판도 없습니다. 기도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나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쉬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쉬지 말며,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게 하라(사62:6)”고 하였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쉬지 못하도록 멈추지 말고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서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귀찮아라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다른 것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몸부림을 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야라고 말씀까지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예수님!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그것이라도 주십시오. 예수님이 이 여인을 보시고 웃으셨습니다. 고마워하셨습니다. 감격해하셨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1-28)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가나안 여인처럼 가시가 있습니까? 아무리 기도해도 사라지지 않는 가시가 있으세요? 그 가시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들을 찌르는 인생의 아픔, 그 가시가 무엇입니까? 그 가시가 무엇이든 그 가시를 안고 기도하세요. 찌르는 가시를 안고 기도하세요. 찌르는 가시를 어루만지면서 기도하세요. 가시가 찌를 때 우리는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둘째로 옮겨지지 않는 가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야합니다.

가시가 우리를 찌를 때 우리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기도해도 가시가 사라지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기도를 포기해야합니까? 기도를 그쳐야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시가 사라지지 않으면 조용히 그 가시를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7절을 한번 봅시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사라지지 않는 가시를 놓고 기도하면서 한 가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내가 너무 자고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내가 너무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내가 겸손하게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 가시를 허용하셨구나! 

바울은 충분히 교만할 만한 사람입니다. 본문 바로 전인 고린도후서 12:1절 이하에 보면 바울이 어느날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자기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셋째 하늘에 다녀오는 경험을 합니다. 셋째 하늘이란 천국을 말합니다. 바울이 이 세상에 살면서 실제로 천국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아주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교만해지겠습니까? 나는 당신들과 달라! 나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왔어. 나는 천국에 다녀왔어! 나는 굉장한 사람이야! 

그런데 바울이 이 가시를 놓고 기도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이 이래서 나에게 고통을 허용하셨구나, 내가 영적인 깊은 체험을 해서 교만해질 까봐 그것을 아시고 겸손하게 살게 하시려고 나에게 가시를 허용하셨구나

가시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카릴 지브란은 보답되지 않은 생의 번민과 고난은 우리의 영광을 증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시가 훗날의 축복과 영광이란 말입니다.

가시가 왜 그렇게 모질게 우리의 살과 뼈와 심장을 후벼대는지 아십니까?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나무는 뿌리가 약해져 큰 나무가 되지 못합니다. 바람이 자꾸 강하게 불어야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려 큰 나무가 됩니다. 가시가 없으면 사람은 절대로 큰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가시가 있어야 그 가시를 이기려고 몸부림치고 몸부림치다가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시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가시는 아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시를 통해서 우리를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다. 크게 하시고, 넘치게 하십니다.

욥을 보십시오. 어느날 욥에게 가시가 찾아왔습니다. 가시가 찾아온 순간 욥의 삶은 갈기 갈기 찢어져버립니다. 가축들이 다 죽었습니다. 재산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자식들이 다 죽었습니다. 자기 몸에 질병이 생기서 기왓장을 가지고 몸을 긁을 수밖에 없는 그런 극심한 고통에 빠졌습니다.

이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단이 준 것입니다. 사단이 욥을 시험하려고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욥이 그 가시로부터 깊은 신앙의 체험을 합니다. 욥기 42: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하였습니다.

욥이 사라지지 않는 가시 앞에서 하나님께 탄식하고 기도를 했더니 욥이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가시가 욥으로 하여금 인생의 새로운 차원을 살게 하였습니다. 욥의 가시에는 하나님의 또 다른 놀라운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가시는 고통만이 아닙니다. 가시는 고통이면서 동시에 축복입니다. 가시는 아픔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보화입니다. 괴테는 고통이 남기고 간 뒤를 보라! 고난이 지나면 반드시 기쁨이 스며든다고 했습니다. 성경도 말합니다.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찾아온 가시를 부여안고 너무나 울기만 하지 마십시오. 기도해도 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너무나 실망만 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면서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십시오. 가시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보십시오. 거기에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담겨있습니다.
셋째 가시로 인해 기뻐하십시오.

가시가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가시를 붙잡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그 가시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찾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보고 기쁨으로 반응하여야합니다. 

9절을 봅시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바울은 가시 때문에 아파했습니다. 가시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 가시 때문에 내가 겸손하게 되었구나. 이 가시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구나. 이 가시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더 얻게 되었구나. 내가 이렇게 큰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은 다 가시 때문이었구나. 그렇다면 이 가시를 기뻐해야지. 그래서 바울은 가시를 부둥켜안고 기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간질병이 생길 때마다 기뻐했고, 안질로 눈이 아파올 때마다 기뻐하였습니다.

가시가 만일 축복이라면, 가시가 만일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만드는 것이라면 나는 가시를 안고 울어야 할까요? 기뻐해야할까요? 가시가 만일 내 인생을 새롭게 하고, 내 인생을 놀랍게 하고,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한다면 나는 가시로 인하여 아파해야 할까요? 감사해야 할까요?

고난 주간이 가까워집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실 때 예수님의 생애에 찾아온 것은 기쁨이 아니라 가시 면류관이었습니다.

(가시 면류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애 마지막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시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를 흘리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할 수 만 있으시다면 내게서 옮겨주십시오.”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가시가 너무나 아프셨기 때문에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가시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십자가에 끌려가심) 예수님은 이제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로 걸어가십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면서 디오돌라로사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로마 군인은 채찍을 휘둘러댑니다. 채찍으로 후려 칠 때마다 예수님의 몸은 찢겨 나갑니다.

(십자가에 기대신 예수님) 채찍에 맞아 찢긴 예수님의 몸에 피가 흐릅니다. 면류관 쓰신 그 얼굴과 그 손에 피가 멈추지 않습니다. 터져버린 살 사이로, 찢긴 몸 사이로 피가 흐릅니다. 그 흐르는 피를 어느 누구 하나 닦아주지 않습니다.

(못) 예수님께서 골고다에 이르시자 로마 군인들은 그 손에 못을 박습니다. 커다란 망치로 못을 박고 또 박습니다. 망치 소리 들릴 때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십자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그 고통으로 울부짖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왜 저를 버리십니까? 아! 내가 너무 목이 마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 가시의 고통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은 곁에 있는 강도를 향해서도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히브리서12장2절에 보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예수님에게 십자가는 고통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아픔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당신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모든 사람들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당신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풍성하게 살아갈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당신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모든 더러운 죄를 이기고 살아갈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당신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이 땅의 수 많은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당신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그것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달게, 기쁘게 지셨다고 히브리 기자는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가시를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가시는 아픕니다. 가시는 너무나 큰 아픔을 줍니다. 너무나 큰 고통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시가 여러분들을 찾아올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가시가 병으로 찾아오고, 마음의 상처로, 괴로운 일들로 찾아올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쉬지 말고, 멈추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시면서 왜 나에게 가시가 왔을까?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시를 허용하셨을까를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거기에서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셨습니다. 찾으셨다면 그 가시를 안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가시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시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놀랍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시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상상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가시에 찔리며 사는 존재입니다. 찔리지 않으면 인생이 아닙니다. 찔리고 살아야만 인생의 맛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찔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가시가 우리를 찌를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더 풍성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시 때문에 너무 절망하지 마시고, 진주 조개 속에서 진주가 나오듯이 가시를 안고 하나님 안에서 찬란히 빛나는 진주를 만들어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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