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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절대 모릅니다. (요 18:17, 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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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모릅니다. 
요한복음 18:17, 25-27 

지난주에는 예수님께서 집히시는 장면을 말씀드렸습니다. 1,000명의 로마근인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도 모자라 성전 수비대까지 같이 갔습니다. 예수님이 살인범입니까? 흉악범입니까? 경계사범도 아닙니다. 나라를 정복하려고 쿠테타를 이르킨 정치범도 아닙니다. 아무 죄도 없습니다. 죄가 있는 범인도 한 두 사람만 가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야단법석입니까? 단 하나 예수님의 인기가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 보다 높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대한 구세주의 그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기대가 어긋난 것입니다. 옛날 이승만 대통령의 가짜아들 이강석이가 대구에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말 한마디에 도지사, 시장, 경찰 국장들이 벌벌 떨었습니다. 그가 바로 “귀하신 몸”이었습니다. 정말 그런 어두운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청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습니다. 가난뱅이 촌놈이었습니다. 나사렛 촌뜨기라고 깎아 내렸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의 미움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빨리 없애야 나라가 편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가 가롯유다를 유혹했습니다. 그는 돈에 약했습니다. 약발은 직효였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앞세워 밤중에 군인들이 완전무장을 해서 잡으러 간 것 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대로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순순히 군인들의 뜻에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꽁꽁 묶여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로 갔습니다. 안나스는 주후 6년부터 15년까지 대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안나스는 유대고 안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다섯 아들들이 다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승계 순서에 따르면 안나스가 대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에서 그를 반대하고 사위인 가야바가 대제사장이 됩니다. 아마도 안나스는 대제사장의 지위를 그렇게 원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는 너무나 빨리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에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그가 산헤드린 공의회 의장이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잡자 우선 안나스에게 끌고 갔습니다. 거기 예수님의 제자 중 두 사람이 같이 간 것 입니다. 9년 뒤 유대의 지방장관인 발레이오 그랑트스에 의해 그 자리에서 해임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전의 대제사장이란 원로급의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그 후손들이 차례로 대제사장이 됩니다. 요세푸스란 역사가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체포한 이들이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1차적으로 비공식적인 심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우두머리 수석 대제사장이 주관하는 산헤드린 공의회의 법정에 섭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따라간 두 제자는 누구일까요? 물론 베드로이지요. 다른 한 사람은 요한복음 기자인 요한이라 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린 것 입니다. 요한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문어귀에 멈추어 바깥에 서 있었습니다. 바로 안으로 들어간 요한은 별로 주목받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추종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밖에서 멈췄을 때였습니다. 요한은 자기 동료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그는 베드로가 밖에 있어서 문을 지키는 여종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안나스 앞에서 행해진 형식적인 삼문은 간단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일어난 것 입니다. 문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했습니다. 그는 겁이 났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아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이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역시 많이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나이가 많고 수염이 긴 특징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고 있었습니다.(마태26:59-66,마가14:55-64,누가22:66-71)

때에 예수님의 대답이 공손하지 못하다고 대제사장의 아랫사람이 예수님을 쳤습니다. 감히 대제사장에게 버릇이 없다는 것 입니다. 심문이 끝난 다음에 예수님을 포승줄로 묶은 체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냅니다. 베드로는 마당에서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때에 사람들이 묻기를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했습니다. 베드로는 당황했습니다. “나는 아니라”합니다. (막26:71-75,막14:69-72,눅22:58-62)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똑똑히 보았다.”고 하자 베드로는 또 부인합니다. 때에 새벽 닭이 울었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여기 문지기 여종이 말한 것을 보십시오. 그는 이미 베드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이 베드로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돼요.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본영은 상류사회의 사람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신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쮸빗~한 것으로 추축됩니다. 그러나 세기의 관심사인 예수님의 재판에 군중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틈에 그가 가다가 여종에게 들통이 난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니다”고 대답합니다. 베드로는 남다른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여행에서 돌아올 때였습니다. 보고를 받았습니다. 너희가 사람들을 만나보니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물으셨습니다. 어떤 이는 엘리야, 세례요한, 선지자중 한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더냐 하실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예수님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신앙 고백 문입니다. 미리 숙제를 낸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베드로의 믿음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잡히시기 전날 밤 마가의 2층 다락방에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만찬이 이루어졌습니다. 갑자기 예수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충격적인 말씀이여서 다 놀랐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저는 죽을지언정 그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진심이었습니다. 또 그의 신앙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믿음을 의심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하루 만에 베드로는 어제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종의 목을 자르겠다던 용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비겁한 제자였습니다. 그는 삶의 경륜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용기도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썩은 고목이 넘어지듯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사람은 다 살수가 있습니다. 누구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장담 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다 약점이 있습니다. 돈에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에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명예에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성에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담 하와는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혀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모두 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선악과에 약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남의 실수에 돌을 던질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기도합니다. 늘 노력합니다. 그래도 또 넘어집니다. 누가 감히 감당할 자격이 있습니까? 어느 장로님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셨습니다. 제가 섬기던 어느 교회에 몇 년간 나오셨습니다. 그 아들과 딸이 제가 섬기는 교회에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장로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의 자녀는 9남매였습니다. 다들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대구교계에서는 알려진 유능한 분이셨습니다. 항상 그는 자신만만했습니다. 당당하셨습니다. 아들 또래 밖에 안되지만 목사에 대한 깎듯한 예의를 갖추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젊은 목사에게 목사는 이래야 된다는 교훈조의 말씀이 많았습니다. 그의 살아오신 길이 남다르게 바르고 깨끗했기에 그러실 수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분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정중하게 “목사님, 목사님에게 회개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사람들이 가정에서 가정교육을 잘 못 시켜서 그렇지.. 한 말을 취소하고 회개합니다. 사실 자식을 두고 큰 소리 칠 수 없습니다.” 합니다. 그의 아들 중 한 사람이 골치 덩어리였습니다. 술 마시고, 여자놀음, 화투놀이.... 나쁘다는 건 다합니다. 아버지의 명예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달래도 보고 큰 소리도 쳤으나 더 헛수고였습니다. “그는 내가 이사로 있는 병원 정신과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누구나 다 넘어질 가능이 많습니다. 베드로도 쉽사리 넘어 갈 삶은 아닙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신앙의 거목입니다. 그런데 그가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잡아뗏습니다. 비겁하지요. 이렇게 시시하게 넘어질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지식이 없는 열정만 가지고 칼을 휘두른 그 열정이 식어지자 떨면서 먼 동이 터오고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알지도 못하며 절대로 예수의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겅은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 장면을 잠시 그려보십시오. 그는 대제사장의 마당에 모닥불을 쬐고 있습니다. 그 불이 궁정의 뜨락에서 타고 있었습니다.(18:18) 때에 여종이 질문을 했습니다. “너도 틀림없이 예수의 사람이다.”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다른 사람은 베드로를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 있게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그런 일이 없습니까? 예수님을 드러내 놓고 믿는 것이 힘듭니까?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웃에게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기 힘듭니까? 버스, 기차, 비행기로 여행하실 때 예수 믿는 사람의 표를 내기가 어렵습니까? 그런 면에서는 신부님, 수녀들이 더 자유롭습니다. 하기는 어떤 때는 남이 나를 모를 때 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숨기지 맙시다. 운전 하실 때도 예수 믿는 사람은 본이 되야 합니다.

맺는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까지 하면서 그랬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도 그러면 안됩니다. 그의 신앙경력을 봐서도 그럴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 일이 있기 전 방에서도 죽을지언정 그런 일을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제일 몹쓸 사람은 배신하는 것입니다. 배은망덕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부모, 은사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과 뭐가 다릅니까? 저는 많은 사람을 겪었습니다. 그 은혜를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한번은 속지만 계속 속지는 않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비굴 하지요, 주 안에서 늘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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