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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니엘의 기도생활 (단 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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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기도생활

[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 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기도생활 잘하고 싶었지만 주어진 환경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먼저 그는 최고의 공직자였습니다.(1-2절) 다니엘은 조국 유다왕국의 멸망 때문에 주전 586년 정복자 페르시아 땅으로 포로 되어 끌려왔던 인물입니다. 소년으로서 끌려왔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페르시아 땅에 정착하며 최고의 공직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다니엘 당시 페르시아제국은 문명이 최고 절정기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역사에서 대표적인 군주는 다리오왕이었습니다.(6:1) 영토가 얼마나 넓었는지 120道가 되었습니다.(도지사만 120명) 다리오왕은 전국 120道를 실제로 통치하도록 세 사람의 총리를 세웠는데 다니엘은 3인중 한 사람으로 왕이 가장 신임하고 있었습니다.(6:3)

대 제국 Medepersia의 수석 총리 다니엘입니다. 국사가 얼마나 분주하였겠습니까? 그럼에도 다니엘은 ‘기도생활’을 느슨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다니엘을 생각하면 ‘바빠서 기도 못합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니엘의 기도생활을 헐뜯고 흠을 잡으려는 적대 세력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인과 선인을 귀하게 여겨주고 고맙게 생각하는 풍토가 거의 없었습니다. 모순이고 비극이지요. 내 사는 시대에 의인이 살고 있다/ 선인이 함께 살고 있다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입니까? 그러나 타락한 인물들은 오히려 의인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제거해 왔습니다. 거짓과 불의와 탐욕의 울타리 속에서 밤과 낮을 살아가는 자신들로서는 부담스러운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아무런 틈이나 아무런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매사에 충성되었습니다. 마음이 민첩하고 총명함이 동료 총리들보다 뛰어났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Darius왕은 다니엘을 전폭적으로 신임하였으며 首席총리직을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6:3-4)
다니엘이 멸망한 유다왕국 출신임을 잘 알고 있는 Medepersia의 고위 공직자들은 다니엘을 중도 낙마시키려고 온갖 작전과 모함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함정을 사방에 파놓고서 다니엘이 낙마하도록 끊임없이 악한 꾀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온갖 방해와 모함과 음모 속에서도 다니엘은 기도생활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기도생활을 느슨하게 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예전과 다름없이 조금의 동요 없이 지금까지 해 오던 기도생활을 단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오늘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6:7-9,10) 이 다니엘을 생각하면 환경이 여의치 못하여 기도생활을 계속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의 기도생활을 살펴봅시다.(10절을 중심해서 살핍니다)
다니엘은 기도생활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알고도 이것은 정말 기막힌 표현입니다. 다니엘의 인격, 신앙, 기도생활이 어떠했음을 다 내포하고 있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조서의 내용은 향후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즉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입니다.(6:7) 이 문서에 Darius왕이 자기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도 이 조서를 변개할 수 없습니다. 이것까지 문구에 넣어서 왕이 도장을 찍어 선포하였습니다. 그 순간 Medepersia제국 전역은 깊은 정적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했을까요? 다니엘은 누구보다도 이 법령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범령을 위반했을 때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금령은 자신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6:5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기도생활을 잠시 중단할 마음이 없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타협의 여지가 있지 않습니까? 다니엘 스스로 이렇게 타협할 수 있습니다. ’그래, 단지 30일이야! 한 달, 한 달만 기도를 쉬지 뭐 하나님께서 봐 주실 거야. 기도 한 달 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날 영 외면하시겠나. 기도 한 달 쉰다고 내 신앙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마음속으로/ 입안에서 묵상으로 기도하면 되잖아. 그러니 기도를 쉬는 것도 아니지‘ 이 정도의 타협은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다니엘을 비난하겠습니까? 다니엘을 아끼고 있는 Darius왕도 사실 다니엘이 이런 지혜로 이 위기를 말썽 없이 넘어가기를 속으로 염원하고 있었습니다..(6:14) 어쩌면 하나님께서도 다니엘이 소극적으로 처신하면서 이 위기를 넘긴다고 해서 크게 나무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대적들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비웃고, 이스라엘의 신앙을 조롱할 목적으로) 기도를 금하였으므로 이에 굴복하는 것은 ’비겁한 신앙‘이 되고 만다는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기도처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려 있는 (의지적으로 다니엘이 열어둔) 창에서” 그리고 기도시간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기도하였더라)”
정말 가슴 찡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다니엘 한 사람을 잡으려고 무서운 금령을 만들어 Darius왕의 어인을 받아낸 저들입니다. 다니엘의 집을 감시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6:11을 보십시오 “그 무리들이 모여서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 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무리들이 모여서...라고 했으니 다니엘의 대적들이 다니엘의 집을(금령이 선포되자 마자) 미리부터 포위하다 시피하고 감시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이 평소에 늘 기도하던 기도 처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처는 자기 집이었습니다. 이 말씀 듣고 여러분 중에서 ‘옳구나. 나도 이제부터 따뜻한 내 집을 기도처로 정해야겠구나’ 이렇게 민첩하게 반응하시는 분계십니까? 죄송하지만 그렇게 해석하거나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일 다니엘이 우리처럼 신앙의 자유가 100% 보장되어 있고 우리처럼 아름다운 교회당이 있는 곳에서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틀림없이 교회당에 와서 수시로 기도했을 것입니다.(아멘)

그리고 또 보세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어 둔 창에서..” 저는 여기서 가슴이 뜁니다. 전에는 그리했더라도 오늘부터는 그 창문을 좀 닫으면 어떻습니까? 창문만 닫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은 열어 놓으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 저 원수들이 현장을 덮치려고 무리 지어 몰려 와서 감시하고 있는데 그래 창문을(고집스럽게 여느 때처럼) 열어 놓고 기도할 것이 무엇입니까?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장려하시기까지 하시는데. 마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가 얼마나 절묘한 피난처가 되는 말씀 아닙니까? 지금의 다니엘을 위하여 주어진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절묘한 성구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 젖혀놓고 기도를 해왔는데 원수들의 눈이 두려워서 새삼 그 창문을 닫아 버리고서 기도한다는 것은 비겁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 이 얼마나 마땅하며,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이것을 왜 숨어서 해야 하나? 마치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처럼 왜 숨어서,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목소리 죽여서 벌벌 떨면서 해야 하나? 내가 무슨 나쁜 것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다니엘은 떳떳이 전에 행하던 대로 창문을 열어 놓고서 조국의 수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할렐루야)

여러분! 세상을 향해서 내 신앙생활의 창문을 열어 젖히십시오. 그리해야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의 문도 열어지는 것입니다.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창문을 잠가 놓지 마십시오. (마10:32, 행16:31) 그리고 다니엘은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기도합니다.’ 역시 기막힌 장면입니다. 전에는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지만 지금 이 비상시국 하에서는 하루 한 번만 기도하면 어떻습니까? 하루 한 번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화 내실까요? ‘다니엘아! 하루 한 번 기도해야 장한 시대이다. 이 험한 시절에 하루 한 번 기도하는 나의 종을 발견하기도 어려운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볼 때 다니엘은 정말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융통성 없어 보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때로 고지식한 편이 좀 더 신앙적일 수 있습니다. ‘융통성’을 찾다보며 신앙의 본질이 퇴색할 수 있습니다. 하루 세 번씩 기도의 향연을 즐기고 있는 다니엘에게 ‘하루 다섯 번 씩 기도하세요.’라고 요구해 온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예 기도하지 말라‘는 금령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누가 나의 기도를 막는다는 말인가?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나더라 ’죽으라‘고 하는 말과 같다. 이것이 다니엘의 심정입니다. 그에게 기도는 숨쉬는 것이요, 밥 먹는 것이요, 일하는 것이요, 살아가는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이제 그만 살고 죽으라.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무서운 금령을 보고 듣고 알고서도 횟수조차 줄이지 않고 하루 세 번의 기도를 어김없이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기도 열심히 합시다./ 새벽 기도합시다./ 새벽기도회 안 나오고 뭘 하십니까? 이런 요청 받을 때 기분 나빠하지 말고 고맙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다니엘은 ‘무릎을 끓고’ 기도합니다.
이 자세는 왕의 신하들이 자기들의 왕 앞에서 보고를 드리거나 명령을 받을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보시고 있는 Darius왕 앞에 설 때 관례를 따라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런데 만 군의 주 여호와 앞에 기도 드리고, 아뢰고, 말씀을 받는데 어찌 무릎 끓지 않아서 되겠는가? 스스로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거룩한 오기요, 거룩한 자존심입니다. 기도생활, 신앙생활에 이런 거룩한 오기가 필요합니다. 다니엘은 과거에도 그러고 위기에 처한 지금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고백이 무릎 끓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벽 제단에 나오는 자체가 무릎 끓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무릎을 끓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라는 문구는 계속 연결되어 “전에 하던 대로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렇게 해석됩니다. 무섭고 질식할 것 같은 이 와중에도 다니엘은 감사하는 기도까지 드리고 있습니다. 쭉 해 오던 ‘감사’를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해서 중단하지 않습니다. 절망스러운 환경에 처하게 되어도 여전히 감사를 쉬지 않는 ‘신앙’ 계속되는 감사의 기도! 이것이 다니엘의 기도생활입니다. 성숙한 기도란 이처럼 감사가 있는 기도요, 환난중에서도 감사가 있는 기도야말로 최고의 기도입니다. 롬8:28의 믿음으로 감사기도를 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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