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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한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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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제목 : 요한이 본 예수님
본문 : 계1:9-16
내용 : 온전케 하시는 손길

요 약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를 향하신 의지가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를 몸 삼으시고 임재하심이요, 죄를 덮으사 용서하심이요, 다스려 주심으로 승리케 하심이요, 칭의와 성화로 성결케 하심이요, 깨닫게 하사 회개케 하심이요, 연단으로 자아를 깨뜨리심이요, 성령충만한 말씀을 경험케 함이요, 사역자를 사용하사 능력을 베푸심이요, 삶에 적용되는 은혜와 진리의 말씀을 주심이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기쁨으로 충만하신 얼굴이시다. 이 귀한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누리도록 하자.

설 명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 예수님의 모습에 우리를 향하신 뜻이 있다.

1. 인자 (임마누엘)
"촛대 사이에 인자 같으신 이"
2. 대제사장 (죄사함)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3. 왕 (승리)
"가슴에 금띠를 띠고"

4. 성결 (칭의와 성화)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5. 통찰력 (자기 발견)
"그의 눈은 불꽃같고"

6. 심판자 (순복)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7. 말씀 (성령충만)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8. 사역자 (권능)
"그 오른손에는 일곱별이 있고"

9. 지식 (사고의 변화)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10. 사랑 (천국생활)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본 문)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강 해)
이 시간에는 "우리 주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꿈에라도 예수님을 보고 싶음이 정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예수님을 본 요한의 계시록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12-13절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했습니다.
여기 금촛대는 넓게는 교회를 좁게는 우리 택함 받은 성도들 각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일곱 금촛대 사이에 인자의 모습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와 함께 거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마18:20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셨고, 엡1:23에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으로 나타나심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요14:20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신 것처럼 우리가 그의 함께 하신 임재를 경험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행복감처럼 은혜로운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시고 싶으십니까? 주님을 사랑하시고 그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우리는 주님을 친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덮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13절에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그랬습니다.
이 모습은 대제사장의 모습입니다(출28:4, 레16:4). 그런데 예수께서 왜 이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죄를 덮으시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랑을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늘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주님게서는 그것을 다 덮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요일2:1에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오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하였습니다.
혹시 자신의 죄 때문에 방황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이 시간에 주님의 은혜로 덮어주심이 믿어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이미 죄 값을 갚으셨지만 우리 마음속에 그 사실이 믿어져서 참된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참된 양심의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셨고 또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다스려 주시기를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다시 13절에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랬습니다.
이 모습은 왕의 모습입니다(단10:5-6).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슴에 금띠를 띤 형태로 나타나신 것은 가슴은 마음의 위치요, 금은 신성을, 띠는 자세나 통제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가장 다스려야 할 것이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슴에 금띠를 띠심은 우리의 마음과 세상과 원수 사단까지도 다스려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금이 상징하듯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으로 온전히 다스려 주십니다. 그러면 그 어떤 마음도 세력도 다 다스려지게 됩니다.

4. 예수님은 우리의 죄성까지도 처리하시고자 다가오십니다.

14절에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했습니다.
여기 흰 머리털은 잠16:31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한 대로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가리킵니다. 그럼 왜 예수님께서 양털과 눈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를 양털보다 눈보다 더 희게 해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양털도 희고 눈도 힙니다. 양털도 그렇지만 이스라엘에서 눈은 고산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사철 만년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도를 영원히 성결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 때문에 방황하지 마시고 늘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 예수님께서는 잠재한 죄악의 잔재마저도 처리하시길 원하십니다.

다시 14절에 "그의 눈은 불꽃같고" 라 했습니다.
그의 눈이 불꽃같다란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마음까지도 꿰뚫어 보심입니다. 인간은 이 불꽃같으신 눈앞에서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죄를 사하시며 기억도 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신 예수님께서 왜 이런 눈을 가지시고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성도에게서 죄악의 잔재까지라도 찾아내어 온전히 수술하여 주시기 원하심입니다.
마7:5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하신 것처럼 주님의 밝은 눈은 우리 속의 들보를 빼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통해 우리의 약한 부분을 찔러 드러내어 주십니다. 그 때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한 지적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더 엎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점도 없고 티도 없는 영광스러운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6. 예수님은 우리의 완악함을 깨뜨리시를 원하십니다.

15절에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했습니다.
고대 시대의 원수를 밟는 발은 원수를 굴복시키는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풀무에 단련한 빛난 발 같음은 우리의 완악함을 깨뜨리시는 불의 연단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내가 왕노릇하지 못하도록 하나님 앞에 겸손과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에는 가을에 이 짓밟는 포도 추수를 마쳐야 비로소 수장절을 지킵니다. 수장절은 성도의 구원의 완성을 기뻐하는 절기로서 천국 생활의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이 짓밟힘이 없이는 지상에서 천국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이 짓밟힘에는 환경에 혹은 은혜에 짓밟힘이 있습니다. 이처럼 환경을 통해 변화되고 은혜를 통해 변화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기름과 같이 온유해집니다. 그러므로 환경 속에서 더욱 낮아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7.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하신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15절에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했습니다.
여기 물은 성령이요, 많은 물 소리는 그 풍부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은혜의 폭포를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거대한 은혜의 폭포로 계시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그와 같이 충만한 은혜를 주시기 원하신다는 묘사입니다. 얼마나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셨으면 거대한 폭포소리로 나타나셨을까요?
그래서 요1:16-17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은혜 받기를 얼마나 원하시면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신답니다. 은혜 받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신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에게 더욱 넘치고 넘치도록 은혜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8. 예수님은 우리를 강하게 들어 쓰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16절에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오른손은 권능의 상징이요, 일곱 별은 주의 종들입니다. 이 모습은 일반적인 주의 종들에 관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모두에게 권능을 주시어 사용하시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강한 손으로 붙드셔서 귀하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대로 나타내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붙들림을 받는데는 소홀히 하고 하나님만 원망하고 있다면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살피시기 바랍니다. 정말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에게 붙들림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오직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처럼 엘리야처럼 사도 바울처럼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을 그것을 우리보다 더 원하시고 계십니다.

9. 우리의 사상과 생각까지도 변화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16절에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했습니다.
여기 검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요(엡6:17, 히4:12), 입은 말씀의 선포를, 좌우는 분별을 암시합니다(욘4:11, 출2:12). 그런데 왜 이런 예리한 말씀의 검으로 나타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사상과 의식과 고정관념까지라도 온전히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일어난 여러 일들을 보면서 남북 간의 이념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보신다면 그 생각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사55:8 -9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우리 주님은 입에 날선 검으로 나타나셔서 우리의 생각과 잘못된 사고와 선지식과 고정 관념과 육신에 속한 감정까지도 다 처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골3:10의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로 만드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아 온전히 변화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10. 우리가 해와 같이 밝게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16절에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했습니다.
여기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과 같은 예수님의 밝은 얼굴이 시사하는 바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해 주시기를 원하심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본의 아니게 우리의 마음과 얼굴이 얼마나 어둡습니까? 이 지상의 환경이 너무나도 악해서 우리의 마음은 늘 찌들고 밝을 날이 없습니다. 이 강력한 어둠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마13:43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순간에도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이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 주셔서 아버지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은혜와 복을 주셨는지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이 경험은 참으로 강력해서 세상의 그 어떤 근심도 다 불식시켜 줍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뻐하며 춤을 추며 살아도 부족하도록 만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것을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은혜의 모습으로 다가오시고 계십니다. 아직 주님의 임재의 행복을 모르십니까? 아직 죄악으로 방황하십니까? 아직 성령충만하지 않습니까? 아직 쓰임 받지 못하고 계십니까? 아직 어둠에 살고 계십니까? 이제 더 이상 실망하지 말고 주시는 크신 은혜를 받으십시다. 그래서 해와 같이 밝게 하나님을 섬기며 행복하게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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