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고난,종려주일) 얼마나 지치셨을까 (마 27:27-31)

  • 잡초 잡초
  • 385
  • 0

첨부 1


성경: 마 27:27-31
제목: 얼마나 지치셨을까
2004. 4. 4 (종려주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오늘을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생애를 마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것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환영하면서 ‘호산나’ 라고 불렀던 것에서 ‘호산나주일’로 말하기도 합니다. 스페인(에스파니아)과 독일 교회에서는 이 날을 ‘꽃의 주일’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미국의 동남부에 ‘플로리다’ 라는 주(州)가 있습니다. 디즈니월드로도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스페인 사람이었습니다. 1512년의 종려주일에 그곳이 발견되었다 해서 ‘꽃의 주일’이라는 뜻의 ‘florida’로 이름을 삼았다고 합니다. 그 이름이 미국으로 이양되어 미국의 27번째 주가 된 1845년 이후 지금까지 플로리다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종려주일은 부활주일과 함께 사순절에 매우 중요한 날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 날에 관하여 성경은 비교적 자세하게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아이들과 군중들은 길거리에 나와서 자신들의 옷을 길에다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당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왕을 영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곧 고난의 길로 들어섭니다. 오늘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이후, 한 주간동안 주님은 말할 수 없는 수난을 당하십니다. 그래서 이번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다가 금요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제 사순절이 절정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뜻깊은 때에 우리는 지금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두 주 동안 생각했습니다. 이제 오늘 종려주일에 우리가 한번 더 생각할 것은 ‘얼마나 지치셨을까’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고 지친 삶이었습니다. 가만히 계시지 않고 매일, 매순간 움직이면서 다니셨기에 더욱 고단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3년 동안 주님은 어느 한곳에 오래 동안 정착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나그네와 행인처럼 지냈습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은 때에 발이 부르트도록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셨습니다. 그런 고단한 삶을 대변하듯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느니라” (마8:20)

  이렇게 지치고 힘드신 예수님의 생애는 오늘 종려주일부터 더욱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동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활동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곳을 다니셨습니다. 제대로 쉬지 못했고, 잠도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목요일까지 바쁘게 지내다가 목요일 저녁 성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날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새벽, 체포되셨습니다. 체포된 뒤에도 예수님은 이곳 저곳 심문을 받았습니다. 처음 주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가서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인 공회에 섰습니다. 그러다가 빌라도의 관정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롯왕에게로 보냈습니다. 헤롯은 다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이라는 판결을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그 새벽에 이리저리 다니다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6시간동안 매달려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오후3시 운명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였습니다. 30년, 3년 동안의 삶이었고, 고난주간, 그리고 마지막 날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지치셨을까’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사람의 육체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피곤하고, 지치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그야말로 지칠 대로 지치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예수님의 힘들고 지치신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골고다로 가기 직전의 모습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금요일 오전 7시에서 8시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지치신 모습을 아주 잘 나타내는 귀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31절에 ‘끌고 나가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군사들이 주님을 데리고 나간 것이 아니라 끌고 갑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이미 주님은 모든 힘이 다 빠진 상태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군사들은 마치 동물을 끌듯 끌고 나갔습니다. 이 참담한 광경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얼마나 힘들고 지치셨을까요? 이런 성경을 읽고, 주님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차라리 죽을 바에야 그냥 빨리 죽으시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죽는 사람도, 죽이는 사람도, 결론이 결국 죽는 것이라면 빨리 끝내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몹시 지치신 예수님을 갖는 우리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렇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십자가를 그토록 오래 전에 계획하셨건만, 곧 바로 예수님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런 고통 없이, 십자가 없이 우리의 구원을 한순간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구원을 계획하시고, 때가 되었을 때 주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고통을 당하시다가 십자가에 처절하게 죽게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분명 여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에는 우리를 향한 깊은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십자가의 길에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과정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고난이라는 과정이 요구된다는 것을 주님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치고 지친 주님을 통해 그것을 우리 인생에게 심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지치신 모습을 보면서 ‘과정’을 우리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과 신앙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과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되고, 좋은 결과에 이르면 과정은 어떠하든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또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과정을 먼저 중요하게 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뒤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것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으로 마침내 들어갔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약 500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보다, 가나안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가기까지 40년 동안 그들이 한 일이 무엇인가, 광야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 속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바로 여기에 성경은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이것을 통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함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결과위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현상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에만 치중하다가 나타난 모습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주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폭력과 사기가 난무합니다. 온갖 범죄가 들끓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권력을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 선거 때마다 부정 선거를 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경제 부흥만 되면 된다는 생각이 오늘날 사람들의 정직성을 잃게 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잘못된 인생관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현상은 바로 과정은 생각지 않고 결과만을 중시하는데서 온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도 아닙니다. 성경은 과정을 중요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과정을 늘 중요하게 보십니다. 주님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철저하게 겪었습니다. 우리 신앙과 삶에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앙의 세계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과정입니다. 최종 결과는 내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신실히 걸어가야 할 길이고, 내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야 감당해야 할 나의 몫입니다.

  기도가 그렇습니다. 기도는 한마디로 과정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구하는 것이 과정이요, 주는 것이 결과입니다. 구하는 과정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요, 주는 결과는 바로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고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응답은 없는 것입니다. 왜 우리 신앙에 기도를 강조하는 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온갖 선물과 은혜와 축복은 다 기도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하는 과정 없이 응답 받는 결과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주님은 그를 이끌고 어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는 놀랍게도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자 거기에는 평생 자기를 위하여 예비된 풍성한 축복의 선물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가 세상에서 받은 은혜에 비하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주님께 말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내 것으로 준비하셨는데, 왜 세상에서 이런 것을 누리지 못했습니까? 왜 이렇게 많이 예비해 놓고 나에게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언제 이것 달라고 한번 기도해 보았느냐?...’

  기도하지 않고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도의 과정 없이 응답의 결과는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앙의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고난도 역시 과정입니다. 우리는 종종 시련과 아픔이 오면 이것이 마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소망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영광의 시작입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서곡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감동의 연주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아픔의 때에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혹 우리가 세상에서 환란과 아픔으로 괴로워하다가 죽어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의 세계가 다가 옵니다. 천국은 고난받는 인생을 향한 영광의 안식처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날에 다다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우리는 ‘끝났다, 안된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난은 과정입니다.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바다에 잠시 파도가 치다가 다시 고요해 지는 것처럼, 지나갑니다. 기억하십니까? 다윗의 생애에 좌우명이 되었던, “이제 곧 지나가리라...” 이 믿음과 확신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고난의 때에는 더욱 필요합니다. 그래야 모든 아픔과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도 결국 과정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태어나서 바로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칠십과 팔십의 인생을 삽니다. 그 과정이 지나가야 세상의 삶을 마치고 영원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생을 위해 정한 법칙입니다. 삶의 과정 없이 결과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평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잘한 사람에게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으로, 하늘의 상으로, 반드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정을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 오지 않는 인생을 지혜롭고 참되게 살아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의 길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순절은 바로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헛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젠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진정 주님의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순절에 우리는 주님의 수난을 묵상했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를 통해, ‘배반의 무서움’을 생각했고,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통해 ‘분리의 괴로움’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얼마나 지치셨을까’를 통해 ‘과정의 중요함’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우리를 십자가로 부르고 계십니다. 종려주일에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이 귀한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좀더 십자가로 가까이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