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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룟 유다, 가장 불쌍한 사람 (행 1: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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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룟 유다, 가장 불쌍한 사람
본문 : 행 1:15-26

  여러분은 가룟 유다에 대하여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신의 스승이신 예수를 은 삼십 냥에 원수들에게 팔아 넘긴 인신매매범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맞는 말입니다. 기독교 사상 가룟유다는 배신자, 또는 반역자의 낙인이 찍혀 그의 이름은 불명예스럽게 불리워졌습니다. 비난 받아 마땅하고 책망들어 마땅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가룟 유에게 “불쌍한 사람” 이라는 제목이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다.
  제목을 정하는데 고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어떠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를 어떻게 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막14:20절에 보면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안타깝게 여기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목을 그렇게 정하였습니다.
 
  무엇이 주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습니까?

  1, 제자의 수에 들었다가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17절을 읽어보면 그는 제자의 수에 참여하였던 자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그는 베드로나 요한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자의 수에는 들었지만 참 제자는 되지 못하였습니다. 수에 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참 제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자의 수 가운데 들었어도 참 제자가 되지 못하면 안됩니다.
  지난 주 우리 교회의 장년 출석인수는 613명으로 600명을 넘겼습니다. 교회에 등록해서 수 가운데 들었어도 그것이 다 참 성도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수 가운데 들었어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지 못하고서는 버림받는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에 드는 일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되지만 참 제자가 되는 일은 끊임없는 훈련과 연단으로 됩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수에도 들고 주님의 참 제자로 인정되기를 바람니다.

  2, 직분 때문에 상처 받았기 때문입니다.
  17절 마지막 쯤에 보면 가룟 유다에 대하여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수에 만 들었어도 직무가 주어졌습니다. 
  직무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직무를 통하여 그의 신앙을 연단하시고 참 제자가 되도록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하지 않는 자는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직분 받고 직문에 충성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의 훈련을 위해 주신 직무를 소홀히 하면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성품을 닮은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무를 주시는 것은 그 직무를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직무를 통해 나의 인격을 연단하고 주님을 닮은 천국의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의 직장이나 어떤 단체에서는 사람에게 일을 줄 때에 어떤 이익을 내기 위한 일을 위한 일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을 위한 직무가 아니라 나의 인격과 영성을 훈련시키고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서 직무를 주십니다.
  가룟 유다는 직무를 받은 이후로 그의 인격훈련과 영성훈련에 전혀 발전이 없었습니다.
  직무를 통해 자신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훈련시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직무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 때문에 스스로 자기 자신이 상처받으면 안됩니다.

  가룟 유다는 차라리 그가 돈궤를 맡지 않았다면 상처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가룟유다만 시험에 들었습니다.
  여러분 직분을 따라 일하십시오.
  그러나 일하라고 주신 직분 때문에 스스로 상처받아서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장로, 집사, 권사이기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일을 잘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은혜로 화목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 부엌에서 여러 가지 음식 준비하는 일로 너무나도 바빴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언니를 도와 주려고는 하지 않고 주님 곁에서 주님과 대화하는 일에만 열중하였습니다. 마음이 바쁘고 분주해진 마르다는 속이 상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와서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눅10:41절에 보면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마리아에게 상처받았습니다. 자기 혼자 일하게 내버려두시는 주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가룟 유다도 마찬 가지입니다. 
  가룟 유다는 제자들의 재정 관리를 맡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나 빈틈없이 재정을 처리했습니다. 적자가 되지 않게 하려고 언제나 그의 머리는 복잡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여인이 300데나리온의 물질을 주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뻤습니다. 그 돈 만 있으면 모든 적자를 메우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재정을 맡은 유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엄청난 양의 보물을 주님의 발에 다 쏟아 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화가 난 나머지 그 여인을 꾸짖었습니다.(마26:78)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하고 전도와 구제하는 일에 사용되는 예산이 얼마나 부족한데 그 많은 돈을 다 땅 바닥에 쏟아 부어 허비하느냐고 말입니다. 그것은 여인을 향한 꾸짖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불평이었습니다.
  재정을 관리하는 자신의 수고와 어려움을 예수님은 조금도 헤아려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인을 책망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마26:10절에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직무 감당하면서 많은 일을 하고 훌륭한 결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예수님에게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큰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님에게 좋은 편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향유 부은 여인도 많은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에게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많은 일을 분주하게 했지만 상처받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자기 일을 잘하려고 했지만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상처받고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이 때 부터 가룟 유다는 주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이 있은 다음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제사장들에게 넘겨주기로 마음먹게 된 것입니다.
  차라리 가룟 유다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직무도 안 받은 것이 나을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에게 직무를 주어서 인격과 신앙을 훈련시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고 일군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그의 욕심이었고 그의 완벽 주의였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음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 때문에 누구를 원망하고 상처받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일이라도 불평하며 원망하고 하면 그 상급을 잃고 맙니다.

  3, 사단에게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눅22:3절에 보면 가룟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다고 말하였습니다.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많은 일을 하려다 그 일 때문에 시험 들지 마십시오. 사단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맙니다. 모든 일 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사단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룟 유다가 사단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사단 침범의 이유
  유다에게 사단이 침범하게 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요 12:4-6절에 보면 3백 데나리온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나드 향유 한 근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린 여인을 향해 책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동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 것이라하여 기뻐하였는데 그의 제자 유다는 여인을 책망하였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딴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가 돈궤를 맡는자로서 공금을 휭령한 도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둘째는 부정직함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물질의 욕심 때문에 그는 돈궤에서 공금을 훔쳤습니다. 그것은 정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정직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이기에 성도가 부정직하면 사단의 심부름꾼이 될가능성이있습니다.
 
  셋째는 잘못된 야심 때문입니다.
  비젼과 야심은 다름니다.
  비젼은 하나님이 주신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는 것을 말하고 야심은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없는 자신의 야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야망은 사단의 도구가 될 확률이 있습니다.

  넷째 충고를 듣지 않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중에 자신을 팔자가 있다고 말씀하였을 때 제자들이 모두 내니이까 물을 때 가룟 유다도 내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네가 말하였도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런 예수님의 지적을 받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마 26:22-25절에 보면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유다의 마음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 감정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에게 대하여 주시는 충고의 말이 또 서운하게 들렸던 것입니다. 즉 섭섭병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단에게 빌미를 주었습니다. 사단에게 빌미가 될만한 감정의 묵은 찌꺼기들을 제거하십시오.
  사단이 아무리 우리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해도 틈새를 주지 않으면 못들어 옵니다.

  ④  주의 길가지 않고 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25절에서 유다는 “제 곳으로 갔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제 곳이 어디입니까?
  제 곳이란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버린 사람이 가는 곳을 의미합니다. 행 1:25절에 보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주장이 앞서면 그것은 제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요 13: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제 정신으로 예수를 은전 30에 팔아 넘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의 생각입니다. 이미 마귀의 종이 되었고 마귀의 하수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귀의 일에 쓰임 받다가 마귀를 위해 예비 된 곳 영원한 형벌만 있는 불 못 곧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막 14:21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차라리 이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한 사람입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제 곳으로 가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가룟 유다 왜 그가 가련한 인생이 되었습니까?
  ① 수에는 들었지만 나중에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② 사단에게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③ 직분은 받았지만 그 직분 때문에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④ 주의 길 가지 않고 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수에 들었다면 끝까지 믿음을 지킵시다. 사단 침범의 빌미를 제공하지 맙시다. 
  직분을 받았다면 일도 감당합시다. 제 곳으로 가지 말고 주님 가신 곳으로 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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