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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급한 결정 (수 9: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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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수 9:3-15
성급한 결정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실수를 합니다. 그 실수 가운데 어떤 것은 우리 생애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 있지만 어떤 것들은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물건을 사거나 계약을 한 후에 후회를 하거나 직장을 선택하는 문제와 사업의 선택에 있어서 후회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해 놓고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도 실수를 했습니다. 그들은 기브온 족속과 화친을 맺었는데 이 기브온 족속은 가나안 일곱 족속 중에서 히위 족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멸하라고 하신 가나안 족속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꼭 멸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과 화친하므로 그들의 땅을 차지하지 못했고, 18절에 보면 회중들이 이러한 이스라엘 족장들의 실수를 원망하는 일도 나옵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떠한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이 실수를 하게 된 원인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기브온 사람들의 속임수 때문이었습니다. 이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속였을 때 음성을 들어보면 가까이서 온 사람인 것 같은데, 그들의 차림새와 가져온 물건들을 살펴보면 멀리서 온 사람들임이 분명했습니다. 신명기 20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족속을 멸망시킬때 멀리 있는 족속들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기브온 사람들이 이것을 알았고 자신들이 멀리 온 사람으로 가장하고 나타났을 때 이스라엘은 깜빡 속아 넘어갔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실수를 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속아 넘어가는 원인도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15절에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이 세상이 더욱 악하여져서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나니 그러므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기를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우데 보내는 것 같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이 공통적으로 가르쳐 주는 말은 이 세상은 속임에 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고 우리 대적 마귀는 울며 삼킬 자를 찾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8장44절에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버지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하셨고, 고란도후서 11장14절에도 보면 사단은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까지도 과장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마귀와 우리는 대처하고 싸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의 위장술에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기브온에게 넘어간 것은 기브온 사람들의 속임수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가만히 읽어 보면 하나님은 기브온의 속임수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마치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이 자기 민족을 속인 것같이 기브온 민족은 자기들의 살길을 찾은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앞부분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와 아이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을 향해 들어온다는 말을 들은 다른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싸우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히위 족속에 속했던 기브온 족속은 살길을 찾았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멀리 있는 족속인 것으로 가장해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으려고 힘쓴 것입니다.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말씀을 다 듣고 결론을 내리고 어떤 면에서는 이들이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브온 족속만 가나안의 멸망 중에도 오직 살아남은 족속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이 실수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런 실수를 저지른 그들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그 잘못은 14절에서1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14절과15절 말씀을 봅시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와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수는 그들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성급하게 일을 처리한데 있습니다. 비록 기브온 족속이 속였더라고 하나님께 물었다면 그들의 속임수가 드러났을 것인데, 그들의 맘은 급하고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성급하게 기브온 족속과 화친을 맺어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우리도 성급하게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아니하므로 실수를 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하갈을 취하여서 이스마엘을 낳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고 하갈의 말만 듣고 그 이스라엘은 두고두고 화근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중동전쟁의 화근을 아브람이 제공한 것입니다. 다윗도 일생일대의 실수가 있습니다. 물론 밧세바를 취한 것이 있습니다. 또한 그의 정치중의 중대한 실수는 인구조사를 한 것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 땅에 하나님의 재앙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급한 성격대로 일을 처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욕심이 앞서고 자기의 이름을 내고 싶은 맘이 생겨서 인구조사를 했다가 이스라엘이 큰 재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성급한 맘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결정하므로 실수를 보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실수를 거듭하지 않고 깨워주기 위해서 우리는 늘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3장5절에 “여호와를 의지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세로 임할 때에 우리는 이런 결정적인 실수를 면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왜 이렇게 성급하게 기도도 하지 않고 결정을 하게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자신의 판단을 너무 과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눈이 보는 것과 들은 말을 너무나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14절에 보면 “무리가 그 양식을 취하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지도자들은 그들이 내어 놓은 양식의 맛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과연 그들의 말처럼 오래 된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자기들의 경험, 자기들의 판단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크게 실수를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런 우를 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내 생각과 판단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정에 사로 잡혀서 그럴 때가 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도 기브온 족속들을 보고 사리를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향한 동정심이 그들의 눈을 어둡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냥 결정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기도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묻는 것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아이성 앞에서 패할 때도 그랬는데, 그 성을 함락하고 난 다음에 또다시 그런 우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가장 쉽게 범하는 우 가운데 하나가 기도를 쉬는 죄를 짓는 일이요, 기도를 소홀하게 여기는 잘못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여 실수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기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기도해서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아무리 급해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과 같은 실수를 면하는 비결입니다.

  영국이 낳은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님이 왕의 명을 어겼다는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 목사님께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시라고 하였다. 얼마쯤 가다가 목사님이 되돌아오기에 왜 오셨냐고 묻는 감옥을 지키는 간수장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이 나라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이 때 간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 결코 내 생각이나 방법대로만 살아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성경적인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길인가를 생각하면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이스라엘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사업의 중대한 문제를 갖고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않고 자산의 생각대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 분들을 보면 저는 ‘야 간도 크다’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이들은 직장을 옮기거나 자신의 생애의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자기의 생각과 감정대로 결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후회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급한 결정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로 거기에 실패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다고 해도 실수를 안 합니까? 여호수가 어떤 사람입니까? 여호수아도 성급하게 실수하는 때가 있었는데 우리는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그들이 이런 실수를 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했는가를 살펴봅시다. 이스라엘이 기브온 족속에게 속았다는 것을 삼일 후에 알고 19절에서21절을 보면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더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화를 내고 지도자에게 원망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속상하고 밉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우리를 속여’라고 폭력을 행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나서는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에 대해 올바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들과 속아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화친을 맺었는데 절대로 이 화친을 깨뜨릴 수 없다고 결정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자신들이 맹세한 것은 해로울 지라도 지키려고 합니다.

  기브온 족속을 용서하고 그들과 약속한데로 화친을 지키기로 결정하고 그들을 죽이지 아니하므로 그들은 물을 깃고 나무를 패는 종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되어진 것들을 보면 기브온 족속들이 이스라엘에게 끝까지 신의를 지키고 성전에서도 봉사하고 이스라엘족속과 늘 함께 합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갈 때 함께 따라가고 느헤미야, 에스라 시대에 이스라엘이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같이 도와주었던 느디님 사람들이 바로 이 기브온 족속입니다. 그러면서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해쳤다는 기록은 없고 늘 이들을 돕는 편에 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거짓과는 상반되는 이스라엘의 행위가 고맙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다가 성급한 결정으로 실수를 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때라도 우리가 잘못한 것을 시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그 뜻대로 살아간다면 과거의 실수가 선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가지 목회를 하면서 기억되는 한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장로님께서는 가문의 영광을 중시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심방가면 족보와 앨범을 꺼내놓고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랑을 늘 하셨고,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장로님이기는 해도 유교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유학 온 자매가 있었는데 그 집안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이 자매는 그 아들보다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아내가 그 자매가 어딘가가 이상한 것 같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속마음을 털어 놓는데 그 집에 셋째아들과 가깝게 지내다가 실수를 하고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 걱정하던 때였습니다. 기도하고 장로님을 찾아뵙고 문제를 말씀드렸더니 그 장로님이 그렇게 명분과 채면을 중시여기시던 분이 그 일이 자기 아들과 연관된 일이라니 얼굴을 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좁은 이민 사회에서 큰 난관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 아버지가 그 아들과 자매를 불러놓고 아들과 그 자매에게 결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아들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자매와 결혼할 것을 다른 아들과 가족들은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서 물었는데, 그 장로님이 말하기를 나는 명문과 체통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이런 일이 우리가문에 일어났다는 것은 아이들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나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실수를 해서는 안 될 것 같고 목사님이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혼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지금 잘 살고 자매가 친정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주변에 있는 분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장로님을 달리 보고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족장과 여호수아도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들은 그 다음 처리를 잘 했습니다. 그 다음에 또 실수 하지 아니하고 이제 우리가 책임지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인가를 기도하고, 약속한 것을 끝가지 지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들의 성급한 결정 때문에 실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판단만 믿고 절대로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결정하십시오. 그러나 실수 했다면 그것으로 끝나지 마시고 다시 겸허히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런 실수를 통해서 오히려 약이 되게 하시고 선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의뢰하며 우리의 실수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우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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