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를 따르는 길(십자가) / 마 16:24-28

  • 잡초 잡초
  • 350
  • 0

첨부 1


예수를 따르는 길(십자가)

수난의 한 주간이 시작되는 이번 주간을 종려주일 또는 수난주간이라 합니다.
이천년 전 오늘 예수님은 공생애 중 많은 사람들의 환영 속에서 예루살렘을 입성 하셨습니다. 예수님 입성하신 길목에 군중들은 자신들의 옷과 종려나무를 깔고 손을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것에서 호산나라 하였습니다.

군중들은 지금 자신들이 환영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로마의 압제에서, 가난에서, 질병에서 치유되기를 원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을 베풀고 바다를 걸으셨던 기적의 주님이 있으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또한 저들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의 해방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주는 영광에 매이지 않으셨고 권세를 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주님에게는 사실 영광이 아니라 고난이 마음에 있었습니다.
오셨던 목적 그대로 주님은 그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모았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니 오신 목적에 의하여 나귀를 타고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계신 것입니다.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가지셨던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신지요?
십자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앞서가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을 말할 때 십자가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광만을 꿈꾸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신지요? 우리가 믿은 예수님은 병든 자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이런 것이 우리들의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실 십자가는 통나무 두개를 묶어 3미터의 높이에 흉악한 죄수를 못에 박고 사형을 집행하는 도구입니다. 그런 처참한 사형 틀에 하나님의 아들 주님은 죽으신 것입니다.
하늘의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부리실 수도 있는 분이 죽으신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런 십자가를 지셔야 했을까요?
이러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십자가를 바라 볼 때 무엇이 생각나는지요?

첫째로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대속의 원리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철저한 대속입니다.
사 53장4절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용서의 원리도 있습니다.
시1:18 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죄 짐에 묶여 있는 것은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에게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희생의 원리와 포기의 원리가 있습니다.
원수를 물리치고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부려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주님은  놓아버리는 신앙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며 주님은 포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심의 권리와 힘을 포기하고 놓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사울을 죽여 자유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용서하며 살았습니다. 원수들에게 자신의 힘을 발휘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살려고 몸부림 친 것입니다.

네 번째로 십자가는 밀알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합니다.
주님은 밀알의 원리를 말씀하시면서 남들에게 그리 살도록 말씀하시기 전에 자신이 친히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한 알의 밀이 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드러낼려고 몸부림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할 때도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불법의 법정에서도 변론하시거나 힘을 사용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를 따라가는 삶은 남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주어도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십자가의 정신이고  삶의 정의입니다.
십자가의 신앙은 자기 자신을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죽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삶의 원리를 아시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처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십니다. 날 보고 함께 하자며 자기 자신을 먼저 부인하시고 십자가를 먼저 메신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고난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영광이라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남편, 가난, 질병,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바라지 않고는 너무도 버거운 것들이 우리들의 삶속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먼저 그 길을 가셨고, 들레지도 변명도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처럼 그 길을 가셔야 했던 주님은 우리에게 함께 매자, 함께 포기하자, 함께 가자, 말씀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 예수님의 고난에 관한 영상 보여줌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