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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사 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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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본문 : 이사야 53장 5~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장 5~6절 말씀

  똑같이 예수 믿어도 은혜받고, 참 기쁘고 즐겁게 행복하게, 신바람 나게 예수 믿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늘 불평하고 짜증내고 불행하게, 찌들려 예수 믿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문제와 질병과 한숨 쉴 일이 많은 인생살이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걸어가는 인생 길을 주님께서 능력의 팔로 꼭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시는 새 힘, 새 능력, 새 은혜 받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면 됩니다. 살아가시는 앞날에 주님의 시원한 생수와 같은 은혜가 충만하게, 만족하게,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1.여호와 나의목자 내게 부족없네 푸르른 초장위에 나의 몸 누이시네 2.내영혼 소생하며 자기이름 위해 의의길 인도하니 골짜기 두렴없네 3.주님의 지팡이가 안위하네 나를 주께서 원수앞에 상으로 베푸시네 4.기름을 머리위에 바르시는 주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함 따르리니 후렴)선한 목자 오나의 목자여 생수가 넘치는 곳 날인도 하시네 

  어떤 사람은 인생은 20부터라고 말합니다. 하고 싶은 것도 젊어야 하지 늙으면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은 40부터라고 말합니다. 인생에는 그래도 경륜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은 60부터라고 말합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60이 넘어야 비로소 인생이 뭔가를 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인생은 십자가로부터 시작한다는 거예요. 아멘! 이것을 알아야 헛된 인생 살지 않아요. 가치있는 인생삽니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 살게 되는 거예요.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 볼 때 십자가가 나를 위한 것이요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이 믿어지십니까? 내가 죽어야 할 존재인데,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이 대신 감당하셨음이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진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믿음의 자리로, 체험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같이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겼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복된 주의 전에 나와 은혜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승리의 사람이에요. 아멘!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밤이 있고, 낮이 있잖아요? 차를 타고 가도 평탄한 길도 있고, 꼬불꼬불 힘드는 길도 있잖아요? 때로는 터널도 지나가고, 때로는 확 트인 길도 지나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는데,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더라는 거예요. 바꾸어 주시는 주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떠나면 자신도 죽고, 주변을 살릴만한 힘도, 능력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때는 몰라요. 내가 그 때를 채워야 합니다. 그 분량만큼 채워야 기적을 체험합니다. 끝까지 가야 되요. 기도의 분량을, 눈물의 분량을, 믿음의 분량을 채우십시오. 내 영적 문제가 해결되면 나의 당면한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문제 해결 받으려고 10년 20년 기도해도, 바라고 원해도 안 되는 문제 있을 거예요. 하나님도 해결 못할 것 같다 싶을 때 있을 거예요. 믿음 주시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믿음의 기도는, 믿음의 선포는 하나님이 들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어 주심을 체험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해 살 찢고 피 흘리신 주님의 살과 피가 헛되지 아니하고, 주님과 내가 상관있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짐하고 결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주간이 된다면 주님 더욱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본래 십자가는 로마제국에서 내란을 일으킨 정치범이나 살인자, 강도 등과 같이 중한 죄를 지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사형도구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무능력한 패배자의 상징이었으며, 심지어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저주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에게도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나약함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의미가 달라져 버린 거예요. 십자가는 사랑의 상징이 되고, 승리의 상징이 되고, 구원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기에 사는 길이 있고, 믿음의 손으로 십자가를 붙들면 주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이런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미 죄의 길에서 우리를 U-TURN 시켜 주신 주님은 우리를 거룩한 길로, 믿음의 길로, 신령한 길로 나아가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미 무서운 심판과 진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어둠의 세계는 물러갔습니다.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머무는 은혜는 헛된 거예요. 은혜가 예배 시간으로 끝나버린다면, 믿음이 교회 안에 머무는 믿음이라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요. 정말 은혜 받으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믿음은 생활입니다. 믿음은 어떤 사상도, 지식도, 교리도 아니에요. 믿음은 생활의 증거가 나타나야합니다. 자신이 달라지니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달라지고, 일터가 달라지고, 부부 사이가 달라지게 되는 거예요. 살맛 나는 인생, 복된 인생사는 것입니다. 아멘! 아무리 좋은 기회, 아무리 좋은 재능,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마음이 무너지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리차드 칼슨이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이런 책을 썼어요. 우리가 마음을 쓰고, 목숨을 거는 일들도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하찮은 일,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일에 목숨을 걸고, 이웃 차가 달리니까 나도 달리고, 옆에 사람이 뛰니까 나도 뛰고, 사소한 일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일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지요. 결론은 우리는 모두 오늘이 내 생애에 마지막 날처럼 생각하고 살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 가까워 오면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조금 더 참을 걸, 참지 못해서 흥분하고 열내고 하던 일, 조금 더 참을 걸, 또 하나는 조금 더 베풀 걸, 내가 있을 때 조금 더 베풀었으면 좋았을 것을, 다 쓰지도 못하고 베풀지도 못하고 어리석게 살았구나! 그렇게 후회한다는 거예요. 또 한가지는 짧은 인생, 좀 더 웃으며 살걸, 작은 것 때문에 티격태격, 열내고, 다투지 말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웃으며 살걸, 그렇게 못산 것을 후회하게 된다고 합니다. 생각 잘못하면 출세하고도 후회하는 인생 살게 됩니다. 1952년에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을 타고, 까뮈는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됩니다. 노벨상에는 큰 상금이 나오는데, 아프리카에 병원을 짓고 평생동안 흑인들을 돌보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슈바이처는 그 돈을 전부 흑인들을 위한 병원에 사용합니다. 그런데 같은 해에 노벨 문학상을 탄 까뮈는 받은 상금을 가지고 굉장히 큰집과 좋은 차를 삽니다. 그러다가 며칠이 안되어 자동차 사고로 죽고 맙니다. 많은 것 이룬 것 같았는데, 인생 허무한 것이더라는 거예요. 옆에 분들 인사합시다. "조금만 더 참고 삽시다! 조금만 더 베풀며 삽시다! 조금만 더 웃으며 삽시다!" 인생은 내가 스스로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이것이 중요한 거예요. 말 한마디 때문에 연연해하지 마세요. 믿음 안에서 좀 넓게 사세요. 좀 크게 사세요. 아멘! 다시 한번 인사합시다. "믿음 안에서 넓게 삽시다! 크게 삽시다" 

  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고난은 우리 마음을 단순하게 해 주더라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이 복잡합니까? 소원도 많고, 체면도 생각해보고, 지난날도 생각하고, 아직도 복잡하면 덜 된 거예요. 정말로 깊은 자리에 들어가면 마음이 깨끗하고 단순해집니다. 깨끗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지금까지 보지 못 하던 길이 보여요. 새로운 세계가 보여요. 새로운 소망이 보입니다. 닫혔던 것들이 열림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변화를 겁내지 마세요. 생각도, 말도, 걸어가는 길도 변해야 합니다. 믿음은 변화를 만들어내요. 성령은 변화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사람마다 오늘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내가 변하면 내 집안이 변해요. 내가 변하면 내 자식이 변해요. 내가 변하면 내 일터가 변하고, 내 주변이 변해요. 성공도 축복도 다 변화의 결과예요. 변화가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에요. 변화의 출발점이 곧 미래의 출발점이에요.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변하고 가면 사는 길이 있어요. 변하고 가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십자가의 능력이 임하여, 내가 믿음의 사람으로 십자가의 사람으로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변화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즘에는 충전해서 사용하는 가전제품들이 많이 있는데, 충전을 덜하면 조금만 사용해도 금방 힘이 없어져요. 충전이 잘되어 있으면 한 번 충전해서 몇 시간씩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여러분 머리부터 발끝까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넘치도록 채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 육신의 질병의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의 질병들이 치료되고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상처를 안 받고 살수는 없습니다. 상처를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의 80%는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알게 모르게 안 되면 함께 죽자는 심리가 깊게 깔려 있습니다. 특히 상처받고 응어리진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지배합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못하고 해결받지 못하는 상처의 결과가 참으로 무서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봅니다. 누적된 상처들, 쌓이고 쌓인 한과 응어리가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망가뜨립니다.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 문제 해결 못해서 육신적으로 병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쥐를 가지고 실험을 했는데요. 쥐를 한 손으로 잡고 등을 송곳으로 찌르면 소리를 빽 지른답니다. 두 번째 날은 더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어제 찔러 놓고 또 찌른 다는 것이지요. 3일째는 그 쥐를 끄집어 내 놓고 송곳을 들고만 있어도 발악을 한답니다. 그런데 4일째 되는 날 보면 심장이 망가지기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위에는 피멍이 들어서 위궤양이 시작되고요. 3일 동안 하루에 한번씩 스트레스를 준 것밖에 없는데 그 상처와 스트레스를 감당 못하니까 위궤양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알면서도 안 되는 것이 인생살이고, 알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더라는 것이지요. 꼭 기억 할 것은 마음 속의 상처나 응어리는 오래도록 묻어 둘수록 자꾸자꾸 더해지고 강해지는 속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래 묵혀둔 술처럼 그 도수가 자꾸 올라가고, 자꾸 되새김질을 하게 되어서 자신을 망가지게 하고 함께 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합니다.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자라기 전에, 너무 크기 전에... 마음에 상처나 응어리가 남아있어 용서하지 못하면 피차 불행해 집니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같이 망해 가는 거예요.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변화는 한 순간에 저절로 오지 않아요. 

  생선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이제는 악밖에 안 남은 거예요. 왜 그렇게 되었느냐하면 생선 장사해서 돈을 좀 모았는데 어떤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서 다 날려 버립니다. 그래서 셋방살이로 어렵게 사는데 남편은 중풍에 걸려 꼼짝 못하는 거예요. 자기 화를 견디다 못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악담을 하고, 옆집 생선이 잘 팔리고 자기 것은 안 팔리면 속 상해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생선만 뒤적거려 놓고 안 사가면 손님에게도 화를 내고 하니 장사도 잘될 리가 없고, 가정도 평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은 심장병이 생겨서 세브란스의 황수관 박사를 찾아 간 거예요. 그 이후로 이 아주머니가 어떻게 달라지느냐? 방문을 열며 남편에게 "여보, 저 왔어요. 오늘 별 일 없었어요?" 아침에는 있는 악담 없는 악담 다하고 나가더니 돌아와서는 갑자기 말투가 달라지니까 남편이 어안이 벙벙한 거예요. 이 아주머니가 새벽 3시 반이나 4시가 되면 시장에 생선을 떼려 나가는데 자는 아이들 방에 가서 "얘들아, 밥 먹고 학교에 가거라. 점심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 아이들이 잠자다 일어나서 엄마가 무슨 천사같은 소리를 하시나 어리둥절한 거예요. 손님들이 생선을 뒤적이다가 안 사고 그냥 가도 자리에서 일어나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대요. 사실은 마음이 완전히 변화되어서가 아니에요. "그렇게 해야 되겠다.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 그것만이 내가 사는 길이다" 싶어 그렇게 연습을 한 것이에요. 그런데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서 "얘들아 잘 있었니?" 연습을 하면서 들어 와 보니 세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큰 아이가 저녁밥을 지어놓고, 둘째 아이는 방 청소를 다 해 놓고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더라는 거예요. 남편은 어떻게 일어났는지 벽에 등을 기대고 눈만 껌뻑껌뻑 하고 있더래요. 아주머니가 갑자기 변하니까 가족들이 긴장을 한 거예요. 갑자기 변하면 죽는 다고 하잖아요? 3일 동안 잘 안되지만 억지로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저녁을 먹는데 아주머니가 숟가락을 들면서 "얘들아 우리 밥 같이 먹자" 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는 거예요. 연습이 아니고 진짜 부드러운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신도 깜짝 놀란 거예요. 남편에게도 "여보, 밥 같이 먹읍시다" 남편을 보니 손을 떨면서 밥을 못 먹더래요. 남편을 보는 순간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지더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지지리도 복 없는 여자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살았는데, 불구가 된 남편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이 얼마나 미안한지 남편을 붙들고 울고 아이들도 함께 울고 온 가족이 한참을 울었답니다. 처음에는 연습이었는데 그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셔서 자신의 심장병도 고치고 온 가족들이 함께 산 거예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데, 한 자매가 암으로 가망 없다는 선고를 받고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죽는 것보다 더욱 더 괴롭고 두려움을 주는 것이 있었는데, 그녀가 어렸을 적에 양아버지에 의해서 성적학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양아버지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가지고 평생을 크게 한 번 울어 보지도 웃어 보지도 못하고 억 눌린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말씀 앞에 마음의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쓴 뿌리가 녹아집니다. 생각하기도 싫고 기억조차 하기 싫은 양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의 감정들을 하나님께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양아버지를 용서합니다" 고백하게 됩니다. 수많은 날들을 증오하던 양아버지를 용서하는 그 순간부터 실로 35년 간 울어보지 못했던 그녀는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무너진 댐처럼 한없이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난 후 그녀의 육체를 사로잡고 괴롭히던 무거운 감정에서 해방됩니다. 그리고는 암에서 치료받고 깨끗해집니다. 주님이 크신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기적을 허락하신 것이에요. 나의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영육간의 질병이 고침받고 치유되는 줄로 믿습니다. 크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온 동네가 믿음으로 살고, 이 마을에는 술집도 창녀도 없는 깨끗한 것을 자랑삼고 사는 엄격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어느 처녀가 잘못하여,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그 마을 풍습이 아이의 아버지를 대지 못하면 간음죄로 추방을 당하게 되거나 맞아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마을의 궂은 일을 다 하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신한 처녀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말을 안 해 곧 죽게 되었는데, 죽음의 위기 직전에 말하기를 "저 수도사" 그랬어요. 수도사가 끌려가서 많은 몰매를 맞고 고역을 당하고 감옥에 들어갔는데, 시름시름 앓다가 감옥에서 죽게 됩니다. 죽은 다음에 시신을 염하면서 보니까 이게 남자가 아니고 여자예요. 남장을 한 여자였더라는 거예요. 이것을 안 동네 사람들이 숙연해집니다. "내 아이가 아니다. 사람들이 안 믿어주면 나는 남자가 아니다" 얼마든지 빠져 나올 수 있었는데 왜 그 말을 안 했을까요? 비록 잘못하여 죄지은 처녀였지마는 그를 살리기 위해서 묵묵히 몰매와 고역을 감수한 거예요. 주님은 나를 대신하여,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떳떳한 죽음이 아니었어요. 짐승같이 비참한 죽음을, 한 마디 변명도, 불평도 없이 묵묵히 감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을 하실 때마다 호흡을 하실 때마다 몸이 찢어지는 그런 고통 속에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용서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도 없고, 용서받지 않아도 될 만큼 죄 없는 자도 없습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먼저 하나님과 아무 가로막힘이 없는 활짝 열린 관계로 회복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람과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무너지는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 아직 씻지 못한 상처, 아직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다면 주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면서 깨끗이 씻어버리고 풀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시는 복된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이것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못박은 팔이 체중을 견디지 못해서 찢어져 내리는데 양쪽이 너무 아프니까 한쪽 팔이라도 좀 덜 아프려고 본능적으로 한쪽 팔에 의지하면 체중 때문에 한쪽 팔은 더 찢어지는 고통이 온다고 합니다. 짐승같은 그 죽음을 나의 죄 때문에 당하셨습니다. 나의 허물 때문에 받아야 할 저주를 주님이 대신 지신 것입니다. 

  이 시간 주께서 우리 심령에 손을 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깊고 아픈 상처를 치료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속에 기억조차 하기 싫은, 다른 사람에게 다 말하지 못할 응어리진 한을 풀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직까지 내 마음에 용서 할 수 없었던 사람, 잊지 못할 사건들을 이 시간 주님이 씻어 주시고 깨끗이 잊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주님께 내 심령 전부를 맡겨 버리면 주님이 나를 치료하시고 나에게 새 마음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시간 주님께 마음 깊은 곳으로 진실하게 고백합시다. 내 힘으로 안 됩니다. 십자가에서 방울방울 흘리시던 주님의 뜨거운 피가 이 시간 내 마음속에 뚝뚝 떨어집니다. 고백하십시오. 주님! 용서합니다. 나에게 피해를 주었던, 나에게 깊은 상처와 응어리를 안겨 주었던 원수까지도 용서합니다. 내 마음에 쓴 뿌리가 사라지고, 죄책감이 사라지고, 응어리가 풀려지고, 마음에 오래 묵었던 상처들이 회복되는 체험이 있게 하옵소서! 육신의 질병들이 깨끗해지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크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이 시간 내 심령에 손을 대시옵소서! 내 문제에 손을 대시옵소서! 내 육신의 연약한 부분에 손을 대시옵소서! 아멘! 

  ♬ 70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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