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저주를 이긴 발람의 3대 축복 (민 23:19-26)

  • 잡초 잡초
  • 1239
  • 0

첨부 1


저주를 이긴 발람의 3대 축복
민23:19~26


이 시간 “저주를 이긴 발람의 축복”이라는 제목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원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엇인가에 붙들리며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에 어떤 사람은 도박에 어떤 사람은 일에 혹은 돈에 우리는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붙들린 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발람이라는 사람입니다. 발람은 돈에 붙들린 악한 사람입니다. 모압왕 발락의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이 복 주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더 강한 팔로 발람을 붙드셔서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항상 두 종류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소욕이요 다른 하나는 성령의 소욕입니다.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듯이 우리가 육신으로 살려고 하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발람이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아 축복했듯이 우리가 성령에 붙들리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의 욕망에 붙들리느냐 하나님께 붙들리느냐 하는 것은 축복과 저주냐를 판가름 짓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절대적인 저주를 이기고 축복을 받는 비결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저주를 이기는 절대적 복의 신앙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그랬습니다.
이 발람의 축복은 모압 왕의 저주를 절대적 복의 비결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원주민을 격파하고 돌아 올 때입니다. 이 소문을 들은 모압왕 발락은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당시 복술가인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발람의 입에서 정반대의 예언들이 터져 나옵니다. 그 첫 번째 예언이 바로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식언치 않으시고’란 글자 그대로는 말을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거짓말 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은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토록 하려하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려고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이 불변한 것 같이 결코 저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변한다면 모르지만 변하지 않는 이상 결코 복 받을 백성이 저주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신앙이 바로 저주를 이기는 절대 비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하셨습니다. 히6:17-18에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인생들은 어떠합니까? 식언하여 말을 먹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약속하신 땅을 주신다 하시더니 주셨고, 아들을 보내신다 하시더니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 성령을 주신다 하시더니 성령을 보내주셨고, 다시 오신다 하셨으니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주를 이기는 절대 비결은 축복의 말씀에 굳게 서는 신앙입니다. 그래야 저주를 이깁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성경이 축복을 말씀하면 축복이 임할 것을 믿으십시오. 성경에 기도에 응답하시겠다 하셨으면 응답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순종하면 천대에 복을 주시겠다 하셨으면 믿고 순종하십시오. 보호하시겠다 하셨으면 보호를 믿으십시오. 도우시겠다 하셨으면 도우실 것을 믿으십시오.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저주를 이기는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하신 말씀을 식언치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보세요.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 로마의 호송선을 탔을 때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 두 주간이나 험한 광풍에 밀려 다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살 가망이 끊어져 절망하고 있을 때 바울은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행27:22-26) 외쳤습니다. 어떤 절망도 이 말씀을 믿는 믿음 앞에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히6:13-15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롬4:18-22에도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했습니다. 이 식언치 않으시는 말씀을 믿는 신앙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저주를 이기게 합니다.

2. 저주를 이기는 절대 복의 신앙은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21절에 “여호와께서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하였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원수를 저주하라고 발람을 데려 왔는데 온전히 축복하자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여호와께서 자기 입에 주신 말씀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 축복의 예언을 하고 말았는데 그것이 여호와께서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발람에게 왜 이런 축복을 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의 허물을 들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계2:14에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한 것을 보아 이것을 꿈꾸어 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발람은 여호와의 신에 사로잡혀 용서의 하나님을 선포하고 말았습니다.

여기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신다는 것은 사랑과 용서를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허물이 많습니까?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조금만 불편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대들고, 인도자가 조금만 안 보여도 우상을 만들어 섬기려고 하고,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의 생수로 먹여 주니까 그것이 모자라 불평하고, 그들의 행위로 본다면 열 번 백 번 저주 받아 마땅합니다. 그래서 모압 왕은 그 허물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발람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축복하셨습니다.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저주를 이기는 절대 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저주를 이기는 절대 복의 비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저주를 이깁니다. 그래서 사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사43:25에는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사44:22에도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38:17에도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 했습니다.

갈3:10에도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고, 갈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를 못 믿고 발락의 말만 믿으면 큰일납니다. 발락은 너희들은 허물 많은 죄인이라 너희들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연약하여 늘 넘어집니까? 늘 범죄하게 됩니다. 범죄한 자는 죽여라가 율법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심령이 죽습니다. 삼손처럼 그 심령이 강해도 범죄하면 별수 없어요. 죽어요. 이 때 용서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 심령은 저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엘 선지자가 말하듯 범죄하면 하늘은 놋이 되어 비가 오지 않듯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심령은 답답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정죄하는 율법의 저주에서 절대 복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죄를 담당하신 절대 속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범죄하기 전에도 보혈공로 믿어야 하고 범죄한 후에도 보혈 공로 믿어야 하고 회개할 때도 보혈 공로 믿어야 하고 회개한 후에도 보혈 공로를 믿어야 합니다. 이 보혈의 기초가 잘 될 때 우리는 어떤 허물과 패역을 가지고도 저주 받을 수 없고 복의 사람만이 될 수 있게 됩니다.

3. 저주를 이기는 절대 복의 신앙은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22절에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했습니다.
들소는 강력한 두 뿔과 튼튼한 어께를 가진 힘이 강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들소는 용맹 능력 위용 독립성 등을 의미하는 짐승이었습니다. 이 들소들은 떼를 지어 이동하는데 그 위용이 대단해서 아무도 그 이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즉 들소와 같은 하나님이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들소를 막을 자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힘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런데 “인도하여”는 현재분사로서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도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분임을 보여줍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축복을 하도록 했을까요?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이 약하여 광야에서 죽기를 바랐습니다. 그러자 강한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강하신 하나님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을 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이 축복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성령의 능력을 입으라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강하신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 우리를 해하려는 그 어떤 저주의 세력도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그 어떤 궤계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 받아야 은혜가 옵니다. 성령 받아야 복이 옵니다. 성령 받아야 형통이 옵니다. 성령 받아야 부흥이 옵니다. 성령 받아야 기적이 옵니다. 저주가 사라집니다. 성령 받아야 나약함도 우울증도 사라집니다. 성령 받아야 육신도 이기고 저주도 이기고 나약도 이깁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발락처럼 우리를 저주 받게 하려고 좀더 눕자 좀더 자자 손을 모으고 좀더 가만있자고 말합니다. 능력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당히 신앙생활하자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신앙 생활 잘해 오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어주면 발전은 없습니다. 그 말 들어주면 우리 심령은 죽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어나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들소보다 더 능력 많으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이 신앙이 바로 저주를 이기는 절대 축복의 신앙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저주의 발락의 말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으로 살면 필경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살면 살게 됩니다. 저주를 이기는 절대 신앙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용서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이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과 보혈과 성령에 견고히 서서 그 어던 저주도 다 이기는 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