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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움켜 쥔 손을 펴라] 신1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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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 쥔 손을 펴라> 신15:7-11
새문안교회 2004. 4.18 주일예배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다"고 했습니다. 지상에서의 인간사회의 현실을 적시하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부유한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은 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보다 조금 앞에 있는 5절 끝에 보면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가난한 이가 없어지게 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이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움켜쥔 손을 펴는 것입니다. 본문 7절 끝과 8절 머리부분에 보면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라" 했으며, 오늘 본문 제일 끝에서도 "네 손을 펼지니라" 했습니다.

손을 움켜쥐지 말고 펴라는 것은 펴서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본문 7-8절을 다시 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11절 하반절에서도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했습니다. 즉 가난하고 어려운 형제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넉넉히 꾸어주기 위하여 손을 움켜쥐고 있지 말고 펴라는 것입니다.

손을 움켜쥐고 펴지 않는 것은 사실은 손이 아니라 마음을 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펴라" 하기 전에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7절) 한 것입니다. 9절에서는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했고, 10절에서는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했습니다.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어렵고 궁핍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손을 펴는 것이 이 땅에서 가난한 이들이 사라지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어렵고 궁핍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손을 펴는 것은 하면 좋고 안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11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따라서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9절을 봅니다: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모든 빚을 면제해주어야 하는 일곱째 해가 가까이 오면 채권자마다 마음 속으로 "지난 빚도 이제 곧 못 받게 될 터인데 새 돈을 뭣 하려 빌려 주겠는가" 하며 채무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되기 쉬운데 그것은 악한 마음을 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이므로 그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대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0절을 봅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어렵고 궁핍한 이들에게 인색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만사가 형통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일조에 관한 규례로부터 시작된 말씀의 결론과도 같은 부분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14:22로부터 시작되는 말씀들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14:22-23에 보면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라" 한 것은 아무데서나 제사 드리고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거짓 신을 우상으로 만들어 놓은 산당 같은 곳에 가서 절하며 빌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곳에서 제사 드리며 거기서 음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온 땅의 주인이요 모든 수확을 걷게 해주시는 이로 알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만유의 주인이시고 우리가 얻은 모든 소득과 재물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믿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라" 한 것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일차적으로는 예배행위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그 후에 식사를 나누는 일은 성전에서 행해지는 기본적인 종교의식이었습니다. 이 종교의식이 제대로 원만히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물질적 책임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각각 소득의 십분의 일로 분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행해져야 하는 모든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필요한 재정을 온 교인들이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수확의 맏물과 십분의 일을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집에서 그를 향하여 그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신앙의식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훈련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한 말이 그 뜻입니다. 십일조를 비롯하여 각종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일이며 항상 행해야 할 우리의 본분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십일조와 헌물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행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바쳐진 물질을 또한 사람들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셨습니다. 특히 스스로 물질의 소득원이 없는 이들을 책임지는 일에 그 용도를 지정하셨습니다. 신14:28-29을 봅니다: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했는데 이것은 성직자와 나그네나 고아나 과부로 대표되는 소외 및 빈곤계층의 삶에 대한 책임이 온 회중에게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신앙이라는 것이 단지 예배하는 것만이 아니고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나누며 어려운 이들 구제하기를 힘쓰는 일을 포함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우리로부터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하나님께 예배할 뿐 아니라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를 힘쓰는 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14:29) 하신 것입니다.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교회가 하는 일마다 복 받는 비결은 바로 외국근로자,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 및 빈곤계층의 사람들을 잘 돌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정신의 연장선상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바로 앞서는 1-6절에서는 빚의 면제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매 칠년 끝에 가서는 채권자들은 채무자들에게 모든 빚을 면제해 주라는 것입니다. 먼저 신15:1-2의 말씀입니다: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이것은 소외되고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땅은 7년마다 휴경하게 되어 있는 법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어떤 빚을 6년 안에 못 갚으면 농사일을 쉬어야 하는 7년째에는 더 갚을 길이 없을 터이므로 따라서 그 때는 아예 빚을 면제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 대한 깊은 배려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경외하는 백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빚을 면제해주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것은 나그네처럼 지내던 애굽에서의 소외와 빈곤으로부터 거저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으로서의 도리를 상기시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큰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지는 신15:4-6의 말씀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물질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려 교회를 섬기고, 가난한 이들을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며, 그들이 도저히 빚을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면제해주라는 이 명령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복을 주실 것인가 하면, 첫째는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즉 우리 가운데 가난한 백성이 없어지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돈도 꾸어주며 경제적인 원조를 많이 하게 되면 됐지 빚지고 사는 나라는 결코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셋째는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즉 다른 나라의 지배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정한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진정한 자주독립국으로 튼튼히 서는 길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의 믿음과 서로를 위하고 돌보는 우리의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총선이 끝났습니다. 여야가 국회에서 차지할 의석비중이 뒤바뀌었습니다. 회생한 당도 있고 몰락한 당들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총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습니다. 그 중 하나가 소위 보 혁 간의 이념적 대립이 더 예리해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런데 어디에나 그렇지만 보 혁 간의 대립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소유와 분배의 불평등이며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한 선의의 관심과 배려의 결핍 또는 부족이라고 생각됩니다. 움켜쥔 손을 펴지 않으려는 완악한 마음이 있는 곳에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며 이념적 투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그러므로 모두가 움켜쥔 손을 펴는 것입니다. 재물을 움켜쥔 손도 펴야 하며 권력을 움켜쥔 손도 펴야 하고 원한을 움켜쥔 손도 펴야 합니다. 계층간의 대립과 세대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모든 구호나 운동을 내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모두가 손을 펴고 편 손을 함께 잡아야 합니다. 20대나 6~70대나 모두 손을 잡고 다 함께 행복해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특별히 더 손을 펴야 합니다. 외국근로자,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 및 빈곤계층의 사람들을 살피고 돌보는 일을 위해 움켜쥐었던 손을 활짝 펴야 합니다. 교회가 그 일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하여 손을 활짝 펼 수 있도록 성도들은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것을 움켜쥐고 있는 손을 펴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교회가 앞장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움켜쥔 손을 펴면 하나님께서 가난한 이들을 없어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없어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움켜쥔 손을 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손을 펴고 그 손에 움켜쥐었던 것을 놓으면 하나님의 무한하게 큰 손으로부터 형언할 수 없이 큰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움켜쥔 모든 손을 활짝 펴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이루어주실 다같이 행복한 사회를 향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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