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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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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희망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행복입니다.  축복입니다.  성공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공입니까? ‘랄프 왈도 에머슨’이라는 이가 말하는 성공의 정의가 있습니다.

1)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입니다.
  웃음은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웃음은 건강입니다.  순환 기관을 청소해 주고 혈압을 내려 줍니다. 엔돌핀 분비량을 증가 해줍니다.  자신도 건강하고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2)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왕이면 존경받는 남편, 존경받는 사회인이 그리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3)아이들에게서 사랑 받는 것
4)친구들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5)세상을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6)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진정한 성공은 소원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정이 없는 여인이라 불행한 게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힘들어서 고생하는 게 아닙니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여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가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서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대로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의지하여 여러분들에게도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미래를 바꾸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꿈과 비전을 가진 이들입니다.  비전이 무엇입니까?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게 바로 미래의 비전입니다.  불타는 소원을 가져야 무엇인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무서운 사람은 가슴에 꿈을 가득히 가진 사람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보다 노래를 잘 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진 게 아름답습니다.  지금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공부 잘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이가 더 귀하게 보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이가 더 행복하게 보입니다.  내일에 대한 꿈이 있으면 오늘의 역경과 고난은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의 비극은 잘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현하고자 하는 꿈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꿈이 있고 소원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꿈이 있으면 생기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잘하겠다는 의욕이 생깁니다.  무한히 노력하게 만듭니다.  꿈은 이상이요, 희망입니다.  미래에 대한 설계도입니다.  꿈은  장래에 대한 목적입니다.  이러한 비전이나 꿈이 마음속에 가득하면 다른 이가 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도 야망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러나 야망과 꿈은 다릅니다.  야망은 일시적입니다.  꿈은 영원합니다.  인생 성공자가 되려고 하면 계획꾼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계획이 꿈이요, 비전입니다.  목적입니다.  정하고 입으로 선언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기도하는데 진정으로 소원하고 기도하는 이가  많지 못합니다.  가나안 여자는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 소원대로 되었습니다.  소원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소원은 성취된다.  솔로몬이 축복을 받은 것은 그 마음에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원이 사명으로 이어질 때 엄청난 역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는 게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무엇을 줄꼬 라고 물으십니다.  내 소원을 말해보라는 것입니다.  뭐라고 하였습니까? 브에나비 스타 홈 엔터 테이먼트 코리아가 17개의 인터넷 사이트 이용자 약 4만 명을 대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일주일간 전지 전능한 신의 능력을 받는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조사한 결과 45%가 돈벼락을 맞겠다 라고 답했더랍니다.  지금 정권을 잡은 이에게 솔로몬에게 물었던 질문을 한다면 여당이 제1당 되게 하소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만일 나에게 물으신다면, “주여! 우리 교회가 만 명 이상 모이는 부흥을 주옵소서” 라고 했을지 모릅니다.  솔로몬은 뭐라고 대답하였습니까?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출입할 줄도 모릅니다.  누가 주의 백성들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 지혜로운 마음을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소서”(왕상 3:6~10)  솔로몬의 소원은 사명과 맞았습니다.  그의 소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지혜를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원이 성취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입만 열면 그 소원을 말로 선언하십시오.  그리고 소원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건강이 소원이라면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조깅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귀찮아하는 운동을 하는 겁니다.  아무리 먹고 싶은 게 있어도 과식을 하지 않습니다.  건강하기를 원하면서도 먹을 것이 있으면 절제하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다.  뭐라 하면서 먹는지 아세요.  다음부터 적게 먹지.  오늘만이야.  그 오늘만이 나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행복해 지는 게 소원이라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소한 것 때문에 싸웁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국익을 위해서는 여야 없이 단결하여 싸웁니다.  이익이 생기는 일이라면 적을 만들어서라도 싸우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자기네들끼리 잘 싸웁니다.  그래서 이렇게 권고한답니다.  대한민국 싸우지마.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구절입니다.  한국 사람들 싸우지 맙시다.  우리는 민족끼리 싸웠습니다.  그것이 6.25사변입니다.  근자에는 여야가 지나치게 싸웁니다. 적은 나라에서 너무 심하게 싸웁니다.  같은 회사에서 노사간에 싸웁니다.  무섭게 싸우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싸움 잘하는 나라가 이 한반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다 하면  북한 사람에게도 그리고 남쪽 사람들에게 다 같이 요구하기를 군대 좀 보내달라고 야단입니다.  싸움꾼을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왜 싸움을 너무 잘해서 그럽니다.  거리에서 앞차가 안 가니까 클락숀을 울립니다. 앞차가 서더니 너 내려와 그리고 싸우다가 사람을 쳐서 병신을 만들었답니다.  버스 기사가 정차 시에 급제동을 걸었다고 승객이 갑자기 폭력 배로 돌변하여 운전기사를 두들겨 팹니다.  완전히 싸움꾼들이 사는 세상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잘 싸웁니다.  한국교회같이 교역자와 평신도의 갈등이 심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건 고사하고 부부간에 왜 싸웁니까? 우리는 가정에서는 싸우지 맙시다.  교회에서는 싸우지 맙시다.  화목한 가정, 행복한 신앙생활을 소원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소원이 있다면 간절한 소원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소원이 있어야 소원이 성취됩니다.  일생의 소원을 가지세요.  없으면 정하세요.  1년의 소원을 기록해 보세요.  한 달의 소원도 분명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분명한 소원을 가지고 간절하게 기막힌 모습으로 하면 그 소원대로 성취됩니다.

2.  네 소원대로 되려면 인내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기분이 나쁠 때가 언제입니까? 사람을 만났는데 아는 채 하지 않고 인사하지 않을 때입니다.  혹은 사람 대우하지 아니 할 때 좋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를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헌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그렇게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보는 겁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여보시오 사람 같지 않습니까? 그럴 겁니다.  그건 약과입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라고 하시는 건 완전히 개로 취급하는 것 같아 실망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금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옳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인내를 볼 수 있습니다.  꿈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인내 할 수 있는 사람이 소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인내라 하면 어려움을 잘 견디는 것과 기다리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견디지 못합니다.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어려워도 어렵다 하지 아니 합니다.  자기 마음에 분노가 치밀어도 참습니다.  자기 통제력이 있습니다.  화가 나도 참습니다.  자기 통제력이 있는 사람을 인내의 사람이라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화가 난 것 같은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아낍니다.  말을 아낍니다.  행동도 서둘지 아니 합니다.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말합니다.  행동합니다.  가나안 여인을 보세요.  얼마나 여유가 있습니까? 옳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를 먹나이다.  상대방의 말을 긍정해 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인내라 함은 기다림입니다.  ‘존 레소노’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출감 23일을 앞두고 조금만 참으면 그 지긋 지긋한 감옥생활을 마치게 되었는데 탈옥을 합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을 향하여 어머니가 타일렀습니다.  평생 불안하게 쫓겨다니고 더 큰 죄를 짓고  벌을 받아 평생고생하지 말고 새 출발을 하도록 그를 데리고 교도소로 데리고 왔습니다.  결국 그에게는 탈옥한 죄로 5년을 감옥에 있게 되었습니다.  23일을 기다렸으면 자유의 몸이 될 것을 기다리지 못해서 1826일을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인내심의 부족으로 23일을 1826일 되게 하였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신 이스마엘 이 출생하였습니다.  13년을 참지 못하여 이스마엘을 낳고 말았습니다.  참으면 이삭이고 참지 못하면 이스마엘이 된다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병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1)영적인 나태입니다.
  상당히 게으릅니다.  일주일에 교회 한 번 나오는 게 그렇게 힘들어합니다.  새벽기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이들이 얼마입니까?
2)영적 불감증입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깨달음도 없습니다.  이것이 병입니다.  냉담합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3)극히 이기주의입니다.
  말로는 주님의 뜻대로 하자고 하면서도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자기 중심입니다.  영적인 열기가 없습니다.  자기가 불리할 것 같으면 관심도 쓰지 않으려 합니다.
4)그 중에 하나가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원이 성취되고 축복된 신앙인이 되려고 하면 잘 참아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욥의 인내를 배우라 그리고 본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그 결말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인내합시다.  참고 기다리면 네 소원대로 되리라입니다.

사람이 임종시에 후회하는 게 세 가지 정도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내가 좀 더 베풀 걸 인색하였구나.  둘째는 좀 더 즐길 걸 너무나 분주하게 살았구나.  이것이 죽음인데 그렇게 후회하고 셋째는 그때 더 참았어야 했는데 참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합니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습니다.  쉬면서 생각하고 참으면서 기다리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아멘)

3.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였습니다.  무엇이 이 여인의 믿음이었습니까? 예수에게만 기대를 걸었습니다.  승부를 예수에게 걸었습니다.  딸이 흉악한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냉정하게 대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다른데 가보자 그럴 수 있습니다.  이 병원에 갔는데 너무 냉정하게 하더라.  그러면 저 병원에 가보자.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여인은 끝까지 예수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에 여러분의 삶의 승부를 걸고 삽니까? 예수에게 걸어보세요.  그때 주님은 네 소원대로 되리라입니다.  믿음은 머리에서 이해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머리는 지식을 말하고 깨닫게 하지만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사람답게 하지는 못합니다.  머리로 사는 사람은 이기적입니다. 타산적입니다.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정으로 삽니다.  누구도 말릴 수 없게 만듭니다.

믿음은 말이 아닙니다.  흔히 우리는 쉽게 주여 믿습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먼저 갈 게 아니라 발이 먼저 가야 합니다.  마지막에 성공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3P'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 P는 ‘Patience’(인내, 참을성) 얼마나 참느냐 시기 질투 경쟁자의 비난을 잘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하고, 둘째 P는 ‘Practice’(습관, 실행)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는 게 아니라 얼마나 실행하고 있느냐 밀고 나가는 믿음의 행동이 그로 하여금 성공자가 되게 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의 P는 ‘Peace’(평화)입니다.  평화주의입니다.  내 마음에 평안이 있고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약점 중에 하나가 믿는다고 말은 쉽게 하는데 행동이 없습니다.  이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마음으로 주님을 떠나지 아니 하였습니다. 예수만이 나의 소망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쉽게 실망하지 아니 합니다.  우리가 낙심하게 되는 것은 믿음이 나약해졌다는 신호입니다.  믿음은 용기입니다.  힘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강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 약하면 인생이 무너집니다.  어렵습니까? 마음을 강하게 가져야 합니다.  내 믿음이 나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내가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나는 설 수 없다는 비장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그렇게 대하신다고 해도 나는 주님에 대하여 실망하지 말자.  그것이 그녀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삶도 승리합니다.  한 번 가상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내가 실족하여 벼랑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나뭇가지 하나를 잡았습니다.  누가 힘들지 놓아 손놓으면 편해 그런다고 놓겠습니까? 놓으면 편한 게 아니라 죽는 겁니다.  우리는 약점이 있습니다.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뒷심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악마들이 낚시대회를 가졌답니다.  인간 세상으로 와서 낚시를 해가 지고 갔습니다.  다른 악마들은 빈 바구니인데 한 악마는 꺼내고 꺼내도 한없이 인간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무슨 낚시 밥을 썼길래 이렇게 많이 낚아 왔느냐 물으니까 포기라는 낚시밥이라고 하더랍니다.  너는 이미 늦었다.  너는 틀렸다.  너는 이젠 안 된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등입니다.  포기는 불신앙입니다.  예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나는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였을 때에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아무리 부르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겸손으로 표현됩니다.  예수의 말씀에 대하여 옳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나를 무시하고 비하하는 말에 긍정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이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였습니다.  소원이 있어야 소원대로 됩니다.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힘들어도 참고 참아야 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가진 것 재산이 없어도 자원이 있어야 합니다.  곧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낙심하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의 은총을 기다릴 때 “네 소원대로 되리라”의 선언이 있게 됩니다.  소원대로 되어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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