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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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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이수중앙교회 담임)

세상에 누가 감히 나의 옷을 벗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죽음은 일면식도 없는 장의사 직원이 나의 옷을 벗기게 합니다. 겉옷은 말할 것도 없고 속옷까지 모조리 벗깁니다. 아무도 그것을 가로막거나 제지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학력도, 직책도, 재산도, 그 무엇도 소용 없습니다. 저는 입관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시신을 보았습니다. 시신이 시신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그분이 살아온 전 일생이 한 컷의 영상으로 떠올라 시신 위에 덮입니다.

인간의 지난 세월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인 경우에는 그 사람의 얼굴 속에 쌓여 있습니다. 얼굴이 과거의 축적판입니다. 반면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나, 이미 죽은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에 한 컷의 영상으로 남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한 권의 책이나 몇십 장 분량의 원고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그 사람 어때?”라고 묻는다면 “어, 형펀없어. 그 사람 사기꾼이야. 조심해야 해” 혹은 “참 좋은 사람이야. 예수를 믿으려면 그 사람처럼 믿어야 해” 이렇게 한 컷의 영상으로 기억합니다.

벌거벗고 누워있는 시신 곁에 가장 값비싼 수의와 최고가의 관이 놓여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 시신의 주인공이 한평생 불의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시신 위에 불의한 인간의 영상이 드리워져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그가 일생동안 진리를 좇아 산 사람이라면, 사고로 인해 시신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다 하더라도 수정처럼 맑고 빛나는 한 인간의 아름다운 영상일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결코 외형적인 업적으로 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한 인간의 삶은 살아남은 자들의 심령 속에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한 컷의 영상으로 새겨져 남습니다. 이것이 죽음인 동시에 삶입니다. 그 영상은 내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음과 삶은 결코 별개의 일이 아닙니다. 믿음의 큰 틀 안에서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죽음을 아는 사람이 자기 삶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큰 틀 안에서 영원에 접속되어 있는 자신의 삶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죽음을 영원을 향한 영광의 관문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단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인생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죽음 이후 삶,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오늘을 사십시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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