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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점령당한 여리고 (수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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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피영민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3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서론)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볼 때마다 매우 신기하게 느끼는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인 여호수아 6장에 나타나고 있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사건은 특별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신기한 일을 매우 쉽게 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날마다 살아가는 삶 속에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어떤 신기할 일로 역사하실까?”라고 기대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여리고 성은 사람들이 정복하기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그리고 이 성은 매우 거대하고 튼튼한 성입니다. 오늘날의 수치로 한번 계산해 보면 거의 만평에 해당하는 큰 성입니다. 더군다나 이성은 성벽을 이중으로 쌓았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밖에는 외성벽이 있었고 안에는 내성벽이 있었습니다. 외성벽은 두께가 2m이고, 내성벽은 두께가 무려 4m나 되는 도저히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무너뜨릴 수가 없는 실로 거대한 바위와도 같은 단단한 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의 둘레는 4.5km나 되었습니다. 광야를 40년 동안이나 방황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 능한 민족도 아니요, 그렇다고 최신식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것도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정탐꾼을 보내었을 때에 민수기 13장을 보면 12명의 정탐꾼 가운데에 무려 10명의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민수기 13장 27-28절을 보시면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라고 증거하였으며, 또한 민수기 13장 32-33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
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기록된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보고는 객관적으로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계산하지 않은 불신앙의 계산법입니다. 여리고성은 이처럼 강하고 견고한 성읍이었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에게도 정복하기 힘든 이 여리고 성같은 큰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를 대항하는 세상의 세력도 바로 여리고 성과도 같은 거대한 신앙의 장애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전도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 위해서 복음을 들고서 세상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의 힘으로 과연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약의 모든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꼭 필요한 영적인 진리와 교훈을 가르쳐 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하여서 질그릇처럼 연약한 존재인 우리들도 복음으로써 이 세상을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다고 하는 승리의 비결들을 배워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고 하는 도시는 대단히 넓고 큰 도시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서울민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서울민국을 가리켜서 ‘강남민국’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제, 문화, 정치 등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또 서울 중에서도 강남에 밀집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강남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가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시킬 것을 명령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남을 우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만 하면 나머지 모든 성들은 순식간에 정복할 수가 있다고 자신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강남을 복음으로 정복하기만 하면 서울도 쉽게 정복할 수가 있을 것이요, 서울을 정복하기만 하면 이 나라와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깃발을 담대히 꼽을 수가 있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한 사건을 통하여  오늘날의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복음을 들고서 전략적으로 이 도시와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할 일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각자가 할 일은 저마다 다릅니다. 우리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른 존재들입니다.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똑같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한 가정의 형제와 자매도 외모와 성격과 취향이 다 다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도 다르고, 설령 그 일이 똑같다고 할지라도 일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는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의 모든 성품과 특성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이 일을 통하여서 영광을 받으시고 기쁨을 누리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한 성경의 명백한 진리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을 가는 것이 우리 자신의 선행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선행을 베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선행을 베푼다고 할지라도 그 수고한 공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희생의 공로를 힘입어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선행을 베풀고 남들보다 착하게 살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영원한 진리를 신뢰하시고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행을 실천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단 한번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신실한 믿음의 성도는 이 귀한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거룩한 소원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남은 인생의 기간 동안 구원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름답고도 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고서 구원을 받았다고 아무리 큰 소리를 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즉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구원의 사실과 확신에 대하여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각각 다른 사명을 주셨다는 진리를 잘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수아 6장 7-9절을 한번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면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이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맨 앞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일곱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나팔을 불면서 따라갑니다. 이 양각나팔은 오늘날의 트럼펫과 같은 악기입니다. 제사장들은 이 양각나팔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부르면서 나아갑니다. 그 뒤에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서 따라갑니다. 이때에 안전을 위해서 군인들이 후방에서 보초를 서면서 언약궤를 따라가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마다 각자가 맡은 사명이 다 달랐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일을 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6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려 4.5km에 해당하는 거대한 여리고 성을 6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의 일을 행하면서 돌았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4.5km를 행군하기 위해서는 보통 2-3시간은 걸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천천히 걸아가면서 그 뒤를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의 일을 행하면서 조용히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제 칠일에는 7바퀴나 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여호수아 6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제 칠 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 뿐이었더라”.

  이 말씀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면서 4.5km의 여리고 성을 하루에 무려 7바퀴나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바퀴 도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곱 바퀴를 돌았다는 사실은 대단한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계산을 한번 해보니 최소한 15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장을 서고 있는 군인들도 틀림없이 다리가 아팠을 것이요, 양각나팔을 들고 계속해서 부는 제사장들은 입술이 부르텄을 것이요, 언약궤를 메고 뒤따르는 제사장들은 어깨가 욱신거렸을 것이요, 뒤따르는 군인들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도 저마다 다리와 팔과 온 육신이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거대한 여리고 성을 다 돌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여호수아가 여호수아 6장 16절에서 이렇게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이 성을 주셨느니라”.

  여호수아의 명령이 떨어지자 말자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뢰와 같은 함성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발생합니다. 그토록 거대하고 튼튼한 여리고 성벽이 순식간에 와르르 소리를 내면서 안쪽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살 하나 쏘지 아니하고, 칼 한번 휘두르지 아니하고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 성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에 있던 은금과 동철 기구들을 다 거두어서 여호와의 곳간에다가 들여 놓았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장의 일과 군인의 일과 나팔을 부는 일들을 저마다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가만히 서서 놀고먹는 사람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그 본래의 사명과 목적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인 성도들 각자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을 다하여 열심히 감당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이지 가만히 서서 놀고먹는 사람들인 모인 교회는 절대로 부흥의 역사가 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여리고 성은 분명히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그 사건을 부인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인간적인 지식으로 아주 재미있는 학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음성진동설’입니다. 이 학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도 소리를 크게 지르니까 그 진동에 의해서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초등학생들도 가만히 앉아서 한 5 초만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엉터리임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진설’입니다. 이 학설은 여리고 성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학설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 하필이면 다른 곳은 지진이 일어나지 않고 여리고 성에만 지진이 일어났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지진은 아주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이 학설도 엉터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아주 재미있고도 웃기는 ‘구경꾼 하중설’입니다. 이 학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주일 동안 전쟁은 하지 않고 법궤를 메고 나팔을 부르면서 성 주의를 도니까 이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여리고 성에 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성벽위로 올라오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 사람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무너졌다는 주장입니다. 참으로 재미있지 않습니까? 제가 앞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여리고 성은 안쪽으로 무려 4m에 해당하는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두꺼운 성벽이 사람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무너졌다고 하는 학설도 말도 안 되는 엉터리임을 너무나 쉽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주는 약간의 유익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놀고먹고 구경만 하고 있다가는 그 서있는 기반마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와 사역자만 열심히 뛰는 교회는 약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크게 부흥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각자의 은사를 잘 활용하여 최선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는 각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사명을 깊게 생각하고 수행해 나가야만 합니다. 목사가 알아준다고 해서 충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몰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의 일꾼들을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는 진정 강한 교회가 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계산을 한번 해 보았습니다. 지금 현재 주일날 우리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성도가 평균적으로 2030명입니다. 이 숫자는 교회학교의 숫자는 뺀 순수하게 장년들의 숫자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억하기 쉽게 30명을 빼고 매 주일마다 2,000명의 장년들이 우리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2,000명의 성도들이 일년에 한명씩 전도를 한다고 가정할 경우에 서울이라고 하는 대도시를 과연 몇 년 만에 복음의 능력으로 정복할 수가 있을까하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확하게 12년만 지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모든 사람들을 전도할 수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지금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이 더도 말고 일년에 딱 한명만 전도한다고 할지라도 내년이 되면 우리교회는 4,000명의 장년들이 나오는 교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후년에는 8,000명이 되고 그 후년에는 16,000명의 장년이 모이는 큰 교회로 성장할 수가 있습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교회가 장년 만명이 모이는 교회가 된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기쁨을 위하여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교회에는 전도부인들이 있어서 한달에 10명씩 일년에 100명의 영혼을 전도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비록 여러분 모두가 전도부인은 아닐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최소한 일년에 한명의 영혼을 전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단 한명의 영혼도 전도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한 달에 1명씩 전도하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전도를 하신다면 우리교회는 주일마다 몰려오는 사람들로 인하여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도저히 장소가 좁아서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년에 딱 1명씩만 전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용기가 없는 분들은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담대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질서가 있고 규율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보더라도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여호수아의 군대가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하고 있습니까! 사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행진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 했을 때에 틀림없이 웃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웃지는 못했더라고 속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웃으며 수긍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 보더라도 그 거대한 성벽을 자랑하는 여리고 성이 일주일 동안 성 주위를 도는 방법으로 무너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 옛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향하여서 “네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사라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오래전에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나이와 경수의 끊어짐이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1장 5절은 다음과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 세라”. 또한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실 때에도 틀림없이 제자들과 사람들 중에서 비웃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11절을 보시면 “---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단지 잠을 자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예수님을 향하여 비웃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을 가리켜서 잠을 자고 있다고 하는지 그들은 도저히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2장 43-44절은 이렇게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생명의 주인되시는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어두운 죽음의 동굴에서 밝은 부활의 빛으로 인도해 주셨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방법은 때로는 우리 인간들의 눈에는 우스운 모습으로,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으로 다가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만이 궁극적으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 최후의 승리를 안겨 다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을 우리가 무엇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까? 위대한 정치가가 나타나서 세상을 개혁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그동안 너무나 많은 정치가들에게 속아 왔습니다. 선거를 하기 전에는 깨끗하고 멋있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막상 당선이 되고나면 사람이 180도로 달라집니다.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하기보다는 개인적인 명예와 유익과 욕심을 위해서 달려갑니다. 제가 더 이상 말씀을 안 드려도 여러분 모두가 이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인간의 방법이 제아무리 거창하고 화려하고 멋있게 보여도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과는 전적
으로 다릅니다. 비록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우습게 보여도 하나님의 방법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을 보시면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라고 하는 이 미련한 방법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그 어떤 이성과 지식과 수단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는 일을 전도라고 하는 미련한 방법은 능히 할 수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이 미련한 전도의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때에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을 제자들을 향하여 손가락질 하면서 비웃었을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 잡이나 잘하지 하면서 웃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을 향해서는 천막을 만드는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하면서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예수님의 제자들로 말미암아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증거한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나라에 속한 엄청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비록 세상의 제아무리 강한 나라는 망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하여 더욱더 크게 성장하여 나갈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최후의 순간까지 계속 이어질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그 영광스러운 날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바꾸고,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고 있는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계산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0절은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4.5km에 해당하는 여리고 성 주위를 돈다는 것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우스운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는 가운데에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을 단순한 마음으로 믿으십시요. 여기에 대해서 인간적인 이성과 지식을 동원하여서 따지지 마십시요. 우리의 죄와 허물과 한계에 대하여 극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천국에 들어갈 대안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죽었다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저한테도 좀 가르쳐 주십시요. 혼자만 믿지 마시고요.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고집피우지 마십시요. 오늘 이 자리에서 당장 하나님의 미련한 방법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 순종은 여러분의 단순한 마음을 필요로 합니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단순한 법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영원한 구주가 되신다는 참으로 간단한 진리를 단순한 마음으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각각의 은사를 갖고서 충성을 다하여 사명을 감당합시다. 그런 믿음의 자세를 갖고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제아무리 거대하고 튼튼한 여리고 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침묵하며 기다리는 것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침묵하며 기다리는 자세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본문 여호수아 6장 10절을 보시면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침묵을 요구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과 비판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법궤를 메고서 행진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전쟁을 하러 가는데 무기도 들지 아니하고 양각나팔을 불고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것에 대하여 매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여리고 성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모두 다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 조롱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
성들을 향하여 겁쟁이요 비겁한 자라고 놀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상황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과 비판이 불 붓듯 거세게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부정적인 생각과 비판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시고 처음부터 침묵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또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라도 말하지 말 것을 하나님께서는 엄하게 명령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일을 감당할 때에 힘든 부분은 침묵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오지에 나가서 복음을 들고 선교하는 선교사님들에게 있어서 제일 힘든 부분은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서 몇 년 동안 침묵하는 기간이라고 합니다. 선교지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뜨거운 열정을 갖고서 교회를 열심히 개척하고 성장시켜서 자랑스럽게 본국에다가 보고를 하고 싶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선교지에서 성공적으로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서 침묵하는 훈련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윌리엄 케리도 인도에 선교사로 가서 무려 7년 동안 단 한명의 영혼도 전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인도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서 침묵하는 과정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침묵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자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윌리엄 케리를 통하여 인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가는 선교의 큰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큰 꿈을 품고서 외국으로 공부하러 나갑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라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박사학위를 받는 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소한 일 주일에 이틀 이상을 꼬박 밤을 세워가면서 책을 읽고 레포트를 작성해야만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제일 부러웠던 것이 있다면 잠을 실컷 자보는 일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여행을 가거나 비싼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집에서 발을 쭉 뻗고 잠을 실컷 자보는 것이 마음의 소원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세상의 즐거움을 멀리하고 침묵하는 과정을 통과한 후에야 땀 흘려 공부한 것에 대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몇 년 전에 IMF라고 하는 국가적인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모든 회사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해고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사람들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3가지 기준을 갖고서 해고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그 사람의 ‘질(Quality)’을 따졌습니다. 둘째는 그 사람이 하는 일의 ‘양(Quantity)’을 따졌습니다. 셋째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말없이 ‘침묵(Quietness)’ 하고 있는가를 따졌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수준이 높고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결론적으로 말이 많은 사람은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는 사실입니
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목회자들에게 가장 고맙고 감사한 분들은 바로 침묵하면서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입니다. 늘 끊임없이 기도하는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침묵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에도 전도와 성령의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반드시 오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침묵하시면서 인내하시는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기다림을 요구하실까요? 우리 교회에도 저와 상담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상담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발표하기를 상담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굳이 전문가를 찾아가서 상담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문제의 대부분은 좋게 해결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면서 참는 것이 바로 문제해결의 열쇠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다림을 통하여 인간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한 일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신기한 일들과 기적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진리를 믿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는 어떠한 일을 통하여 나 자신을 드러내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침묵하는 가운데에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직접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일을 했을 때에 결국은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단단하고 거대한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 성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화살 하나도 쏘지 아니하고 칼 한번 휘두르지도 아니하고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도 아니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여리고 성의 사람들은 단번에 진멸하고 말았습니다. 기생 라합의 가정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진멸을 당하였습니다. 은금과 동철을 다 거두어 여호와의 곳간에 들여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의 그 무엇이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영광을 홀로 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야말로 승리를 얻은 이후에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승리한 이후에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정상에 올라가는 것은 어려워도 정상에서 내려오는 일은 너무나 쉽습니다. 우리가 정상에 섰을 때에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 자리에 올라섰다고 자랑한다고 한다면 곧바로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리를 경험한 이후에도 오로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면 계속해서 승리의 기쁨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여리고 성과도 같이 거대하고 단단한 세상과 싸우는 영적전투의 본부입니다. 우리 각자가 인내하면서 일년에 한명씩만 전도한다면 이 교회는 삼년 뒤에 16,000명의 성도들을 갖게 되고, 전 세계에 선교사 100명을 파송할 수 있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전 세계의 어느 나라든지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의 이름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추수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먼저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고 하는 비전을 주셨고, 그리고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침묵하는 가운데에 행동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믿음의 자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정복할 수 있는 기적의 역사를 안겨 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강남이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된다는 비전을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뜨거운 믿음으로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대로 충성스럽게 일할 때에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제아무리 거대한 여리
고 성벽이라도 무너지고 정복하는 승리의 기쁨과 영광이 있음을 확신해야만 합니다.

그 옛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시며 조금도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정복해 나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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