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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가능한 요단강을 건너려면 (수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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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이부이 프로그램 중에서 특종 사건을 보도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모방송국에서 보여주는 특종 프로그램은 우리들 삶 속에서 특별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끔 보면 우리들의 삶중에서 기이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지난 주에 본 내용 중에는 6살 아이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묘기를 부리는 내용이 소개되었습니다.우리는 잘 올라타지도 못하는데 그 무거운 스케이트를 신고 공중묘기와 뒤로 타고 가고 장애물을 넘는 묘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도전과 좌절을 통해서 결국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는 기술을 익히고 성공한 것입니다.

오늘 세상에서 우리는 불가능할 것같은 일들이 실제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위인 전기 시리즈에서 빠짐없이 등장했던 인물중에서  동경했던 사람이 에디슨입니다. 에디슨은 인류역사를 바꾸어 놓았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발명을 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라고 했습니다.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인생에서 땀을 흘리는 노력만 하면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우리가 보기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이룩했습니다. 우리가 즐겨듣는 라디오 어둠을 밝히는 전깃불 모두가 에디슨이 발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와 성취를 이루기까지는 사실 대부분 처음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믿었던 것들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뛰어넘어야 할 불가능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개인마다 가정마다 또 교회마다 건너야 할 요단강같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 중에서 이런 불가능 앞에서 좌절을 맛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전하여 불가능을 극복하는 경우도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에 불가능의 요단강의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의 길목에 불가능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불가능한 장애물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냥 포기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요단강을 결국 건넜습니다.  어떻게 불가능한 요단강을 건널 수 있습니까?

1. 먼저 도전해야 합니다. (1절)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기 도전합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 아침일찍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준비하여 요단강에 이르러는 것을 봅니다.그리고 거기서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함께 요단강을 즉시로 건너지 않고 3일동안 기다렸습니다. 그 3일은 먹고 놀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불가능한 강을 도전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입니다.

여기 요단강 앞에서 여호수아는 어떻게 도전하고 있습니까?
“아침일찍”일어나서 먼저 강을 건너는 도전을 위하여 준비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250만명이 되는 많은 백성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분명히 어려운 일인지 알면서도 아침일찍 일어나 불가능한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 도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어떻게 요단강을 건널지 구체적인 준비도 없지만 여호수아와 함께 믿음으로 도전하여 요단강까지 왔습니다. 여기 지도자 여호수아도 포기하지 않고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불가능한 요단강 앞에서 기죽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도전하였습니다. 배도 없고 건널 수 있는 어떤 도구가 준비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도전했습니다.

위기를 만나고 불가능한 상황 앞에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같이 모든 사업이 잘 안되고 점점 불가능한 것같은 현실의 암울한 장벽 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포기합니다.또 계산이 빠른 사람들은 현실적인 계산을 앞세워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따지면서 분석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두려우면 포기합니다. 계산을 앞세우면 포기합니다.
세계 제2차 대전에서 미국의 루스벨트대통령과 함께 승리를 이끌었던 위대한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입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햇습니다. 영국수상이었던 처칠이 자신이 졸업한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연설을 부탁받았습니다.그런데 강단에 올라가 그는 말 한마디만 하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결코,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이 한마디는 오늘날까지 많은 명연설문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그런 말을 했을까요? 본래 처칠은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명연설가요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가 도전할 수 있습니까?
누가 용기있게 도전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해 보이고 너무 높은 이 장애물을 누가 도전할 수 있습니까? 지식의 사람일까요? 유머가 좋은 사람일까요? 말재주가 좋은 사람일까요?
아무도 가지 않는 길,때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너무 힘들어서 물러서고 싶은 장애물을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편이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하나님이 나를 승리하게 하신다”라고 믿는 이 믿음이 우리를 세워줍니다. 우리를 앞으로 도전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정으로 믿음의 사람은 어떤 모습입니까?
오늘 본문에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여기 여호수아는 아침일찍 일어났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최선을 다하면서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하여 준비합니다. 우리가 불가능해보디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최선을 다하셔야 하지만 먼저 내가 최선을 다해서 도전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의 많은 인물 중에서 여호수아를 좋아합니다.
여호수아는 광야교회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많은싸움도 해야 하고 많은 장애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훌륭하게 이루어내기때문입니다.그런데 그렇게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까지 여호수아가 도전하여 성공할 수 있었던 그의 개인적인 비결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여호수아서 곳곳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6:12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라”
7: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나오게 하였더니”
8: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라고 하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실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을 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안일하게 과제를 처리하지 않았습니다.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과제를 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는 여호수아입니다.
오늘 과제를 앞에 둔 사람들을 향해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풍성한 축복이 주어졌습니다.그런데 그 축복을 나의 것으로 삶기 위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있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인생의 전쟁터에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불가능해 보이는 그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나는 준비하고 노력하고 땀을 흘리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훈련해야 합니다.이 성실함을 우리가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광야를 거치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만나가 일용할 양식만 된다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남겨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내가 났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언제나 해가 쪼이기 전에 거두어야 하는 양식입니다. 출애굽기16장21절에 보면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늦게 나가는 사람은 식량을 구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게으른 사람은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어떤 인생의 위기,어떤 도전 앞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자 길이 열려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불가능한 장애물도 결국 믿고 최선을 다하는 자가 두드리면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믿고 최선을 다해서 도전할때에 내 앞에 불가능의 요단당이 갈라지는 역사가 만들어지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3절)

여기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 레위사람 제사장들에게 언약궤을 메고 앞서 가게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한 2천규빗정도 앞서 간 제사장들의 언약궤를 보고 좇아가게 하였습니다.여기 2천규빗은 약 800미터 거리를 두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왜 언약궤와 사람들 거리를 떼어놓고 좇아가라는 것입니다. 여기 언약궤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입니다. 언약궤가 앞장 서서 갈 때 하나님께서 앞서 가는 것입니다. 성소 안에서 지성소 안에 있던 언약궤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왜 그렇게 거리를 두었습니까? 그래야 잘 보입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250백만 이상되는 사람들입니다. 상거가 멀어야 누구든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선명하게 언약궤를 초점을 맞출 수 가있습니다.
왜 모든 사람들이 언약궤를 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함을 보라는 것입니다.너희들 남녀노소가 시선을 다른데 두지 말고 하나님의 궤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궤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먼저 우리의 초점이 머물러지기를 바랍니다.지금 이스라엘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도 인생을 두 번 사시는 분이 없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분도 인생을 한번 삽니다. 그리고 오늘 인생길은 한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우리 모두가 지금 신비로운 최초의 인생길을 향해 오늘도 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여러분 때때로 우리가 여행을 할때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 어떤 마음이 일어납니까? 한편으로는 설레임도 일어나고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일어납니다. 여러분 중에 차를 처음 끌고 서울에 갔을 때 상황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저도 차를 처음 배워서 서울을 갔을때에 설레임도 있지만 사실은 두려움이 맣았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 중에서 저에게 큰 힘이 되는 도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지도입니다. 그래서 저의 차 속에는 항상 지도가 있습니다. 특히 자세하게 소개되는 지도가 있으면 거의 찾아갈 수 있습니다. 자세한지도에 보면 건물하나까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지도를 보고 따라가면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린 인생길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좇가 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불가능의 장애물을 만나도 말씀대로 순종하기를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강을 건너는 길은 두려움의 길이요 미지의 길이요 불가능의 길이었습니다.지금 이런 상황에서 다른 어떤 상황보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앞서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께 초점을 두고 있습니까? 내 삶이 미지의 길,두려움과 어려움 앞에 있을 때 나는 초점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인생의 난관을 만날 때 하나님은 길을 내십니다. 요단에서 광야에서 길을 내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시각을 갖고 고공에서 인생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길을 찾고 거기에서 해결이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요단강을 건너는데 필요한 것은 언약궤가 아니가 배가 필요하고 어떤 장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좇아 강을 향해 나가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됩니까? 13절을 보면 이 요단강을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발바닥이 요단 물에 닿자 요단 물이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사장들이 끝까지 요단강에 들어서기까지 말씀을 붙잡고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12명의 제사장들이 강 앞에 갔을때까지 여전히 강물은 아무 변화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물이 제사장들의 발이 닿자 마자 마치 큰 손으로 밀어내듯이 강물이 뒤로 물러났습니다. 제사장들은 마른 강바닥에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게 됩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끝까지 그 말씀을 붙잡고 가는 순종입니다. 여기 요단강이란 장애물 앞에서도 끝까지 언약궤를 붙잡고 간 제사장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할 수 있는 시작이었습니다.말씀 가운데 주님의 임재하심이 있습니다. 온전한 순종 가운데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를 하면서 목회의 원칙을 ‘제자훈련의 원칙’ 위에서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이 원칙을 순종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지상명령이 제자삼으라는 명령입니다.마태복음 28:19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끝까지 집중하면서 순종하신 사역이 바로 제자훈련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무엇보다도 이 사역을 끝까지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순종을 하기가 솔직하게 개인적으로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순종할때마다 제가 경험하는 것이 주님의 임재하심입니다. 저는 제자훈련 속에서 개인적으로 솔직하게 주님의 임재하심을 더욱 경험하게 됩니다.

때로 비록 어떤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때가 있어서 실망하지만 그럴때로 묵묵히 제자훈련을 하면서 주님께서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서 내 자신이 큰 힘과 도전을 얻습니다.물론 이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발이 강물에 바로 담기기 전의 자리에까지 순종하였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는 자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십니다. 그사람이 그 교회가 결코 이땅에서 낙심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권세있게 역사하여 주실줄 믿습니다.

어떤 고난이 있고 낙심이 있고 힘이 들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묵직한 모습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시는 절대믿음의 사람 절대 순종의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우리 몸을 성결케하여야 합니다. (5절)

여기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모든 백성에게 성결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요단강을 내일 건너게 하실 것인데 그 거룩하고 위대한 일에 동참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지금까지 요단강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게 모르게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삶을 살았다면 이제 모두가 철저하게 성결로 재무장해야 합니다.
요단강 앞에서 이상한 명령을 하십니다.성결케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말씀입니다. 지금 필요한 명령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이 강을 건널 것인가? ”이 창궐한 강물 어떻게 건널 것인가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결하라고 합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는 대답입니다.

오늘  어려운 사업 앞에서 하나님은 거룩하라 고합니다.
내 삶의 문제 앞에서 고민하는 진정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나의 거룩함이 문제입니다. 너가 나에게 합당한 존재인가 그것을 먼저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하나님에게 합당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작은 그릇도 쓰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릇을 스십니다. 그러나 절대로 쓰지 않는 그릇이 있습니다. 더러운 그릇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이 어렵고 힘이 들 때  방법을 찾고 기술을 찾습니다.문제가 해결될 것만을 우리가 구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사람을 찾으십니까? 성결한 사람 깨끗하여 주님을 찾고 마음에 사모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십시오.계속하여 비리와 불법과 부정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날마다 시끌법석을 부리고 있습니다. 물론 법을 개정하면 조금 좋아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바뀌면 조금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한 두사람이 깨끗해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성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삶은 어렵고 힘들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물론 해결하기 어려운 경제의 문제,질병의 문제,상처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고민 앞에서 “너희는 거룩하라”고 하십니다.
내 병이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내 가족이 회복할 수 있을까?내 기업이 잘될 수 있을까?우리 교회가 잘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고민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너자신이 성결하라”“ 너교회가 먼저 성결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공격하여 멋있게 승리합니다.그런데 여리고성 다음에 아이성이라는 작은 성을 공격하다가 36명이 죽고 보기좋게 패합니다. 여호수아는 당황하여 하나님께 울부짖으면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부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아간이라는 사람이 여리고성을 공격하다가 탐심으로 금과 은과 외투한벌을 훔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부정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죄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아이성을 공격하여 정복하게 됩니다.그리고 다시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결한 사람을 주님이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성결한 교회를 통하여 일을 하시고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자신이 성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나를 먼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는 성결한 신자,건강한 신자입니까? 아니면 병든 자입니까? 고린도후서13:5에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요단강 앞에서 먼저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보기를 원하십니다. 정직한 자기 반성을 통해 내가 정말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했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종종 신앙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진작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 만족에 빠져있고 자기를 속이는 죄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의 삶에 가장 성결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탐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고 바울은 지적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믿음을 믿음되게 하지 못하고 성결한 삶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주제가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번다라고 합니다.그런데 언제 탐심인지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손해보고 희생해야 할때 보면 우리의 신앙의 성결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여러분 성결한 성도 성결한 가정 교회가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성결한 삶으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까?그렇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때마다 나의 허물과 나의 부족함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피에 의지하여 고백할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결케하여 주십니다. 아무리 더러운 옷도 세탁소에 같다오면 깨끗해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피로 성결케되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은 성결한 자기 백성의 삶 속에 임재하십니다. 주님의 성결한 백성들을 인도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나에게 있는 어려움,나에게 있는 장애물,모든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도전하시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시고 오직 성결한 삶으로 살아가심으로 주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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