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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생의 생활 원칙 (빌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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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창인 목사 (광성교회)


빌립보서 3장 1절에서 3절까지 있는 말씀 가지고 '여생의 생활 원칙'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생'이라 하는 말을 제가 쓴 이유는 여기 3장 1절 맨 처음에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라고 했는데 이 종말이란 헬라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남은 문제'이렇게 변역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문제는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뜻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가지고 살아왔지만 이제 앞으로 우리의 남은 문제는 뭐냐? 하는 말입니다. 또 남은 문제는 남은 일로 생각해도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으며 살아 왔지만, 앞으로 우리 여생은 바로 이런 문제, 이런 일로 살아가야 할 것 아니냐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남은 여생의 생활 원칙은 무엇인가 본문이 가르쳐 주는 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I. 기뻐하라(1절)

1. 형제의 기쁨(1상반절)

기뻐하라 이것이 원칙입니다. 우리의 남은 여생 살아갈 때는 기뻐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울지도 말고, 원망하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기뻐하는 것도 세 가지 기쁨을 얘기합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하십니다. 형제들아 기뻐하라, 기뻐할 주체가 누구냐 하면 우리 형제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의 기쁨'입니다. 조선 왕조 태종이라는 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가 안녕, 둘째로는 효녕, 셋째는 충녕입니다.

그런데 이 세 아들 중 맏아들 양녕을 왕세자로 책봉할 수밖에 없어서 세자로 책봉했는데, 왕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셋째가 제일 나았습니다. 이리 뜯어보고 저리 훑어보아도 셋째를 왕으로 세워야겠는데 그럴 수는 없고, 임금에게는 큰 근심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양녕이 자기가 이제 임금이 될 것을 알고 열심히 공부하고 왕도를 수업하다가, 아버지의 안색을 보고 아버지 심사를 헤아려 보니 무엇인가 있었습니다. 막내 동생을 왕으로 세웠으면 하는 생각을 아버지가 갖고 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아버지 뜻을 잘 받들어서, 어떻게 하면 왕위를 막내 동생에게 부작용 없이 물려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그 날 밤부터 거짓으로 미친척 했습니다. 그전에 안 하던 술 마시고, 여자들만 좋아하고 왕자가 못할 짓만 하고 다니니 주변에서 이 사람은 안 되겠습니다 하여 왕세자로 봉했던 것을 취소해 버렸습니다. 둘째 효녕대군이 생각할 때 다음 차례로 착각하고 그 전에 놀고 먹던 그가 이제 열심히 왕 노릇 할 준비 공부를 하는데, 양녕의 생각에 이 동생도 아버지 의중의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밤중 동생 효녕을 찾아가서 정색을 하고 하는 얘기가 "내가 진짜 미친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의도와 뜻이 이러니 동생 잘 알아서 하게"하고 말했습니다. 동생은 생각하는 바가 있어 형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 하고 그 날 밤,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 중이 되었습니다. 결국 충녕에게 자리가 돌아갔습니다. 충녕이 왕이 되어서 나라를 잘 다스렸는데 이 왕이 세종대왕입니다.

후에 역사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이 양녕대군은 왕위가 동생에게 돌아간 것을 한탄해서 폐인이 되고, 술 먹고 타락해 버렸다지만 그것은 겉모습만 보고 쓴 것이고 실상인즉 양녕의 속마음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머리서 끝까지 미친 척하고, 동생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절에서 목탁을 두드리지만 둘째도 동생을 보고 기뻐하였으니, 가문이 견고해지고 나라가 태평 세월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형제가 우애하고 서로 도와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드는 가정이 잘되고 나라가 잘되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형제들아,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기쁨이라는 것은 형제를 가져본 분 아니고는 형제의 기쁨을 모릅니다. 나는 친형, 친동생이 없으니까 남들이 동생 형님 하는 집안에 형제들이 쭉 둘러앉아 부모님 모시고 참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또 장가가면 처형, 처제가 있는 집이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딸도 하나밖에 없는 집안이라 처형, 처제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처형, 처제 소리 한 번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때문에 형제가 있어서 우애를 나누는 일이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인 줄 아셔야 합니다. 형제가 없으면 이렇게 안타깝고 외롭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다 형제가 된 것이 얼마나 기쁘냐! 하는 말입니다. 육신의 피를 받은 형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고, 영원히 바울 사도를 향해 내가, "형님, 안녕하십니까?" 내가 하늘나라 가면 바울 사도가 나더러 "동생 김 창인 목사 그 동안 얼마나 수고하고 왔느냐?"고 하면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형제의 기쁨,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형제의 기쁨,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인 줄 믿으시고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2. 주안의 기쁨(1상반절)

바울 사도는 예수 밖에서 하나님 믿다가 혼이 났습니다. 그는 예수를 안 믿었습니다. 예수는 안 믿고, 하나님만 믿을 뿐, 예수 믿고 따르는 사람을 박해하고, 없애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충성인 줄 알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재산을 빼앗고, 나누어 가지며 기뻐하고, 예수 믿는 사람 붙잡아 때리고 살려 달라면 쾌감 느끼고, 예수 믿는 사람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증거, 증명인 줄 알고 그렇게 기뻐하던 바울이 마지막에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를 환상 중에 만나보고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소경이 되어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항복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 안에 들어와 보니 예수 밖의 믿음은 지금까지 헛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지금 이 편지 쓴 것은 로마 감옥에 갇혀서 수 없이 두드려 맞고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밤잠 못 자로 그렇게 고생하던 중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내가 옥중에서처럼 너희도 기뻐하라.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이렇게 기쁘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석가모니 안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자 안에 있었다면..... 우리가 예수 안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안에서 기뻐합시다'.


3. 안전의 기쁨(1하반절)

강철왕 카네기가 자치가 운전할 운전 기사 모집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응모해 왔는데, 시험을 치르고 다 떨어뜨린 후 마지막으로 세 사람 남기고 면접을 합니다. 맨 처음 사람을 보고 지금 위험 표지가 있는데 무엇이냐 하면 조금 가다 급커프가 있다는 표지이다. 급커프 옆에는 천야만야 벼랑이 있어서 떨어지게 되면 사람의 뼈도 못 추릴 곳인데 어떻게 해서 돌아갈지 말해 보랬더니 첫째 사람이 말하기를 "예 사장님 저는 위험 표지가 붙었지만 그것은 안중에 없습니다. 급커프를 돌아가려면 속도를 줄이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속도를 줄일 것도 없이 쫙 달리다가 낭떠러지 떨어지기 전 30cm, 약 한 뼘 남기고 돌아 갈 수 있습니다. 그만한 실력입니다."

두 번째 사람에게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묻습니다. 저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겠는데 가다가 속도를 줄이고 30cm까지는 자신이 없고 1m 남기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 자네는 저 사람보다 못하구먼. 그리고 셋째 사람에게 물으니 '저는 위험 표지판이 있다면 그때부터 속도를 줄이겠습니다. 급커브를 돌 때는 낭떠러지 쪽으로는 절대 안 가고, 이쪽 산 언덕 쪽에 붙여서 천천히 돌아가겠습니다. 저쪽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때 카네기가 말하기를 "자네가 내 운전 기사가 되게"라고 결정했답니다. 카네기가 세운 선정 기준은 안전제일주의였기 때문입니다. 제 기술, 제 재간 믿고 30cm, 1m해야 아차하는 순간 사고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안전이 제일입니다. 내 믿음 같으면 '여호와의 증인' '구원파' 누가 뭐래도 자신있다! 해도 조심해야 합니다. 거기 넘어가는 사람이 넘어가겠다고 해서 넘어갑니까? 그렇게 자신하던 사람이 넘어갑니다. 안전이 제일입니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주안에서 기뻐하라 하더니 엉뚱한 말이 왜 나옵니까?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세우고, 지금까지 이렇게 믿어라, 저렇게 믿어라 믿음을 잘 키워준 후에, 이것을 조심해라 이것은 위험하다 그렇게 경고해 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에 내가 경고해 준 말을 다시 같은 말로 너희에게 편지로 써서 보내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다. 수고로 느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빌립보서를 편지지로 쓰면 스무장도 모자랍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게 긴 편지를 써 보내는 데도 절대 수고롭게 느끼지 않을 정도로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생활에서 주의할 것, 삼가고 경고할 바를 내가 다시 써도 좋다 그렇게 할 때 '너희 믿음에는 안전하다'는 말입니다.

그 편지를 받아 본 빌립보 교인들을 보십시오. 다른 교회 교인들은 유대주의, 율법주의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노시스 이단이 문제가 되고 파당이 생겨서 교회 안에서 난리가 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에선 그것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교회가 안정하고 평안하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안정하고 평안하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기뻐할 일인지 모릅니다. 교회가 한 번 싸워 보십시오. 교회가 수라장이 되면 내 믿음이 깨지고, 내 사업까지 영향이 오고, 내 가정에까지 와서 부모 형제가 싸우게 됩니다. 가정의 평안은 교회의 평안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의 교회가 안전하다는 것을 무엇보다 기뻐해야 한다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형제의 기쁨, 주안의 기쁜, 안전의 기쁨입니다.


II. 삼가라(2절)


1. 개들을 삼가라(2상반절)

첫째로 개들을 삼가라고 합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하나님 차는 것 봤습니까? 못 보셨지요? 이 개들이 싸우다가 지게 되면 끙끙거리고, 주인이 때리면 끙끙거렸지, 하나님 찾는 소리는 안 합니다.

둘째, 개가 감사하는 소리 들어 봤습니까? 고구마 구우면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놀던 개들이 달려오면 알맹이는 주인이 다 먹고 껍데기만 주어도 좋다고 꼬리를 흔듭니다. 꼬리 흔드는 것은 감사하다는 것이 아니고 좋다는 것입니다. 좋다는 것과 감사함은 다릅니다. 공산당들도 좋아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는 안 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좋아할 줄 알면서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광성교회에 나오는 사람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내 생일이 되었는데 집안 식구, 친척 다 불러서 생일 차려 즐깁니다. 좋아할 줄 알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줄은 모릅니다. 그것이 고구마 껍데기 얻어먹으면서 꼬리 흔들며 좋다고 하는 것하고 무엇이 다릅니까? 좋아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개는 좋아할 줄 알면서 감사할 줄 모릅니다.

개는 자기 어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윤리가 없고 도덕이 없고 양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교인에게 조심하라는 얘기요, 믿지 않는 사람에게 조심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개와 같은 짓 할까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고 예의도 없고 인사도, 양심도 없고 이런 짓 할 까봐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파렴치한 사람이라는 것이요, 파렴치한 사람만 조심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에게 오염되어서 나도 그런 짓 할까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심 없는 짓, 예의가 없는 짓, 이런 짓 할까 항상 조심해야겠습니다.


2. 행악하는 자를 삼가라(2중반절)

여기에 "행악하는 자"의 뜻은 파당을 지어서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자 입니다.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지어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자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도계교회 부흥회 첫날, 열 한 번째 계명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교인들이 그런 것도 있었나 하고 눈이 둥그래집니다. 우리 교인은 알 것입니다. 열 한 번째 계명이란 곗놀이 하지말라 하시니라 입니다. 저는 이 소리를 일년에 한 번 내지 두 번은 꼭 합니다. 우리 교인들이 곗놀이 하다 만약 들키면 권사, 집사, 구역장, 사표내야 합니다. 할 일이 없어서 곗꾼 두목 노릇합니까?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제일 못된 것이 곗꾼이기 때문입니다. 남편들이 월급 타오면 큰 음식점에 가서 12사람, 권사 집사 몇 명 권찰이 끼어서 1년이면 한 바퀴 돌고 재미 보고 누구도 안 끼워주고,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아 삼년이 지나면 그 패거리는 깰 수가 없습니다. 깰 재주가 없습니다. 같은 권사이면서도 저 권사 아들 결혼식에는 안 갑니다. 그러나 자기 계 패거리 권찰의 아들은 먼 곳에서 결혼식 해도 비행기 타고 갑니다. 교회 안에서 권사가 이렇게 해도 됩니까? 교회가 이 꼴 돼도 됩니까? 패거리를 지어서 끼리끼리 모이고 너는 내 알 바 아니고, 이것이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작당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작당해서 돌아다니는 것이 제일 나쁩니다. 이것이 만일 깨질 때, 계 패거리가 원수가 되어 싸우는데 목사가 수습을 할 수 없습니다. 잘 돼도 교회 손해요, 깨져도 교회 손해입니다. 그래서 열한 번째가 '곗놀이 하지 말라 하시니라'입니다. 그러기에 돌아다니면서 패거리 짓지 않도록 조심하고 나도 그 패거리 중의 하나가 될까 항상 삼가고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3. 외식하는 자를 삼가라(2하반절)

외식하는 자는 손할례당을 가리킵니다. 할례라는 것은 어머니가 아들을 낳았을 때 여드렛만에 양피 끝의 가죽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요즘 포경 수술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흔적이 생겨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 한 것은, 그 몸의 상처로 죽을 때까지 너와 나의 약속한 증거로 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흔적을 볼 때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 받은 뜻은 없애버리고 흔적만 가졌으니, 나는 무슨짓 해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구원받는다 형식만 갖추고 알맹이가 빠졌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들을 손할례당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 외식하는 자들, 겉만 뻔지르 하고 알맹이 없는 자가 될 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뭐냐하면 교회 나와 예배 할 때는 거룩하고 감사하고 기도도 잘하지만, 교회 밖을 나서는 순간 전혀 다른 사람이 될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지 말고 예수의 흔적을 가진 성도답게 말씀대로 살기를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개같이 파렴치한 성도가 되어서도 안되고, 패당 지어 돌아다니며 문제 일으킬가 조심하고, 외식하는 자 즉 손할례당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III. 일하라(3절)


1. 봉사하는 일(3상반절)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했습니다. 우리가 봉사할 때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 받아 봉사하는 것입니다. 내 감정, 내 힘으로 봉사하면 그것은 하나님 일이 아니고 사람의 일입니다. 성령으로 일할 때가 하나님의 일이요, 성령으로 봉사할 때가 하나님의 봉사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나보다 열배 백배, 훌륭한 분이 성령이요 그 성령의 도움 받아 일하면 내 능력보다 열배 백배의 결과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김씨 총각이 살았는데 너무 가난해서 농사철에 머슴살이하다가 일년에 쌀 몇 가마니 받아서 겨울철에는 자기 집에 돌아와 살았습니다. 그렇게 가난한데도 교회는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자문을 펴도 하늘 '天'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릅니다. 그렇게 무식합니다. 그래도 참 착합니다. 바로 그때가 고종황제가 일본 사람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죽기 얼마 전에, 일본인들이 압력을 넣고 거느리는 궁녀를 돈주고 궁 밖으로 내보내게 하여 다 내보내었습니다. 그럴 때, 궁녀 중 하나가 바로 자기 고향으로 한밑천 갖고 내려왔는데 바로 그 동네였습니다. 그러는 중 목사님이 와서 전도하니까 예수 믿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얼마나 좋은지 몰랐습니다. 교회 열심히 나가던 착한 총각이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지만, 목사님께서 그 궁녀와 중매하여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날밤부터 하늘 천 따지, 가 갸거겨 가르치고 논어, 맹자 다 떼고 평양신학교 노내서 17회로 졸업했습니다. 그 남편이 김아무게 목사가 아닙니까. 나중에 통영교회, 경남노회장까지 지내고, 부산 누창교회에서 마지막 봉사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회갑 잔치가 차렸을 때 이 영광은 전부 하나님께 드리고 아내에게 돌린다고 했습니다. 자기보다 열 배도 더 나은 아내의 도움을 받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낸 내가 이만큼 된것,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 둘째는 아내의 도움이라는 것입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의 도움 받으면 나 이상의 실력이 나옵니다. 나보다 열배 백배 나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봉사하면 열배, 백배의 성공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각자의 남은 삶을 기뻐하면서 또 삼갈 것 삼가면서 해야 할 일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자랑 하는 일(3중반절)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예수를 믿기전에 자랑하던 것이 몇가지 잇습니다. 가마라엘의 문하생 임을 자랑스럽게 여겨 어디를 가든지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사실 가말리엘은 율법과 전통을 엄수하고 그의 율법적인 해박한 지식에는 견줄자가 없을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공회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을 만큼 권위도 있었습니다. 율법의 영광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가말리엘에게서 배운 것을 몹시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에서 받은 위임장을 자랑하였습니다. 당시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자랑할 만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여러 연갑자들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다고 할 만큼 유대교인 임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은 후에는 이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 처럼 버렸습니다. 한 번은 아덴에서 에비 구레오와 스토이고 철학자들과 철학논쟁으로 전도에 실패한 다음부터는 오직 예수와 십자가만 전하고 자랑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라는 말을 서슴 없이 하였습니다. 즉 예수 믿고 예수 안에 들어와 보니 자랑할 것은 예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중에는 앉기만 하면 제자랑하고 남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역겨운 존재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교역자들중에는 자기가 무엇을 주는것처럼, 그리고 자기 교회에 와야만 문제가 해결되고 은혜 받는 것처럼 오만 불손한 자들도 잇습니다. 제 자랑의 챔피온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예수만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여생의 생활원칙이어야 합니다.


3. 신뢰하는 일(3하반절)

하나님만 신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 하는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특권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과 할례를 받았다는 것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을 저버린 혈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할례의 근본 뜻을 망각한 육체적 할례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이처럼 육체적인 또는 혈통적은 것을 신뢰하지 않고 오직 아브라함의 하나님만 신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참 할례당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의 건강이나 주먹을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작의 명철한 두뇌를 하나님 보다 낫게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 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이사야2장22절)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여호와만 신뢰한 여호사밧은 승리하였습니다.(역대하 20장 20절) 바울 사도는 예수 믿기전에 육체를 신뢰한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다 해로 여겼습니다(빌립보 3장 4절-7절) 그러므로 하나님만 신뢰하고 사는 일은 우리 여생의 생활 원칙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면 우리 여생의 삶을 기뻐하라 삼가라 일하라는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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