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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Fire from the Heaven)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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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빈 목사 (동광교회)


불(Fire from the Heaven) / 행전 2:1-4 / 2004. 4. 25. 주일예배 / 설교 : 장빈 목사

오늘은 부활주일이 지난 두 번째 주일이요, 하여 우리는 지금, 부활 절기를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부활절은 우리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입니다. 이미 우리는 부활 주일을 앞두고 사순절 40일 동안의 준비 기간을 지냈었고, 그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4월 11일,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기쁨의 50일간, 곧 부활 절기를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부활주일 이후 기쁨의 50일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부활 주일은 곧바로 성령강림주일을 향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 주님의 부활 사건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하지 않고서는 주님의 부활 사건이 오늘 우리 안에 재현될 수 없으며 또한 완성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대목입니다. 부활 사건은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재현되며 완성됩니다. 하여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그렇게도 끊임없이 성령을 받으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가겠습니다. / 요한 20:21-22 / (읽기) / 지금 부활하신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장면인데요, 하지만 제자들을 저 험한 세상으로 내보낼 생각을 하니 주님의 마음이 불안하셨습니다. 왜? 저들의 앞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우리 주님,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 주님, 부활하신 후, 곧바로 승천하시지 아니하시고, 무려 40일 동안을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부활 절기가 바로 그 기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기간 중에 주신 말씀의 하나가 방금 읽은 요한복음 20장 22절의 말씀인데요,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 요한 20:22 / (읽기) / 부활하신 주님의 마지막 명령은 간단합니다. “성령을 받아라!” 무슨 뜻입니까? 제자의 길,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요, 요한복음 20장 22절을 자세히 보니, 우리 주님, 성령을 받아라! 말씀하시기 직전에, 아주 독특한 행동 하나를 취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무슨 뜻입니까? “제자들을 향하여, 후! 하고 숨을 내쉬신 후에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후!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아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 당신의 가슴 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숨까지 제자들의 가슴 속에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그만큼 우리 제자들에겐 주님의 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숨을 받지 못한 제자, 영적 호흡이 가빠집니다. 주님의 숨으로 숨쉬지 못하는 제자, 조금만 힘이 들어도 도망갈 궁리만 합니다. 영적 힘이 없어 주신 소명 끝까지 이루어 드리지 못합니다. 왜? 주님의 숨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면서도, 그는 다락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자기 가슴 속에만 간직한 채, 세상에 나가 전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여전히 다락방에 들어앉아 있었던 이유, 간단합니다. 그가 주님의 숨을, 곧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여 오늘 이 아침, 여러분과 함께 간구하는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이것입니다. 주님의 숨결이 우리의 숨결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숨결이 곧 주님의 숨결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여 주님의 숨으로 호흡하며, 세상에 나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주님의 강한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소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 우리는 “불”이란 제목의 말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요, 주보를 보니, “불”이란 우리 말 제목과 함께 주신 영어 제목이 있습니다. “The Fire from the Heaven!  이 제목은 하비 콕스라는 미국의 대 석학이 당신의 교수 인생을 총 정리하면서 출판한 큰 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세속 도시”라는 책으로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하비 콕스! 그가 이 책을 출판하게 된 기본 동기는 이것이었습니다. 21세기를 책임질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서구 교회는 왜 이리 힘이 없는가? 그렇다면 과연 어떤 교회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영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부활하신 주님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을 것인가? 해서 노 교수는 우리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교회들을 직접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오랜 탐방 후에 그가 내린 결론이 바로 이 책의 제목입니다. 내용인 즉, 여전히 살아 숨쉬는 교회를 가 보니, 모두가 다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였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불어넣어 주신 숨으로 충만한 교회는 지금도 살아 영적 영향력을 발휘하더라는 겁니다. 그 안엔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로 가득하더라는 겁니다. 하여 하비 콕스 교수의 마지막 결론 역시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불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불같은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비 콕스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영성이 살아 있는 교회를 들여다보니, 첫째 그 교회는 여성성이 살아 있는 교회였고, 둘째, 그 교회는 음악성이 살아 있는 교회였다는 점입니다. 여성성과 음악성이 살아 숨쉬는 교회, 바로 영성이 살아 있는 힘이 있는 교회더라는 겁니다. 하여, 여성성, 영성, 음악성을 하나로 묶어, “The Fire from the Heaven”이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비 콕스 교수의 방대한 책을 다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이 한 가지 사실만은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성에는 두 날개가 있다! 하나는? 여성성, 다른 하나는? 음악성! 그렇습니다. 여성성이 죽으면 영성이 죽습니다. 또한 음악성이 죽으면 영성이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여성성과 음악성이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일입니다. 여성성과 음악성을 살려내는 것, 그것이 영성을 살려내는 길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우리 동광 교회가 참 모범적인 교회라고 자부합니다. 왜? 우리 교회는 여성성과 음악성이 살아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부족한 종, 늘 이렇게 기도하며 꿈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동광 교회, 영성이 살아 숨쉬는 교회 되게 해 주옵소서. 하여 마침내 21세기 대한민국과,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영적으로 책임지는 교회, 정년 동녘의 빛으로 서는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자, 그러면, 이제 하늘로부터 내리는 불같은 성령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네 가지 처방을 받으려고 합니다. 말씀의 처방전을 잘 들으시고, 그대로 실천하시어 불같은 성령으로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1.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라 하십니다.

1:4-5 / (읽기) / 성령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곧 성령 세례를 받기까지, 여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해서 1장 4절을 보면, 저들이 사도와 같이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1장 13절에서도, 저들이 다 거기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분부에 따라 저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때에, 2장 1절이지요. 마침내 저들에게 성령이 임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루살렘, 곧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 우리는 여기 아버지의 집에서만 성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선물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여 아무리 큰 백화점이라 해도, 성령의 선물을 구할 순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유명한 학원에 간다고 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유수한 기업체에 다닌다고 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곳, 오직 여기 아버지의 집뿐입니다. 해서 우리 주님, 여기를 떠나지 말고 여기서 성령 세례를 받으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서 있는 바로 여기 여기가 예루살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가정, 내 교회, 내 조국이 곧 예루살렘입니다. 다른 데 쳐다 볼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한 눈 팔 것 하나도 없습니다. 내 마누라가 최고요, 내 남편이 최곱니다. 내 부모님이 최고요, 내 자식이 최곱니다. 우리 목사님이 최고요 우리 성도님이 최곱니다. 우리 교회가 최고요, 대한민국이 최곱니다. 바로 여기가 우주의 중심이며, 바로 여기가 예루살렘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남의 집 기웃거리는 사람 치고 제대로 사는 인생 하나도 없습니다. 남의 집에 가 있는 내 남편이나 아내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내 자녀들이 여기 살아있는 나 부모의 집을 놓아두고 엉뚱한 남의 집으로 자꾸 간다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아니 됩니다. 자기 집 놓아두고 남의 집에 들어가 있는 사람,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요, 철부지 중의 철부지입니다. 해서 여기를 떠나지 말고, 자기 자리 잘 지키라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가 복 받는 자리입니다. 여기가 성령이 강림하시는 자리입니다. 부디 여기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를 떠나지 마시고 아버지의 집에서 하늘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남아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십니다. / 1:14 / (읽기) / 여기에 남아 무엇에 힘쓰라 하십니까? 기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일, 전혀 기도하는 일입니다. 전혀 기도하는 일에 힘쓰라, 딴 생각하지 말고, 한눈팔지 말고, 오직 기도에만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거기 나와 있군요. 14절의 후반부인데요,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 그렇습니다. 전혀 기도에 힘쓰기 위해선, 먼저 더불어 기도하고, 또한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입니다. 더불어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 또한 같아집니다. 더불어 기도하니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합심으로 기도하는 경지인데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 주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는 제자, 정말 피곤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제자, 입을 열면 짜증부터 냅니다. 기도하지 않는 제자, 같이 일할 맛이 나질 않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제자란 먼저 기도하는 제자입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 오직 기도 소리이어야 합니다. 축복의 기도, 중보의 기도, 대속의 기도, 사랑의 기도, 살려내는 기도, 힘을 주는 기도, 격려하는 기도, 응원하는 기도, 기도, 기도, 기도, 오직 우리 입에선 기도 소리만이 들려야 합니다. 툭하고 건드려도, 톡하고 터져서 그 입에서 나오는 말, 오직 기도 소리이어야 합니다. 제자로 산다는 것,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린 여전히 큰 소리를 치며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내 입술로 당신을 비방하고, 심지어 내 입술로 당신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당신을 향해 자꾸 눈을 흘기며 인상을 쓰기도 합니다. 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입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마음이 갈라집니다. 한 마음이 되지 못하니, 모든 일에 입을 열면 당신과 대립하게 됩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싸우는 것 아닙니다. 순전히 감정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게 되고, 기도하지 않으니 작은 일에도 말다툼부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하지 않는 이에게는 사탄의 역사만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우린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여기 아버지의 집에 자꾸 모여,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자리 자리마다 열심을 내어 나오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성령을 받는 일에 다른 왕도가 없습니다. 부지런히 아버지의 집에 오시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심으로, 하늘로부터 내리는 불같은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듣고 세례를 받고, 안수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행전 19:1 / (먼저 읽고) /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러 제자들을 만나고 있군요. 그런데 2절에서 바울이 저들 제자들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합니다. 2절인데요,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초보 신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믿을 때에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그런데 저들이 무어라 대답합니까? 역시 2절인데요,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거기 듣지 못했다는 답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무도 들려주지 않아서 성령이 계신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먼저 믿은 자들이 들려주지 않아서, 성도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그래서 성령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니, 경을 칠 일입니다.

해서 지금 저들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저들에게 바울이 주의 복음을 제시하고, 제대로 믿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자 저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5절인데요, 거기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듣고, 세례를 받았다, 표시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들어야 믿을 수 있고, 믿어야 세례를 받게 되는 법, 그런데 그가 듣기 위해선 내가 그에게 들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나는 사랑하는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까? 내 입에서 나가는 이야기들이 당신의 가슴 속에 어떤 영향을 끼칩니까?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혹시 내 주변에 아직도 성령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진 않습니까? 여러분, 내가 들려주지 않아서, 그가 성령의 존재조차 알지 못해, 지옥으로 가게 된다면, 그 책임을 나에게 물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건 직무유기입니다. 그런 제자, 죄 없다 아니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가서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듣고 세례를 받기까지 계속해서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듣기 위해선 내가 들려주어야 합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복음을, 주님의 사랑 이야기를 어서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4절의 맨 마지막 구절, 이는 예수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할 이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런데요, 저들이 세례를 받고 나자 사도 바울이 안수를 합니다. 6절인데요, 한번 읽고 갈까요? / 19:6 / (읽기) / 아멘! 여기서 우리는 안수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기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물론 안수 기도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아니지만, 그러나 안수 기도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한 통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해서 부족한 종도, 오직 주님의 은총에 의지하여, 가끔 안수 기도를 해 드립니다. 매월 한번씩 산에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 그리고 송구영신 예배 때에, 원하시는 분에 한해서만 안수 기도를 해드리는데요,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한 일은, 주님의 이름으로 안수 기도를 해 드릴 때, 우리 주님, 여러 가지 다양한 느낌을 체험하게 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때로 제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때로 정반대로 제 가슴이 아주 차가워질 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안수할 때에 방언이 터지기도 하십니다. 어떤 분은 안수할 때에 흐느껴 울기도 하십니다. 어떤 분은 한없는 기쁨과 감격으로 기뻐 찬송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혼신의 힘을 다해 안수 기도를 해 드리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 분도 계십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니, 일차적으로는 제가 부족한 탓이요, 이차적으로는 그 분의 사모하는 마음이 좀 부족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사모하는 마음에 성령을 주십니다. 내일 모레, 다시 산에 기도하러 가려고 합니다. 오늘 신청해 주시고, 함께 산에 올라 크신 은혜 나누고 오시기 바랍니다. 주 성령께서 변함없이 함께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십니다.

10:44 / (읽기) / 지금 성령이 내려오신다고 하는데요, 중요한 것, 성령이 언제 내려오신다고 합니까?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중요한 대목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오고 계십니다.

여러분,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해서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성령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말씀 잘 안 듣는 사람입니다. 천하없어도 말씀 잘 듣지 않으면 성령이 내려오시질 않습니다. 여러분, 오직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받는 자리를 사모해 주시고, 말씀과 함께 내려 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사모하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과 통합니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 사모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요, 심각한 문제는 아무 것도 사모할 것이 없는 인생, 가장 불쌍한 인생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뒤져 보아도 그 인생에 사모할 거리가 없는 인생, 해서 평생을 살아도 단 한순간도 가슴 설렐 만한 일이 없는 인생, 그건 고상한 인생이 아닙니다. 영적 불감증에 걸린 인생입니다. 영적인 환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따분하고 지루합니다. 여러분, 사모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복 받은 마음인 것을 믿으시고, 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오랜 만에 사모란 글자를 한자로 써 보실까요? 사모(思慕), 생각할 사 자에 그리워할 모자입니다.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 그러므로 사모하라는 말은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마음으로 그리워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생각하시고, 주님을 그리워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신 사랑하는 당신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해 주시기 바랍니다. 깊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그 마음, 사모하는 그 마음에 불같은 성령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4. 끝까지 순종하라 하십니다!

5:32 / (읽기) / 매우 중요한 선언인데요,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라 하십니다. 그런데 증인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성령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아무나 증인 되는 것 아닙니다. 오직 성령을 받은 자, 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한 제자만이 증인이 될 수 있는 것, 해서 세상으로 보내시기 전에 우리 주님, 먼저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5장 32절에 보니, 증인에게 요청되는 마지막 덕목이 있군요.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제자에게 성령을 내려주시며, 그를 증인으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령 받은 일이 오히려 간단하군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순종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순종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면 떠나지 말아야지, 왜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방황하느냐 그 말입니다.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라 하면 좀 진득하게 기다리면 될 것을, 무얼 그리 초조하여 그리 방정을 떠느냐 그 말입니다. 세례를 받으라 하면 받고, 말씀을 들으라 하면 잘 듣기만 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제 멋대로 사니까 성령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마당을 닫으려고 합니다. 우린 지금, 성령강림주일을 향하여 신앙의 여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기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합심하여 기도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 주시기 바랍니다. 듣고 세례를 받고 안수를 받는 일에도 마음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말씀 듣는 일에 더욱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늘의 아버지, 불같은 성령을 부어 주실 줄 믿으며, 끝까지 순종하여, 성령 충만한 강한 제자 되어, 한번 뿐인 내 인생, 승리로 마감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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