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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늘 찬송하겠네 (엡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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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김삼환목사 (명성교회)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다르게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의 삶을 신비해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의 삶을 또 이해가 안 되어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은 이 세상의 어떤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삶이요, 후회함이 없는 삶이요, 거룩한 삶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회를 일찍이 다니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다, 교인이다 는 말은 다르게 산 사람이다 는 그런 뜻과도 같습니다. 교인, 다른 것입니다. 크리스천, 다른 삶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결혼식도 달랐습니다.

장례식도 달랐습니다. 모두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어도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찬송할 때 그들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또 엿새 동안 날마다 일해도 살 수 없는데, 한 주일에 하루는 꼭 쉬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저러고도 먹고 사는 것, 세상의 잣대로는 이해를 도무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보면 교인들의 가정은 풍년으로 가득 차고, 저들의 창고가 차고 넘칩니다.  제주도에도 어떤 마을에는 교인이 주일을 쉬니까 따라서 쉬고, 귤나무를 심으니까 따라서 심고, 교육을 전혀 하지 않던 그 때에도 교인들이 아이들 공부시키고, 여자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니까 따라서 보내고, 저녁 예배도 같이 따라 다니고, 새벽기도 같이 따라다니고, 이 마을이 복을 받았어요. 제가 가 보
니까 그 마을이 전국에서 마을단위로는 제일 잘 사는 마을이라고 하고요, 그 작은 마을에 박사가 열일곱 명이 그 때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인은 다르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보고 따라왔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다른 삶을 보여 주어서 민족에게 소망을 주고,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빛이 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말하는 것도 다르게 말해야 됩니다. 우리는 모든 사업을 해도 이 세상 사람들의 목적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업을 하고 정치도 다르게 해야 이 나라의 문제를 풀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교수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 교수님은 운동을 해도 늘 찬송하며 운동을 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게 축복을 한없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이러고 삼십분을 부른대요. 그러면 얼마나 몸에 좋고 마음에 좋고 은혜가 되는지 모른대요. 그렇습니다. 운동도 찬송하며 운동하기를 바랍니다. 요사이 아침에 에어로빅 보면 그리 운동을 하면 좋겠어요? 옷을 이상한 것 입고 막 그러는 것보다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하면 얼마나 좋아요? 찬송하면서 운동하고, 우리는 확실히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하루를 살아도 늘 찬송하며 살아
가는 것, 이건 성도들의 삶입니다. 이 괴로운 세상에 찬송할 일이 무엇이 있냐? 라고 하지만 오늘 본문에 말씀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만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여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고,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19편 164절에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리라” 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찬양하는 삶입니다.

교회를 왜 나옵니까?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영광 돌리려고 나옵니다. 예배의 중요한 대상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나오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제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찬양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도 “항상 찬미의 제사를 예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드리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우리가 드리는 제사 가운데 제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찬양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감사도 있고, 찬양도 있고, 기도도 있고, 말씀도 있는데, 그 중에 귀한 것이 찬양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을 받으시기 원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찬양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를 택하여 주셨어요. 시편 21편에 보면 13절에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시편 34편 1절에도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시편 146편 2절에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라.” 고 했습니다. 시편 150편에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나팔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라고 했습니다. 149편에도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자녀, 성도들의 마땅한 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 가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 나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은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으로 자녀로 삼아주신 이 은혜,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해 주신 이 은혜를 우리는 찬양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끝 날까지 늘 찬송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찬송가를 여러분 부르셨죠?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찬송가는 기독교만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만이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찬양할 수 없습니다. 우상 앞에 가는 사람이 찬양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가 우리나라에도 찬양한 건 몇 년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영향을 받고 바로 몇 십 년 안 돼요. 한 이 십년 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찬양을 시작한 것이지 찬양은 구원과 은혜와 능력이 없는 곳에는 찬양할 수가 없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도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니라.”고 말하고 있고, 신명기 8장 10절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늘 찬송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찬송은 능력입니다. 힘입니다. 사도 바울은 찬양할 때 옥문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악한 원수 마귀가 물러갑니다. 여호사밧이라고 하는 구약의 왕은 암몬과 모압이 저들을 쳐들어 왔을 때, 성가대를 앞 세워서 노래를 부르고 앞으로 나아갈 때 이 군대를 다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 51편 15절에 말씀한대로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셔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며 전파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도 아직까지 찬송의 입이 안 열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의 입이 안 열리는 분이 있습니다. 문이 닫혀 진 분이 있습니다. 오늘 나오신 여러분들 성도의 기쁨은 찬송 가운데 있는데 능력은 찬송 가운데 있는데 예배 중에도 찬송을 드리고 일생동안 가정에서나 어디서나 늘 찬송하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어져 있고, 시편도 그런 사상이 가득 차 있습니다. “모든 동, 식물들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해와 달과 별들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 식물들이 뭐 찬양할 수 있느냐? 요사이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라디오를 켜 놓고 노래를 트는데 그 옆에 호박넝쿨을 옆에서 기르니까. 찬송가를 계속 라디오에서 나오니까 이 호박넝쿨이 라디오를 감는답니다. 좋아 가지고, 그러나 록 음악이나 이런 세상 적인 노래를 틀어놓으면 이 호박순이 다른 쪽으로 간다는 것이 발표가 되고 있습니다. 소도 찬송가를 틀고 젖을 짜면 젖이 많이 나오고, 장미꽃도 찬양을 틀어주면 좋은 향기가 나고 더 빛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수원, 오산 농협에서도 오이를 재배할 때 찬송가를 틀어놓으니까 해충도 억제되고, 병충도 억제되고, 평당 만원의 차이가 있을 정도로 오이가 더 열렸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는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체로 짐승을 먹이는 모든 농가들이 좋은 노래를 트는 것입니다. 노래도 좋은 노래를 틀어야 합니다. 일본의 대한 의학자가 물을 연구했는데 찬송가, 좋은 노래를 틀면 물의 결정체가 잘 정돈되고, 나쁜 노래를 틀어놓으면 결정체가 흐트러지는 것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런 식물도, 동물도 찬양을 들으면 좋아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지음을 받았는데, 모든 만물의 영장되는 우리 인간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에 기쁨이 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곳에 우리의 삶의 힘이 있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주의 보혈의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할 때 우리의 삶에 무한한 에너지가 만들어지게 되고, 식물에게도 병충해가 없듯이 인간에게도 병충해가 없어지고, 새 힘이 솟아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혈액 순환이 노래를 부를 때 잘 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어떤 사람이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보니까 나무가 어떻게 요런 좁은 줄기를 통해서 저 수 십만 수 백 만 가지와 잎사귀로 물이 전해질 수 있을까? 그래서 연구를 했는데 알고 보니까 나무가 흔들리니까 이 흔들리는 그 바람에 흔들리는 것 때문에 수분이 잘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 높은 곳으로 그래서 학자들이 야, 나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바람에 늘 흔들리니까 움직이니까 위가 움직이니까 물을 쫙쫙 끌어올리는 거예요.

우리 인간도 찬양하면 에너지가 온 몸으로 쫙 나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기 있는 대로 춤추며 찬양하라 여호와를 기뻐하며 찬양하라. 여러분께서 한번 가정예배를 드리든지 집에서 한 번 찬양을 해 보십시오.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가? 찬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으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슬픈 노래를 부르면 슬퍼지고, 기쁜 노래를 부르면 기뻐지는 것입니다. 답답한 노래를 부르면 우울하고 답답해집니다. 아주 잘못 된 어두움의 노래를 부르면 마음에 불이 꺼져버리고 어두워지게 됩니다. 찬양은 우리에게 마음을 비추어서 환하게 하고, 어두움을 몰아내고 능력을 주고 감사하게 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고 승리하게 하는 내용이 찬송에 가득 차 있습
니다. 세상 노래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제가 일간스포츠에 나온 걸 스크랩을 했는데 거기 보니까 대중가수들도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대요. 예를 들어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부르고 현해탄에서 극작가 김우진과 투신 동반자살을 했어요. 죽음의 노래를 늘 부르니까 자기가 그렇게 될 게 아니에요? 남인수는 <눈감아 드리오리다>를 부르다가 마흔 한 살 한창 나이에 눈을 감았어요.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가슴앓이를 하다가 역시 젊은 나이에 떠났어요. 차중락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다가 스물아홉 살 역시 젊은 나이에 자기도 역시 낙엽 따라 가 버렸어요. 배호는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르다가 일생동안 삼각지처럼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떠났다
는 거예요. 양미란은 <흑점>을 부르다가 골수암으로 떠났고, 김정호는 <간다 간다 나는 간다>를 부르다가 삼십 삼 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어요. 권혜경은 <산장의 여인>을 불러서 한 평생 외롭게 살았고 그 대신 반면에 송대관은 <쨍 하고 해뜰 날>을 불러 가지고 일생동안 쨍 하고 해뜨는 삶이 되었다는 거예요. 노래하고 자기의 삶 보세요. 식물도 물도 내가 뭔 말을 하는 데에 따라 움직이는데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하루도 아니고 계속 그 노래를 부르면서 다르게 살 수 있겠어요? 안 되는 것이지요. 우리 교인이 예배 때마다 찬송 부르고 항상 찬송 부르는 게 교인의 힘이 안 되겠어요? 가슴에 박히고, 세포에 박히고, 유전자에 박히게 되어 있는 것이지 그게 다 호르몬이 되고 에너지가 되게 되어 있는 것이지 찬송이 얼마나 우리에게 약이 되고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성경은 찬송할 때 마음에 평안이 온다고 했고, 찬송할 때 성령이 충만했고, 찬송할 때 초대교회가 항상 찬미하고, 그럴 때 부흥했어요. 그래서 어린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벌써 연세가 많은 분은 저 아이가 여자 울음인지, 남자 울음인지, 벌써 알고 울음소리 들으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금방 알아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도 그래요. 찬송가가 벌써 힘이 없고 찬송가 벌써 잘못 부르면 그 영혼은 건강할 수가 없는 거예요. 찬송을 힘 있게 부르는 교회, 살아 있는 교회예요. 찬송은 우리를 거룩하게 한답니다. 우리의 온갖 마음에 불의와 찌꺼기를 제거하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찬송은 하나
님이 우리를 복 주시는 축복의 길이라고 합니다. 다윗 왕은 찬송을 많이 불렀어요. 시편이 다윗의 찬송이지 않습니까? 그 나라가 복을 받은 것처럼 찬송하는 민족은 축복을 받습니다. 찬송하면 우리의 모든 적이 물러갑니다. 찬송하면 항상 내 영혼이 기름진 땅에서 복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 찬양, 내 일생 소원 늘 찬송하면서 나 언제나 늘 찬양하면서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찬미가 항상 있으리라 너희는 나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자 우리 함께 그 이름 높여 드리자♬ 우리 한번 다 일어나서 찬송 몇 곡을 부르겠습니다. 먼저 21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1절은 성가대에서 그리고 3절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성가대원과 함께 부르겠습니다. ♬다 찬양하여라 전능 왕 창조의 주께 내혼아 주 찬양 영광과 축복의 주님 성도들아 주 앞에 이제 나와 즐겁게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온몸과 마음을 바쳐 이 세상 만물이 주 앞에 다 나와 찬양 성도들아 기쁘게 소리 높여 영원히 찬양하여라♬ 성도들아 주 앞에 이제 나와 즐겁게 찬양하여라. 성도들아 기쁘게 소리 높여 영원히 찬양하여라. 찬양은 여기에서만 하는 게 아니에요. 이 땅을 떠나서도 하나님 나라 가서도 언제나 찬양하는 거예요. 지금도 하나님은 천군 천사와 함께 먼저 간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영광 돌리고 있는 거예요. 땅에 있는 모든 성도들도 그 나라에 가서 우리가 영원히 영광 돌리기 위해서 찬양을 늘 준비하는 거예요. 찬양은 금생과 내생에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성도의 삶이요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또 옆에 있는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33장 1절은 성가대에서 6절은 우리 모두 부르겠습니다. ♬온 천하 만물 우러러 다 주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 금빛 나는 밝은 해 저 은빛 나는 밝은 달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 은혜 받은 만민아 다 꿇어 경배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성 삼위 일체 주님께 존귀와 영광 돌려라 주를 찬양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은 이 세상에 노래와는 전혀 다릅니다. 몇 가지가 다른데 첫 째는 이 세상의 모든 노래는 우리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지은 노래에요.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은 내가 즐거워하려고 부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즐겁게 하려고 부르는 게 아니에요. 찬양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부르는 거예요. 식당의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려고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지 자기 먹으려고 식당을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찬양하는 겁니다. 그래서 유럽의 교회들을 가보면 성가대가 뒤에 2층에 있는 성가대가 아주 많습니다. 여러 나라에 그런 일이 많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가대가 사람 보려고 하는 게 아닌데 믿음 약한 분은 혹시 사람을 의식
하기 쉬워요. 그래서 사람 즐겁게 하려고 사람 보기 좋게 하려고 신경 쓰기 쉬운 거예요. 그러면 그건 성가대가 죽은 성가대에요. 지휘자가 믿음이 없는 분은 자꾸 사람을 이거 오늘 좀 많은 분에게 박수를 받아야 될 텐데, 이런 마음이 들면 그 찬양은 죽은 찬양이에요. 사람의 박수같이 한심한 게 없는데, 그거 뭐 얼마나 오래가요? 1분이면 다 끝나버리는 그 사람들에게 박수 받으려고 찬양하는 게 아니거든요. 나를 억 만 가지 이 은혜를 주시고, 구속해 주시고, 영원히 찬양할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는 것이지 사람에게 바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내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찬양할 때 내 영혼이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받는 거예요.

저는 신앙생활이 기도도 있고, 봉사도 있고, 찬양도 있고, 설교도 있어도 저의 평생을 통해서 보면 찬양할 때 내가 제일 은혜를 받았어요. 저는 성가대 앉아서 몇 년 할 때 찬양을 다 불러 본 일이 없어요. 눈물이 나서 못 부르는 거예요. 지휘자가 지휘하는 것만 보고 있다가 내려오고 너무 감격스러운 거예요. 내 영혼이 살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때, 그래서 예배시간에는 찬양을 와서 불러야 그게 예배지 찬양 끝난 다음에는 이미 그건 끝난 예배와 마찬가지에요. 반동가리 예배예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를 늘 드리고 오히려 다른 건 못해도 찬양을 드리고 가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세상 노래와 교회 찬양이 다른 것은 세상의 노래는 연령층에 따라서 다 달라요. 유치원에서 부르는 노래가 다르고 초등학교 들어가 부르는 노래가 달라요. <학교종이 땡땡땡>부터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이 노래가 다 달라요. 청소년 때 부르는 노래가 중학교 때 가서 <봄처녀 제오시네> <로렐라이 언덕>이 있고 또 고등학교 가면 영어 노래도 부르고 자꾸 이게 다르거든요. 나중에 오페라에 눈을 뜨고 자꾸 음악이 다르게 나가요, 또 노래는 시대에 따라서 언제나 주제가 바뀌어져요. 우리나라도 구한말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파랑새 합방이 되었을 때는 <타향살이>, <봉선화>,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이런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6.25사변이 있을 때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부르고, 수복이 된 다음에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군에 제가 있을 때는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여덟시 통근 길에 대머리 총각 그때 불렀어요. 이게 지나가면 완전히 다른 거예요. 군인이 부르는 노래가 있고 다 계층마다 다 달라요. 세상 노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고 아들이 좋아하는 노래 다 달라요. 그러나 찬송은 그렇지 않아요. 성 프랜시스가 작곡한 1225년의 찬송이 있는가 하면 1529년에 루터가 작곡한 것이 또 있는 거예요. 1900년대, 1800년대에 여러 몇 백 년, 8백 년, 9백 년의 이 곡이 있어도 다 같이 부르고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똑같이 부르는 거예요. 다같이 은혜가 되는 거예요. 또 이 세상의 노래는 인간의 허무함을 노래하는 거예요. 인간의 상처와 아픔과 후회와 인본주의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이 노래들이 다 불러보면 처량하고, 외롭고, 허전하고, 눈물나고 쓸쓸한 거예요. 물론 요사이는 또 그런 것은 없어요. 그러나 오히려 눈물이 있었던 그 때가 더 좋았어요.

오늘의 음악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광란, 자살을 노래하고, 마귀를 노래하고, 걷잡을 수 없는 내용도 없이 그냥 온 몸을 뒤틀면서 굉음을 지르면서 소리소리 지르는데 그 모든 노래가 그 전에 오히려 울며 그냥 노래 불렀던 것이 더 좋았어요. <타향살이 몇 해던가> 오히려 그게 더 나아요. 그러나 지금 노래는 걷잡을 수 없이 세계 노래들이 그 노래 부르다가 자살해 죽고, 그 노래 부르다가 동성연애하고, 그 노래 부르다가 마약 중독자가 되고, 그 노래 부르다가 정신이 도는 거예요. 오늘 젊은이들이 몸처럼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음악의 영향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야 되느냐? 우리는 젊을 때나 어렸을 때도 우리 노래 많이 부르고 찬송했지만, 지금도 찬송하면 그때 그 기쁨 똑같이 있고, 앞으로도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우리는 찬양 속에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가정의 식구들이 모여서 아이들과 함께 찬송을 불러 봐요 성경 안 읽고 찬송만 부르고 자도 그 날 밤은 천국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낮에 먹는 행복만 있는 게 아니에요. 밤에 잠 잘 자는 행복이 큰 축복이라고 시편에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임금님은 낮에는 너무 임금님인데, 밤마다 꿈이 어지러워서 밤에 신하들 부르고, 잔치를 베풀고, 술 먹고 밤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오늘밤이 싫고 밤이 무서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왕궁 길 들 녘에 있던 어떤 거지는 낮에는 거지인데, 밤이 되면 언제나 임금이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자리 어지러운 인생 되지 않으려면 찬송 많이 하기를 바랍니다. 밤을 천국같이 살아가려면 찬송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 어두운 세상 이 절망의 세상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늘의 문화가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 때에 찬송하며 시온의 대로가 열리고 천국의 길이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시 일어나서 부를 찬송이 있습니다.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그에게 예배드리기 위해서, 찬양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지어진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 모두 그의 백성 되어 그를 찬양하며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나가서도 늘 찬양하면서 내 평생소원 늘 찬송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복된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날 주의 집에 주의 백성이 나와 주의 높으신 이름을 찬양하옵니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어찌 다 찬양하겠습니까. 늘 찬송하며 살게 하옵소서. 찬양할 때 병마가 떠나가고 마귀가 물러가고 어두움의 세력이 떠나가게 하옵소서. 한 없는 강 같은 평화가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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