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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의 병기로 (롬 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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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차재일 목사


지난 주에 우리는 부활주일로 보냈습니다. 한 주간을 보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였습니까? 어떤 분은 속으로 그러겠지요? '지난 주일이 부활주일이었나?'
'목사님! 한주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신이 없어요!'

시간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카렌더의 시간입니다. 이것은 지구의 회전과 태양과의 관계입니다. 해가 뜨고 해가져서 결정되는 시간입니다.
두 번째는 생물적 시간입니다. 이것은 생물속에 부착되어 있는 시간인데 기러기가 옮겨가고 연어가 이동하여 알을 까고 사람이 낳고 죽고 하는 시간입니다.
캘린더의 시간을 남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생물적 시간은 나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종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나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데 비하여 하나님의  시간은 제한되지 않습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나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지난주일 부활의 영광을 찬양한 여러분은 마땅히 하나님의 시간을 산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감사가 있고, 화해가 있고, 헌신이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인생은 몇 년을 사느냐에 있습니다. 80세 아니면 90세 앞으로 연구가 되어진다면 100세를 살게 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몇 년이 아닌 '한번 사는 삶'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시간의 가치는 삶의 질에 달려 있는것이지 양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3세에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미국의 벨이란  사람이 62세로 사형집행을 받는데 집행 예정일이 섬머타임이 시작되는 날이어서 한시간을 더 빨리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무소측에서 '한시간을 늦추어 주겠다' 하니 너무나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때로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서 '시간이 없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시간이 없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없어 기도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없어 QT도 못하고, 봉사도 못하고, 전도도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는 시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고 말하는 것은 나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시간을 다 쓰고 -남는 시간- 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까?

부활주일을 행사로 치르고 나서 '참 잘했다!'고 격려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 성도는 생물적 시간을 사는 형식적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또다시 욕망에 사로잡혀 끌려가면서 마음속에는 불평과 근심이 누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의 사실은 단순한 이론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이 사실이 실천적으로 내게 임해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우리 각 가정을 변화시킵니다. 교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나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킬 능력을 부여해 주십니다.

1) 하나님은 죄가 내 몸에서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12절에-"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내 죄를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죄를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죄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재판에서의 판결과 같습니다. 재판장이 여러차례의 심리 과정을 거쳐 선언합니다. '당신은 무죄요, 석방이요!'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선언입니다. 십자가를 믿고 바라보는 자는 무죄입니다. '죄가 더 이상 너에게 영향력을 끼칠수 없다.'는 판결문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 판결문을 가지고 선언해야 합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죄가 나를 지배해 왔고, 나를 이용하며 속여 왔습니다. '네가 언제부터 예수쟁이냐? 네 믿음은 가짜가 아니냐?' 그러면 또 흔들립니다. 신앙을 그렇게 단순논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합니다. 복잡하게 혼동시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까지 우리의 태도가 모호했을지라도, 죄와 함께 살았을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당당히 맞서기 바랍니다. 타협하지 마세요. 죄의 속임수에 빠지지 마십시오.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당당하게 선포하세요. 주님의 십자가는 교리의 수준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의 보혈입니다. 피의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선포하는 자에게는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안에 들어선 자입니다.  과거에 매어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나라, 예수님이 이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산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고민과 걱정, 후회와 죄책에서 벗어나 소망의 눈과 거룩한 꿈과 천국시민다운 사랑의 손, 평화로운 마음을 갖습니다.

여러분은 설리반이야기를 아십니다. 설리반은 헬렌켈러를 48년간 개인지도한 여성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기때 어머니가 죽고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하나뿐인 동생도 병사했습니다. 안질이 악화되어 실명하였습니다. 자살을 기도했지만 훌륭한 지도자를 만납니다. 바아바라 신부입니다. 절망적인 소녀에게 십자가를 가르쳤습니다. 십자가를 믿을 때 과거에는 종지부를 찍고 사랑과 소망으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전개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보스톤의 맹학교에 6년간의 분투 끝에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수술이 성공합니다. 그는 맹농아 3중고의 짐승같은 소녀 헬렌켈러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48년간 학습과 생활지도와 신앙적인 감화를 줍니다. 헬렌켈러는 인류의 소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은 막연한 이론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되는 것이며, 과거에 속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 새 세계에 소속하는 것입니다.

2)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로 죄를 묶지 못하면 육신의 욕망이 풀어집니다. 욕망이 다시 삽니다. 우리 안에는 거절할 수 없는 육신적, 물질적 욕망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기, 질투, 미움과 같은 본능들이 우리안에서 꿈틀거릴 때 원하는 대로 가지 말고 순종치 말고 거절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가족들이나 자신에게 쉽게 거짓말을 합니다. 변명하고 둘러댑니다. 우리 자신이 건강한 삶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튀어오르는 거짓말을 바꾸어 진실을 말하도록 대결해야 합니다. 정신병의 근본 원인중의 하나는 내 안에 거짓말이 뒤엉켜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오로지 정직한 분위기에서 뿌리뽑아야 합니다. 이 일은 고통입니다. 괴로움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거짓말에는 두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하얀 거짓말과 까만 거짓말입니다. 까만 거짓말을 아시는대로 이고 하얀 거짓말은 우리가 말하는 자체는 거짓이 아니지만 진실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빼버린 말입니다. 하얀 거짓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습관적인 하얀 거짓말이 자녀들에게, 부부간에, 형제들에게 서로를 신뢰치 못하게 하고 결국은 친근한 인간관계를 폐쇄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만들고 맙니다. 정직할수록 정직하기가 더 쉽고,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거짓말을 더 할 필요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진실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개방적이고, 가까이 하고 싶은 친근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됩니다.
내 영의 정직한 영이 되고자 하는 소원을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 시작하면, 내 안에 솟아오르는 것은 세상에 대한 욕망 뿐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욕망 때문에 괴로워합니까? 바울도 롬7:24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자꾸 그것을 하려는 욕망이 내게 있나는 것입니다. 나는 원치 않는데 그 더러운 욕망이 내 안에서 자꾸 나온다는 것이지요. 사실 욕망과 싸운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내안에서 솟아오르는 죄의 욕망, 육신의 욕망, 불법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갈5:19절 이하에 "육신의 일은 형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여기에 나오는 15개의 죄와 상관없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들이 내안에 가득 차있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해 질수도 없고 능력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저 끊임없이 뒤죽박죽될 뿐입니다. 찬송을 해도 기쁨이 없습니다. 기도를 해도 힘이 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태은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죄를 이기고 부활 하셨습니다. 사단의 세력을 꺾으셨고 모든 악을 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 나오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예배에 대해서, 봉사에 대해서, 성경의 66권에 대해서, 교리에 대해서 배우는데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십자가를 빼버린다면 여러분은 교회생활만 할뿐 믿음의 핵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주일 예배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헌신하는 여러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가대, 안내, 반주자들, 드럼의 송경섭군 특별히 KBS 관현악에서 연주하던 박선생님 내외분이 계심으로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아이가 부모를 따라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구경갔답니다.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지요. 두시간 중에서 두세번은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벌즈를 울릴때였습니다. 그 아이는 끝난후에 물었습니다. '배우기가 힘든가요?' '힘들지 않다. 다만 심벌을 울리는 시간이 중요하다. 10분의 1초라도 빠르면 안되고, 10분의 1초라도 늦어도 안된단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몸과 마음과 정성을 기울이는 그 태도가 있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에게는 십자가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놓쳐버리면 우리의 신앙은 껍데기로 욕심에 이끌려 살아가는 과거의 사람, 옛사
람으로 돌아가버리게 됩니다.

3) 우리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쓰시는 의의 병기로 드려져야 합니다.

저는 우리 태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여러분의 시간이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건강을, 육신을 하나님 앞에 의의 병기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저는 태은교회 LOVING HAND 사역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남들이 신경도 관심도 쓰지않지만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예배당의 의자, 강대상, 바닥, 화장실 청소, 지하의 식당의 설거지까지 헌신하는 여러분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매주일 건너뛰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보통 정성이 아닙니다.

어제는 송용운집사님이 일을 가시는데 아침 7시에 출근하셔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이른 아침 7시에 나오셔서 교회 청소를 시작하십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토요일은 새벽기도가 없으니 새벽 5시에 나오셔서 청소를 해 놓으시고 7시에 출근하셨습니다.
감동이 되지요?
나의 시간을 하나님이 주관하게 해야 합니다. 내 육신을 사탄이 쓰기전에 하나님 쓰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의의 병기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의의 병기로 사용되었다'는 뜻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제가 상담 공부를 하면서 이런 사례를 읽었습니다.
우울증과 신경과민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환자의 아버지는 목사입니다. 그 어머니는 화를 잘내고 우악스러운 신경질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고통을 안겨 주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딸앞에서 남편에게 손찌검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절대로 대들며 싸우는 법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딸들에게 주의 마음으로 순종하고 엄마에게 존경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이 환자는 치료를 시작하기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해 온유한 사랑이 많은 분으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버지의 온순함이 나약함 때문이며, 아버지의 수동적인 태도는, 어머니가 인색하고 자기 중심적이어서 적절한 부모역할을 못해준 것과 똑같이 부모노릇을 못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아버지가 어머니의 악독한 행동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 결국 가식적인 겸손이었다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어머니만 불의의 병기가 아니라, 당당하게 잘못된 것에 대해 아내를 깨우쳐주지 못한 태도도 불의의 병기가 된 것입니다. 회피하면 변화되지 못합니다. 건강한 가정, 행복한 자녀들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내가 가난하게 살지라도 나는 마귀에게 영혼을 팔지 않겠다. 나의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의 지체를 적극적으로 의의 병기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손을 들어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에 금식을 해서 드려진 헌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도와드렸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혼자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함께 모으니 큰 힘이 되지 않습니까? 나의 재능있는 손으로 악기를 연주함으로 모두에게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으로 병든자를 위로하고 방황하는 자에게 달려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주고, 찬양을 함으로 은혜를 끼치고, 내가 가진 돈, 내게 있는 건강으로 이웃을 위해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의의 병기로 드리는 것입니다.

롬12: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제 정치의 계절이 왔습니다. 저는 최근의 어느 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들을 보면서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사람들이 미래의 정책을 내 놓기 보다는 서로의 흠집을 내는 것을 넘어서서 서로 같이 망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이 보입니다.
때로 신앙의 사람이라면서 하는 행동은 전혀 뜻밖의 모습을 보일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많은 권력의 자리를 얻기위해서 신앙을 뒤로 잠시 접어놓겠지요. 아마도 잠시 명예는 얻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 영혼과 시간 물질 몸을 마귀에게 팔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몸이 마귀에게 점령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분열시키는 사단의 계략에 여러분의 좋은 머리를 사용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 좋은 머리를 남들을 이간질 하는데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머리가 사람을 살리고 용기를 주고, 격려하는데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태은 성도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의의 병기로 사용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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