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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고전 15:35-44,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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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오늘도 지난 주일에 이어 부활 신앙에 대해 살펴봅니다. 흔히 ‘부활 신앙’이라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건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죠. 그러나 부활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만 인정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나 자신과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다음 세 가지 내용을 포함합니다. 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내가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계시며 나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나를 위해 대언하시고 중보하심을 믿습니다. 또 보혜사 성령을 통해 나를 다스려 주시고 보호 인도해 주십니다. 이런 내용을 지난 주일 살펴보았습니다. ③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장차 주님 재림의 날에 새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함께 살펴봅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부활의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부활의 확실성 : 성도의 부활

우리 인생의 사후에 내세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몸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다는 것은 사실 믿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믿기 힘든 것은 인간의 무지의 소치일 뿐입니다. 흔히 인간은 자기가 모르는 것이나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없다고 단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정말 무지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우물 안의 개구리가 우물 밖의 세상을 모른다고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세상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무지몽매한 일이겠습니까? 천국과 부활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산다고 그 너머의 문제는 무조건 부정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겁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잠자리 한 마리가 연못 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땅 위에 곤충 하나가 유심히 바라보다 물었습니다. “왜 그래? 뭐 잃어버렸니? 찾아줄까?” 잠자리가 대답합니다. “말은 고맙지만 안돼. 너는 땅에 사니까. 사실은 연못 속의 내 친구들에게 훨훨 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그러면 네가 연못에서 나왔단 말이야?” “응, 어제. 순식간에 변하면서 날게 됐지. 이렇게 넓은 하늘이 있는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 “혹시 다시 연못에 가고 싶지는 않냐?” “얘는 내가 미쳤냐? 그 냄새나는 연못으로 다시 돌아가게. 나는 다만 연못 위에 이러게 드넓은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을 따름이야. 그런데 알려줄 길이 없어 답답하단 말이야.”

이 이야기처럼 이 세상 너머 분명히 천국과 부활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가만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성경의 계시 : 계시(啓示)라는 말은 숨겨진 비밀은 드러내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모르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이 알지 못하는 내세(천국과 지옥)와 부활에 관한 진리들을 증거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수많은 구절들이 천국의 존재와 부활에 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수없지 많지만 몇 구절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사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욥19:25~27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단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구절도 있습니다. 요6:3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② 예수님의 시범 : 예수님이 직접 부활의 시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말하자면 샘플과 견본이 되셨다는 겁니다. 고전15:20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를 건축할 때 미리 모델 하우스를 짓습니다. 그리고 구경시켜 준 후 분양 신청을 받습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천국과 부활을 설명해 주시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견본으로 알고 나도 장차 저렇게 부활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요일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 ” 빌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③ 성령의 보증 : 우리가 예수 믿으면 성령님이 마음 속에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 몸을 가리켜 ‘성령의 전’이라고 부르는 겁니다.(고전3:16) 그 성령님이 구원의 보증이 되십니다.
고후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여기서 ‘보증’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아라본’(αρραβων)인데 ‘담보물’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우리의 구원에 담보물이 되십니다. 그 성령님이 장차 우리를 반드시 부활하게 하실 겁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도록 역사하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성령이 내 안에 계시므로 우리도 장차 부활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④ 자연 현상을 통한 유추 : 앞의 세 가지만으로도 부활의 확실성은 쉽게 증명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을 위해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래도 옷 알아듣겠냐? 하며 부연 설명을 합니다.

본문 35절~38절 보면, 식물 생장의 원리를 예로 듭니다. 씨앗을 뿌리면 그것이 죽는 것 같은데 거기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 그런다는 겁니다. 그것은 법칙입니다. 금년 봄에는 유난히 꽃이 만발하고 색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도시에 살면서도 오가며 많은 꽃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 다행입니다. 그냥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의 역사입니다. 씨앗이 땅속에 심겨져 다 죽은 것 같은데 거기서 꽃이 핍니다. 겨우내 죽은 것처럼 시커멓고 단단하던 나무 가지에서 순이 돋고 파릇파릇한 이파리가 나옵니다. ... 죽은 것 같이 보였는데 ... 거기서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 보면 신기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약속은 성경에서뿐만 아니라 봄철에 돋아나는 나뭇잎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미물들에게도 부활의 신비가 있다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부활의 신비가 없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2] 부활의 영광 : 부활체의 특성

바울은 장차 성도들이 부활할 것을 확증한 후에 이어서 부활체의 특성에 관해 설명합니다. 42절~44절 보면 파종과 추수의 원리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작은 씨앗을 심지만 거기서 전혀 다른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몸과 장차 부활할 새 몸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는 그날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성도들이 변화될 겁니다.(고전15:51~53)

① 썩지 않는 몸 : 42절.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우리의 몸은 썩을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썩지 않는 몸입니다. 우리의 몸은 지금 아무리 아름답고 건강해 보여도 노쇠하고 병들고 죽고 썩습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영원히 썩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썩을 육체를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살 수도 없습니다.

혹시 이런 염려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매장하는 것도 무서운데, 화장이나 기타 흉측한 모습으로 죽으면 부활하는 데 지장이 없나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육체가 어떤 상태로 죽고, 이러 저리 흩어져 썩어진다 해도 하나님이 썩지 않을 새 몸으로 변화시켜 줄 겁니다. 그리고 안구 기장, 장기 기증, 시신 기증을 하면 신체 일부가 다른 데 떨어지는 건데 괜찮나 하는 의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정도 문제 해결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변화된다니까 어떤 분은 서로 알아보지 못할까봐 걱정하는데,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시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서로 알아보게 해 주실 겁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맨 처음에는 못 알아보았으나 눈이 열려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오래 만에 만난 친구를 못 알아보다가 대화해 보고 잘 살펴보면 알아보게 됩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장차 부활체의 모습으로 변화된다 해도 서로 반갑게 알아보고 재회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② 영광스러운 몸 : 43절(상).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
부활체는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우리 육체는 아무리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험한 세상 살다보면 상처 나고, 일그러지고, 늙어지고 ... 특히 늙어지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추해 집니다. 주름이 늘고, 머리 희어지고, 머리털이 빠지고, 검버섯이 생기고, 눈이 흐려지고 귀도 멀어가고 ... 그래서 부끄럽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하면 자랑스럽고 빛나는 몸이 될 것입니다.

어느 의사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의료 봉사를 갔는데, 언청이 수술을 해 줬답니다. 언청이는 전 세계적으로 5백~6백 명당 1명꼴이랍니다. 그런데 가난한 분들은 수술하지 못해서 수치와 고통을 당하고 삽니다. 그런데 무료 수술을 받은 분이 너무 좋고 고마워서 평생의 은인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전까지 그 환자분이 지금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아왔을까 짐작이 됩니다.

겨우내 입던 칙칙하고 더러워진 옷을 벗어던지고 산뜻한 봄옷으로 갈아입어도 기분이 좋은데 부활의 새 옷을 입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때는 모두 다 얼짱(얼굴이 잘 생긴 사람), 몸짱(몸매가 좋은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③ 강한 몸 : 43절(하) “ ...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 ” 우리의 육체는 얼마나 연약한지 모릅니다. 조금만 무리해도 피곤하고 병들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강건합니다. 밤낮 쉬지 않고 찬송해도 지치지 않을(계4:8) 강한 몸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질병으로 시달린 사람도 더 이상 병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부활은 ‘완전한 치유’인 것입니다.

이 세상 살 동안에는 우리가 얼마나 질병이 시달리는지 모릅니다. 건강한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집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건강 진단을 받으러 병원이 갔답니다. 기록 카드에 이름을 적고 여러 방을 들러 검사를 받습니다. 대기 중에 가록 카드를 보니까 ‘조근암’이란 기록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무슨 암인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건데 ... 다 끝나도록 의사가 이야기를 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길한 생각을 합니다. 혹시 너무 심해서 의사도 숨기는 게 아닌가 ... 그래서 의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왜 제게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 겁니까?” 의사는 어안이 벙벙해서 되묻습니다. “아니 뭘 말입니까?” “제 카드에 조근암이라고 적혀 있던데 ... ” “아, 그건 제 이름입니다.” 해프닝이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건강에 염려가 많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부활하면 건강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활체는 병들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④ 신령한 몸 : 44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지금 우리의 몸은 육의 몸인데, 부활체는 신령한 몸입니다. 신령한 몸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눅20:36 보면 천사와 동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의 샘플이라고 했으니까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참조하면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모습을 적은 기록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벽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요20:19,26) 금세 나타났다 사라졌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눅24:31,36) 생각만으로도 쉽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날아다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제자들에게 갈릴리 해변에서 만나자고 해 놓고 훨씬 먼저 가셔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는 희한한 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지만 어쩌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마치 훨훨 날아다니듯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신기하죠. 그런데 그 신기한 몸이 우리의 미래 부활체라는 겁니다.

⑤ 각자의 영광이 다른 몸 : 41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부활체가 다른 몸과 다른데, 또한 부활체끼리 그 광채가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픔이 아니고, 수치도 아니고, 인류를 구속한 영광의 상처입니다. 아마 예수님의 부활체 중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났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 상처 받으면 더욱 빛나는 부활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3]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는 삶 : 목적이 있는 인생

부활이 확실하고, 그 영광이 그렇게 놀라운 것이라면 당연히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부활은 미래의 사건이면도 동시에 오늘 현재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칩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오늘 성도의 삶은 그에 걸맞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부활을 소망하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본문 57절~58절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미 예수님이 부활 승리를 보장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승리를 확신하면서 두 가지 태도를 가지고 살라고 말씀합니다.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키라! 주의 일에 힘쓰라! 마치 우승을 눈앞에 둔 마라토너가 결승점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리듯 열심을 다하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부활의 소망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삶 :

이 세상은 험한 곳입니다. 고난도 많고 유혹도 많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흔들리지 말고 믿음의 절개를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약혼자들입니다. 약혼한 신부는 절개를 지킵니다. 신랑과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자신의 지조를 지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살아계신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승리의 주님이십니다. 이미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따놓은 승리의 삶을 사는 겁니다. 혹시 고난이 와도 그것은 뜻이 있는 겁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주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그것을 확신하고 흔들리지 맙시다. 유혹이 와도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믿음을 팔아버리지 맙시다. 그것은 소탐대실의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저 앞에 지렁이 두 마리가 있습니다. 좋아하며 다가갑니다. 그런데 한 마리가 멈춥니다. “아차, 안 돼지. 지난번에 보니까 내 친구가 이런 것 덥석 물었다가 잡혀 가던데 ... ” 하지만 다른 물고기는 그 말을 무시했습니다. “무슨 소리 ... 저 싱싱한 먹이를 그냥 둔단 말이야 ... 멍청한 놈 같으니 ... ” 그리고 덥석 물었습니다. 그리고 잡혀갔습니다. 아마 해물탕이 됐겠죠.

오늘 우리 가운데 이렇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작은 이익을 추구하다 미끼에 걸려 마귀에게 끌려 다니며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천국이 없다면, 부활이 없다면 바울 당시의 에피큐로스 학파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며 눈앞의 쾌락이나 추구하면 최고겠죠. 고전15:32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이 말이 바로 그들의 슬로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부활은 확실하니까! 그 영광을 놓칠 수 없기에 우리는 믿음을 잘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② 주의 일에 힘쓰는 삶 : 주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무엇을 위한 ‘보내심’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사랑과 복음 전파입니다. 마22:37~40 위대한 계명,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입니다. 그리고 마28:19~20 위대한 명령, 즉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명령입니다. 이것이 곧 주님의 일입니다. 주님이 성도들과 교회를 통해 지금도 하시고 계신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명을 위해 더욱 힘쓸 것을 권면합니다. 그것은 결코 헛된 수고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기껏 힘을 다해 수고했는데 그 결과가 전혀 엉뚱한 것이라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이 세상에는 깡통 계좌라는 게 있잖아요? 자기 나름대로 다 따져보고 신중하게 투자하지만 얼마든지 망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신앙 세계에서는 깡통 계좌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주님이 100% 보장하십니다. 부활입니다. 영생입니다. 그리고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런 확실한 미래가 있기에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은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아까운 게 아닙니다. 헛수고가 아닙니다. 마치 농부가 추수를 확신하면서 씨를 뿌리듯이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수행하는 자들에게 부활 시에 하늘의 상이 주어집니다. 눅14:14 “그리하면(구제, 이웃 사랑 실천)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선교의 명령 수행하는 자들에게 빛나는 영광이 주어집니다. 단12:3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그러므로 주저함이 없이 주의 일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죽어도 천국 에 들어갑니다. 장차 예수님 재림하실 때 반드시 부활하게 됩니다. 이 분명한 미래를 소망하기에 오늘 하루하루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의 일에 더욱 힘쓰셔서 부활의 그날 더 큰 영광에 참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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