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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를 본 받아 양육합시다 (살전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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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강성찬 목사

어떤 조용한 동네에 경건한 부부와 세 아들이 살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죽어 남편 혼자서 남은 자녀들을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 집에 낡은 의자가 한 개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의자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의자였고 아이들은 가끔 아버지가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모두 성공했으나 그들의 생활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 아버지는 임종의 자리에서 "주님, 나의 죽음을 통하여 내 자녀들이 그리스도께 나오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장례식을 위해서 세 아들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장례가 끝난 후 그들은 집안에 있는 가구처리 문제를 의논했는데 한 아들이 지금까지 아버지를 돌보아 주신 분에게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때 제일 큰 아들이 "그러면 아버지께서 항상 무릎 꿇고 기도하시던 의자는 내가 가지겠다. 지금도 아버지의 기도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셨으니 하나님께 응답 해야겠어. 오늘부터 나는 기독교인이 되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두 아우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마침내 모두 의자 주위에 무릎 꿇고 앉아 오후 내내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의자가 이들의 눈물로 흠뻑 적시게 되었습니다. 세 아들 중에서 둘은 선교사가 되었고, 한 아들은 이름 있는 기독교 실업 인이 되었습니다.(예화뱅크-아버지의 기도)

어떤 영국 시인이 "한 명의 아버지가 백 명의 스승보다 귀중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을 복음으로 양육하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말했으나(2:7) 여기서는 그들의 잘못된 신앙의 상태를 바르게 교육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부성적 측면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시인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 103:13)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4)라고 합니다.

교육하고 선교하며 봉사하는 교회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되  아버지를 본 받아 양육하는 달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본 받아 양육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 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권면하며 양육 합시다.

또 아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고전 4:14)

소련의 장수학자 구리아닌 교수는 논문에서 단명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대화를 석권하거나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사랑이 담긴 긍정적인 말로 권면하고 격려하는 것은 희망을 낳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한마디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전해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말을 입에 담아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여주신 변함없는 사랑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슬픔과 시련 가운데서 우리를 권면하시며 일으켜주셨듯이 우리는 서로를 권면하며, 격려하며 서로를 세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모든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요-인터넷정보클럽)

맥체인(Robert Murray McCheyne) 목사는 교훈이나 모범에 있어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1840년 9월에 동료 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내가 대하는 모든 것, 내가 하는 그 모든 성경공부가 나로 하여금 더욱 더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깊고 순결하고 넓으며 또한 영속적인 역사를 일으키시도록 기도하게 만듭니다. 만일 이것이 깊고 순결하지 않다면 이것은 오직 혼돈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나는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은 일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모든 육신과 영혼의 더러운 것들로부터 깨끗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성결과 어린 양의 보혈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추구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사역의 모든 성공이 오직 당신에게 영원한 혼돈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항상 이것에 얼마나 힘썼는지를 당신은 아십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에게 이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친구여, 내 말을 명심하십시오. 어떠한 평범한 죄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 말고 그것이 영원한 심판을 가져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당신도 거룩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당신도 순결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당신도 온전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교만과 자만과 개인적인 허영심과 나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죄들에서 해방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 우리들의 평강을 깨뜨리고 영혼을 더럽히는 추악한 죄여!"

영국의 총칼에 눌려 실의와 절망에 처한 인도인들에게 용기를 준 것은 간디의 한 마디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간디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길에 엎드려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간디는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요. 그러나 나에게는 손이 모자라는군요." 이 말 한 마디가 인도인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고통당하는 인도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져주었습니다. 인도인들은 간디의 '사랑의 말'에 힘을 얻어 독립을 외쳤습니다.

말의 위력은 무섭습니다. 권면과 격려의 말은 '명약'이 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저주의 말은 '독약'이 됩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권면하듯 하나님이 우리를 권면하듯 웃사람이 아랫사람을 권면 하듯 권면하고 양육하며 몸 된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헌신 봉사하는 모두가 됩시다.


2. 위로하며 양육합시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 66: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1:3).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렘31:15)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한 장관이 유럽의 어느 야전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두 다리와 한 팔 그리고 한쪽 눈마저 잃은 처참한 모습의 병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장관은 그 부상병사에게 말했습니다. "용기를 잃지 말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주기 바라네." 그 얼마 후 장관은 화려한 장관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에 들렀던 야전병원을 다시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그 병사는 이미 그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와 결혼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고 없었습니다. 장관은 고향으로 돌아와 예전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장관직을 그만 둔 것에 대해 실의에 빠져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대학의 졸업식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갔다가 예전의 그 부상당한 병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부상병사는 그 후 고국으로 돌아와 공부를 열심히 하여 박사학위를 받게 되어 식장에 나온 것입니다. 부상병사가 장관을 보고 반갑게 말했습니다. "장관님, 정말 고맙습니다. 전에 제가 병원에서 장관님을 만났을 때 제게 해주신 말씀이 힘이 되어 그 후 열심히 공부하여 드디어 이렇게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장관은 부상병사의 말을 듣고 너무도 감격하여 눈물만 흘릴 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신문을 통해서 장관님께서 장관직을 그만 두셨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낙심하지 마시고 힘차게 사십시오."(장관의 위로- 인터넷 정보클럽)

  아빠의 위로라는 간증이 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다가 우리 가족은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고로 나는 두 개의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보다는 덜했지만 아빠도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사춘기를 보내며 죽고 싶을 정도의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밥도 먹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 위안이 되어준 사람은 아빠였습니다. 아빠는 나와 꼭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아픔을 낱낱이 알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사랑으로 나는 무사히 사춘기를 넘기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식 날, 아빠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입학식을 끝내고 나올 때였습니다. 눈앞에 아주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차도로 한 어린 꼬마가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눈 앞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보조다리도 없이 아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아빠가 그 아이를 안고 인도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빠?......" 나는 너무 놀라 소리쳤지만 아빠는 못 들은 척 보조다리를 양 팔에 끼고는 서둘러 가버렸습니다. "엄마? 엄마도 봤지? 아빠 걷는 거......" 하지만 엄마의 얼굴은 담담해 보였습니다. “놀라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되리라 생각했어. 아빠는 사실 보조다리가 필요 없는 정상인이야. 그 때 아빠는 팔만 다치셨어. 그런데 4년 동안 보조다리를 짚고 다니신 거야. 같은 아픔을 가져야만 아픈 너를 위로할 수 있다고 말야.” "왜 그랬어? 왜 아빠까지....."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울지 마. 아빠는 너를 위로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는데...... 오늘은 그 어린 것이 교통사고로 너처럼 될까 봐서......" 앞서 걸어가는 아빠를 보고 있는 나의 분홍색 파카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습니다. 마음이 아픈 날이면 나는 늘 아빠 품에 안겨서 울었습니다. 그때 마다 소리 내어 운 것은 나였지만 눈물은 아빠 가슴 속으로 더 많이 흘러내렸습니다.(아빠의 위로-인터넷 정보클럽)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류 대학 총장 튤록 부부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1861년,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알버트 공이 별세하므로 여왕은 외로운 여자가 되었고, 같은 해 튤록 총장이 죽어 그 부인 역시 외로운 여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여왕은 예고 없이 과부된 튤록 부인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보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려는 튤록 부인을 만류하며 여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어나지 마시오. 나는 오늘은 여왕의 신분으로 당신을 찾아온 것이 아니오. 남편 잃은 여자가 남편 잃은 여자에게 찾아온 것이오.”

만왕의 왕 하나님 되신 예수님께서 그러실 필요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 세상에 인간의 슬픔을 위로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슬픔의 근원이 되는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성령님으로 들어오시어 언제나 우리의 위로에 응해 주십니다. 고아의 우는소리에 보모가 응하는 것처럼, 환자의 부르는 소리에 간호사가 응하는 것처럼, 억울하게 체포된 사람의 부르짖음에 변호사가 응하는 것처럼, 젖 먹는 아이의 우는소리에 어머니가 응하는 것처럼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하시어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위로와 권면의 하나님-인터넷정보클럽)

위로 하여라 네가 아플 때에 내가 너를 위로했듯이
눈물 닦아 주어라 네가 울 때 내가 네 눈물 닦아줬듯이
위로 하여라 네가 아플 때에 내가 너를 위로했듯이
눈물 닦아주어라 네가 울 때 내가 네 눈물 닦아줬듯이
사랑은 나로 말미암는 은총
사랑은 나로 말미암는 선물
사랑은 나로 말미암는 긍휼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위로 하여라 네가 아플 때에 내가 너를 위로했듯이
눈물 닦아주어라 네가 울때 내가 네 눈물 닦아줬듯이
내가 너를 사랑했듯이
내가 너를 사랑했듯이 - [shalom]


3. 경계하며 양육합시다.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잠 15:5)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13:24)

요즘 아이들은 양육하기가 힘드다고 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반에서 맨 날 꼴지 하는 아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기말고사 때는 꼴지에서 벗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부자간의 인연을 끊겠다." 고 말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아들이 집에 들어오자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시험은 어떻게 되었냐고 그러자 아들 왈 "누구세요?" (인터넷 정보클럽)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란 글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냉정한 눈으로 대하라 : 자녀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마음에 아이를 관찰하는 눈이 흐려지지 않도록 냉정해져야 한다. 아이의 장점이나 결점이 발견되면 우선은 장점을 칭찬하여 아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결점은 우회적으로 주의를 주면서 감싸는 배려가 필요하다.

바람직하게 꾸짖어라 : 꾸짖을 때 아이가 저항하는 것을 대비해 다양한 처방전을 준비한다. 예를 들어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무언형 아이에게는 평소와 다름없이 대하면서 아이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린다. 어리광형의 아이는 엄하게 꾸짖어 반성하도록 한다. 적절한 시기에 이런 훈련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의 앞날에 시련이 닥칠 수 있다. 도피형 아이는 인생에서는 어떤 일이든 도망가는 것이 절대로 용납되는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시킨다.(인터넷 정보클럽)

  경계를 무시한 결과는 너무 엄청납니다.

1889년 5월 31일은 미국 역사상 엄청난 홍수 사건이 발생한 날로, 한 마을 2,000여명이 모두 몰사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기 전인 1888년 초여름, 펜실베니아주에서는 여름 장마에 대비한 댐의 안전 여부를 조사하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작은 마을 존스타운에서 가장 가까운 댐이 안전치 못하여 대피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조사 위원회에서는 마을 주민들에게 대피를 촉구하는 연락을 했으나, "그런 걱정 마십시오. 이제까지 끄떡없던 저 댐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단 말이오?"라고 대답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해 여름이 무사히 지나고 가을이 되자 또다시 조사 작업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경고가 내려졌으나, 대답은 역시 같았습니다. "지난여름에도 위험하다고 했지만 무사히 넘기지 않았소! 이제 곧 겨울이 올 텐데 별 일 있겠소!" 이렇게 해를 넘기고, 사고가 있기 두 주일 전인 1889년 5월 17일 마지막 조사 작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까딱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두 주일 후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로 댐이 파괴되자, 그들 마을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위험하다는 사전의 경고를 들었다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으나, 듣지 않았기에 그들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명령도 듣고 지키는 자에게는 축복이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멸망만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을 구경 갔더니, 어느 아버지가 먼저 와 있고, 다음에는 그 아들이 왔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만나게 되니까 아버지가 기가 막혀, “야, 이 녀석아, 네가 어떻게 지옥에 왔느냐? 너를 행복하게 하고, 잘 살게 해 주려고 못할 짓까지 하면서 이 지옥까지 왔는데...” 그랬더니 아들이 뻔뻔스럽게 대답하기를, “차라리 내가 가난했으면 정직하게 살았을 것을, 아버지가 재산을 많이 물려주었기 때문에 허랑방탕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까? 나는 아버지 돈 때문에 지옥 왔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에게 돈 물려주려고 못된 짓까지 하다가 지옥 갔고, 아들은 아버지가 물려준 불의한 돈 허비하다가 역시 지옥에 와서 지옥에서 ‘부자가 상봉’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권고하고 위로하고 하는 이유를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살전 2:12)고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히 행하기 위하여 권고하는 아버지 위로하는 아버지 경계하는 아버지를 본 받아 양육받으며 양육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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