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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아이 (히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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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영일 목사 (범어교회)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1. 학대받는 아이들

아동복지법 제29조에 의하면 아동에게 금하는 행동이 나옵니다.

․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는 학대행위
․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성폭행 등의 학대행위
․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
․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 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 양육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
․ 아동을 타인에게 매매하는 행위
․ 아동에게 음행을 시키는 행위
․ 장애를 가진 아동을 공중에 관람시키는 행위
․ 정당한 권한을 가진 알선기관 외의 자가 아동의 양육을 알선하고 금품을    취득하는 행위

이러한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정서적 학대와 방임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게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동 학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가정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서울 특별시 아동 복지 센터 자료).

-  가족내 폭력이 존재하는 경우(특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는 경우)
-  부모나 돌보아주는 사람이 알콜 중독자나 기타 약물 남용자인 경우
-  부모나 돌보아주는 사람이 아이에 대해 모성애가 보적한 경우
-  부모의 기대가 아이의 발달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  아동을 돌보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경우
-  직장을 잃었거나,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경우,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    는 경우
-  가족의 사망이나 이혼으로 인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는 가족
-  부모가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한 경우

우리들의 가정에 이런 특징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기를 바랍니다.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가 아동 학대의 원인 제공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구약 예레미야 선지자가 울면서 그 시대의 죄악을 꾸중하는 중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애 2:11)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애 4:4)

즉 이런 현상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임하는 심판으로 아이들이 그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른들의 범죄로 아이들과 자녀들이 그 고통을 겪는 것은 더 큰 죄악입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이혼에 관한 설문에 응한 어느 성도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관계를 계속 회복하지 못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사는 모습을 보고자라는 자식의 고통과, 이혼했을 때의 자식이 받을 고통의 차이를 생각해보고 전자의 것이 자식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면 이혼해야할 것... 나의 고통은 어쩌면 나의 선택(결혼)에 의한 것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자식들은 아니기에... 사람들은 (자기가)선택하지 않은 일로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함”   

물론 이혼의 옳고 그름은 다른 판단이겠지만, 부모의 죄로 인하여 자녀가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은 옳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이를 사랑하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소실 하갈이 광야에서 아들 이스마엘과 유리 방황활 때 그를 찾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창 21:17-20)

비록 언약의 자손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마엘까지도 살피시며 그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들도 내 자녀에게 뿐 아니라 다른 아동들까지도 학대받는 일이 없도록 관심을 갖고 돌보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2. 학살의 위기에서 구원받은 아이 모세

본문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그 백성의 수효가 창대 해져 갈 때, 애굽의 바로가 위협을 느끼고는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에 남자 아이가 출생하면 모두 죽이라는 영아 학살 명령이 떨어졌었습니다. 이것은 학대 정도가 아니라 학살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가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 집에서 숨겨 키웠습니다. 나중 할 수 없어 나일 강물에 버렸는데 이 아이를 바로의 공주가 발견하고 자기 양자로 삼아 키우게 됩니다.

여기서 이 아이가 아름다워 버리지 않고 키운 것으로 설명되는데, 누구나 아이들은 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아이가 아름답게 보이지 않으면 결국 아이를 홀대하거나 무시하거나 학대하게 됩니다. 아이가 아름다웠던 것 보다 아이를 아릅답다고 느끼며 예뻐하는 그 마음이 아이를 살린 것입니다. 아니 살린 정도가 아니라 그 아이를 위대한 인물로 성장시킨 비결입니다.

우리의 자녀를 훌륭한 인물로 키우려면 먼저 부모가 그 아이를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가 예뻐하고 칭찬하며 귀하게 여길 때 아이는 인생을 귀하고 가치롭게 살아갑니다. 부모에게 무시당하고 학대받는 아이들 중 훌륭한 인생을 창조해가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오늘 젊은 부모들은 자기 어린 자녀를 대부분 그렇게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왕자 같고 공주처럼 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모에 그칠 경우가 많습니다. 왕자 같이 입히고 공주처럼 꾸며 줍니다. 그러나 진정 깊은 사랑과 애정으로 양육하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증거는 대부분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못된 아이로 크는 모습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아름답고 예뻐서 내 목숨을 걸고라도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모세 같이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숙제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24-26절)

우리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온전하게 못살았어도 내 자녀에게는 바른 인생의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비록 현실적이지 못하고 희생이 따른다 할 지라도, 정말 아름다운 아이라면 아름다운 인생으로 키워주어야 합니다.

태어났을 때는 참 아름답고 예쁜 아이였는데, 클수록 못난 아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물은 열두 번도 더 변하니까 외모보다 그 인격이 정말 멋진 아이가 되도록 기도해주고 본을 보이고 영향력을 끼쳐서 자녀들이 제대로 된 멋진 인생의 주인공이 되도록 키워주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세의 믿음의 인품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부모의 이름으로 사는 자들이 없도록 합시다.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자신의 삶을 개척하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는 이웃(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합시다. 고난 당하는 이웃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사랑의 아이로 키웁시다.
셋째는 쾌략주의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겐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써 항상 즐길 수 있는 쾌략의 환경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의 문화가 쾌략문화입니다. 행복의 정의가 쾌략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이런 환경에서 이길 수 있는 영성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넷째는 상주시는 참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섞어질 것을 바라며 유한한 것에 머물지 않도록 자녀들에게 영안을 심어줍시다. 영원한 것을 아는 자로 키웁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자녀들을 위한 가장 큰 유산입니다.

3. 나실인처럼

구약 사사기에 보면 나실인의 규례가 있습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5)

즉 나실인은 하나님의 백성을 적군 이방인의 손에서 구원할 용사였습니다. 이런 용사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은총으로 세워지지만, 못지 않은 게 출생 때부터 그 부모가 하나님께 바치운 아이로 키우는 것입니다. 바치운 아이란 목회자로 드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갈 자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구별하여 키웁시다. 나실인 처럼 하나님께 바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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