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당신에게 복된 길이 열립니다 (신 11:18-25)

  • 잡초 잡초
  • 409
  • 0

첨부 1



월드컵이 개막되는 날에 짝 홀수 차량운행으로 거리가 한산하였는데 두시간 정도 걸려야 갈 수 있는 거리도 한시간 만에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길이 뚫리니 얼마나 시원스럽고 좋은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인생을 길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인생의 길을 가는 동안 이렇게 길이 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모세가 말씀하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지난 주에는 당신에게 살 길이 열립니다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지난 주에 새 생명 축제의 날을 지냈다. 지난 주에 등록한 32세의 젊은이가 다음 날 월요일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나는 분명히 믿는다. 그 사람에게 분명히 영원히 살 길이 열렸음을 확신한다. 교회에 등록하는 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당신에게 살 길이 열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들었고, 마음으로 받아드렸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살 길이 열려진다면 얼마나 보람있는 시간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오늘도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복된 길이 열리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당신에게 복된 길이 열립니다." "당신에게 복된 길이 열립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놓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전한 설교의 내용이다. 신명기의 주제는 "너희는 하나님을 잊지 말고 잘 믿고 순종하라 그리하면 복된 길이 너희에게 열린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가? 형통케 하시는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형통케 하시는 축복을 허락하신다.

요셉은 형통한 복을 누렸던 사람이다. 억울하게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그는 애굽으로 팔려갔다. 억울하게 보디발의 아내에게 버림받고 죄인 신세가 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셉이야 말로 억울한 누명으로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을 향하여 불행한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를 보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겠다고 큰 소리치고 백성을 이끌고 나왔다. 모세는 어디로 가는지 길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백성을 인도하여 나왔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홍해가 가로 막고 있었다. 앞에는 홍해가 뒤에는 애굽의 군인들이 쫓아온다. 물에 빠져 죽든지 애굽 군대의 칼에 맞아 죽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백성들이 불평한다.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모두 이곳에서 수장시키려 하느냐? 모세가 백성을 향하여 말한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고 기도한다. 그 때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물이 갈라져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으로 홍해를 건너게 되었다.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하였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갈 때에 두려움이 없었다. 물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형통케 하시리라. 먹을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리라. 방향을 몰라도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리라는 확신을 갖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행진하였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었는데 여호수아에게는 두려운 마음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모세를 통해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앞 길에 장애를 두려 말아라. 성령이 너를 인도하시리니 왜 지체를 하고 있느냐"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장애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요셉에게도 형제들에게 버림받는 장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쓰고 옥에 갇히는 장애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은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신다. 출애굽의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홍해가 가로막은 장애, 목마름의 장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주는 장애, 등 여러 장애가 있었지만 그 장애를 극복하여 형통한 길을 가게 하신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여리고 성의 장애가 있었지만 그 장애를 극복하고 형통한 길을 열어 주셨다.

앞 길에 장애가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것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 형통케 하신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은 아무런 장애가 없은 고속도로를 가는 것이 아니다. 돌밭을 갈 때도 있다. 돌을 치우고 갈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셔서 형통케 하신다. 물을 건너야할 때에 다리를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주셔서 우리에게 형통케 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앞 길에 장애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살 길이 열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복된 길이 열린다고 분명히 말씀하였다. 나는 우리 교회가 생명의 땅으로 이전하는 과정을 보면서 이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는다. 이전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시고, 힘도 주시고, 좋은 사람들도 연결하게 해 주셔서 우리에게 형통케 역사하셨다. "앞 길에 장애를 두려 말아라."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된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형통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는다.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장에도 열려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풍성함으로 이어진다.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라."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렇게 풍성케 하시는 복된 길이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 교회를 보라. 생명의 땅으로 이전하는데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시더니, 풍성케 하시는 복된 길도 열어 주신다. 더 많은 성도들이 모이게 하시고, 더 많은 헌금도 할 수 있게 하시고, 성도들의 열심도 더욱 풍성케 하시고, 성도들의 봉사와 섬김, 충성도 더욱 풍성케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여러분의 가정에 십일조의 액수가 늘어나고,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렇게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자연의 원리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이기도 하시다. 모내기를 한다. 모종을 심으면 씨의 숫자에 비해서 얼마나 많은 열매를 거두는가? 한 개의 씨앗을 심었다고 한 개의 열매를 거두지 않는다. 수십배, 수 백배, 수 천배의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지어 놓으신 원리는 하나를 통해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도 이러한 풍성케 되는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기를 바란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씨앗을 심어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축복의 씨앗을 심어야 축복의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 형통한 복된 길이 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떤 씨앗을 심어야 하는가?

축복이라는 말의 어원을 보면 무릎꿇다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복된 열매를 거두려면 무릎 꿇는 순종이 있을 때에 복된 열매를 거두게 된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씨앗을 심으면 형통케 하시는 복된 길이 열리게 하신다. 풍성케 하시는 복된 길이 열리게 하신다.

옛날 이북 함남 지역에 김유경이라는 가난한 과부성도가 있었다. 담임목사님께서 교회를 사임하고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되었는데 서운하다며 목사님 조반이라도 지어 잡수시라고 찹쌀 두 되를 가져왔다. 목사님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남 3녀를 거느린 과부의 형편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뒷조사를 해 보았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마련한 쌀이었다. 목사님은 감격하여 차마 그 쌀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쌀 두 되를 가지고 선교회를 조직하였다. 두 되의 쌀을 팔아 개를 사고, 개가 다 크자 팔아 돼지를 사고, 또 돼지를 팔아 소를 키우고 그 후 소를 팔아 땅을 샀다. 그러고는 점점 더 땅을 늘려 결국에는 3만여 평이나 되었고 이렇게 생긴 엄청난 재정은 선교하는 데 모두 사용하게 되었다. 그 성도 역시 3년 후에는 하는 일마다 형통하여 큰 부자가 되는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축복의 씨앗을 심으니 얼마나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가?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축복의 열매를 거두려면 반드시 순종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 꿇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십일조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 내는 세금이다. 십일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한다. 또한 십일조는 축복의 열매를 거두기 위한 씨앗이다. 추수한 농부들이 풍성한 곡식으로 기뻐한다. 너무 기쁘다고 풍성한 곡식을 모두 팔아버리면 내년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내년에 파종할 씨앗을 잘 보관해 두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을 먼저 골라 보관해야 한다. 수입의 열 중에 하나를 바치는 것은 이러한 씨앗과 같다. 하나님의 원리는 씨앗을 심으면 수 백배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산 방법이다. 십일조의 씨앗을 심으라. 그리하면 풍성케 하시는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하신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이지만 이것을 다시 하나님께 다시 바침으로 오는 축복은 처음 축복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나중에 오는 축복은 잃어버릴 수 없는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에 귀한 아들 이삭을 주셨다. 그것도 백세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도 참으로 이상하시다. 줬다가 왜 다시 빼앗아 가시는가?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아들 이삭을 바치기 위해서 모리아 산으로 올라간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바칠 수 있는 양을 준비해 두셨다. 이삭을 바치기 전도 하나님의 축복이었지만, 이삭을 바친 후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삭을 바치기 전과 바친 후는 차원이 다른 축복이라고 하였다. 이제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살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다시 하나님께 믿고 순종할 때에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른 축복의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여러분에게 복된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 어떻게? 순종의 무릎을 꿇자. 축복의 씨앗을 심자. 형통케 하시는 축복, 풍성케 하시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