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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왕하 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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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한대근 목사 (송악교회)

통계학에 ‘엥겔계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 가정이나 사회 또는 국가의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전체 생계비 지출 총액에서 음식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합니다. 따라서 ‘엥겔계수’가 높을수록 후진국에 속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소득 중에서 먹는 것에 쓰는 비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후진국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소득 중에서 그 비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선진국으로 분류됩니다. 그만큼 여유 있는 삶을 산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웰빙’이라는 말이 사회적인 중요한 코드가 될 만큼 이제 삶의 질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 만큼 생활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의 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인 ‘엥겔계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엥겔계수’가 높은 사람은 하루에 자기 육체의 본능을 위하여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영적 엥겔계수가 낮은 사람은 영적인 경건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수준 높은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하루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어느 정도의 힘을 쏟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영적인 엥겔계수가 높은 사람입니까? 낮은 사람입니까? 참된 그리스도인,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경건한 삶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과 에너지와 정열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질, 신앙의 수준을 높여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 면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흥미 있는 전쟁이야기 입니다.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북 왕국은 아합 왕의 아들인 여호람이 다스리고 남 왕국은 여호사밧이라는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에게 모압이라는 나라가 좋은 새끼양의 털 20만 마리 분을 매년 조공으로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아합 왕이 죽자 조공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입니다. 이에 화가 난 북이스라엘 왕국의 여호람 왕은 모압을 치기 위해 군대에게 총동원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옆 나라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람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함께 모압을 치기로 결심하고 작전을 모의했습니다. 어느 길로 가면 전쟁에 유리할까를 따지다가 에돔을 통과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서 에돔 왕에게도 미리 연락을 하여 세 나라(북이스라엘 왕, 남유다 왕, 에돔 왕)가 연합한 군대가 모압을 치기 위해 출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칠 일 길을 가다 말고 다 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군인들과 말들이 마실 물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싸우기도 전에 목말라 죽을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때 믿음이 좋았던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을 본 엘리사는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찾아왔습니까? 당신의 아버지 아합 왕이 섬기던 바알신의 선지자에게나 가보시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여호람은 “아닙니다. 나는 당신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우리가 모압을 치려는데 물이 떨어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좀 알려 주십시오” 이 말에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만군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당신을 보고서는 도저히 그 청을 들어줄 수 없지만 내가 여호사밧 왕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 청을 들어주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더니 수금을 연주하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수금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히더니, 엘리사는 예언을 시작합니다. “첫째, 이 골짜기 군데군데 웅덩이(개천)를 파십시오. 바람이나 비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지만 그 웅덩이에 물이 가득 차서 군사와 말들이 물을 충분히 마실 것입니다. 둘째, 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모압을 당신들의 손에 붙여 주셔서 모압의 중요한 성읍들을 다 쳐서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밭들을 다 빼앗으십시오.” 그들은 엘리사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제사를 드리는 시간에 에돔 쪽에서 물이 흘러 나와서는 파 놓은 웅덩이마다에는 물이 가득 차 올라왔고, 이것이 햇빛을 받아서 모압에서 바라볼 때에는 붉은 핏물같이 보였습니다. 모압은 이미 국경에 군대를 모아 진을 치고 있었는데 에돔 골짜기의 웅덩이마다에 고인 물이 피처럼 보이자 모압 사람들은 “피바다로구나 연합군의 왕들이 내란이 일어나서 저희들끼리 서로 죽인 것이 틀림이 없다 모압의 장병들아 나아가서 싸워 이기자” 고 하면서 무모하게 공격을 감행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물을 마시고 사기가 충천한 연합군의 군대가 기다리고 있다가 완전히 쳐서 승리를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목마름

9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행하더니 길을 둘러 행한지 칠 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모압을 정벌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 세 나라 연합군은 모압평지에 들어가서 7일 동안 물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명분 없는 전쟁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을 지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남 유다의 왕으로서 믿음이 좋기로 소문이 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십시오. 북 왕국 여호람이 누군가하면, 북 이스라엘 왕국의 여러 왕들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알려진 아합 왕과 이방 여인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부모와 같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며,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하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의 여호사밧은 여호람과 동맹하였던 것입니다. 북 왕국의 여호람이 모압을 치게 된 것은 배신한 모압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한다지만, 남 왕국 여호사밧에게는 뚜렷한 명분이 없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에돔 왕까지 끌어들이는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여호사밧의 오만과 아집에 대해 하나님은 물을 말려버리는 무서운 진노를 발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오만과 아집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아무런 부담 없이 행하면서 스스로 하나님께서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는 것이 오만입니다. 또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아집입니다. 바로 이러한 오만과 아집은 우리들을 무너지게 만드는  무서운 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없이 인간적인 관계만으로 자신의 성공을 꿈꾸고 계십니까? 친구들이 도와주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 없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없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고 않습니까? 자신의 사업 수단을 믿고 교만하지는 않습니까? 아직 젊고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음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오만과 아집을 향해 하나님은 영적기갈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생활을 좁은 길, 혹은 험한 길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신앙생활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영생을 소유한 복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뒤따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군인들이었지만 물이 없으니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무력한 존재들이 되고 말았듯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으면 하루도 올바른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젊음도, 우리가 가진 능력도, 우리가 가진 재산도, 우리가 가진 친구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유익이 될 수 있으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영혼에 목마름만 더해 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샘이 말라버리면 자신이 서 있는 위치조차 분간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샘이 마르지 않도록, 그 은혜의 샘에서 언제든지 넉넉한 생수를 공급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말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말씀에 저에게 있도다

11절과 12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 내려가니라”

모압을 치러 나섰던 세 나라 연합군이 7일간 행군하는 동안 물이 없이 목말라 죽을 지경이 되자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물을 만한 선지자가 없는지를 물었습니다. 바로 그때, 이스라엘의 신하 중의 한 사람이 엘리사를 소개했습니다. 당시 엘리사는 엘리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힘입고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면서 선지자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갔습니까? 그것은 여호사밧의 한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기갈에 빠졌을 때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물을 만한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영적인 기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의 교회에 임하고 있는 영적인 갈증은 바로 말씀에 대한 갈증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함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과 요란한 찬양과 생동감 있어 보이는 예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지 못하면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정말 모든 마음을 모아야 할 줄 믿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바로 걸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도 있고, 사람은 기만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거짓 행동에도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이 아닌 길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문제 해결의 열쇠는 욕심과 거짓이 가득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입니다. 만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엘리사가 마음의 분노를 버리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 위해 수금 탈자를 불렀던 것처럼, 모든 마음의 감정을 하나님께로 집중해야 합니다. 영성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찬양으로 기도로 묵상으로 또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해 주는 좋은 신앙서적을 읽음으로 하나님께로 모든 감정을 집중하면,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강같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준 높은 신앙의 삶입니다. 항상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이 풍성한 영성의 축복이라면, 이런 것들을 추구하고 바라고 기대하며 사는 것은 신앙의 웰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맑아지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풍성함이 여러분의 영혼을 살찌우시기를 축원합니다.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16, 17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세 나라 연합군 왕들은 엘리사를 찾아와서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서 군인들을 살려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그를 찾아온 세 왕을 보면서 마음속에 의분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구약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히는 아합왕과 악한 이방여인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자로 그 아버지가 걸어간 악의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긴 하나 현실주의자로 정치적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여호람과 에돔 왕과 함께 동맹군이 되어 몰려다니는 사람이며, 에돔 왕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사는 세 왕을 보면 가슴 속에 의분이 터져 나오고, 군인들을 바라보면 안타까워서 마음에 진정할 수 없는 고통이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 온 여호사밧 왕을 보아서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진정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기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깊이 있는 영적인 교제를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평소에 자기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잘 쓰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수금(거문고) 탈자를 불러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문고 타는 자가 거룩한 찬양을 연주할 때 드디어 그의 마음의 분노가 가라앉고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갔습니다. 수금 소리와 함께 깊은 영감에 사로잡힌 엘리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골짜기에 개천(웅덩이)을 많이 파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바람도 없고, 비도 없는데, 그 골짜기에 물이 가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7일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해 기진맥진해진 군인들에게는 웅덩이를 파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개천을 파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땀 흘려가며 골짜기마다 개천(웅덩이)을 많이 파 놓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룻밤이 지난 후 수없이 파놓은 개천마다 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온 골짜기가 물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기갈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마른 골짜기에 개천(웅덩이)을 파듯이 죽을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나 안일하게 은혜를 얻으려는 이기주의자를 만나주지 않으십니다. 땀을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심정으로 매어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에는 고상한척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안 주셔서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모하지 않기에 그 은혜를 받지 못함인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의 은혜는 강같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개천을 파되 많이 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조금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후히 주시는 분입니다. 흔들고 누르고 가득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그릇입니다. 이사야 54:2에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시편81:10에서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그릇을 많이 준비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선지자 생도의 아내가 남편이 죽은 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할 때에 이적을 통해서 해결해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이적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이었지만 빈 그릇을 준비하라는 엘리사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한 여인의 믿음이 그 능력이 부어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빈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만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땀 흘려서 웅덩이를 파야 합니다. 파되 많이 파야 합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웅덩이를 많이 파놓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가득가득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의 강물이 흐르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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