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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시 57: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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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본문 : 시편 57편 6 - 8절

유명한 야구 선수였다가 전도자가 된 빌리 선데이에 관한 일화입니다. 그가 회심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 그 교회의 한 성도가 그의 어깨에 팔을 얹고 신앙에 대한 좋은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윌리엄, 나는 자네에게 세 가지 간단한 규칙을 일러 주고 싶네. 만약 이 규칙을 지킨다면 자네는 결코 신앙의 퇴보자는 되지 않을 걸세. 하루에 15분 동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하루에 15분 동안 하나님께 말하고 하루에 15분 동안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일세." 이것은 초신자인 빌리에게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을 것과 기도할 것, 전도할 것을 알려 준 것입니다. 그 날부터 빌리는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같이 하여 그는 하루를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루의 삶을 질서 있게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새롭게 시작되는 시간,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대화하는 것만큼 복된 일은 없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궁핍하고 험난한 광야의 생활 중에, 사울왕으로부터 좇기는 신세가 되었으니 오죽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겠습니까? 그 날도 동굴에 숨어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절망이 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움만 연속일 듯 합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니 믿음이 옵니다. 환경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만 보입니다. 평안한 마음도 왔습니다. 목청껏 찬송하니 힘도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새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7,8절) 그는 고백처럼 다윗 왕조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황금시대를 이루어 놓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의 후손으로 와서 역사의 새벽을 일깨우게 됩니다. 어둡고 캄캄한 인생의 밤에도 신세타령이나 다른 사람과 세상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고 외칠 수 있는 자의 삶을 결코 부끄러운 삶을 살 수 없고 후회하는 생각을 기록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 얼마나 멋있는 시적 묘사입니까? 하루가 24시간입니다만, 그 24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여러분들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까? 아침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하루를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에 직장인 624명에게 직장에서 업무 효율이 가장 높은 시간대가 언제인가를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전 10시부터 11시가 56%, 오전 9시에서 10시까지가 22%, 오전 11시에서 12시까지가 7%, 도합 85%가 아침 시간이 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최근에 일본의 다키이 노부오 와 사이쇼 히로시라고 하는 사람이 책을 냈는데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하라!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이 되라!” 이 책에는 아침에 대한 예찬이 나옵니다. ‘무기력한 아침은 무기력한 하루를 만듭니다. 아침은 가장 집중력이 높고 가장 생산성이 뛰어난 시간입니다. 위대한 CEO, 성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침형 인간입니다. 아침형 인간은 성공형 인간입니다. 아침형 인간으로 변하는 것은 자기 변화를 이루고 싶은 강한 열정과 굳은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엄청납니다. 아침형 인간은 단지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중요성을 깨닫고 아침에 승부를 거는 사람입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이른 아침에 깨어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아침에 뇌가 빨리 움직이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침에는 우뇌가 활발하게 작용합니다. 우뇌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번뜩이는 착상을 많이 해야하는 경영자에게 아침은 더없이 소중한 시간입니다. 아침형 인간의 건강은 보장되어 있으며 아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성공도 건강도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이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은 하루를 지배할 수 있고 그 하루를 지배하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지배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얻고자 했던 가치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날 인류가 야행성 생활에 젖어들고 있습니다. 특별히 밤 문화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밤 문화는 유흥문화, 놀고 먹는 문화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화에 빠져들수록 늦잠을 자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밤 문화, 즉 죄악과 타락 그리고 각종 귀신 문화에 잡혀있습니다. 미국의 인공위성이 한반도를 촬영했습니다. 이북은 깜깜한데 비해 남한은 불야성을 이루었습니다. 좋은 전기사정 덕분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음란해지고, 부정부패는 만연하고 대기업은 썩은 고목처럼 속을 내보이고, 청소년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며 교회마저 기울고 있습니다. 더듬어 보면, 경제가 부흥되었다 하던 때부터 밤의 문화는 꽃을 피우고 반대로 새벽 문화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TV이도 늦은 밤까지 방송합니다. 극장도 심야극장이 성업입니다. 시장도 야시장이 늘어갑니다. 거리도 온통 밤에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밤은 마귀가 역사하는 때입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나갔을 때가 밤이었던 것입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서 밤이러라”(요13:30)
소돔과 고모라 성을 기억하십니까? 밤 문화가 왕성했던 도시입니다. 그 성의 멸망은 새벽을 깨우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새벽에 깨어 있는 사람은 밤늦게까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새벽 사람이 영의 사람이라면 밤 사람은 육의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란 밤 문화를 타파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만큼은 새벽사람이 되어서 밤 문화를 불식시키고 타파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캄캄한 세대의 밤에 새벽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의 잠든 영혼을 깨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낮과 밤을 구별하는가? 저쪽에서 사람이 걸어오는데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 있으면 낮이고 없으면 밤이며, 저편에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구별되면 낮이고, 안 되면 밤이며, 저쪽에서 걸어오는 짐승이 소인지 말인지 구별되면 낮이고, 안 되면 밤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한 선비가 그게 아니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원수인지 친구인지 구별되면 낮이고, 안 되면 밤이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구별되면 낮이고, 안 되면 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떠합니까? 선악을 구별할 수 없는 밤이 아닌가? 이 캄캄한 밤을 깨우기 위해 먼저 나 자신부터 영적 잠을 깨어야 합니다. 깊은 영적 잠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도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외치기 전에 먼저 "내 영광아 깰지어다"라고 외쳤습니다. NIV 영어 성경번역엔 "Awake my Soul" "내 영혼아 깰지어다"로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이 어두운 세대의 밤을 일깨우기 위해선 먼저 내 영혼이 깊은 죄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중세기를 흔히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중세기는 그 시대를 밝혀줄 종교마저 부패하고 깊이 잠들어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을 무지와 어두움으로 몰아간 비극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어두운 밤에도 깊은 잠에서 깨어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새로운 광명의 새벽이 동터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깨어 일어나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의 어두움을 깨우치고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광명의 새 아침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먼저 깨어나야 합니다. 내가 잠들어 있으면서 새벽을 깨우겠다는 것은 잠꼬대입니다.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망상입니다. 그러한 망상이 있는 곳에 끊임없는 혼란과 비극이 연속될 뿐입니다. 새로운 사회 혁명의 새벽은 한 영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시작됩니다. 역사의 새벽은 다윗처럼 확정된 마음의 사람들에 의해 동트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읊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고백한 확정된 마음은 자기 자신의 영광이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이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 삶을 바치겠다는 그러한 확신과 신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적은 이해 관계에 눈이 어두워 친구를 배반하고 중상모략하며 권력과 돈 앞에 맥을 쓰지 못하고 신의와 양심을 헌신짝처럼 팔아먹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의 새벽은 동트지 않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하지 않고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해가며 나의 생명까지 정의와 진리를 위해 버리고 헌신할 수 있는 그러한 확고부동한 신념의 사람들에 의해 새 역사의 장은 언제나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백히 기억해야 할 것은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확정된 마음은 자기 자신의 확신과 신념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해 지금까지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주어지는 확신과 신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고백은 자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이나 교만과는 180도로 다른 자세인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이 나의 재간이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요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축복이며 또 앞으로 나를 위해 예비해 주시리라는 [여호와이레]의 믿음에 근거한 확신과 신념인 것입니다. 역사의 새벽은 바로 이러한 신앙의 사람들에 의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능력과 힘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요 그의 말씀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철강왕이었던 카네기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침에 잠자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다.” 그러면서 아침형 인간에 대한 이 예찬이 나옵니다.
성도 여러분은 아침형 인간이십니까? 아니면 야행성, 인간입니까? 이 새벽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새벽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아침과 새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마치 아침을 잃으면 인생 전체를 상실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사람의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 39절에 보면 예수님이 아주 이른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집을 떠나서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의 귀신을 내쫓음으로 ‘아, 저분이 능력이 많으신 분이구나!’ 병든 자를 친히 만지시면서 그들을 치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당신이 참으로 귀한 분이요, 당신이 선지자요, 그래서 예수님의 인기가 높이 올라가는 그 순간에 이 모든 인간적인 인기와 인간적인 명예에 대해서 차단하시는 예수님의 삶의 태도와 삶의 용기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하나님 앞에 홀로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전적인 신뢰를 두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이른 아침에 기도함으로 어제의 모든 사건으로부터 탈출하게 됩니다. 어제의 사건이 고뇌이든, 어제의 사건이 상처이든, 어제의 사건이 명예이든, 어제의 사건이 기쁨이든 어제 가졌던 모든 자리에서부터 단절하고 새로운 사람을 시작하는 것이 아침을 사는 사람들의 비밀이고 그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새벽기도란, 인간의 모든 칭찬에서부터, 인기에서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내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하는 마음의 결심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제의 영광에 더 머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은 어제의 영광, 어제의 인기, 어제의 사람들의 칭찬으로부터 과감하게 단절하십니다. 그리고 다시금 하루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면서 당신의 인생을 다시금 시작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어제 경험한 괴로움과 슬픔, 부끄러움이 아무리 커도, 어제의 그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고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처음부터, Start Line부터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새벽을 사는 사람들, 새벽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처음 사랑처럼 다시 인생을 시작하겠습니다. 어제 내가 갖고 있었던 것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좋은 것, 아무리 명예가 있어도 다시 처음 마음으로 시작하는 용기와 담대함과 삶의 올바른 자세를 갖는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어제 내가 가졌던 열등감, 어제 내가 가졌던 무력감. 이 모든 것에서부터 벗어나는 인생의 비밀이 새벽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새벽에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최고의 특권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삶의 모범을 배웁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는 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새로운 희망이며 소망입니다. 어제를 넘어서 오늘을 새로 시작하게 되며 내일을 기대하며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른 새벽이란 인간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에게서도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 성경은 새벽에 하나님이 결정적으로 일하는 때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저녁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기도라 한다면 새벽에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나의 삶 속에서 보여 주시겠습니까?’그렇게 기대하며 소원하는 기도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시편 5편 3절에 보면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는 시간이 아침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아침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하나가 되어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그 시간이 아침이라! 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응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루를 새롭게 살고 싶으십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하나님의 역사와 행동하심을 보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새벽을 사셔야 합니다. 새벽에 기도하셔야 합니다. 새벽에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살아가야 우리의 인생 속에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세상 사람도 새벽을 살면 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 말로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에 아침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행위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하루에 모든 창조를 행하신 다음에 성경은 삽입부처럼 이렇게 써놓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되더라.” 하나님이 일을 끝내시면 저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침이 되면 다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은 시작하시는 시간이 되었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아침이란 하나님의 창조행위의 시간.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시간. 하나님이 듣는 시간.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는 시간이라고 말씀해 줍니다. 그래서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생을 활기 있게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기대하며 준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새벽형, 아침의 사람들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했을 때,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의 안장을 지우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 앞에 서서 대결하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7장에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네가 행하는 것을 네가 볼 것이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모세가 신의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네게 보이라 그 아침에 네가 너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 십계명을 주겠다.”고 약속 해주십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점령할 때,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리라! 그렇게 기록해 줍니다. 여러분,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 여기 믿음의 사람들의 신비한 비밀이 들어가져 있습니다. 시편 57편 8절에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을 사는 사람들만이 이 시대가 갖고 있는 어두움을 보면서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어둠이 있습니까? 우리 안에 시기가 있고, 우리 안에 미움이 있고, 우리 안에 탐욕이 있고, 우리 안에 정욕에 문제가 우리를 끈임 없이 억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새벽을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야행성 어둠의 그 시간을 단축하고, 단축하고 다시 아침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때는 내 안에 있는 어둠을 깨워버리는 하나님의 새벽에 사는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 이 시대에 어둠을 깨뜨리는 새벽을 깨우는 믿음에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제의 인생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까? 어제의 나의 누추함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습니까? 어제의 나의 별 볼일 없는 명예로부터 나를 뛰어 넘고 싶습니까? 어제의 죄악과 탐욕에서부터 벗어나서 탈출해서 새로운 미래의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되고 싶습니까? 새벽에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꿈과 포부는 금방 쓰러져 갈 것입니다. 다른 어떤 교육보다 새벽을 사는 계획, 새벽에 주님 앞에 나오는 계획, 이것이야말로 교회에 다시금 부흥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 한국교회에 이 민족에 어둠을 깨우는 역사가 일어나는 비결인 것입니다. 여러분, 야행성에 문화 속에 빠져들지 마시고 다시금 새벽을 우리에게 주신 새벽을 사는 이 기쁨을 우리 마음속에 누리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새벽을 깨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사람입니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보면, 신문사의 윤전기사, 병원 응급실의 레지던트, 노량진 수산시장의 경매원, 철책선의 군인 등,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새벽을 여는 새벽 사람은, 새벽에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아침에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다윗만큼 새벽의 신비를 깨달은 성도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의 시편 고백을 보면, 새벽에 더욱 힘과 더욱 은혜를 입은 것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 " (시46:5),“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시88:13),“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 148)
이러한 새벽사람은 다윗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신앙의 위인들도 이 새벽에 하나님을 만났고,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창 19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다가오는 불 심판에서 조카 롯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가 이른 새벽이며,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도 새벽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만나를 거두는 때도 새벽이고, 다니엘 역시 이 새벽에 사자 굴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받았고, 하나님 역시 이루신 모든 역사로 보면 새벽 역사이었습니다. 출애굽도 새벽이고, 홍해를 건넌 후 애굽 군대를 수장한 일도 새벽이고, 독생자를 보내심도 새벽이고, 생명의 부활도, 이 새벽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왜 새벽 역사가 일어날까요? 하나님은 빛이시고, 예수님도 빛이시며 또 다른 이유는 새벽은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활동하는 시작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새벽에 기도해야 할까요? 성도는 빛의 아들이요 빛의 사자입니다. 알렌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새들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늦게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새벽 사람 다윗이 새벽을 깨울 때는 광야에서도 승리했습니다만, 늦게 일어난 때에는 궁궐에서도 실패했습니다. 밧새바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를 듣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세상 음식 먹기 전에 영혼의 만나를 먼저 먹어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은 다 아침형 인물임이 의미심장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만나길 원하십니까?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늘의 신비를 경험하길 원하십니까? 각종 문제 해법을 얻고자 하십니까? 닫혔던 미래의 문이 열려지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새벽에 잠자지 말고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며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됩니다. 새벽이야말로, 하나님을 뵐 수 있는 최적의 시간입니다.
세계적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체험적 고백입니다. "나는 세계를 순방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은 아침의 나라였습니다. 내가 캐나다에 갔을 때 아름다운 새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캐나다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일본입니다. 출근하는 발자국 소리와 아침 공장의 요란한 기계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요 발전하는 나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나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 갔었습니다. 고요한 새벽녘 기도회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 교회 가는 성도들의 발자국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영적인 잠을 깨우는 새벽을 깨우는 함성이 한국교회에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판단은 좋았습니다. 30년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위스키 소비량 세계 1위국입니다. 새벽 사람이 잠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새벽을 깨우는 자입니다. 함께 새벽의 행군을 이루고 기도의 비파와 한양의 수금을 울리십시다. 민족도 「새벽종」울렸네 새 아침에 밝았네 할 때 발전되고 교회도 새벽형 교회만이 부흥하고 역사를 장식합니다. 나의 생명 되시고,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은, 토요일 늦은 밤이 아닌 한 주간의 첫 시간 새벽 미명에 어둠의 둥지인 무덤을 깨트리셨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선교에 일생을 바친 영국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사역자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행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제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겠지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과 맞추는 일부터 합니다. 그러면 인생을 사는 보람이 있지요"
새벽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을 일치시키는 시간으로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항상 기도로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하는 주님, 새벽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새벽을 사는 사람, 새벽에 주님 앞에 나아와 무릎 꿇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저희들을 세워주시고 이 시대에 어두움,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을 깨뜨리는 믿음에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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