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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렘 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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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구원 목사 (갈보리교회)

여호와께서 당대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토기장이 집으로 내려가라고 하시고 거기서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토기장이 집으로 내려간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토기장이는 토기를 자기 마음대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들어 놓은 후에는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것은 여지없이 부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파상된 것을 가지고 다시 녹로 위에 놓고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장면을 목도하고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 집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시 앞에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뿐만 아니라 수요장단(壽夭長短)과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토기 만드는 공정을 보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고 한 선언적인 표현에 대하여 묵시적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는 말씀은

Ⅰ. 하나님의 주권적인 절대의지의 선언 입니다.

본문 18장 2절에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러한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

시편 113편 7-9절에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도다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당신의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에 토기장이는 하나님을 비유하고 진흙은 인간에 비유하는 단순논리를 취하고 있습니다.

욥기 10장 9절에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이라고 하셨습니다.
욥기 33장 6절에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64장 8절에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토기장이 집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토기장이 집에 있는 녹로나 가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연단 시키시는 실재들입니다. 여기 녹로는 곧 신구약 성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인생을 다듬어 가십니다. 흙덩어리가 토기장이의 손에 들어가서 녹로를 거쳐 용기가 되어 나오듯이 인간이 하나님의 쓰시기에 유용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는 순서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붙잡힌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 인생은 바로 하나님의 의(義)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붙잡히지 않은 자는 구원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축복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인생은 하나님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지 않는 자는 성도가 아닙니다. 마치 토기장이 손에 있지 아니한 진흙 덩어리가 아무 쓸데가 없듯이 인간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의 값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는 말씀은

Ⅱ. 하나님의 주권적인 절대 의지적용의 선언입니다.

본문 18장 4절에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는 곧 적용되고 맙니다. 토기장이가 무슨 용기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으면 토기장이가 손 안에 있는 진흙을 가지고 녹로에 놓고 토기장이 자신이 마음먹었던 용기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토기장이의 의도대로 녹로를 거쳐 나오면 이제는 진흙덩어리가 아닙니다. 진흙에서 유용한 용기로 변화되었습니다. 토기장이의 자기 의지가 진흙덩이에 적용된 것입니다.

토기장이로 인하여 이제 진흙에서 용기로 바뀌어졌습니다. 이것은 이름의 변화입니다. 집밖에 있던 진흙덩어리가 용기가 되어서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위치의 변화입니다. 진흙에서 그릇이 되었으니 용도의 변화입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아무 쓸모 없는 죄인입니다. 이제 그 죄인이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거듭났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되어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인간은 하나님의 성령의 불에 굽혀서 하나님이 귀히 사용하시는 새 사람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는 말씀은

Ⅲ. 하나님의 주권적인 절대 의지적용의 성취의 선언입니다.

본문 18장 6절에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토기장이는 진흙덩어리를 손에 잡고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구상하고 그 진흙덩어리를 녹로 위에 놓고 마음먹었던 용기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토기장이의 선한 목적에 따라 만들어져가고 있는 진흙덩어리입니다.

토기장이는 흙으로 그릇을 만들 의지의 자유도 주권적입니다. 토기장이는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의지적용의 자유도 주권적입니다. 토기장이는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의지 적용의 결과 성취의 자유도 주권적입니다. 따라서 마음대로 되지 아니했을 때 그릇을 파상하는 자유도 주권적입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의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파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진흙덩어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하여는 토기장이만이 알뿐입니다. 진흙덩어리의 요구대로 토기장이가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토기장이의 요구대로 진흙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진흙은 자기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토기장이의 숙련된 솜씨에 의하여 녹로 위에서 만들어질 뿐입니다. 진흙이 만들어진 용기에 대하여는 불평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어떤 돌발적인 작용에 의하여 토기장이의 목적과 달리 만들어지고 있을 때는 곧 부수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기장이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가지고 좋아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곧 바로 토기장이는 자신의 목적에 빗나간 그릇을 파상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장 20-21절에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재료의 그릇이 중대한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라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토기장이 비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것으로 만약에 이 땅에 토기장이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할 정도로 요긴한 비유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이해하기 위해서 삼위일체라는 어려운 표현이 불가피 하듯이 여기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은 사실 평범한 용어는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설명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방법이기 때문에 대단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표현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설교를 하게되면 어려운 고어(古語)처럼 여겨서 소외당하는 것 같은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는 반드시 이해 해야되는 지극히 당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하나님은 최고의 권위와 왕권과 신격을 가지시고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라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6장 9절에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2절에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라고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가장 고귀하셔서 하늘에서 천군 가운데 서서 또 땅의 만민 가운데 서서 오직 당신의 뜻대로만 행사하신다는 말입니다.
다니엘 4장 35절에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천지의 모든 권세를 잡으셔서 아무라도 그의 계획을 꺾거나 그의 목적을 좌절시키거나 또는 그의 뜻을 물리칠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시편 22편 28절에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15편 3절에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 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는
말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7절에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5절에도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라고 했습니다.

유다서 1장 4절에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유다서 25절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할 때는 그가 미쁘신 뜻대로 당신의 영광을 위해 만드신 우주를 다스릴 권리가 그에게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신의 뜻과 성품이외에 다른 아무 규칙이나 법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당신의 마음대로 행하시며 또 그에게는 당신의 행사에 대하여 아무에게나 답변할 아무 의무도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손 안에 있느니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절대의지의 적용과 절대 의지적용의 결과성취를 의미합니다.

너희가 내 손 안에 있느니라
아멘 주 예수여 그러하옵니다.
이 진흙이 무슨 말하오리까?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오로지 저는 당신의 손안에서만이 행복을 느낄 뿐입니다.
당신이 쓰시기에 합당하게 만드소서.
그것만이 나의 소망입니다.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빨리 파상하소서
그것만이 나의 축복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을 만족케 하는 선한 것이라고 해도 인간 스스로 인간들만의 필요에 따른 계획일 때는 그 계획은 파상하여 산산조각이 나게 하시고 당신의 뜻만이 온전하게 하소서.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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