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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회복된 가정 (룻 1:1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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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내일교회)

신앙이란 반드시 그 열매가 있기 마련입니다.
학생이 공부 잘 했는지 못했는지 시험 점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신앙생활 잘 했는지 못했는지는 생활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이 신앙생활의 열매를 외적인 것
즉 가식의 열매만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주일성수 하는지 안 하는지, 십일조, 감사헌금 드리느냐? 교회 봉사하느냐? 그러나 외적인 열매들은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습니다.
전혀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음 있는 척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눈에 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열매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 가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정은 허울이나 가식의 가면이 허용되지 않는 곳입니다.
그곳에 진정 하나님 말씀이 살아 역사 한다면
가족간에 신뢰가 있고 변화가 있고 가정에 열매가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철저하게 깨어진 한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어떻게 회복되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모압 지방으로 간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고 두 며느리만 남는
비참한 가정 형편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며느리 룻을 통해 가정을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여 우리의 가정들이 회복되는 은혜의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나오미의 가정 형편이 어떠합니까?
세상에 불행해도 이 같은 불행이 어디에 있을까 싶을 만큼
철저히 불행한 가정이 나오미의 가정입니다.
베들레헴에 살다가 흉년이 들어 남편 따라 모압 땅으로 살러 온 나오미, 거기서 남편 엘리멜렉을 잃어버리고
그래도 두 아들 장가가서 이제 살만하다 싶었는데 두 아들마저도 죽고 한 가정에 세 과부만 달랑히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오미의 가정의 불행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룻기서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불행한 가정이 룻이라는 여인을 통해 행복하게 되었다는 <2> 드라마에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시기를 살펴보면 1절에 사사들의 치리 하던 때에 라고 합니다.
즉 룻기서는 사사 시대의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사 시대라는 것은 한 마디로
사람들이 하고 싶은데도 살았던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엘리멜렉과 나오미라는 부부의 가정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엘리멜렉과 나오미라는 인물을 살펴보면
엘리멜렉 :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나오미 : 사랑 받는 자(beloved)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나타내 보여주는 가정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묘사죕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은혜를 입은 관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다는 것은
대가 끊긴 가장 소망이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것은 소망 없이 멸망당할 위기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메시지입니다. 룻기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사시대의 암흑에 대한 기록이 아니고 그 다음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권고하시는 구원의 때를 듣고 돌아가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도 무너진 가정이
어떻게 회복되어지는가? 를 보여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먼저 무너진 가정이 회복되어지려면
먼저 왜 그렇게 되었는가 원인을 알아야 치유될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나오미의 가정의 불행은
베들레헴 땅에 흉년이 들어 모압으로 내려감으로 야기된 불행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사사들의 치리 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고 되어있습니다.
농사짓고 살던 그때에 흉년이 들면 어떻게 됩니까? 망합니다.
흉년이 들면 굶어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굶어 죽으려면 이사를 가야합니다. 그래서 거기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농사가 잘된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 가족을 굶어 죽이지 아니하려면
이렇게 해야 가장의 역할을 잘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정상적입니다. 오히려 이사를 안가면 바보라고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경,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너무나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내가 지금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데, 하더라도 망하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사업이 안되어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다른 점입니다.
다시 본문을 보겠습니다.
사사들의 차지하던 때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는 말입니다.
이 사람이 흉년이 조금 들었다고 먹고살기가 어려워졌다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약속의 땅을 차버리고 이방나라에 가서 살았습니다.
어떻게 잘한 것 같습니까? 못한 것 같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왕이라고 자기 이름같이 그렇게 지어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사람처럼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잘 한 일인냐? 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산다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낙으로 기쁨으로 여겨야지,
먹고사는 것이 좀 어렵다고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반했다면, 하나님만을 사랑한다면, 하나님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이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없는 그런 이방 나라에는 안가야 되는 것입니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이 세상에서 보다 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상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예수님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자기가 만든 우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예수님을 떠나거나 신앙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환경이 어렵다고 신앙의 중심마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 좋은 대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사사시대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엘리멜렉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던 시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엘리멜렉의 집안이 모압이라는 이방 땅에 가서 박살이 난 것은, 남자들이 다 죽은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 네가 그래도 겉으로는 하나님이 왕이라고 하면서 떠들지,
속으로 너 자신이 왕이 되어서 너 마음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죄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돼는 것입니다.
조금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양보하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신앙 생활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제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혹시, 우리는 이 엘리멜렉처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들이 하고싶은 데로, 내 마음대로 살아오지 아니했는지 그러다가 실패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아니했는지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나를 왕이라고 하면서 네 멋대로 살다가 망했으니 꼬방시다
이런 말씀이 아니지요
비록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잘 살려고 하다가 실패했을지라도
회복할 길이 있고 소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소망 그 길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으로
말씀의 떡집인 교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6절 이하 말씀에 보면 나오미가 베들레헴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합니다.
먼저 무너진 가정이 회복되려면
하나님의 은혜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6절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 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물론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어 베들레헴 땅에 양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교회 가서 은혜 받아야 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미루어서 안됩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베들레헴 행을 결단하고 두 자부와 함께 유다로 돌아가다가 두 자부에게 권유를 합니다.
그런데 두 자부의 반응이 달리 나타납니다.
나오미가 자기의 며느리 두 사람을 보고 말합니다.
"너희 두 사람은 아직 젊고 앞길이 구만리이니까 다시 시집가서 잘 살도록 해라, 각자 너희들이 살기 쉽고 편한 길로 가서 살아라" 하고
며느리들을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섭섭해서 같이 한바탕을 울고 나서,
큰며느리 오르바는 시집오기 전에 살았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둘째 며느리 룻입니다.
이 둘째 며느리도 큰며느리처럼 자기 길로 가버리면,
이 시어머니도 속 편하게 갈 터인데,
이 둘째 며느리가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타이릅니다.
"애야! 너도 너 갈 길을 가라. 봐라! 너 형님도 자기 길을 가지 아니했느냐! 너도 가거라. 이 시어미의 말을 들어야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둘째 며느리 룻의 고집도 보통이 아닙니다.
"어머니! 못 갑니다. 저는 못 갑니다. 저를 가라고 야단치지 마십시오, 저는 어머니 가는 곳에 가서 같이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시어머니가 다시 타이릅니다. "얘야! 이것이 어디 고집 부린다고 될 문제이더냐? 죽고 사는 문제이다.
네가 살려고 한다면 너의 길로 가야 할 것이니라"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어머니! 너무 그러지 마옵소서. 내가 어머니를 쫓는 것은
단순히 며느리로서 효도를 다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님이 믿고 있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 가족이 그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남자들이 죽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저는 그 하나님이 참 신이신 것을 믿습니다.
어머님이 믿는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니, 저에게 어머니와 함께 살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이 이 정도 되고 보니,
나오미는 더 이상 자기 며느리를 만류하지 못하고 함께 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이 며느리가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그와 함께 살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미가 너희는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하니
큰며느리 오르바는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부디 몸조심하세요
하고는 돌아갔지만
둘째 며느리 룻은 16절에
[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게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
하고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다 베들레헴 땅으로 오게 됩니다.

룻은 잘 선택했습니다. 정말 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
왜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하는가 하면
룻은 복중에 가장 귀한 복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에 대한 효심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성도들과 개인적인 만남 속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 예수 믿는 집에 시집오고 장가 든 일 보다 귀한 복이 없다 ]
믿습니까? 이미 선택한 예수이거든
예수 가문에 장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잘 믿는 성도들 되어서 가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두 과부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 성읍에 이를 때 사람들이 나오미를 보고
행색이 너무 초라함을 보고 [ 이가 나오미냐 ] 합니다.
그대 나오미가 하는 말이 20절
[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오미란 사랑을 입은 자, 즉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러나 마라는 괴로운 고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삶이 어렵다고 교회를 떠나면
마라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어디에서 회복됩니까?
실패의 원인을 환경이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잘못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그것을 경험하며 감사할 때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실 룻기서는
실패한 하나님 백성과 가정의 죄를 들추어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의 회복에 목적이 있다는 것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어떻게 회복이 됩니까?
룻기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룻이 보아스를 만남으로 가정이 회복되어 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을 했다는 것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먼저 보아스가 누구입니까?
보아스는 유다 지파의 족장으로서
2:1절에 유력한 자라고 합니다.
유력한 자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란 말입니다.
그리고 3:8절에 룻이 타작 마당에서 보아스에게 하는 말이
[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 라고 합니다.
기업을 무를 자란 <고엘> 이란 말로 구속자란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고엘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룻이 보아스를 만났다는 것은
신약적으로 말하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
우리의 구속자가 되신 예수님를 만났다는 말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남으로 누리는 복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누리는 복과 같은 맥락에
비할 수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럼 룻이 받은 복이 무엇입니까?
오늘 룻기서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보아스를 만나 그와 결혼하여
잘 살게 되었더라 는 이 세상에서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말씀이 아닙니다.
4:13절에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말은
남녀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생리적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룻이 누린 축복을 열거해 보면

1) 모압 여인이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의 가문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바로 예수 가문에 속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1:5절에 기생 라합과 함께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아무리 따져 바도 도저히 예수 가문에 속할 수 없는 사람 둘이 있다면 바로 기생 라합과 모압 여인 룻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유다 지파에 속하므로 말미암아 놀라운 복을 받게 되는데
바로 예수 가문에 속한 복인 것입니다.
예수 가문에 속한 자의 복이 무엇입니까?

(1)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2) 저주가 끊겨졌다는 말입니다.
큰동서 오르바와 같이 모압 땅에 남았더라면
룻은 영영한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텐데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와서 보아스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예수 가문에 속하므로 지금까지의 저주가 끊겨졌고
전혀 새로운 가문의 마나님이 된 것입니다.

2) 룻이, 오벳을 낳고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저주 아래서 파괴된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가정, 축복된 가정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고 꼭 맺어야 할 열매가 있다면 바로 가정의 회복입니다.
교회 나와 예수님의 은혜로 내가 은혜 입은 자가 되므로
우리 가정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3) 롯이 오벳을 낳았다는 사실도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하늘 나라에 장자적 반열에 설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4:18절 이하에 다윗의 족보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물론 룻이 받은 축복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기록한 족보이지만
그러나 어두웠던 사사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신정국가 다윗의 시대가 열린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특히 룻이 마1:5절 예수님의 족보에 라합과 함께 올라가 있다는 것은
그것도 더군다나 이방인이요 여자가 그곳에 올라가 있다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오벳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오벳을 낳았다는 것 무엇을 말합니까?
오벳은 룻이 보아스와 만나 결혼 한 열매입니다.
오벳은 섬기는 자란 말입니다.
여기에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만나 예수 가문에 속하니
저주의 줄이 끊겨 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 오벳입니다.
바로 섬김인 것입니다.
룻이 오벳을 낳았기 때문에 유다 지파의 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믿고 예수 가문에 속하여 <9>
가정이 회복되고 나아가
예수 가문에 장자적인 복을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섬기는 자로 열매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4) 룻이 누린 한 가지 특이한 복이 있습니다.
룻은 현숙한 여인의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성경은 룻기서가 사사기 다음에 나옵니다만
그 이유는 1절에 밝혔듯이 사사 시대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은 룻기서가 잠언서 다음에 나옵니다.
그 이유는 잠언서 마지막 31장에 보면
현숙한 여인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잠31장의 현숙한 여인을 룻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잠31:10절에 그 값은 진주보다 귀하다고 하며
요약한다면
부지런하고 지혜로워 그 가문을 일으키며, 자녀들이 사례하며
남편으로부터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고 칭찬을 받는 여인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당신 만한 여자가 없다는 말이지요.
즉 가정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가정을 일으키는 현숙한 여인, 현명한 가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 결론 >

룻기서는 룻을 통한 다윗 왕가의 회복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철저히 실패한 한 가정이
룻이란 자부를 통해 회복된 가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예수님 만나 예수 가문에 속하므로
우리 가정에 저주가 끊겨지고
예수 가문에 속하는 가정의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이미 예수 가문에 속했다면
오벳을 낳아 예수 가문에 장자적 반열에 서게된 룻과 같이
섬기는 자가 되어 예수 가문에 장자적인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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