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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는 왜 심판을 예고하시는가? (암 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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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재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아모스 마지막 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다섯 번째로 보여 주신 환상은 주님께서 제단 곁에 서셔서 제단이 무너져 내리는 명령을 내리는 광경입니다. 주님께서 제단 기둥머리를 치시니 기둥사이로 가로질러 있던 문 상인방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와 같이 치셔서 철저하게 망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1절>.


그 멸망의 철저함이 어떠한지가 <2-4절>까지 묘사되어 있습니다.

왜 사람이 사랑이든 미움의 복수이든 그 마음에 의지가 강렬하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땅끝까지, 지옥 끝에까지 좇아 가리라"고.

음부에까지, 하늘로 올라갈찌라도,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심지어 외국으로 망명을 갈지라도, 하나님이 끝까지 추적하여 심판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5,6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너희가 모르지 않느냐? 땅과 바다를 마음대로 주물럭 주물럭하시는 주님 아니냐?

그러니 너희 잔꾀로, 너희 힘으로 하나님을 피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7,8절>, 너희만 특별난 나라, 민족이어서 죄짓었다고 내가 눈감아 주고 특혜를 주는 하나님이 아니지 않느냐 범죄한 나라에 대하여는 예외없이 내가 심판하여 멸망케 한다고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설마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를 심판하실려구... 우리는 특별난 백성, 특별난 나라인데...하는 식으로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말라고 정곡을 찌르십니다.

<9,10절>,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막무가내식으로 하시는 것이 아님을 깨우쳐 주십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 성질에 못 이겨서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애꿎게 가재도구들을 깨 부수고 하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합니다.

그 철저한 심판 속에서도 "알갱이"는 온전히 보존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체질하는 것이라면, 쭉쟁이같은 패역한 영혼들, 백성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날라가게 하겠지만, 알갱이는 한 톨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완벽한 의의 심판임을 깨우쳐 주십니다<9절>

다만, 이렇게까지 깨우쳐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니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야무지게 착각하고 있는 백성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다 예외없이 심판의 칼을 맞으리라고 깨우쳐 주십니다<10절>.

아모스 전체의 예언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리라는 것처럼, 마지막 장의 예언의 요지도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며 또 왜 심판을 예고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관점으로 아모스서를 매듭짓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왜 심판의 멧세지를 선포하시는가?" 예컨대, 오늘의 교회를 계시록 2,3장의 일곱교회에 비유할 때, 많은 사람들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비유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왜 이렇게 강경하게 심판의 멧세지를 선포하십니까?

여러분도 잠시만 묵상해보면, 해답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죄의 파괴적 영향이 커지는 것을 막으시기 위함입니다. 죄는 오염물질같아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 파괴성이 전염됩니다.

죄짓는 것에는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성경도 죄가 재미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죄의 실체에 대하여 정확히 지적하십니다. 예컨대, <잠9:17>에 보면,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도적질하는 것, 몰래 사기치는 것 등 죄짓는 것에도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를 짓고 이 죄악의 쾌락성이 죄를 급속하게 번지게 합니다.

그러나 이 죄악이 가져다 주는 쾌락성이 전부인 것처럼 아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잠9:17>은 미련한 계집이 지혜없는 자를 꼬시면서 하는 말입니다.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이스라엘 백성들, 요즘 같아서 돈쓰는 맛, 유희(遊戱)를 즐기는 맛을 알았지요. 뒷일 생각지 않고 백화점에서 화려한 물건 보이면 사는 쾌감, 홈쇼핑 광고 나오면 저건 꼭 내게 필요한 것이야 느끼며 사고 물건을 받는 느낌.. 이 것이 영혼을 망친다고 생각지 못하고, 좋고 신나는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종교, 신앙도 외형적으로 융성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구경이 재미있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이야, 대단하다..", "저 양반은 설교 참 재밌게 하시네.." 멋들어진 광경을 연출하고 흥미를 자극하고 영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좋아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집회에도 좇아 다니고 저 집회에도 좇아 다니고 신앙이 굉장히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순전히 깡통이지요. 멋들어지게 각색한 설교 듣기는 좋아하는데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 멋들어지게 들은 설교의 내용조차도 전혀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심금을 울리는 기도,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기도를 듣고 보기는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골방에서의 기도는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교적 풍요를 누렸듯이, 열심히 모임에 쫓아다니고 하니까 신앙이 좋은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그러나 실상은 굉장히 초라한,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성을 충족시키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몰래 음란의 죄를 지으면, 그것이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영성 추구가 호기심 충족에 불과하면 삶 전체가 실상은 허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공동체적으로도 이 죄성은 전염됩니다. 한 사람의 나쁜 본은 여러 사람들에게 타락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오염된 물은 또 다른 물을 오염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경고로 죄악을 깨우치시고 그 죄악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한 뜻은 죄악의 파괴적 영향이 커지는 것을 막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국가적으로 심판하시는 뜻은, 하나님께서 그래도 그 가운데 의인들을 통하여 맑은 영(spirit)이 번져가기를 기대하셨건만, 전체적으로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선한 영향력이 힘을 발휘하여 죄악의 세력들을 물리칠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선한 알갱이들은 보호하시고 죄악의 물결이 더 이상 범람하지 못하도록 이스라엘을 국가적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죄로부터 돌이키기를, 더 이상 역사의 무대에서 악역을 자행하지 않기를 기대하셔서 심판의 멧세지를 들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세상을 황폐케 하는 죄악의 오염원이 되지 않도록 심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하는 어떤 고통과 곤란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삶에 어떤 죄악을 버리라고 깨우쳐 주시는 방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은 삶의 곤경의 벽에 직면할 때면, 하나님께서 이 곤경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합니다.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은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성령께서 자극하심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뜻은 죄악의 물결이 더 이상 우리 삶을 오염시키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생의 떡과 환난의 물로 우리에게 심판을 맛보기하게 하시는 뜻은, 세속과 허영의 탁류가 우리의 공동체를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예고하실 때,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심판하시는지 밝히 말씀해 주시는 바를 들으십시오. 아모스서를 통하여 지적한 껍데기 신앙, 거짓의 마음과 술수의 입술, 자기 연민과 자기 만족의 종교, 폭력적 태도... 버리십시오. 

성경에,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아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사랑의 동산을 파괴하는 것은 작은 여우이듯이, 당신의 영혼과 삶을 파괴하는 것은 작게 보이는 죄악의 습관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혼의 동산이 파괴되지 않도록 심판을 경고하실 때 들으십시오.

예수님께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누룩, 그들의 가르침, 그들이 갖고 있었던 세속적, 허영적 가치관을 주의하라고 경계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혹" 하게 하는 세상적 가치관이 우리의 공동체를 황폐케 하는 것도 작은 여우일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예고하시는 뜻은 돌이켜 회개하라는 사랑의 경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리 예고하시는 뜻은 심판의 예고를 듣고 낙심하여 생을 포기하든지 죽음을 각오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는 선전포고나 공갈, 협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모스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를 확인합니다. 아모스 예언의 많은 구절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성을 선포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가운데 훨씬 더 중요하게 결론적으로 선포되는 말씀들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하나님의 마음은 당신의 백성의 멸망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겔18: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오늘 말씀에도 <9,10절> 다시 보십시오. 알갱이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존하시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괜찮겠지 생각하는 백성은 하나도 예외없이 망하게 하리라는 멧세지에서 어떤 의미를 느끼십니까?

너희가 회개하여 하나님의 분명한 보호의 은혜를 입는 알갱이가 되든지, 아니면 너희 고집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칼맛이 어떤 것인지 한번 보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니 이것 그냥 할래, 한 대 맞고 할래?" 하면 무슨 멧세지입니까? 그냥 하라는 멧세지이지요?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맹렬한 심판의 멧세지도 그 핵심은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오만한 생각에서, 죄인의 길에서, 악인의 자리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아모스랑 같은 시대에 예언하였던 호세아, 저희가 얼마 전까지 큐티 본문이었던 호세아서에도 맨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예고하시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 주었습니다. (한번 볼까요?)

호세아 14장,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이것이 모든 예언의 핵심 멧세지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회개를 촉구하시는 멧세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라, 바른 신앙을 세워라 정도를

그리고 아무리 큰 죄악을 지었다 할지라도 자백하고 돌이킨,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4절>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즐거이 용서하시고 즐거이 사랑하시며 고쳐 주십니다.

이것이 사랑 아닙니까?

예) 어제 어버이날이었지요? 파파 노래, "자식 하나 잘 되기를 오직 한 마음..." 부모의 마음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귀한 존재답게, 아름드리 서는 모습을 보는 오직 한 마음... 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로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촉구하십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속내를 기억해 보십시오. <애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심판을 행하시고 심판을 예고하시는 하나님의 속내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안 사람, 경험한 사람은 다윗처럼 이렇게 고백합니다."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오늘 직면한 고난과 근심의 벽 너머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 나를 둘러싼 환난의 울타리 너머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나로 하여금 죄악의 자리를 떨치고 일어서도록, 나로 하여금 오만한 생각을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나로 하여금 세속의 허영에 물든 마음에서 벗어나도록, 나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힘있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동행하시는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며 살도록...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바른 신앙을 세우십시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 때문에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11-15절> "그 날에" 그날에 우리 보리라.. 생각나지요? 그날에로부터 시작한 아모스 예언의 마지막 부분, 무슨 말씀입니까?

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들을 통하여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 비전을 갖고 계십니다.

이사야는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다시 세우리니...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고 표현하였고 예레미야는 그 하나님의 비전을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표현하였고 에스겔은 "그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라고 표현하였고 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표현하였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비전을 품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고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소망,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던 에던, 조화로운 동산보다도 더 아름다운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지로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꿇어 경배 하고 웬수였던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하며 가난한 심령에 복음이 증거되고 상한 마음이 치유하고 눌렸던 자들이 해방을 누리고 포로된 자들이 돌아오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루어 가십니다.

아무리 죄악이 관영하여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심판의 멧세지로 깨우치시고 마침내 심판하셔서 죄악의 세력들을 물리치시면서까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의 비전을 포기하시지 않고 그 꿈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위하여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려보내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게 하시기까지 참고 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면서까지..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일해 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기 이전에 여러분의 마음 그릇은 말구유보다 깨끗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기 예수님의 누우셨던 말구유보다도 더 더럽기가 한량없던 우리들의 심령에 성령님을 보내 주시기까지 하시면서, 죄악의 어두운 세력이 하나도 남김없이 물러나고, 죄악의 탁류가 말끔히 물리쳐지는 비로소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물결이 넘쳐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이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소망, 비전이 이스라엘에게 또 오늘 우리에게 정의를 물같이 공법을 하수같이 흐르게 하라는 바른 신앙의 촉구로 선포됩니다.

죄의 파괴적 영향력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당신의 백성을 가치있게, 존귀하게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는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꿈이 우리를 죄악 가운데 그냥 놔 두지 않고 간섭하십니다.

양심에 깨우치심으로,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그리고 때로 마음의 아픔과 삶의 고난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간섭하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 하나님 앞에 바로 서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라 말씀하십니다.

껍데기 종교를 벗어버리고 참된 신앙, 삶의 예배를 드리라고,

나와 내 가족만 아는 이기심을 벗고서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라고,

오락과 안일의 게으름을 미워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에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십자가의 수난을 받은, 너는 나의 사랑을 신뢰할 수 있겠니? 그렇다면 나의 멍에를 매고 나를 따르라!"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당신은 어떤 꿈을 갖고 계십니까?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는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너는 일어나 주를 따르라 하나님 널 부르신다.. 세상은 아직 어둠 속에 빛되신 주 보기 원하네.." 찬양처럼 성령께서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에 응답해 보십시오. 당신을 사랑하사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당신의 비전, 내 인생의 꿈으로 품어 보십시오.

그 날에 당신 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이 꿈틀거리며 역사됨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 날에 할 일 많은 이 땅에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룩한 소명이 무엇인지 선명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날에 세상의 것이 없어도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손으로 만지듯이 누릴 것이며 비로소 사는 보람을, 사는 행복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 날에 성령께서 당신의 마음 안에 실체로서 꿈틀거리며 역사하는 성령의 충만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그 날에 당신의 인생이 이만큼 존귀한 것임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을 손에 잡히듯이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을 세우십시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바른 신앙을 세우십시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죄를 떨치고, 당신의 초라한 야망을 내려 놓고..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예수님의 얼과 비전과 사랑을 배우는 삶,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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