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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소중한 것 (눅 1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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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근두 목사 (울산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복된 예배의 자리에 함께 나아오신 이웃 여러분, 현대인의 삶은 우리 이웃의 사람들에 대해서 약간은 무관심해 보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 주위에는 상처 입은 사람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관심이 요구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습니까? 이 부자는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바에 대해서는 빈곤한 사람입니다. 자신만 언제나 생각한 사람입니다. 한번도 자기가 가진 부요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가진 많은 것이 자기보다 덜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기를 하나님이 바라신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이 더 많은 것을 쌓을 창고를 짓는 것을 계획한다고 잠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너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오늘 처음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이웃 여러분, 지금껏 오래 교회를 다니신 여러분, 다 함께 대답해 보십시오. 신앙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자 바울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갈5:6)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세례를 받고 직분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사랑의 중요성을 수없이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하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13:1)

우리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추종합니다. 그래서 청문회의 스타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감동적으로 말을 하느냐 보다는 우리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더 중요시합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하면 내가 무엇을 알든지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소유해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13:2)

신앙세계에서는 걸어 다니는 성경백과사전으로 불린다고 해도, 명석하기가 탁월할지라도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천재는 무익합니다. 우리는 지식이 폭발하는 세상을 지금 살고 있습니다. 매 6년 만에 지식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전쟁과 테러, 범죄와 사고, 학대와 폭력이 끊이질 않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보다 많은 지식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무엇을 알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으로도 사랑의 부족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하면 믿음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13:2하)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데는 믿음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믿는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느냐 믿느냐보다 중요한 문제는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사람을 미워하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생명. 사랑. 나눔 축제]를 우리가 해마다 가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평강을 체험하신 분들은 그런 삶에로 여러분의 소중한 사람을 초청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 무엇을 믿는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하면 무엇을 내어 주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나 비록 가진 것, 모두 다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복음을 전하다가 화형을 당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 있을까요?”(고전13:3)

돌려받기 위해서 줄 수도 있습니다. 죄책감을 덜어보려고 베풀 수도 있습니다. 자랑하기 위해서도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손에 넣으려고 베풀 수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잘못된 동기로 인해서 베풀고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의 삶을 살지 않으면 무슨 일을 성취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엄청난 업무기록을 세우고 발명기록을 남겨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화려한 이력서를 가져도 사랑이 없으면 무익합니다.

업적성취보다 관계개선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소중한 것은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요 사랑은 가장 숭고한 가치이며 사랑은 삶의 가장 위대한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의 편지, 사랑의 노래, 사랑이야기라는 말은 흔합니다만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러브스토리만 아니라 러브호텔도 수없이 등장합니다만 도대체 사랑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섹스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노래란 욕망의 노래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참되고 거룩한 사랑이란 세상이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앞으로 8주간 동안 이 문제를 연속적으로 살피려고 합니다. 이번 축제에 처음 나오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살피는 복된 두 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일마다 나오셔서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살피게 되면 여러분은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랑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서론 격으로 사랑이란 무엇인지 몇 가지 정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랑은 명령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나님은 명하십니다. 이것은 선택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보십시오. “사랑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계명은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요이1:6,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는 있지만 사람답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사랑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 것은 그것이 우리가 살아갈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감정이 아닙니다. 물론 감정을 만들어 낼 수는 있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유발시키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감정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이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랑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창출하고 사랑에는 감정이 수반됩니다만 감정은 아닙니다. “사랑을 느껴요”라고 말하긴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이나 느낌 이상입니다. 느낌이나 감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명할 수 없습니다. 느낌이나 감정은 명령을 통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2. 사랑은 선택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로 택할 수도 있고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선택입니다. “사랑을 최고의 목표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재능,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예언의 은사를 간절히 구하십시오.”(고전14:1, 현대어성경)

어떤 성경에는 고린도전서 14장 1절을 이렇게 풀어쓰기도 합니다. “마치 여러분의 삶이 거기에 달려 있는 것처럼 사랑의 삶을 추구하십시오. 정말 삶이란 사랑에 근거합니다.” 사랑이란 의지적 선택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로, 아니면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합니다. 흔히들 사랑이란 통제 불능이라고도 말합니다. 한 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웅덩이에 빠지듯이 빠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랑에 빠졌어요, 건져주세요.”라고 호소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반대로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혼을 하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정당화합니다. “나는 도무지 그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없어요.” 자기로서는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일처럼 말합니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 이혼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처럼 변명합니다. 정직합시다. 사랑이란 선택사항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느낌이 들지 않아도 사랑으로 행동하는 것은 더 고상한 사랑입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때, 달콤한 신혼여행 중에,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잘 될 때 지갑에 돈이 두둑할 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시험은 일들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직장도 잃고 돈도 떨어지고 병들고 연약해진 그때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부의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닙니까?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 놓을 때 까지는 그 모든 삶의 위기에 함께 서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지켜보는 청중들 앞에서 우리는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느낌과는 상관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감정과는 상관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밤중에 아이가 아파서 울 때 여러분은 일어납니다. 일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일어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파서 운다고 잠이 깨어서는 “아이 좀 조용히 시키라”고 고함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아이를 돌보는 배려를 할 줄 아는 겁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지, 받을 만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야할 만한 것을 주시지 않고 우리가 절실히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을 만한 것만 주셨다면 우리는 소돔같고 고모라같이 폐허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도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고 여러분도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 보았던 것을 주는 대신에 우리가 꼭 필요한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란 받을 보장이 하나도 없는 데도 주는 것입니다.

받을 것을 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최선을 챙겨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명령이며 선택입니다. 느낌이 아닙니다.


3. 사랑은 행동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느낌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현대어 성경은 보다 더 분명하게 번역합니다. “자녀들이여, 사랑한다고 혀에 발린 말을 이제 그만 두고 진정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그리고 사랑을 우리의 행동으로 보여줍시다.”(요일3:18, 현대어성경)

사랑이란 여러분이 느끼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여러분이 말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센티멘탈한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여러분이 행동하는 무엇입니다. 이번 주간에는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봅시다. 사랑을 할 기회를 찾아봅시다. 오늘이 어린이 주일인데 이 한 주간을 보내면서 멀리 쳐다보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낳은 자녀들에게 사랑의 눈길을 한번 보내 보십시오. 바라볼 마음만 가지면 순간순간이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바빠서 그 기회를 붙잡지를 않습니다.

현대사회는 관계중심이라기 보다는 일 중심인 듯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취를 중요시하지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주위에 있는 것들은 무엇이나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사랑을 나타낼 기회는 지나가도록 버려둡니다. 그 기회는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편지를 써야 되는데 ... , 아니면 전화를 한 통해야 하는데 ... , 한 마디 말이라도 격려를 해 줘야 하는데.. 하면서 정작 행동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허비하지 마십시오. 가장 소중한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사랑이란 행동하는 것입니다.


4. 사랑은 헌신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요일4:16, 현대인성경)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와 이웃과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누구든지 사랑 가운데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사랑이란 지속적인 것이며 변함없이 영속적인 것입니다. 느낌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베푸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달동안 피상적인 사랑대신에 성숙한 사랑을 하려고 시도해 보십시오.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도록 하십시오.

이 기간동안 사랑 안에 자라 가기로 헌신하십시오. 물론 결심한다고 모든 것이 다 순조로울 수는 없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 특별히 자녀들을 사랑하려고 결심을 했는데 이 애들이 마치 결심한 것을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집에 돌아가면 집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여러분의 결심을 시험 할 수도 있습니다. 결심한다고 모든 것이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일들이 멋지게 풀렸더라한다면 누가 착한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헌신은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시련 가운데서 빛나는 것입니다. 시련이 없는 사랑이란 성숙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랑입니다. 성숙한 사랑은 언제나 시련을 통과한 사랑입니다. 결혼 한지 몇 달도 채 안돼서 갈라서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사랑이란 시련을 통해서 아름답게 가꿔져 갈 수 있는 것인데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마치 유산당하는 아이처럼 사랑이 그렇게 끝나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성숙한 사랑은 언제나 시련을 통과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어떻게 진실하고 성숙한 사랑 위에 인생을 세워갈 수 있을까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사랑 실천하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두 달 동안 계속 살필 주제입니다만 오늘 예비적으로 다섯 가지 단계를 간단히 제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1) 성숙한 사랑을 어떻게 행하고 반응할 것인지를 배우십시오.

사람은 관점을 바꿀 때에 인격이 바뀝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먼저 하나님의 관점을 수용하십시오. 세상은 참된 사랑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을 파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2) 매일 매일 사랑을 묵상하므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일어나서 처음 10분이 여러분의 하루 동안의 기분을 좌우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임을 기억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가고 성숙시켜 가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일어나서 바쁜 일에 쫓기기 전에 잠깐  동안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제가 이 50일 동안에는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너무 쉽게 이 진리를 잊어버립니다. 오늘 하루 다른 아무 일을 하지 못해도 주님을 조금 더 사랑하며 당신이 제 주위에 두신 사람들을 조금 더 사랑한다면 오늘 하루, 큰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오늘 하루는 결코 무의미한 하루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3) 매일 매일 사랑에 대한 주님 말씀을 외우십시오.

외우라고요, 한번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요? 그렇죠. 지난 축제 때 처음 나와서 오늘 첫 출석한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세례도 받고 집사 직분도 받았는데 성경 구절 한 개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조금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이번 주간부터는 한 구절이라도 외워보자는 겁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초등학교 5학년때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외웠더니 지금까지도 기억을 합니다.

이 성경에는 우리로 하여금 놀라운 사랑을 실천하고 위대한 사랑의 사람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충고와 진리와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런 선한 것이 없어요. 우리는 죄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선한 것보다는 나쁜 것이 꿈틀거릴 때가 많습니다. 너무 쉽게 시기하고 질투하고 화를 내며 참지 못하고 비판하며 사랑 없이 행동하고 싶어 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조차도 조심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은 두 번 쳐다보고 자기에게는 한번도 안 쳐다봤다고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제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때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부산의 어느 초등학교에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을 1시간 50분 동안 쳐다본 여학생이 있었데요. 그런데 그것을 보고 시간으로 재고 있었던 여학생이 있었다는게 아닙니까? 그러니깐 시기하고 질투하는 쪽은 더 이상의 연습이 필요없습니다. 숙련공들입니다. 화를 내며 참지 못하고 그냥 한마디의 독한 말을 내뱉습니다. 하고 나면 후회스럽습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그게 다 부끄러운 일인줄 알거든요. 저만 그런 괴로움을 가졌는줄 알았더니 요새 큐티하는 분들의 글을 읽어 봤더니 많은 후회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그 말은 하지 말아야 되는데’ 우리는 순간적으로 좋지 않은 성질이 나타나서 그만 사랑없는 말들을 내뱉기 좋아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보면 모두 말끔해 보이지만 그런 상황만 부딪치면 우리는 다 넘어지고 마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왜 그렇게 자주 넘어지는 줄 압니까? 대개는 집에 가서는 성경을 한 구석에 던져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행동에 변화를 주십시오. 이 책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구절 가운데 하나라도 크게 써서 눈에 잘 띠는 곳에 붙이십시오. 외워 보십시오. 새롭게 시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삶의 변화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구약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우리 마음 속에 새로운 정보를 넣읍시다. 우리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줍시다. 환경을 바꾸어주고 패턴을 바꾸면 삶이 변합니다. 이기적인 삶이 물러가고 사랑하는 삶이 찾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4) 매일 매일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해보십시오.

사랑이란 근육과 같습니다. 사용하면 할수록 튼튼하게 발달합니다. 연습은 대가를 만듭니다. 아무도 뒷좌석에 앉아서는 운전의 전문가가 될 수 없습니다. 운전대를 잡아 봐야 합니다. 처음 운전대를 잡으면 누구든 조금은 어색합니다. 그러나 익숙해 지면 107.3MHz(극동방송)를 틀어놓고 같이 찬송을 부르면서 운전을 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휴대폰까지 받아 가면서 운전을 합니다. 물어보면 자기는 자신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고백도 처음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문자로 수없이 보내면서 연애를 한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못할게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결혼하지가 몇 십년 되어서 지금 와서 새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한다는 것은 너무 어색하고 힘들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저도 알기는 압니다.

이런 얘기도 들어 봤습니다. 어떤 목사님들 모임에서 강사되는 분이 목사님들께 각자의 집에다 전화해서 사모들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라고 숙제를 냈대요. 그 때는 휴대폰이 없을 때인지라 모두 공중전화박스에 줄을 쭉 서있습니다. 앞에서 어떤 나이 많으신 목사님이 전화를 합니다. "여보, 사---, 사---, 사찰 잘있나?” 그러더래요. 교회에서 교회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을 사찰집사라고 합니다. “사”자까지는 입에서 나왔는데 “사랑한다”는 말은 하기가 도무지 쑥스러우니깐 얼떨결에 그만 “사찰 잘있나?”라고 했답니다.

웃고 있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그래도 시도해 보십시오. 그래야 죽기 전에 아내가 그처럼 듣고 싶어 하는 사랑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은 귀가 예민하다니깐요. 언젠가는 우리가 다 떠날건데 죽기전에 아내가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한마디 해 준다고 해서 어디가 잘못 되겠습니까? 저는 경상도 남자들만 이런 말을 못하는 줄 알았어요. 경상도 문디들만 불치병에 걸린줄 알았는데 최근에 제가 들어 보기로는 경상도 여자들도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분이 저녁에 성경공부하러 오는데 남편이 식탁 준비도 해주고 아이들도 돌봐주고 했는데도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하고 살았더라고요. 이렇게 우리들이 해 볼려고 하지만 잘 안 되면 포스트잇에다가 써서 전달하고, 자신이 생기면 어색하지만 표현을 해보십시오. 사랑고백만 아니라 사랑실천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북한의 룡천사고 돕는데 있어서도 전화 한통에 2천원인데 그냥 돌리면 됩니다. 그것도 안해보면 처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은 타고난 감정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습득하는 제 2의 습성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기도하신 최장로님께 특별히 따로 부탁드리고 싶어요. 장로님의 부인되신 집사님께 이번 주간에는 사랑한다는 고백을 매일 매일 할 수 있도록. 토요일에 전화해서 숙제 점검하겠습니다. 우리 집사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상상만 해봐도 알 것 같지 않습니까?

(5) 사랑을 잘 실천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고 배우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방안에 혼자 앉아서 책을 통해서 사랑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져야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부대끼는 식구들을 통해서, 부딪치기도 하는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사랑실습은 가능합니다.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도움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여러분과는 전혀 다른 기질의 사람에게 가까이 가야하고 도무지 손톱끝 만큼도 친하고 싶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지낼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몰아 넣으실 때 여러분은 그런 사람까지라도 넉넉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폭이 넓어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공동체에 속해야 합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가져야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독신자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별로 쳐 주지를 않습니다. 살아봐야 됩니다. 천생연분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도 평생 원수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순간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겪어 봐야 사랑은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축제에 교회를 처음 방문하신 여러분, 정말 잘 오셨습니다. 가능하면 구역모임에 참석해 보십시오. 전체 예배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소그룹교제를 통해 알게 될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사는 날이 평균 25,550일쯤 됩니다. 오늘부터 그 가운데 50일을 투자해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 좀 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은 사랑훈련소에 입소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49년생입니다. 25,550일 가운데서 2만 날은 다 살았습니다. 남은 것은 5,550일이 남았습니다. 그 가운데서 50일은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남은 날을 50일 단위로 해서 자르면 111개가 됩니다. 인생이란 만리장성같이 긴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가진 날수는 50일 단위로 자른 111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처음 50일을 사랑하는 훈련에다가 쓴다면 나머지 110개는 훈련받은 대로 살아가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축제에 오신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사랑의 삶을 배우십시오. 그 동안 주님을 알고 섬겨오신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서 무엇을 얻으려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려고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본을 따라 사는 새로운 삶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50일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변함없이 영속하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치를 깨달은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그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또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의해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다만 그가 누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있는가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과 알고 있는 지식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선 안됩니다. 여러분을 여러분의 재산과 지식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설 수 있을까요?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단 한가지,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십니까? 이번 한 주간동안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외우면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눈뜨면 묵상하면서 외우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 희망, 사랑 이 세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고린도전서 13:13, 공동번역)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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