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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협력자 루디아의 가정 (행 1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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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관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지난 두 주간 동안 터어키와 그리스를 중심하여 성지 순례를 하고 돌아왔다.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고 나의 마음이 복음의 열정으로 뜨거워지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준 여러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터어키에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를 형성했던 도시가 있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고, 밧모섬으로 들어가 요한이 일년 육 개월 동안 동굴에 거하면서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를 중심한 요한계시록을 썻던 곳이다. 직접 그 동굴에 들어가서 영적인 감동을 얻고서 돌아왔다. 밧모섬에서 그리스 아테네 까지 열시간 동안 배를 타고 와서 고린도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갖었다. 그 후에 빌립보에 바울이 선교하던 곳과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갇힌 감옥에도 다녀왔다.

이러한 순례의 과정을 통하여 깨닫게 된 점은 하나님은 그때에 적절한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일하시고, 요한과 같은 제자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지도하시고 그 때에 필요한 말씀으로 하늘의 지혜를 깨닫게 하시고, 바울과 같은 사람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그런데 참으로 귀한 사실은 바울을 택하셔서 일하실 때에 바울을 돕는 협력자들을 세우셨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아시아쪽으로 가서 말씀을 전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마게도니아, 현재의 유럽에 해당하는 곳이다. 마게도니아 사람들이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는 환상을 본다. 바울은 배를 타고 마게도니아의 첫 도시 네압볼리로 간다. 나는 이 말씀을 바울이 처음 도착한 도시 네압볼리 현재의 도시 이름은 까발라라는 곳이다. 바울이 선교의 시작을 위하여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말씀을 준비하였다.

네압볼리에서 약 15 킬로 정도 가면 빌립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안식일을 맞이한다. 어디에서 기도할 곳이 있는가 찾기 위하여 문 밖 강가로 나간다. 대개 유대인 열명이상 모인 곳이면 대개 회당이 있고, 만일 회당이 없으면 강가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강가에서 정결한 예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강가에서 모인 여인들을 만난다. 그 중에 대표적인 여자가 바로 루디아이다. 하나님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 이미 빌립보 성에 복음의 협력자 루디아를 준비해 두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 방법이다. 복음의 불모지 같은 곳이지만 반드시 그곳에는 복음의 협력자 루디아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은 예비해 두신다. 바울의 고린도 전도를 위하여 브리길라와 아굴라를 준비해두셨다. 이 두 사람은 바울과 같은 직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기가 좋았다.
지금도 이같은 일이 그대로 벌어진다. 몇년 전에 카작스탄 선교 여행을 가서 경험이다. 알마티에서 기차를 타고 열 세시간을 가면 침켄트라는 곳에 도착한다. 참으로 그곳은 복음의 불모지와 같은 곳이다. 그곳에 이르렀을 때에 60대 정도되는 복음의 협력자를 만났다. 그 분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복음 전파를 위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침켄트에 있는 루디아 같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 여러분들도 이 시대에 루디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루디아 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쓰임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주님은 이 시대의 루디아를 필요로 하신다. 교회는 이 시대의 루디아를 필요로 한다. 목회자는 이 시대의 루디아를 목마르게 찾고 있다.

그러면 이 시대의 루디아는 어떤 사람인가? 먼저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이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셨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주님께 마음이 열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님께 마음이 굳게 닫힌 사람이 있다.
탕자의 비유를 보라.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의 재산을 달라고 요구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네가 지금 너의 재산을 받으면 모두 탕진하니 지금 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탕자는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모두 달라고 요청한다.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버지를 향하여 그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마음이 닫힌 자와 열린 자의 차이는 닫힌자는 듣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문이 열린자는 말을 소중히 여기고 듣는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복음의 협력자는 그 마음을 열어 순종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성경을 보라. 하나님의 향하여 마음이 열려져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바울이 주님을 향하여 마음이 닫혀져 있을 때에는 예수님을 핍박하였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다. 그러나 그가 변화받고 예수를 향하여 마음이 열려져 있으니 자기는 아시아쪽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다려하다가도 드로아에서 본 환상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씀을 듣고서 그는 그대로 순종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져 있는 자는 순종하는 사람이다.

바울이 환상을 보고서 빌립보에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점치는 여종을 만난다. 그곳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 점치는 여종은 더 이상 점을 칠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주인이 화가 났다. 여종이 점을 칠 수 없으니 당장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다. 바울을 잡아다가 "이 사람이 이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우리를 괴롭힌다"고 고소한다. 억울하게 바울은 옷이 찢겨지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을 보고서 가던 길을 돌려서 마게도냐로 왔는데 어쩐 일로 이렇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앞이 캄캄하겠는가?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지 않았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니 죄수들이 듣더라."
어떻게 바울과 실라가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기도하며 찬송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을 주님을 향하여 마음이 열려져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였고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7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터어키 지역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지하 12층 깊이로 파고 내려가 지하 도시를 만들었다. 그곳의 이름을 데린큐우라고 부른다.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가이드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지하의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내려가지 말라고 경고를 준다. 좁은 길을 한참 내려가는 도중에 약 십분 정도 갇혀 있었다. 왠지 내 마음이 답답해 지는 것을 느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믿음의 선조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에서 평생을 살다가 죽기도 했는데 내가 몇 분을 못 참겠는가? 지하도시에 내려갔더니 그곳에는 무덤도 있고, 식당도 있고, 신학교까지도 있었다. 왜 그들은 지상의 편리한 생활을 버리고 지하로 내려갔는가?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들에게 소중한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진 마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서 지하 도시를 만들고 그곳에서 사는 것을 조금도 서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에는 우리의 마음이 활짝 열려있고, 주를 위해서 해야할 일에 대해서는 마음이 닫혀 있지는 않는가?
이같이 복음의 협력자는 마음이 열려 진자이다. 마음이 열려진 자는 그 말에 청종하여 함께 협력하는 자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굳게 닫힌 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우리는 지금 아름 다운 성전을 짓고 있다. 온 성도들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온 성도들이 협력자가 되기를 바란다. 마음의 문이 열려서 함께 돕고 싶은 마음이 열려지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나귀가 필요하셨다. 제자들을 불러서 마을에서 나귀를 끌고 오게 하신다. 주인에게 주가 쓰시겠다하라고 전하게 하신다. 이 나귀의 주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하여 열려진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같이 복음의 협력자는 열려진 마음이어야 한다. 루디아는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다음 말씀을 보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 복음의 협력은 홀로하는 것이 아니다. 온 식구들이 함께 협력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온 식구들이 함께 예수 믿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남편은 부인을 전도하고, 부인은 남편을 전도하고, 부모는 반드시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야 편안한 마음으로 복음의 협력자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녀들의 신앙 생활을 위하여 더 많이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위하여 잘 지도하기를 바란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것은 신앙의 유산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설교학 교수인 블랙우드는 그리스도인이 남겨야 할 세 가지 유산이 있다. 첫번째는 기쁜 기억의 유산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정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런 기억이 있으면 죄악 가운데서도 건질 수 있다고 했다. 부모들의 주일성수 모습, 예배드리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어른 존중하는 모습, 남을 돕는 모습 등은 아이들에게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 두 번째는 좋은 습관의 유산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하는 좋은 습관, 특별한 때가 되면 어려운 가정을 찾아서 도움을 주는 일등 좋은 습관의 유산을 남겨준다. 세 번째는 높은 생의 목표의 유산이다. “우리 아버지는 교회에 나가지만 돈을 위해 산다”는 등의 기억을 남겨주는 것은 불행이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살았다는 생의 좋은 유산을 남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폴리캅은 요한의 유명한 제자이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은 서머나에서 순교를 당한다. 순교를 당한 예배당에 들렸다. 순교자의 흔적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고작 열다섯명 정도가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폴리캅하면 교회사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가? 폴리캅을 기념하여 지어 놓은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열다섯명 밖에 안된다니 얼마나 큰 충격인가?

나는 이 교회를 다녀 오면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바라보았다. 우리들이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하지 않으면 수 백년이 흐른 후에 한국교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복음의 협력자는 홀로하기 보다는 온 식구들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에 온 식구들이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버지와 아들이 성가대에 같이 서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성가대 하고, 부부가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에 얼마나 큰 은혜가 되는지 모른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에게 좋은 소망이 있다. 자기 자식들을 교회에 장로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이 마음이 얼마나 좋은가?

복음의 협력자 루디아의 가정을 보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 루디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루디아가 바울을 위하여 도울 것을 표현한다. 단순한 인사치례로 하는 협력이 아니다. 그 말 속에 적극성이 담겨져 있다. 말로 때우는 그러한 제안이 아니었다. 적극성을 띠고 있었다. 적극적이라는 말의 구체적인 표현은 루디아는 통이 큰 여자이었다. 복음의 협력을 하는데 이왕이면 통이 크게 주를 위하여 협력하였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는 복음의 협력자 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적극적으로 우리는 협력하고 있는가? 체면을 유지하는 정도로 협력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렇게 복음의 협력자 루디아는 어떻게 되었는가? 세계에 흩어진 많은 사람들이 루디아가 바울을 만났던 그 강가를 찾아온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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