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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탄의 용광로에서 탈출하기 (창 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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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멋진교회)


지난주에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하는 장면이 폭로되었습니다. 폭로된 사진들은 하나같이 인간을 짐승보다 못하게 취급했습니다. 모두 인간이기를 포기한 모습들이었습니다. 평화를 위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이중성이 드러났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이보다 훨씬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라크 저항군은 이를 보복하기 위해서 민간 미국인을 납치해서 참수했습니다. 더구나 참수하는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세계에 퍼졌습니다. 살인하는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마귀였습니다. 얼굴에 두건을 썼는데 그 안에는 사람이 아니라 사탄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받은 데로 갚아주라는 보복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서로 보복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피의 보복을 낳습니다. 사람을 학대하고 죽이는 곳은 지옥입니다. 지금 지구 위에는 이런 지옥이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은 인류 최초로 살인이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인류의 비극은 너무도 빨리 시작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에덴동산을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두 아들 사이에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두 사람이 제사를 드린 것에서 시작됩니다.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이 때문에 분노했습니다.

본문 5 절을 보면 가인은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가인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분노를 담아두지 못했습니다. 분노가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가인의 분노를 보셨습니다. 즉각 그에게 나타나셔서 권고하셨습니다. 분을 내는 까닭이 무엇이냐? 얼굴색이 변한 것은 무슨 까닭이냐?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고 했습니다. 죄의 소원이 네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죄를 지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꿰뚫어 보셨습니다. 죄를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6-7 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그러나 가인은 분노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갑작스런 분노는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분노를 키웠습니다. 그래서 아벨을 계획적으로 살인합니다. 8 절에 보면 가인은 아벨에게 뭐라고 고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은 아벨을 죽입니다.

8 절 말씀입니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이 아벨에게 고한 내용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분노 가운에 어떤 말을 했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너를 죽이겠다고 벼르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 두 사람이 들에 있을 때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들이라는 곳은 증인이 없는 곳을 말합니다. 목격자가 없는 완전범죄의 기회를 노렸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분노 때문에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은 분노를 해소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일로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은 죽었고, 자신은 하나님의 진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농사를 지어도 땅이 그에게 소출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늘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분노는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확대합니다. 화를 터뜨리면 본인은 화를 해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잠언 기자는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겁다”고 했습니다. <잠 27:3>

또 분은 잔인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는 벗어나기 힘든 홍수같다고 했습니다. <잠27:4>

화를 내면, 화를 내는 사람이나 화를 당하는 사람이나 모두 분노의 불길에서 비켜가기가 어렵게 됩니다. 따라서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분노가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노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고” 했습니다. <잠언 15:1>

화를 내는 것보다 유순함과 온유함이 상황을 풀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있는 독특한 병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 병은 1995 년 미국정신의학학회에서도 정식 병명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것은 화병입니다. 화병은 분노를 속에 담아두고 쌓아두기만 하다가 생기는 병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은 분노가 쌓이면 화병이 되기 쉬우니 분노를 담아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화를 표출하는 것은 오히려 해롭습니다. 화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사탄의 용광로에서 탈출하기」입니다. 분노는 사탄의 용광로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이 용광로로 유혹합니다. 이곳에 빠지면 과격하게 변하고 폭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평화는 깨지고 증오심과 복수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분노하고 미워하고 사람을 파멸과 죽음에까지 몰아넣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의 말처럼 분노는 잔인한 죄라고 했습니다. <잠언 27:4>

화를 삼켜도 병이 되고 터뜨리면 더 큰 죄가 됩니다. 그러면 화가 나는 상황이 될 때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우리는 화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화를 푸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화를 전혀 내지 않고 살기는 어렵습니다. 분노는 정말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엡 4:26-27>

운전을 하다보면 거리에서 화가 나는 경우가 생깁니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바로 뒤에서 빵빵거리면 화가 납니다. 갑자기 끼어들어 사고 날 뻔 했는데 간신히 피했을 때 화가 납니다. 무례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당하면 화납니다. 폐수를 몰래 버리는 기업이 뉴스에 고발되면 화가 납니다. 당리와 사욕을 채우는 정치인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갖가지 분노를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분열과 다툼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온갖 부조리와 불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보면 저절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화가 격발할 때 어떻게 하면 분노를 다스리고 풀 수 있을까요?

첫째, 분노의 원인은 대게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일 정도로 화를 냈습니다. 가인이 화를 낸 시작은 제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고,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제사의 실패는 분노에 앞서 부끄러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아벨의 제사와 비교가 되었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가인의 제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인의 제사는 곡물로 드린 제사이고 아벨은 짐승을 드린 제사였기 때문에 차별을 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가지고 차별을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을 잘 해석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 11:4>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가인이 제사를 실패한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동기와 열망이 부족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가인은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당연한 대우를 받은 것입니다.

제사가 열납되지 못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아벨에게 그 화를 돌렸습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엉뚱하게 착하고 믿음 좋은 자기 동생을 응징했습니다. 자기 잘못을 아벨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심리학에서 이런 것을 투사라고 합니다. 자기 허물을 남에게 돌리고 응징하는 방어기제입니다.

가인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것을 아벨에게 풀었습니다.

방귀뀐 놈이 성을 냅니다. 시어머니에게 야단맞은 며느리가 부엌에서 알짱대는 강아지를 걷어찹니다. 왜 그럴까요? 나름대로 화를 푸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화를 푸는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우리가 분노할 때 종종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자신이 화내는 이유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잘못을 지적하면 화가 나지요. 그러면 본능적으로 그 사람을 꺾으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속된 말로 내가 더 잘난 것들을 동원해서 아작을 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아주 잘못하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겸손하게 그 지적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이가 더 많은데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그 때 내가 분노의 화살을 밖으로 돌리고 있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분노를 다스리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우리가 성을 내는 것이 마땅하고 정당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약 1:19-20>

화나는 순간에 화를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화를 다스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안에서 새로운 성품을 입게 되면 화를 다스릴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5:22-26>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성령 충만함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셋째, 화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십자가는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쳐줍니다.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주님은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죄를 탕감해 주셨습니다.
화를 푸는 것은 용서입니다. 용서하는 것이 힘들지만 용서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노를 다스리려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멍청해져야 합니다. 똑똑하니까 따지고 되갚아주려고 하게 됩니다.
당하는 것 같습니다. 억울합니다. 순해 터지고 멍청하게 보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당하는 것이 사실은 낫습니다.

용서는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줍니다.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 같이 상대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오늘 여러분에게 분노를 다스리는 특효약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을 받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성찬을 거행하셨습니다. 성찬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닥칠 모진 고난은 너무나 억울한 일입니다. 모두 불법이고 트집으로 가득한 올가미였습니다.

인간을 짐승보다 더 심하게 다루는 악마의 소굴로 들어가는 바로 앞에 바로 이 성찬이 있었습니다. 채찍을 맞으실 때 너무 억울해서 화가 치밀어 오를까봐 이 성찬을 마련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이 성찬을 나누면서 십자가를 준비하셨습니다.

다가오는 커다란 사탄의 용광로에 던져질 것이지만, 결코 우겨쌈을 당하지 않으셨던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승리의 비결은 바로 이 성찬에 있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성찬을 받음으로 어떤 분노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성찬을 받기 전에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화날 상황에서
"내가 성찬을 받은 몸인데..."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겠습니다. 오른 손으로 자기 왼쪽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내가 성찬을 받은 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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