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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롭게 되는 날 (행 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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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목양교회)

우리들은 많은 설교를 듣습니다. 교회에서도 듣고, 선교 라디오와 TV에서도 듣고 인터넷에서도 듣습니다.
가끔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설교는 깔깔 웃으면서 재미있게 들었는데 남는 것은 별로 없고 웬일인지 뒷맛이 좀 좋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가만, 내가 코미디를 본 것인가? 설교를 들은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지요.
어떤 설교는 잘 듣기는 했는데 꼭 솜사탕 먹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솜사탕은 달콤하기는 한데 영양은 별로 없지요.
어떤 설교는 지루하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았는데 웬일인지 오랫동안 마음에 깊이 기억되는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바로 오늘의 본문,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고쳐준 것을 보고 놀라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한 설교, 이 설교가 좋은 설교의 본보기입니다.

베드로는 이 설교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세요. 베드로는 ‘나를 보지 말고 예수님을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군대식으로 표현하면 ‘예수님께 주목!’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설교, 초점을 에수님께 두는 설교가 좋은 설교입니다.

베드로는 이 설교에서 듣는 이들의 잘못을 대담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3절 이하를 보세요. ‘너희는 예수님을 넘겨주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너희가 거부했다, 너희는 살인한 사람,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면서 생명의 주를 죽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매섭습니까?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눈치보지 않고, 할 소리 다 하는 것이 좋은 설교입니다.

베드로는 이 설교에서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예수님이 구주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빠지면 설교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명백하게 말했습니다. 애매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설교가 좋은 설교입니다.
설교에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써서는 안 되지요.
‘이렇습니다!’ ‘이렇게 해야합니다!’ 해야합니다.

베드로는 듣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말을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세요!’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는 설교가 좋은 설교입니다.

이와 같이 설교로서 갖춰야 할 것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베드로의 이 설교를 비롯해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설교들을 ‘설교의 원형’이라고 말합니다.
헬라말로는 ‘케리그마’(κήρυγμα)라고 합니다.
좋은 설교를 하고 싶으면, 또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인지 알고 싶으면 베드로의 이 설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번 부흥회 할 때 부흥회 강사가 독일 유학 시절에 한 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을 때의 일 하나를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주일에 주일설교를 준비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준비할 수 없어서 설교시간에 본문만 두 번 읽고 내려와서 라인 강가에 나가서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설교자들은 가끔 그와 같이 아무리 애써도 설교준비가 안 되는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설교 시간은 다가오는데 설교원고는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으니까 컴퓨터 자판에 올려놓은 손이 마비가 되는 것 같은 체험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은 설교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본문만 읽고 그만 두었는데 오늘은 본문 자체가 이렇게 좋은 설교입니다.
성경봉독 시간에 우리는 이미 더 할 수 없이 좋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설교는 여기에서 끝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할까요?

설교는 성경 말씀이 오늘 우리의 형편 가운데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도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 성령강림절에 성령 받고 한 설교는(올해의 성령강림절은 다음, 다음 주일, 30일입니다) 성령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요엘서의 말씀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다음, 다음 주일이 올해의 성령강림절입니다.
오늘 설교의 많은 부분은 신명기 18장과 창세기 12장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피는 가운데 베드로 사도의 이 설교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은혜와 교훈을 깨닫게 되기 원합니다.

베드로는  ‘당신들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의 끝 부분인 25절과 26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지금,
‘당신들은 선지자의 자손으로 사명이 있소!’
‘당신들은 언약의 자손으로 사명이 있소!’.
‘당신들은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할 사명이 있소!’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 당신들은 돌이켜 악함을 버려야 하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른바 종가에서는 자녀들에게 ‘너는 우리 가문의 장손이다. 그러니까 너는 더 예의 바르게 살아야한다. 조상을 잘 섬겨야 한다. 의젓해야 한다. 학문도 열심히 닦아야 한다. 그리고 출세를 해야 한다’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장손은 어딘지 모르게 달랐습니다. 품위가 있고 지도력도 있고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대신 장손은 신랑 후보로는 인기가 별로 없습니다. 종가의 며느리는 고달프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용은 좀 다르지만 베드로는 지금 그와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영적인 장손으로 사명이 있소!’

성도에게는 여러 가지 사명이 있는데 그 가운데 전도의 사명이 제일 큽니다.
이 것을 깨닫는 성도가 훌륭한 성도요, 성도다운 성도요, 성도라는 이름을 누릴 자격이 있는 성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이 구세주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20절을 봅니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곧 보내시리니

예수님은 이미 이 땅에 오셨는데 그리스도 에수님을 보내신다는 것을 무엇을 말합니까?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 왕국의 왕으로 재림하시는 날 믿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와 함께 이 말씀은 회개하고 예수님 앞으로 돌아올 때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잘 아시는 대로 구세주, 메시아,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보기만 하는 것으로는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기만 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구세주가 되십니다.

여기 솔로몬의 행각에 모인 사람들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믿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완전히 나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16절)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라는 권면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믿었았습니까?
사도행전 4장 4절을 보세요.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말씀을 들은 사람이 모두’ 하지 않고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나는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친 것을 회개합니다. 나는 믿음으로 죄 없이 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 세워진 십자가를 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듣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보다 예수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훌륭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하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한 사람’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여기에서 끝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합니다.
주님 앞으로 나와야합니다.
결단해야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구세주가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의 특징인 의와 평화와 안식과 큰 기쁨의 축복된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바로 이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세요.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세요!’ 이와 같이 열심히 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베드로는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봅니다. 이 19절이 베드로의 설교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라고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성경에는 돌이키는 사람,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받는 축복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이키면 복을 받습니다.
신명기 30장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을 봅니다.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으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이렇게 되지요.

돌이키면 고침을 받습니다.
이사야 6장 9절과 10절의 말씀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돌이키면 마음의 병도 고침을 받고, 육신의 병도 고침을 받고, 영혼도 고침을 받습니다.

돌이키면 재앙을 면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26장 3절을 봅니다.

그들이 듣고 혹시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네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돌이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호세아 14장 1절에서 4절까지를 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돌이켜 주님 앞으로 나온 성도 여러분에게 복 받고, 고침 받고, 재앙 면하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일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회개하고 돌이키면 무엇보다도 죄 없이 함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를 없이한다는 것은(엑살레이프베나이) 흠이나 불의함을 벗겨버리고 완전히 씻겨냄을 말합니다.
거리를 지나다보면 자동차 흠을 제거해드린다는 광고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제거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완전하게는 제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흠이나 불의함이 완전히 씻겨집니다. 깨끗해집니다.
이사야는 눈과 같이 희어지고 양털 같이 희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1:18)

죄를 없이 한다는 것은 죄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 교도소 생활을 하고 나오면 그는 죄의 값을 치렀고 자유를 얻었지만
그 기록은 오랫동안 그를 따라 다닙니다.
여기 죄를 없이한다는 것은 그 기록까지도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무엇을 기록했다가 지우면 많은 경우 그것이 컴퓨터 어디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범죄를 수사할 때 수사관들은 컴퓨터를 압수하고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예전 기록을 살려 증거로 삼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완전히 지워버립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도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43장 25절의 말씀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우리의 죄가 이렇게 없어지는 것,  참 기쁜 일입니다.

그 다음에 보세요.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새롭게 되는 날” 이 말은 성경마다 번역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성서 개정판」에는 “위로의 때”라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 개정판」에는 “편히 쉴 때”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새로워지는 때”라고 했습니다.

왜 이와 같이 성경마다 번역이 다른가 했더니 원어가 ‘카이로이 아나프쉬크세오스’(καιροί
άναφύξεωσ)인데 이 말은 신약에서 여기 꼭 한 번 나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여러 가지 번역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다시 시원하게 되다’ ‘신선하게 되다’ 이런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이 말을 “the time of refreshi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새롭게 되는 날”은 ‘회복되는 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되는 날”은 ‘문제 해결의 날’ ‘기도 응답의 날’ ‘시원해지는 날’이리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할 수 있는 말이 없을까?’ 하다가 발견했습니다.
어떤 말일까요?
‘엄청나게 좋은 날’ 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엄청나게 좋은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예수 믿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좋은 일입니다.

전도할 때 ‘우리 교회를 위해서 교회에 나와주십시오’ 이런 마음으로 전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자리 하나를 채워주십시오’ 이런 뜻이지요.
그것보다 ‘당신을 위해 예수를 믿으십시오’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돌이키면 당신은 유쾌해집니다. 이 유쾌는 영적인 유쾌입니다. 당신은 정신적인 모든 고뇌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돌이키면 당신은 위로를 얻습니다. 이 위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위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돌이키면 당신은 편히 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돌이키면 당신은 회복됩니다. 당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돌이키는 것은 엄청나게 좋은 것입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이와 같은 것을 체험해야합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허물을 씻김 받았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베드로는 ‘뉴 베드로’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이 경우와 같이 여러 가지 번역이 얽혀 있는 경우에는 가장 나중 나온 번역을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앞의 번역들을 다 참고했을 테니까요.

  이와 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성도 여러분, 새로워지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새로워진 사람들이지요. 그 위에 먼지가 좀 앉았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먼지를 닦아내고 그 새로움이 반짝 빛나게 되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나라가 새로워져야하겠습니다.
탄핵사태를 겪은 대통령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대통령 주변에서 이 사도행전 3장 19절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게 되기 바랍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누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도했다’ 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 회개하고 돌이켜 죄없이 함을 받고 새로워지는 날, 엄청나게 좋은 날을 체험하고 그것을 증언하는 것이 우리의 전도가 되어야합니다.

베드로는 이 설교를 솔로몬의 행각에서 했습니다.
솔로몬의 행각은 예수님이 설교를 하던 장소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수전절에 솔로몬의 행각에서 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솔로몬의 행각에서 거니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당신이 과연 그리스도입니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미 말했는데 왜 믿지 아니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서 30절까지를 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양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준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
이 소중한 말씀들이 솔로몬의 행각에서 선포되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오늘의 설교를 선포하고 잇습니다.
예수님이 일하시던 장소에서, 예수님이 하시던 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계속해서 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예수님이 일하시던 장소는 넓게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 모여들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이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오늘 베드로의  이 설교는 전도설교로 분류됩니다.
베드로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했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는 전도를 강조하고 여러 모습으로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담으로 여기지 마세요. 전도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감사하며 활용하세요.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 전도의 사명이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어 내가 어떻게 새로워졌나?’ 점검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하여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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