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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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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삼 목사(광염교회)
 
  예수, 그 이름은 신비입니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아무리 많이 전해도 질리지 않습니다. 질리지 않을 뿐 아니라 들을 때마다 힘이 납니다. 사람의 이름은 몇 번만 들어도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몇해 전인가 우리교회 단기선교팀이 캄보디아를 다녀왔을 때 이야기입니다. 캄보디아에 갔을 때 파트너가 되었던 선교사님이 제 이름을 여러차례 거명했던 모양입니다. 단기선교를 다녀온 집사님이 그러시네요. 은혜가 안되더라고. 그래요. 맞습니다. 사람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이름은 듣고 듣고 또 들어도 힘이 납니다. 전하고 또 전해도 힘이 납니다. 저는 설교가 좋습니다. 예수를 전할 수 있어 그렇습니다. 피곤하던 몸도 빠졌던 힘도 예수를 전하고 나면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반전의 은혜가 예수 그 이름 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봅니다. 예수님이 주신 어떤 것을 바라보지 않고 오늘도 그것을 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때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바라보다 그것을 하나님 삼아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그 어떤 것을 주셔도 그것을 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주신 어떤 것보다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마음껏 기뻐하며 춤을 추고 싶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바라보지 않고 온전하고 전능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힘써 여호와를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바라보면 힘이 빠지고 낙심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면 힘이 납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주님은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전에 저는 제가 해결자인줄 알았던 때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곳이면 달려갔습니다. 달려가지 않으면 찾아왔습니다. 문제가 제게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문제 가운데 묻혀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해결자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문제의 해결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문제를 바라보고 문제를 직시하던 제가 이제는 문제에서 돌아서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를 향해 달려갑니다. 거기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답입니다. 예수님에게 가면 풀어집니다. 관계의 문제도 풀어집니다. 눌림의 문제도 풀어집니다. 오해도 풀어집니다. 다 풀어집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그렇습니다. 인생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거역한 일이 아니라 그것을 참으신 자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힘이 빠지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다 낙심이 되면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다시 일어설 힘이 생깁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이분이 예수님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에게 가면 짐이 내려집니다. 죄의 짐도, 인생의 짐도 내려집니다. 때로 사람이 짐이 되기도 하지요? 예수님에게 갑시다. 거기 쉼이 있습니다. 편안함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갑시다. 예수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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