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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만 말씀만으로도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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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멋진교회)

사람은 심장은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좌심방은 피를 뿜어내는 동맥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심방은 정맥에 연결되어 온몸을 돈 피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하면 대부분 좌심방에 문제가 생깁니다. 우심방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하버드대학병원에 심장내과 전문의 레빈이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레빈 박사에게 심장병을 앓는 한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진찰을 해보니 뜻밖에도 우심방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레빈박사는 수련의들에게 여기 TS 환자가 있으니 들어와 보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우르르 들어가 여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면서 신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자기들끼리 “TS래 TS” 하고 수군거렸습니다. TS 란 ‘Tricuspid Stenosis · 트라이커스피드 스토노시스’의 약자로 우심방 질환을 말하는 의학용어입니다.

레빈 박사는 여인의 증세가 특별히 심각한 것은 아니어서 간단한 처방을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응급실에 한 여인이 실려 왔습니다. 바로 낮에 진료했던 그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심장이 극도로 약해져 있었습니다. 레빈 박사는 급히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까는 심장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요?”
그러나 여인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레빈 박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냐고 계속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건 선생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레빈 박사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사연을 알아본 즉 낮 진료 때 학생들이 TS 라고 수군거리는 말을 듣고, 여인은 TS 가 무얼까 생각했습니다. 여인은 ‘Terminate Situation 종점 상태’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TS 라는 단어를 자신의 심장이 끝나는 상태라고 잘못 생각한 여인은 큰 충격을 받고 심장에 급속한 이상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레빈 박사는 TS라는 용어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자기를 안심시키려는 거짓말로 생각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의 믿음대로 그녀의 심장은 멈춰버리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말 한마디 때문에 귀한 목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또 하루는 심장 기능이 극도로 악화된 노인이 들어왔습니다. 이미 회복할 수 없는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심장이 회복하지 못할 상태가 되면 심장 뛰는 소리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심장이 정상일 때는 ‘쿵탁쿵탁’하는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이상이 생기면 전혀 다른 제 3 의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이 소리를 영어로 겔롭(Callop)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이 소리를 ‘가르렁 가르렁’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합니다. 이 소리가 크게 들리면 죽음 직전에 왔다는 신호입니다.

레빈 박사가 이 노인의 심장에 청진기를 대보니 제3심음이 뚜렷하게 들렸습니다. 이 소리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소리였기 때문에 급하게 수련의들을 불렀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노인의 심장에 청진기를 대본 학생들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잘 들립니다. 아주 뚜렷하게 잘 들려요!”

레빈 박사는 가족들에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모두 노인이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인은 호흡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가족들이 지쳐서 기진맥진 할 지경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인의 상태는 점점 호전되더니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3심음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1 주일 만에 정상으로 돌아와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퇴원하는 날 회진을 하던 레빈 박사는 노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심장이 좋아지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노인은 오히려 반문합니다. “지난번에 박사님과 학생들이 내 심장소리가 잘 들린다고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노인은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레빈박사와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심장이 좋다는 뜻으로 알아듣고 그 때부터 노인의 심장은 힘을 얻어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로마서 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군대에 가면 로프를 타고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리는 특수훈련이 있습니다. 11 미터 높이가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라고 합니다. 안전장치가 있지만 내려다보면 공포를 느낍니다. 담력이 있어야만 뛰어내릴 수 있습니다.

번지 점프를 할 때도 똑같은 공포가 있습니다.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면 조교가 마음을 다지도록 도와줍니다. “뛰어내릴 수 있습니까?” 그러면 훈련병은 큰소리로 악을 쓰면서 “네 뛸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자신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네 자신 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떨리지만 자기 입으로 할 수 있다고 소리친 사람들은 몸을 허공에 던질 수 있습니다.

말은 행동을 지배합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면 할 수 없는 행동이 나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고 말하면 할 수 있는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마가복음 11:23 에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허풍이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말씀으로 풍랑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말씀으로 저주하셨을 때 말라 죽었습니다.

사도행전 3 장에 보면 베드로는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말씀으로 일으켰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 3:6>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발에 힘을 얻어 일어났고, 걸었고, 뛰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기도하는대로 이루어집니다. 믿음을 가지고 말하면 그 말대로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고 선포하면 그 말씀에 권세가 따릅니다.

잠언 18:21 말씀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허다한 병자들을 말씀의 권세로 치료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놀라운 말씀의 권능이 나옵니다. 이 기적의 말씀은 한 백부장의 믿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백부장이란 백 명의 병사를 거느린 로마의 장교입니다. 가버나움은 교통과 무역의 요지였기 때문에 로마군대가 파견 나와 있던 곳입니다. 그는 식민지 백성을 다스리는 지배자였습니다. 일제시대에 헌병대장 정도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는 이 지역에서 행정, 사법, 군사의 무제한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 권력자가 본문에서는 겸손하게 예수님께 나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온 까닭은 집에서 부리는 하인이 중풍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 백부장은 인품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인이 중풍병 걸린 것을 안쓰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릴 때 하인이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하인과 종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축처럼 취급했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이라면 그는 전쟁 포로이거나 노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같은 하인이 병에 걸려도 주인이 모르고 지나가는 수가 더 많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 중풍병은 한 번 걸리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도 반신불수가 됩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하인의 고통을 안쓰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자신의 권력과 신분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나아온 것을 보면 그의 인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부하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느끼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에게는 믿음 이전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은 믿음을 갖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사랑은 불가능의 장벽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낫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체면과 상황을 따지지 않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이만한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크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하인 병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직접 예수님이 집에 방문하시는 것은 마다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이 하인이 중풍병에 시달린다는 말을 듣고, 직접 집에 가서 고쳐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백부장은 평소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군대 장교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말씀의 권세를 알고 있습니다. 권력 앞에서 말 한마디면 척척 이루어지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나서시는 것이 그저 황송하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그 만큼 예수님을 높이 여기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이신데 말씀만 해주시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집에 있는 하인이 나으리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이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 시로 집에 있던 하인이 나았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권세를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은 곧 현실이 될 줄로 믿었습니다.

바울도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세상을 이기는 힘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사탄을 이기는 힘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안 된다, 못한다, 어렵다, 힘들다 하는 말들은 모두 실패와 불행을 만듭니다. 그런 말들은 내 영혼을 쓰러지게 합니다. 그런 말들은 내 삶을 짓밟는 죽음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 일은 주 안에서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면 힘이 생깁니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문제가 풀리고, 해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정탐을 했습니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뽑아서 열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이들은 40 일 동안 가나안 땅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먼저 열 명의 정탐꾼이 보고합니다.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이들은 보고는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두 명의 정탐꾼은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소리쳤습니다.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부정적인 열 명의 보고에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광야로 되돌리셨습니다. 40 년 동안 그들은 유랑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약속의 가나안 땅을 밟은 사람은 오직 두 명의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 동네에 불이 났습니다. 한 밤중이었는데 강풍을 타고 불이 번져서 교회 가까이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가까스로 세운 교회를 잃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이 목사님은 불을 향해 두 손을 뻗어 명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불길이 사그러질지어다. 목사님은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옆에서 사모님도 장풍 자세를 하고 합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불에게 소리치고 있는데, 뒤에서 회리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랍니다. 달려드는 불길 방향이 바뀌면서 이내 거센 불길이 사그러들었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과 함께 하셔서 일평생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삼상 3:19>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요. 여기에 덧붙이면 말이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말에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주십니다. 우리는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골라서 하십니다. 모든 말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면 사랑의 말이, 믿음이 가득하면 믿음의 말이 나옵니다.

<마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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