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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유월절과 (히 1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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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빅상훈 목사 (승동교회)

2004년 5월 2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지난 세기 초 미국에 로버트 메이라는 동화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글을 써 보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별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내마저도 병들어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생각하면서 이런 글을 써 보았습니다.
"사슴들이 모여서 사는 사슴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루돌프라는 이름의 사슴이 있었습니다. 그는 얼굴이 못생겼습니다. 게다가 코까지 빨갛게 부풀어 올라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루돌프는 친구들로부터 늘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타 할아버지가 사슴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눈썰매를 끌 사슴을 뽑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사슴들이 자기들의 용모를 뽐내면서 나섰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슴 중에서 뜻밖에도 루돌프가 뽑혔습니다. 루돌프의 코가 붉기 때문에 밤길에 다니기가 좋다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 사슴들은 더 이상 루돌프를 놀려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루돌프를 부러워하면서 그를 매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글을 병상에 있는 자기 아내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쓰셨군요. 그래요.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글을 잡지사에 보냈습니다. 그 동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 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 후로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코는 길이 길이 기억되리."

"루돌프 사슴코"라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바로 이 동화에서 따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루돌프의 붉은 코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희망입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이라는 붉은 코가 있으면 어떠한 역경 속에서라도 얼마든지 우리는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반 교실 칠판에 큰 글씨로 "뿌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차례대로 한 아이씩 앞에 나가서 자기 가정의 "뿌리" 곧 자기 조상에 대해서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자랑스러운 듯이 이렇게 발표를 했습니다.
"저는 전주 이씨 47대 손입니다. 저의 증조 할아버지는 조선시대에 예조 판서를 지내셨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지금도 시골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계십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는 큰 무역 회사의 중역이십니다. 저는 저의 집안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계속 돌아가면서 자기가 준비해 온 내용을 열심히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선생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자기 때문에 그 아이의 마음속에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아이는 앞으로 나와서는 조용한 어조로 이렇게 발표를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저의 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저의 아버지에게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아주 많은 가족들이 있답니다. 특히 저의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똑같이 사랑하신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선생님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이처럼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이 있으면 이 땅에서 잠시 겪는 슬픔과 고난을 얼마든지 견디어 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귀한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11:28∼29은 모세의 삶 가운데서 마지막 제 3기에 해당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쓰임을 받을 때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믿음으로 행한 것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을 제정하였습니다.
둘째로, 모세는 믿음으로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습니다.
셋째로, 모세는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믿음의 성격에 대해서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월절 그 자체가 그들에게 구원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피 뿌리는 예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출애굽을 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향해서 올라갔습니다. 그들의 앞길에 아무런 장애가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거대한 홍해가 나타났습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사가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너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뜨거운 보혈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인해서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곧 그에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아무런 환난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홍해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가나안 복지를 향해서 힘차게 전진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을 제정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내리셨던 열 가지 재앙 가운데서 마지막 열 번째 재앙과 관련된 것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내가 애굽 땅을 두루 다니면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서 처음 난 것을 다 치리라. 그러나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하여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그들의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가리라."
유월이라는 뜻이 바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넘을 유 넘을 월, 영어로는 "pass over"입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은 모세가 스스로 생각해 내서 고안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세가 믿음으로 순종해서 제정했을 뿐입니다.
"하나님, 잠시만요. 제게 멋진 생각이 있습니다.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칠하면 피비린내도 나고, 집도 지저분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들 집 앞에 어린양을 한 마리씩 매어 놓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 어린양을 보시고 그 집을 그냥 넘어가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대로 순종해서 유월절 예식을 제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64:6에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그렇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선행, 인간의 생각, 인간의 지식, 인간의 의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노아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야, 내가 세상을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리라.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누구든지 방주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의 길은 명확합니다. 쉽습니다. 간단합니다. 누구든지 방주 안에만 들어가면 다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홍수가 나서 다 멸하기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만 바빴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 방주 속에 들어가는 일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심판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롯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곧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하리라. 그러니 너는 너에게 속한 자들을 속히 성밖으로 이끌어 내어라."
구원의 길을 간단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벗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롯은 자기 사위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심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구원을 바로 앞에서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방황할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너는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아라.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
믿음으로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다 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놋뱀을 쳐다보지 않는 자는 다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지 않는 자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모세는 믿음으로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유월절 예식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그 자체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 저절로 구원이 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해야 될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자기들의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가 믿음으로 제정한 피 뿌리는 예는 결국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에 뿌려야 구원을 받을 수 있었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사도 바울은 좀더 구체적으로 고전5:7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유월절 양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뜨거운 보혈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서 다 흘려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시골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선교사님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는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선교사님은 그에게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두터운 마분지로 만든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넉 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는 전혀 글씨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각 장마다 다른 색깔로 된 책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그 책을 그에게 주면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첫째 장의 검은 색은 인간의 죄와 죽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장의 붉은 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셋째 장의 흰색은 당신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고 눈처럼 희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장의 황금색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을 의미합니다."
그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그 뒤로 그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기에 늘 그 글 없는 책을 보면서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돈독하게 다져 나갔습니다.

어느덧 그는 나이가 많이 들어서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는 침상에 누운 채 자기 가족들에게 자기의 글 없는 책을 갖다 달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그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그 책의 붉은 색의 장을 펴서 자기의 가슴 위에 얹어 달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그는 붉은 색의 장을 자기 가슴 위에 펴 놓은 채 이렇게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제가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갈 때가 되었습니다. 행여라도 아직까지  저에게 씻음 받지 못한 죄가 있으면,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저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은 죄 사함에 대한 확신으로 환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가족들에게 이번에는 흰색을 펴서 자기 가슴 위에 얹어 달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흰색을 펴서 그의 가슴 위에 얹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깨끗하게 되셨으니 이제는 날 빛보다 더 밝은 천국에 가셔서 예수님과 더불어 영생을 하시게 되셨군요."
그는 평안한 모습으로 웃으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면서 그 책을 그의 가슴 위에 그대로 펴놓았습니다. 물론 그 책의 마지막 장인 황금색을 펼쳐 놓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누리게 될 영화로움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를 씻음 받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한 것도, 입고 있는 옷을 깨끗하게 빨아 입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어린양의 피를 뿌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죄를 씻는 길도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요, 우리의 진리요,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모세는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홍해를 건넜습니다.

29절입니다.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그들이 출애굽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가는 길에 아무런 난관이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 앞에 홍해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야만 가나안땅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그들을 실어 나를 배가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설상가상으로 바로의 군사가 바로 뒤에서 추격을 해 오고 있습니다. 앞에는 홍해입니다. 뒤에는 바로의 군사입니다.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모세를 향해서 불평과 원망을 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드느냐?"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무슨 뜻입니까?
"저 넓은 홍해 바다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냐? 그러면 하나님에게 능력이 부족해서 너희를 홍해 속에 빠뜨려 죽게 만드시겠느냐? 그러니 쓸데없는 인간의 소리, 곧 불평과 원망을 그만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의 일을 보라."
그러면서 모세는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위로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홍해가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좌우의 물벽이 높이 섰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마른 땅이 드러났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라."
물벽이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만에 하나 물벽이 무너지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닷속에 다 빠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명에 따라서 믿음으로 앞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무사히 다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는 바다를 우리인들 왜 건너지 못하겠는가?"
그들도 바닷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물벽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모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애굽 사람들이나 똑같이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믿음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고 인간의 생각으로, 자기들의 오기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었던 믿음의 유무가 그들의 생사를 갈라놓고 만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이 있어야 삽니다. 우리에게도 홍해를 가르는 믿음, 홍해를 건너가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홍해와 같이 막다른 골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 바로의 군사가 추격해 오듯이 쫓기는 삶을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홍해를 건너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결코 허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 주십니다.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하십시다. 얼마든지 우리는 홍해를 건너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뒤쫓는 바로의 군사들도 홍해 속으로 다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홍해가 나타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강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바로의 군사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게 만드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촉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뒤에서 애굽의 군사들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사리 홍해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겠습니까? 그들의 믿음을 촉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바로의 군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는 것을 그대로 허용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하나님은 결코 허락지 않으십니다.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얼마든지 홍해를 가르고 홍해를 건너갈 수 있습니다. 홍해를 건너가는 믿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 역사 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이 믿음으로 모든 난관을 헤치고 승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영원한 가나안을 향해서 힘차게 전진하고 올라가는 믿음의 모습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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