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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군사 되는 조건 (딤후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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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양정교회)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젊은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 서신입니다.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로마시 대 화재 사건의 주범으로 몰아 시작한 박해 때 방화범의 주범으로 몰려 사형을 기다리며 글을 기록한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로서 나이가 젊고 경험이 부족하였지만 복음의 열정과 순수함이 넘치는 목회자였습니다. 바울은 대 선배로서, 스승으로서 자식을 대하는 아비의 마음으로 디모데에게 목회의 지침들을 편지로 썼습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은 “예수의 좋은 군사”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군사라는 말은 군대적 용어입니다. 바울은 빌 2:25절과 빌레몬서 1:2절에서 에바브로 디도와 아킴보에게 “함께 군사된 자”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빌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몬 1:2)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군대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고전 9:6-7절에서도 “병정”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군사나 병정이라는 용어는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인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좋은 군사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오늘 좋은 군사가 되는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승리와 영광의 교회입니다.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지상교회는 계속하여 싸워야 하는 전투적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동시에 십자가 군병으로  부름 받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좋은 십자가 군병입니까?
  좋은 십자가 군병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싸움의 대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사라는 용어 자체가 전쟁을 의미합니다.
  군인은 전쟁을 위해 훈련되고 준비된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군병은 영적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군사는 자신이 물리쳐서 이겨야할 대적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이것을 영적 전쟁이라고 표현한다면 이 세상은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마귀와 귀신 그리고 모든 악한 것들과 싸우는 십자가의 군병들인 것입니다.
  엡 6:12절을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이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와 싸우는 군사입니다. 그리고 죄와 싸우는 군병들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치열한 영적 전쟁이 수행되고 있는 전투장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이 영적 전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마귀에게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군사는 자신이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를 압니다.
  벧전 5:8-9절을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좋은 군사는 물리쳐야할 적이 마귀라는 사실을 알 뿐 아니라 마귀가 사용하는 수법을 알아서 대처할 줄 압니다. 

  ① 마귀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더 생각하게 합니다.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을 무너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합니다. 마16:23절에서 사단은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단의 술책을 아시고 물리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도다”

  ② 사람들의 마음속에 모든 악한 생각을 집어넣어 죄를 짓게 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합니다.
  요13:2절에 보면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고자 하는 마음 생긴것은 마귀가 그 마음에 그러한 생각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사람의 마음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사단에게 끌리기 아주 좋은 성질이 있습니다.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 당기듯이 사람의 마음은 사단에게 끌리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입니다.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마음은 이미 사단에게 끌리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 12:4-6절에 보면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향유를 팔아서 3백 데나리온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유다에 대하여 요12:6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즉 가룟 유다의 마음은 세속적인 욕심으로 가득 채워져있었습니다. 그것이 곧 마귀가 악한 생각을 집어넣는 그릇이 되었던 것입니다.
 
  ③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빼앗아 버립니다.
  막 4:15절에 보면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이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다는 것은 말씀의 감동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마비 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감동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어도 전혀 느낌이 없습니다. 사단이 나도 모르는 순간에 내 마음에서 감동을 소멸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들을 때 깨달음이 있거든 감정적으로 뜨겁지 않더라도 그 말씀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더욱이 성령의 감동이 오면 바로 순종하십시오. 사단이 그 감동을 소멸시키기 전에 바로 순종해야합니다.
 
  둘째는 좋은 군사는 고난을 두려워 하지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군병들에게는 두 가지의 고난이 주어집니다. .
  첫째는 훌륭한 군사로서의 훈련 과정에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의 불도가니에 집어넣은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 17:3절에서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연단 과정에서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벧전 1:7절과 벧전 4:12 절을 보십시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훌륭한 십자가의 군병이 되게하기 위해 불로 연단하는 것 같은 불 시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십자가의 정예 부대가 되게하기 위해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고난이 있습니다. 

  둘째는 군병으로 적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격게 되는 고난입니다.
  연단을 잘 받아서 훌륭한 십자가의 군병이라 하여도 사단의 싸움이 만만한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때로 마귀와 영적 전쟁에서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난을 두려워 하지않아야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군인이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오히려 적에게 잡히고 맙니다.
  좋은 군사는 전쟁에서 용감한 군사가 좋은 군사입니다.
  미국 ‘후로리다’에 제임스 케네디 목사가 한 설교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군인들이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구두를 잘 닦고 훈장을 달고, 길을 가다가 상관을 만나면 깍듯이 경례 잘한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군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예절이 바르고 신사 같다 할지라도, 전쟁터에 나가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없는 한 그는 군인이 아니요, 장교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챤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군사는 영적 전쟁에서 용감해야 합니다.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좋은 군사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고 애씀니다.   
  본문에서 좋은 군사는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병역 제도는 의무적이어서 강제 징집을 합니다. 그러나 미국 같은 나라들은 자원병 제도입니다. 의무병 제도이든 자원병 제도이든 국가를 위해 충성해야하는 것이 군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왕이나 돈이 많은 권력자들이 군인을 모집했습니다. 그래서 모집된 자는 자신을 모집한 사람을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좋은 군인은 자신을 모집한 주인을 기쁘게하는 것이 좋은 군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합니까? 본문에서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기 생활에 해당되는 원어 비우(βίου)는 군대에서 복무하는 생활과 대조되는 말로서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행하는 모든 일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포기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얽매이는 ... ” 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그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있습니다.
  “얽매이는..  ” 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엠플레케타이’ (ἐμπλἐκεται)입니다. 이 말은 ‘휘말려 들어가다’ '연루되다‘ 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벧후 2:20절에서도 이 단어가 한 번 쓰여졌습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얽매이고 지면.... 여기서 얽매이고 가 바로 ‘휘말려 들어가면...’ 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무조건 세상일과 단절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신분을 망각하게 만드는 개인적인 삶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거룩하게 자신을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군에 입대하면 훈련받는 몇 주 동안 왜 편지도 쓰지 못하게 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세상 것에 연줄이 닿아 있으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훈련으로 어느 정도 군인정신이 들어갈 때까지 바깥 세상과 단절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좋은 군사는 자기 스스로 세상 것들에 얽어 매지 않습니다. 거룩하게 구별할 줄 압니다.
  우리를 십자가의 군사로 모집한 주님을 기쁘게 하여야 십자가의 좋은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얽매이면 결코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붙잡혀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붙들리면 군사의 자격도 없게 되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리면 가장 좋은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 주님을 기쁘게 할수있는 것입니다.

  런던 거리에서 가난한 음악가가 허름한 모자를 엎어놓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해가 저물어 가도록 연주했지만 동전 몇 닢만 모였을 뿐입니다. 
  지나가는 그 누구도 이 가난한 음악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외롭게 자리를 지키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을 때 그의 앞에 나이 지긋한 한 사람이 동전을 줄 생각은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다가가서 바이올린을 잠깐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바이올린을 건네받은 그가 대신 연주를 하는 데 그 음률이 가는 이의 걸음들을 멈추게 할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어 어두워져도 갈 줄을 모릅니다. 모자에는 동전이 가득 모였습니다. 그때, 군중들 중의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아!  이분은 파가니니다."
  똑같은 악기지만  누구의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삶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잡히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바뀌어 본래의 보내신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푹 빠져 버리면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될수있으면 자신을 세상에서 구별하십시오. 자신의 생각을, 행동을 세상 사람들의 그것들 보다 거룩하고 진실하게 구별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를 모집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군사가 되는 조건입니다. 오직 먹든지 마시든지 주를 위하여 라는 구호를 외치며 살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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