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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인의 명령 (눅 14: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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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홍 목사 (아름다운교회)

예수님이 직접 하신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했습니다. 여기서 그냥 어떤 사람이라고 했지만 마태복음에는 혼인 잔치였다고 했습니다. 실제로는 왕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어떤 사람이란 거지요. 예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이요 신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도 아닌 존재일수도 있습니다.

초청할 것을 예고했고 잔치를 베풀면서 다시 사람들을 보내어 초청했습니다. 그러자 초청 받은 사람들이 모두 못 오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저런 핑계를 댑니다. 땅을 샀다. 소를 샀다. 장가를 간다. 세상에서 상당히 중요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초청에 응한 뒤에 가도 됩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잔치는 세상일들에 비해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어요.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일들이었죠. 왕 아닌 어떤 사람 정도로 보았기에 무시한거죠. 하지만 왕의 입장으로서는 그들은 자기 백성이었고 그들이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영혼이 병들었기에 초청은 절박한 일이었습니다. 산해진미는 산처럼 쌓였습니다. 음악도 봉사자도 준비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손님을 위한 예복이 준비되었습니다.

주인은 화가 나 종들에게 말합니다. “빨리 시내에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장애인들을 다 데려와라.” 이것은 아주 파격적인 선언입니다. 몇 사람 몸 불편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거의 모두가 장애인들이 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지요. 혼인 잔치의 경치가 이렇게 되면 이상하지 않나요?

종들이 와서 또 말합니다. “명하신 대로 했는데도 아직 자리가 남았습니다.” 주인은 말합니다. “아무데나 가서 사람들을 강권해서 데려다가 이 잔치자리를 채워라.” 주인의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좋으니까 빈 자리가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일은 강제로라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만큼이나 잔치 내용이 중요합니다.

1. 배부른 사람은 안 온다

여기서 먼저 초대된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일차적으로는 유대인들이지요. 메시아를 보내어 천국잔치를 해 줄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들도 참여하겠다고 했지요. 하지만 정작 초청하니까 모두 거부했어요.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허락됩니다. 하지만 더 확대하면 재미있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늘 왕이신 하나님이 잔치를 배설합니다. 이 잔치는 영혼이 생명을 얻고 배부르게 되는 신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대상자들에게 오라고 초대장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바빴습니다. 땅을 산 사람도 있고 소를 산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없지요.

하지만 그런 일들은 영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영혼에 유익이 되도록 이용하는 사람은 참 지혜롭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 그 자체뿐입니다. 영적 세상을 모르고 영적 진리를 모르니까 당연히 거기 밖에 관심을 둘 데가 없지요. 그리고 초대한 분이 하나님이신 줄도 모르니까 더욱 흥미가 없는 게예요.

그래서 아까운 자신의 생명을 땅 사고 소사는 세상일에 바칩니다. 시간이 곧 생명이니까 생명을 낭비하는 겁니다. 소가 내게 생명을 줍니까? 아니면 땅이 나의 죄를 용서합니까? 하지만 그런 세상 물질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을 돕는다면 정말 귀합니다. 세상 물질이 없다면 시간과 몸을 드려서라도 자기 영혼에 유익이 되는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여하 간에 천국 잔치에는 무조건 와야 합니다. 세상의 좋은 음식과 대우는 몸을 얼마간 좋게 하지 영혼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입어도 속사람은 굶고 있어요. 몸은 살이 찌고 잘 보호를 받아도 영혼은 북한 수용소에 있는 사람처럼 죽어갑니다. 머리가 빠지고 눈이 안 보이고 피부가 부서져 내립니다. 그러다 맥없이 죽어요.

영양실조가 겹치는 이런 상태를 거기서는 “허약”이라고 합니다. “‘허약’에 걸리면 자기음식도 챙겨 먹지 못하고 빼앗기게 되는데 상태는 급속히 악화된다. 피부가 허옇게 각질이 되어 우수수 떨어진다. 두 번째 북송되었을 때 허약에 걸린 적이 있는데 걸음을 옮기면 스폰지 위를 걷는 것 같고 발을 들어도 10cm도 안 올라간다. 지속되면 죽음이다.”

육신을 위해서는 소사고 땅 사고 결혼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동창을 만나고 노래방 가느라 바쁩니다. 그렇게 육신이 풍성해지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다 집어치우고 여행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허약에 걸린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된 잔치입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관심이 없어요.

2.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온다

주인은 종들에게 말합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사람들 몸이 불구된 사람들을 다 데려와라.” 빨리 나가랍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너무 급하기 때문이지요. 대상자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인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할까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영혼이 가난하지도 않고 불구이지도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이 잔치는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겁니다. 가난이 부로 바뀌고 불구가 온전한 몸으로 됩니다. 그러니까 천국 잔치는 불구자들이 와서 건강해지는 겁니다. 예수께서 육신의 병을 고친 것은 영혼을 완전하게 하신 일의 외적 상징이지요.

예수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 되게 하려 함이라.”(요9:39) 그러자 듣는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우리는 잘 봅니다.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한심한 말이지요. 예수는 대답하셨어요. "너희가 못 본다고 하였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41)

무슨 말인가요? 우리는 영적인 것을 못 보는 맹인입니다. 영적 시각 장애자입니다. 얼마나 풍성한 세상이 앞에 있고 얼마나 무서운 저주가 앞에 있는지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소사고 땅 사는 일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속이고 음란한 짓을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전혀 볼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그런 줄이나 알고 잔치에 달려와야 하지 않겠어요?

잔치에 와서 말씀을 들으면 그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이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한다.”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마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보는 사람들은 “우리는 맹인입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눈 믿음의 눈을 뜨려고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마음이 부자인 자는 실제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 말씀을 들어야 자신의 가난함과 병든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겁니다.

마태복음에는 잔치에 온 사람들에게 예복을 입혔다고 했습니다. 귀족의 대우가 주어졌습니다. 망가졌던 영혼을 고쳐주고 하늘 음식으로 배부르게 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예수로 보게 되었고 영혼이 건강해졌습니다. 아직도 경험 못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의 삶도 그렇게 경험됩니다.

3. 강권하여 빈자리를 채우라

잔치에 많이 데려다 앉혔는데도 자리가 여전히 비어있습니다. 오늘 우리 현실과 같아요. 이제 주인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명령입니다. 이 일이 가장 우선되어 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허약에 걸린 인생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교만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저는 사업이 급합니다.” “저는 아이들 일이 더 급해요.” “이 문제부터 해결한 뒤에 나가겠습니다.” 그게 정말로 급할까요? 먼저 하늘 잔치에 참여한 뒤에 가면 더 좋을 텐데요. 생명 없이 하는 행동들은 모두 껍데기뿐입니다. 예수를 주로 부른다면 주인의 일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일은 이 일을 위해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는 겁니다.

하루에도 수천수만의 허약에 걸린 영혼들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이들이 잔치에만 오면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렇게 다그치는 것입니다. “가서 내 백성들을 구해라. 빈자리가 없게 하라. 모두 앉아서 생명을 얻게 하라. 말을 안 들으면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 자신이 가난하고 자신의 영혼이 불구인 줄 아는 사람이 어디엔가 반드시 있다.”

중국 가정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30여명이 모여 몰래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가정의 아들과 어머니가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부인이 자주 집을 비우자 속이 상한 남편이 경찰에 고발해 버렸습니다. 붙잡혀간 30여명의 성도들은 모두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몸으로 때우겠다며 30명이 유치장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기도하고 찬송을 불러댔습니다. 조용히 하라 하면 조용히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유치장은 그대로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미 들어와 있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전도가 되었습니다. 경찰서 전체가 난리가 났습니다. 두려웠습니다. 판사에게 부탁해서 30명뿐 아니라 전도 받아서 물든 사람들까지 모두 내보냈습니다. 교회는 더욱 왕성해졌습니다.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교회에 빈 자리가 남아있는 동안에는 쉴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늘 마음에 가지며 두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는 주인 명령에 순종하려는 사람은 그대로 할 힘도 주어진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어느 시간이건 장소이건 내 하는 일을 생명 구하는 상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 가정교회 교우들은 감옥까지도 이용해서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사도행전이 따로 없지요? 영적 능력이 넘치는 데 세상의 일이야 더 쉬워지지요. 주인의 사랑받는 길은 그의 명령대로 하는 것입니다.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소사고 땅 사고 무슨 일을 하든 그 자체뿐 아니라 그렇게 하세요. 사랑받고 내 영혼이 사는 길입니다.

나가서 강권하기 바랍니다. 주인은 빈자리가 있는 동안에는 계속 그렇게 하라고 하실 겁니다. 요청한다고 오지 않습니다. 다 핑계대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강권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삽니다.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잘되는 길은 절대로 없습니다. 이 한 명령만 지키면 다른 것은 부족해도 됩니다.

1. 신자들이 세상의 사업을 하는 주목적은 무엇인가요? (1/3,4) 2. 마음이 가난하고 불구인 사람이 누구인가요?(2/2) 3. 예복을 입음으로 어떻게 됩니까?(2/7) 4. 주인은 왜 그렇게 몸이 달아 다그치나요?(3/3) 5. 중국교우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의 다짐을 하나요?(3/4,5,7)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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