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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의 자백의 의미 (요일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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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우 목사 (한남제일교회)

☺ 목사님이 사자에게 좇겨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 사자가 저를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저 사자가 예수믿게 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다 될 줄 알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사자가 좇아오다가 멈추었습니다. 사자가 목사님 앞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용할 양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사자에게 잡혀 먹었답니다. ☺

예수믿는 것과 사람이 살아가는 행동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를 믿는데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두 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는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합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는 믿지만 과거에 살던 육신의 정욕, 세상의 관습, 마귀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제멋대로 삽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나를 사로잡아서 과거에 행했던 육신의 죄를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랑하심 속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어느 교회에서 교회의 미래를 놓고 같이 토론회를 벌였습니다. 어떤 분이 “교회는 참 문제가 많습니다. 위선자가 많습니다. 앞에서는 그럴듯하다가 뒤에서 다른 짓을 합니다.” “교회는 목사님이 문제입니다. 사명에 충실하지 않고 자기 사리사욕을 너무나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결론적으로 말하길 “교회는 얼마나 부패했는지 세상보다 못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속이 답답합니다.

목사님이 한마디 합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교회에는 위선자도 있고, 목사님 중에는 사리사욕을 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여러분 보기에 세상보다 부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눈에 그런 것만 보인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교회에서 진정으로 찾아야 될 것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고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 모습을 예수의 모습, 예수의 형상으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을 향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죄를 몰라서 정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정죄는 사탄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뜻이 무엇입니까? 참소하는 자입니다. 사탄은 참소자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헐뜯습니다. 좋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죄가 있음을 보시면서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긍휼의 사랑을 베푸십니다.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를 어떻게 하면 살게 할 까 하는 것이 주님의 관심입니다. 그것 때문에 죄인 된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나에게 어떤 곳입니까? 나의 훈련소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예수의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은혜롭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교회고 이런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죄없다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8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죄가 없다고 하면 진리가 없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속에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이 진리 이십니다. 예수님이 길이십니다. 그런데, 내가 죄가 없다고 길도 진리도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죄가 있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죄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원죄입니다. 둘째는 자범죄입니다. 원죄라고 하는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입니다. 양반의 자녀가 양반이고 종의 자녀가 종인 것처럼 죄인의 자녀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자범죄가 있습니다. 스스로 지은 죄가 있습니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는 죄를 많이 짓고 살고 있습니다. 원죄이던지 자범죄이던지 ‘나는 죄있다’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죄없다라고 하는데 죄 있다라고 하면 싫어합니다. 죄가 있다고 하면 교회나오기 싫다고 합니다. 왜 정죄하느냐 말입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하면서 퉁명스럽게 양심의 소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죄 없다고 하는 것은 마귀가 우리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마귀의 방법은 이런 것입니다. 숫자적인 해결을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죄짓고 산다고 하면서 얼버무립니다. 그것이 맞습니까? 온 세상이 아니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죄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다수에 의해서 결정하는 분이 아닙니다. 100명의 군인이 걸어갑니다. 99명의 군인은 오른발을 내밀었고, 1명의 군인만이 왼발을 내밀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99명입니까? 아니면 1명입니까? 맞고 틀림을 어떻게 결정합니까? 사람의 숫자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구령자의 구령에 따라서 맞추는 것입니다. 구령자가 오른발이냐 왼발이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인간의 다수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표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인간이 만들어낸 마귀의 간교한 방법은 비교하는 방법입니다. 자기보다 악한 사람을 찾아내 비교함으로 스스로의 죄책감에서 빠져나오려는 방법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 하나님앞에서는 죄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죄는 죄입니다. 비교의식에 숨지 마십시오.

세 번째, 대차대조표의 방법입니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과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더하기 빼기 해서 선행이 남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죄는 한가지만 있어도 죄입니다. 제가 심장이 나쁘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심장 하나가 나쁜데, 위도 좋고, 간이나 폐, 팔다리가 다 좋다고 건강한 사람입니까? 죄는 하나만 있어도 죄입니다. 병은 하나만 있어도 병자입니다. 무슨 뜻인줄 아시겠습니까?

네 번째, 책임전가의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되고 고전적인 방법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실 때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우리는 흔히 여기에 빠집니다. 환경이 그랬다, 형편이 그랬다, 그래서 죄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런 간사한 노력이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없애줄 수는 있을지 모르나 죄 자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 없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마틴 루터 종교개혁자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죄인의 최종적 증거는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죄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죄를 자백하라는 말입니다.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를 자백하면 죄를 사하시고 깨끗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의 반대는 의로움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성경에서의 죄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감정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자기만을 높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의로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나라, 성령충만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충만하도록 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것이 의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백하라고 하는 말은 죄인됨을 시인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없이는 못 살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죄인임을 자백하면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우리 죄를 사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사람은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있습니다. 생명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 분이 나를 붙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나를 자백하고 시인한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는 못삽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를 자백하면 즉시 감옥에 갑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생각이 안 납니다.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야기했다 하면 감옥에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쁨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 들은 말씀 가운데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7살짜리 형과 5살짜리 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여름에 강가로 피서를 갔습니다. 수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생과 수영을 하던 형이 그만 물에 빠졌습니다. 5살짜리가 어떻게 할 도리가 생각이 안 납니다. 이 아이가 어찌 했겠습니까? 울면서 아빠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급히 와서 형을 살렸습니다. 이 죽어가는 아이를 누가 살렸습니까? 어떻게 살았습니까? 건지는 것은 아빠였지만, 살게 된 것은 동생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동생은 아무 힘도 능력도 없지만, 동생이 도움을 요청해서 형을 살렸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자백하라는 말은 네가 해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있지 않습니까? 간호사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는데 체면이 있지, 내가 병을 고치고 가야지’,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도 죄인된 모습 그대로 가야 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 가자고 하면 술 때문에 못 간다고 합니다. 술 끊고 간다고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오면 끊어집니다. 사기치던 사람도 그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십니다. 원죄는 우리로 하여금 죄인의 자녀 되게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 값은 주님이 다 치르시는 것입니다.
요12: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주님 앞에 와서 나의 죄인됨을 고백하면 나는 죄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지는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는 자범죄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죄를 짓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내생각대로 살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실 때에 우리는 죄를 안 짓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 가서 만난 친구장로가 처음으로 제게 고백을 했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도박했답니다. 그것 때문에 이혼할 까 부인이 생각도 했었답니다. 그런데 부인이 끝까지 참아주었습니다. LA에서 시애틀로 가면서 가기전에 한번만 하고 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라스베가스에 가는데 갑자기 마음 속에 도박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그것이 그렇게 싫어지더랍니다.
지금은 ‘단 도박 강사’ 랍니다. 도박을 끊게 하는 것입니다.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했더니, 예수믿으라고 한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면 세상의 유혹과 육체의 정욕과 마귀의 유혹에서 이길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면 이 세상에서도 건짐을 받을수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십니까?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하십니까?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계십니까?

지난번에 국민일보를 보았는데, 제주도에 새로운 관광명소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열기구를 타고 150M상공을 올라가 제주도를 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몰려오는지, 30억을 투자했는데 특이하게도 주일날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안하냐고 물었더니 사장되는 집사님이 “이 사업을 하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주일 날 장사하면 안 도와주실 것같은 두려운 마음에 주일날 안 합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옆의 사람들은 자꾸 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자기는 안한다고 합니다. 특별한 신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면서 그런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 헌금하면서 그런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까? 마치 장사하듯이 이만큼 했느데, 하나님 얼마나 주실 겁니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구약성경 말라기 후에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400년동안 하나님의 역사는 없었습니다. 암흑시대를 살아갑니다. 영적으로 피폐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큰 고난을 겪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라기서를 가만히 보시기 바랍니다. 말라기서는 마지막선지서인데, 크게 세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예배, 둘째-말씀, 셋째-헌금을 지적합니다. 그 헌금이나 말씀이나 예배드리는 일에 있어서 마음이 하나님을 도와달라는 마음이 없습니다.

말라기서 1장1절 그리고 2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데, 너희가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고 하십니다. 이들이 반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안 사랑했습니까?’ 우리가 다 예배드렸고, 성경 보았고, 헌금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드리는 예배의 제물이 무엇입니까? 눈 빠지고, 다리없는 못 쓸 짐승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거룩한 제물을 드려야 되는데, 그것을 드리고 다 드렸다고 합니다. 그 속에는 정성도 없고 믿음도 없고 하나님 도와달라는 두려운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도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것도 동냥하듯이 합니다. 너희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합니다. 4장에 가서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송아지같이 뛰듯이 소망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예배 속에, 우리의 말씀 속에, 우리의 헌금 속에 하나님을 향한 두려운 마음이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이런 믿음 없이, 마음 없이 예배나 헌금이나 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를 도와 주세요.’ 하는 마음입니다.

‘최용덕’이라고 하는 유명한 복음성가 가수이자 작곡가가 있습니다. 이분이 어느날 갑작스레 쓰러졌습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요양을 하는데, 생각할수록 억울합니다. ‘내가 무슨 죄가 있나? 무슨 잘못이 있나?’ 그런 생각을 하니 아픈 것이 더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성경을 이리 저리 펼치다 히13:5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붙잡고 “주님, 이 말씀을 믿습니다. 나를 절대 버리시지 않은 줄 믿습니다.” 고백하면서 찬송을 만들었습니다.

< 오 신실하신 주 >

1.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2. 지나간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후렴)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우리는 때로 살면서 내 생각에 억울한 고난을 받는 것같은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교회 떠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목사님이 어떻게 그럴수 있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주간 목사고시 보는 분들을 면접하는데, 그 중에 목사님 따님이 한 분 있습니다. 자기는 아버지 때문에 너무나 시험이 들었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참 좋은 분인데, 그 딸에게는 시험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강대상에서의 아빠와 집에서의 아빠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해결을 했답니다. “목사도 사람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완벽하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믿어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우리를 실망시킨다고 스스로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감사 가운데 최고의 감사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이 마지막 고백을 합니다. ‘나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내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리라’,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음을 지키십시오. 죄를 자백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을 드러낸들 무엇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 나라가 왜 이리 시끄럽습니까? 자꾸 죄만 들추어 내다 보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나라를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사자가 예수님을 믿어도 그 성품만은 바꾸지 못합니다. 그런 사자처럼 예수 믿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에 이끌리면 예수를 믿어도 교회를 잡아먹고, 목사를 잡아먹고, 장로를 잡아먹는 일을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예수 믿어도 잘 안 바뀌는 것이 있습니다. 성품은 잘 안 바뀝니다.

예수만이 우리를 승리케 하십니다. 예수 안에 살고 진리 안에 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해 주시고 깨끗케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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